29화. 갈등(3)
“전방에 오크 무리 발견. 전투 준비.”
임시로 리더의 역할을 맡은 A등급 용병이 낮게 죽인 목소리로 선언했다.
앞서서 이동하던 정찰대가 몬스터를 발견하고 그것을 본대에 알렸다.
일행 모두가 빠르게 장비를 점검했다. 펠라키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우수한 용병들다운 모습이다.
펠라키 산맥의 전투는 이기는 것이 아닌 속전속결이 기본.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해야 했다.
조금은 풀어져 있는 듯했던 용병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진지해졌다. 그 분위기가 뒤쪽의 기사들과 레이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레이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등을 훑고 지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잘 벼린 칼날과도 같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용병 모두가 그 나름대로 무술의 경지에 이른 이들. 확실한 실력자들이었다.
가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무술을 견식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레인과 로엘이었다.
“넌 준비 안 해?”
“딱히 내가 나설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오크 여섯 정도는 문제없겠지. 근처에 매복 중인 몬스터도 없는 것 같고.”
“그래도…….”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잊은 건 아니지? 우리 지금 돈 받고 일하는 중이라는 거.”
“불만이면 보수를 삭감하든지 하겠지.”
방금까지 다른 용병과 갈등을 빚더니 그것이 앙금으로 남았는지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레인. 그리고 그 레인을 달래는 로엘.
“…….”
레이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가문의 기사가 인정한 실력자라 여러모로 기대했는데, 지금까지 한 일은 말다툼을 벌여 분위기를 흐려놓은 것 이외엔 없었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주위 용병들도 두 소년을 탐탁잖게 생각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두 소년의 대화에 일행 대부분이 그다지 좋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쯧.”
누군가가 대놓고 혀를 찼다. 그러나 두 소년은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내 전투가 시작되었다.
조악한 무장을 갖춘 오크 6마리가 풀숲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용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최대한 잡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럴 틈이 없도록 하기 위한 기민한 움직임.
레이나도 자진해서 한 마리를 상대했다. 실전 경험은 부족하지만, 그렇다 해도 기본적인 실력이 출중했기에 가장 먼저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후.”
상쾌한 표정으로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레이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확실히 오크 여섯 마리 정도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응?’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정찰대의 보고에 오크가 여섯 마리라는 내용이 있었던가?’
명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그녀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 * *
“돌아서 가지.”
한동안 잠잠히 있는가 싶던 레인이 또다시 탐색꾼 용병을 제지하고 나섰다.
“이번에는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나도 쓸데없이 나서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듣는 게 좋을 거다. 그 방향은 안 돼. 다른 길을 찾아.”
레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건방진 꼬마야. 미안한 말이지만, 경로를 바꾸는 일은 없을 거다.”
“…….”
레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위험할지도 몰랐다.
탐색 전문 용병이 제시한 방향에서는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그래서 위험하다 느껴졌다. 이 산맥에서 이렇게까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장소라니. 분명 무언가가 있다. 피해 가야 했다.
레인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있는 보조역들, C-D등급의 용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정 외의 사태가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위험해질 이들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가 검병 위에 손을 얹었다. 작금의 상황을 해결할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무력시위였다.
자신이 초감각(超感覺)의 소유자란 사실을 밝히면 어찌어찌 여론을 뒤집을 수 있을 터였다.
“됐어, 레인.”
그때, 로엘이 레인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뭐야.”
“됐다고. 더 말한다고 해서 들어줄 분위기도 아니고.”
“그래서, 이대로 그냥 두자고?”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지금 억지로 주장을 밀어붙여 이 자리를 피해간다 해도 우리에겐 이익될 것이 없어.”
레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로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해서 주장을 밀어붙이면 위험을 피해갈 순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레인과 로엘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반감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문제였다.
이미 하슨이 레인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고, 용병들도 그를 마뜩잖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힘자랑을 하며 일행을 진두지휘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결코 긍정적인 반응을 얻진 못할 테지.’
어차피 만약의 상황이 벌어져도 위험에 빠지는 건 이쪽이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이 도래해도 레인과 자신은 괜찮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너…….”
“굳이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할 이유는 없지. 안 그래?”
이것이야말로 레인과 로엘의 성격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두 사람 다 성인군자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상대적인 측면에서 레인이 로엘보다 조금 더 정의로웠다.
로엘은 매사를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대가 없는 선의는 베풀 수 있어도 대가 없는 손해는 감수하지 않는, 그런 인물.
“······.”
“달리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 들어줄 테니.”
그동안은 두 소년이 서로 대립할만한 상황이 그리 없었다. 그것이 지금,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생활권이 넓어진 지금의 상황에 와서야 불거졌다.
서로의 의견이 명확하게 갈린 두 사람은 날이 선 감정이 그대로 표출된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위험한 상황이 터지면?”
“그땐 그때지. 꼭 터진다는 보장도 없고.”
“…….”
결국,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레인이었다. 아무래도 납득 하지 못하겠는지 한 차례 혀를 차면서.
로엘은 어찌어찌 길길이 날뛰는 탐색 전문 용병을 달래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마시켰다. 일행은 탐색꾼 용병이 제시한 길을 따라 이동했다.
“후······.”
레인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로엘이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 * *
일행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몬스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옆쪽에 경사가 가파른 비탈길이 있긴 했지만 지나가고 있는 길이 그렇게까지 험하거나 비좁거나 하지도 않았다. 떨어질 위험은 없어 보였다.
주변에 아무런 기척도 없다는 정찰대의 보고가 몇 번인가 이루어지고, 용병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어질 즈음. 유독 주위를 경계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레인과 로엘이었다.
다른 용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지금까지 가장 긴장감 없게 행동하던 녀석들이 이제 와서 쓸데없이 기력을 낭비한다는 둥, 역시 임시 용병이라 뭘 모른다는 둥.
저들 딴에는 이쪽에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감각을 예민하게 가다듬고 있는 레인과 로엘에겐 전부 다 들렸다.
뒤쪽의 기사들 또한 겉으로는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음이 분위기로 전해져 왔다.
기감으로 주위를 살피는 데 열중하는 두 소년과 달리, 다른 용병들은 긴장이 상당히 풀린 모습을 보였다.
탐색꾼 용병이 옆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검술에 꽤 진전이 있었다며?”
“그 소식이 벌써 네 귀까지 들어갔냐? 하여간, 이 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랄하고 있네. 술에 취해서 본인이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고 멕스웰이 그러더만.”
“……전혀 기억에 없는데.”
“어련하시겠어. 그래서 어떤 진전이 있었는데?”
“숨길 것도 없겠지. 검에 불어넣는 오라를 특! 별! 한! 방법으로 운용해서 충돌할 때 나는 소음을 없애는 기술이다.”
“그거 굉장한데. 검가에나 전해져 내려온다는 잠형 검술과 비슷한 것 아닌가?”
탐색꾼 용병이 감탄사를 흘렸다.
확실히 유용한 능력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굉장한 효율을 보일 터였다. 이를테면 기습할 때라든지. 특히 펠라키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용병에겐 더더욱 유용할 테고.
“후후. 이 몸께서 개발한 기술이니 굉장한 게 당연하지. 한 번 보여줄까?”
“여기서? 기술을 시연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뭐로 들은 거야. 소음을 없애는 기술이라니까? 거기다 지금은 딱히 주위에 몬스터도 없는 것 같고.”
“그럼 한 번 구경이나 해 볼까?.
“보고 나서 놀라지 말라고.”
용병은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길 한쪽에 위치한 바위로 향했다. 잡담 소리가 작지 않았던 만큼 다들 흥미가 이는지 그쪽을 주시했다.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살짝 과장스럽게 발검 자세를 취한 용병이-
“후읍!”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칼날에 맺힌 것은 선명한 검기(劍氣). A등급 용병이란 명함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서걱-!
검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얕게 베인 바위.
얕다고 해도 손가락 길이 만큼이었다. 보통은 베이지도 않고 튕겨난다. 확실한 실력의 증명.
그보다 놀라운 것은 소음이었다.
본래 나야 할 불쾌한 마찰음이 전혀 없었다. 마치 가위로 두꺼운 종이를 잘라낸 듯한 적당한 절삭음만이 남았다.
“이야.”
“쓸 만한데!”
여기저기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깔끔한 기술을 선보인 용병은 으스대며 콧대를 높였다.
“······!”
다음 순간, 레인이 확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옆을 보니 로엘 또한 위화감을 느꼈는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변이 벌어졌다.
“감사합니다. 관객 여러분.”
용병이 다소 과장스럽게, 멋스러운 포즈로 납검하고 뒤돌아섰다. 그 직후 쩌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병이 남긴 검흔(劍痕)에서 시작된 균열이 삽시간에 절벽 위쪽까지 번졌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용병이 휘두른 검격에 엄청난 위력이 담겼던 게 아니다. 그의 검은 그저 바위를 손가락 하나 깊이만큼 베어내었을 뿐이었다.
이변의 원인은 명확했다. 이 장소의 지반이 원래 불안정했던 것이리라. 용병의 솜씨 자랑은 그저 붕괴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된 것일 뿐.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경악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재해였다.
“사, 산사태다!”
시야에 담긴 세상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