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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갈등(2) (28/249)
  •  28화. 갈등(2)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오히려 나쁘다고 해야 할지. 일단 의뢰는 취소되지 않았다.

    “…….”

     기사는 한동안 말없이 신색을 추슬렀다.

     차마 두 소년과 시선을 마주하진 못하고 깍지 낀 자신의 두 손만을 내려다보는 기사. 평정심을 되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끝내 그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다’며 두 소년을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명백히 두 소년을 불편해하면서도 의뢰에 관한 내용을 착실히 설명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로엘은 의외로 이 기사 양반의 수양이 깊다는 사실에 속으로 감탄했다.

     간단하게 의뢰에 관한 설명을 듣고, 집합 일자에 다시 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해산했다. 두 소년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 * *

     이틀이 지나 찾아간, 여관 푸른 눈물.

     시간은 오전 9시가 조금 안 된 이른 아침. 이미 레인과 로엘 이외에도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한 덩치 하는 용병들이었다. 펠라키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용병들인 만큼 다들 관록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 용병들의 사냥을 지원하는 지원인력들. 지원인력이라고 말했지만 일단 그들도 용병이었다. 사냥에 직접 참여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낮은 등급의 용병들.

     지원조는 사냥조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저들끼리 뭉쳐 있었다. 사냥 지원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 그리고 수확물을 보관할 자루나 배낭 따위를 챙기고 있었다.

     그 외에 기사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산을 올라야 하는 탓에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어제도 그랬지만 기사 특유의 판금 갑옷 차림은 볼 수 없을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일행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오.”

     레인과 로엘은 드디어 그들을 고용한 의뢰주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외로 여성이었다. 나이는 이쪽보다 두세 살 정도 많을까.

    ‘나도 의외로 선입견이 꽤 있었군.’

     로엘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무술 수련에 열을 쏟는 인물이자, 수련을 겸해 펠라키 산맥을 찾아온 귀족 자제. 지금까지 얻은 의뢰자에 대한 정보다. 그리고 그 정보 어디에도 의뢰자가 남성이란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도 로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의뢰자가 남성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름 21세기 지구의 상식을 머릿속에 지니고 있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현대인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레인은 전혀 그것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여성의 신체적 한계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무공’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았던 덕분일까.

     로엘은 일단 이쪽의 합류를 알리기 위해 인사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제일 늦은 것 같군요.”

    “신경 쓸 것 없다. 아직 집합 시간이 되기 전이니까.”

     어제 봤던 기사가 두 소년을 힐끗 곁눈질하며 답했다.

     간단하게 예의를 차린 로엘이 레인을 이끌어 용병들이 위치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여 있는 용병들은 여기저기 주저앉아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두 소년이 그 대열에 살짝 껴서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았다.

     잠시 시선이 집중되나 싶더니, 용병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장한이었다. 모인 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마른 체형이었다.

    “이봐, 꼬마들.”

    “?”

    “지원조는 저쪽이다.”

     로엘이 쓴웃음을 흘렸다.

     레인은 귀찮다는 듯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외견이 어리니 무시당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일일이 오해를 푸는 것도 일이었다.

     그나마 레인이 잠잠해서 다행이었다. 전날에 열심히 설교를 늘어놓은 보람이 있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착각한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사냥조니까요. 이래 봐도 B등급 용병입니다.”

     답변은 웃는 얼굴로. 상대측이 불쾌감을 느끼거나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정말로?”

    “물론입니다.”

     로엘은 용병패를 들어 보였다.

    “굉장하군.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데.”

    “글쎄요. 적어도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B등급 이상이지 않습니까.”

     펠라키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용병은 대체로 B등급 이상의 실력자들이다. 그만큼 위험한 장소니까.

    “그래도 그 나이에 그 실력이면 대단한 거지. 오늘 잘 부탁한다. 아, 내 이름은 폴이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로엘, 그리고 이쪽은 레인입니다.”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통성명해오는 사내, 폴. 호의적인 말투에 비해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로엘은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모른 척했다.

    “…….”

     이쪽을 미덥지 않게 여기고 있음이 훤히 보였다. 주변의 다른 용병들도 대체로 비슷한 생각인 듯싶었다.

    ‘위험성이 높은 사냥에 실력이 확실치 않은 어린애 둘이 합세했으니 달가운 기분은 안 들겠지.’

     능력은 앞으로 천천히 입증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기사들이 목소리 높여 소리쳤다.

    “그럼, 시간이 다 되었으니 출발한다!”

     * * *

     어깨보다 한 뼘 정도 아래까지 기른 금발 머리를 뒤로 모아 질끈 묶었다. 시원스러운 헤어스타일.

     활동하기 편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는 가죽옷. 주문 제작 제품인지 체구에 정확히 맞아 멋스러웠다.

     허리춤에는 훌륭한 무늬와 보석으로 치장된 검. 조금 사치스러워 보였다.

     오밀조밀하다기보다는 시원스럽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목구비. 분명 미인의 그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세련됐다’는 느낌을 주는, 소녀와 여인의 경계 즈음에 위치한 여성.

     올해 나이 15세. 레이나 하슨.

     그녀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겨우 허락받은 바깥나들이였다. 최대한 즐길 생각이었다.

     외성을 지나 빈민가에 진입했다.

     빈민가라고 해도 외성 안쪽과의 차이는 성벽의 존재 유무 정도다. 논밭이 영지의 주를 이루는 하슨 백작령보다 훨씬 번화했다. 레이나는 정신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감탄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은 이내 한 곳에 멈췄다. 앞쪽의 용병들 사이에 끼어있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두 소년. 딱 보니 자신보다도 어려 보이는 이들이다.

    “저쪽의 두 소년도 용병인가요?”

     그 질문에 경호를 위해 주위에 늘어선 기사들이 일제히 펠런을 응시했다. 두 소년과의 계약을 담당한 것은 그이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을 알아챈 레이나 또한 펠런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펠런은 무언가 마땅찮은지 이마에 살짝 주름을 만들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B등급 용병이죠.”

    “와아. 딱 보기에도 제 또래, 아니, 그보다도 어려 보이는데요. 용병 중에는 본신의 무력보다도 지닌 바 특기가 뛰어나서 높은 등급에 위치한 이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 둘이 그런 케이스인가요?”

     두 소년의 외견은 아무리 봐도 강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래서 레이나는 두 소년이 특기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아니오. 그런 케이스는 아닙니다. 저들은 순전 무력으로 B등급에 용병패를 따낸 이들입니다. 실력은 이틀 전에 제가 직접 확인했으니 확실합니다.”

     펠런은 그렇게 말하고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싫은 생각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이.

    “오…….”

     펠런의 답변에 레이나는 흥미가 이는 것을 느꼈다.

     펠런은 현재 그녀를 호위하는 다섯 기사 중 조장인 크레일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자존심도 높았다.

     그런 그가 평민 용병, 그것도 어린 소년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것이 못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럼 저 애들과 저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그래서 괜히 물어보았다. 그냥 가벼운 생각으로 내뱉은 질문.

    “……뭐라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레이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레이나는 어려서부터 무예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렇기에 이른 나이부터 검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 흥미를 뒷받침해줄 환경 또한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귀족의 자제. 그녀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기사들이 주위에 여럿 존재했다. 가문의 비전 검술 또한 뛰어난 것이었다.

     주위의 반대가 좀 있긴 했지만, 그래도 평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해온 노력은 상당했다. 빈말로도 재능이 넘친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수련으로 극복해왔다.

     동년배의 귀족 자제들이 사교 모임을 전전할 동안 그녀는 검을 휘둘렀다. 매일같이 수련하고 또 수련해서 가문의 웬만한 기사들보다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가문의 기사들은 그런 그녀의 노력을, 실력을 인정했다. 그것은 펠런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부러 대답을 피한다는 건······.’

     레이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연히 자신이 더 뛰어나다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한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무언가 얼버무리려 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

     그녀의 시선이 두 소년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그 순간.

     밤색 머리칼을 지닌 소년이 뒤쪽을 곁눈질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녀의 시선과 소년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교차했다.

     소년은 이내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옆으로 돌린 레이나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꼭 이쪽의 대화를 전부 엿듣기라도 한 듯한 타이밍.

    ‘아니겠지?’

     상당히 떨어진 거리인 데다, 그렇게 큰 목소리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과민한 거겠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대련이라도 부탁해볼까. 펠런 경이 인정한 인물이니 좋은 공부가 될 것 같은데.’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사고를 전환했다.

     * * *

     밤갈색 머리칼 소년, 그러니까 레인이 위치한 앞쪽도 마찬가지로 이래저래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 같은데, 왜 그래?”

     로엘이 물었다.

    “의뢰주가 우리 얘기를 하더라고.”

    “웬일이야? 딱히 험담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티 나게 뒤를 힐끗거리다니. 네 성격상 그런 걸 크게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은데.”

    “…….”

     로엘은 짓궂은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

    “뭐야. 혹시 의뢰주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거야? 언뜻 봐도 미인이긴 하지만…….”

    “없진 않지. 아까부터 괜히 시선이 가게 되더라고. 저 정도의 인물은 흔히 보기 힘드니까.”

    “……!”

     로엘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인정해버리니 도리어 놀리려 한 이쪽이 머쓱해지는 기분이다. 솔직히 이런 답이 되돌아올 줄은 몰랐다.

    “네 취향은 저런 타입이었구나.”

    “무슨 소리 하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로엘은 입가에 묘한 웃음을 그리며 얼버무렸다. 그러나 생각만큼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진 못했다. 입꼬리가 살짝 실룩였다.

    “영문을 모르겠군.”

     레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시선을 다시 전방으로 돌렸다.

     의뢰주 하나. 기사 다섯. 호위 목적으로 고용된 용병 열. 그리고 지원조 용병 넷.

     총 20명의 인원이 산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문제는 일행이 산을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졌다.

    “이쪽으로 가면 됩니다.”

    “······그리 좋은 생각 같지 않은데.”

    “꼬마야.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레인의 의견과 사내의 의견이 충돌했다. 사내는 A등급의 탐색 전문 용병이었다.

     당연하게도, 등급도, 인지도도 부족한 레인의 의견은 사내의 의견에 계속 밀려났다.

    “열의가 넘치는 것은 좋지만,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는 구분해야지.”

    “왜 자꾸 전문가의 의견에 토를 다는지 모르겠군.”

     지켜보던 용병 하나가 바닥의 흔적을 살피더니 그렇게 중얼거렸다. 로엘이 곤란하다는 듯 볼을 긁적이고, 레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레인의 주장은 그의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능력을 로엘 이외의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기감을 풀어 탐지해본 결과 이쪽이 더 안전하다. 그렇게 설명하기엔 그 말을 주위의 용병들이 믿어줄 리 만무했다.

     만일 레인이 검강을 선보인다면 중인들의 시선도 달라지겠지만······.

    ‘구태여 무력시위를 할 필요까지야. 딱 받은 돈만큼만 일하고, 맡은 역할에만 충실하면 그만이다.’

     로엘이 쓴웃음을 흘렸다.

     힐끗 시선을 돌리니, 작금의 상황을 방관하듯 딴청을 피우는 펠런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 들어왔다. 전날의 굴욕이 그에게 반감을 선사한 모양이었다.

    “······.”

     레인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저 용병이 고른 길도 그리 나쁘진 않고.”

     로엘이 레인을 다독여주듯 말했다. 확실히 경험 있고 실력 있는 용병인지 길을 찾는 능력이 탁월하기는 했다. 레인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

     위로에도 레인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로엘이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것참, 난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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