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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갈등(1) (27/249)
  •  27화. 갈등(1)

    “그래서, 의뢰주는 어떤 사람이야?”

    “뭐랬더라, 무슨 귀족가의 자제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귀족? 귀족이 직접 산을 오르겠다 했다고? 의외네.”

    “몬스터의 부산물을 획득하려는 건 덤이고, 수행을 위해서란 측면이 강한 것 같더라고. 대충 들어보니 검술에 푹 빠진 위인이라 하던데.”

    “흐음.”

     로엘은 검지로 볼을 살짝 긁적였다.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스스로 화를 초래하는 타입이 아니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파르엘의 건이 있다 보니 조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고용된 건 우리뿐만이 아니야. 다수의 용병에게 의뢰를 넣었고, 우리는 그중 하나인 거지.”

    “사실 그게 정상이지. 파르엘 씨가 우리를 고용했던 때가 오히려 비정상이고.”

    “집합 장소는 의뢰주가 머물고 있는 중앙대로 근처의 여관 ‘푸른 눈물’ 앞.”

    “귀족은 귀족이네. 거기 더럽게 비싸다던데.”

     두 소년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목적지를 향했다.

     * * *

     이내 도착한 의뢰주의 숙소. 푸른 눈물.

     딱 봐도 주위와 구분되는 백색 건물이었다. 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간판부터 테라스까지 딱 봐도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건물 내로 들어서자 종업원이 깍듯한 태도로 맞이해 주었다. 로엘은 그에게 의뢰주의 이름을 대고 그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 그를 지금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종업원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별채로 향하더니 누군가를 데리고 돌아왔다.

    “귀족이라더니 확실히 스케일이 다르네.”

    “방을 잡는 게 아니라 별채를 통째로 대절한 건가.”

     사내는 자신을 찾아왔다는 두 소년을 확인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로엘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쪽이 의뢰를 받고 찾아온 용병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나이 탓일 터였다.

     세 사람은 바깥의 테라스에 마주 앉았다.

     사내 냉막한 인상의 장한이었다. 특징적인 면을 꼽자면 날카로운 눈매 정도. 그 이외엔 다소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레인의 시선으로는 조금 달랐다. 겉멋이 든 울퉁불퉁한 근육이 아닌, 정확히 필요한 만큼 잘 발달된 근육. 그리고 절제된 분위기.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필시 기공이 포함된 체계적인 무예를 수련한 인물이었다.

     먼저 로엘이 빙긋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하슨 씨.”

    “아니, 나는 하슨 가의 기사다. 너희가 지칭하는 인물은 지금 내가 모시고 있는 분이지.”

    “그렇군요. 그럼 성함을 먼저 물어도 될까요?”

    “펠런이다.”

    “아, 펠런 님. 저흰 이번에 의뢰를 받아 찾아오게 된 용병들입니다. 이쪽은 레인, 그리고 전 로엘이라고 합니다.”

    “용병? 분명 의뢰를 넣은 용병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겉모습은 이래도 확실한 B등급 용병입니다.”

     로엘은 빙긋하고 웃으며 용병패를 꺼내 들어 펠런의 앞에 내밀었다. 용병패를 확인한 펠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B등급 용병이 맞군. ‘임시’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너희가 길드 게시판에 의뢰 내용을 올려놓은 그 팀인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흠.”

     용병패를 확인했지만 아직 이쪽을 미덥잖게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시선으로, 제스처로 확연히 드러났다. 굳이 감출 생각조차 없는 모양.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솔직히 신용하기 어렵군.”

    “…….”

     로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누가 누굴 평가한다고.”

     다만 레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로엘은 한숨을 뱉어냈다. 그놈의 성격.

     곧바로 레인의 머리를 뒤에서 찍어 눌렀다. 강제로 고개를 숙이도록 만든 후 상대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리곤 레인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너 인마, 상대는 의뢰주라고.”

    “그렇지만 대놓고 내려다보는 시선이잖…… 윽.”

     로엘의 이마에 살짝 힘줄이 돋았다. 굳이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말라는 의미로 눈을 부라렸다. 레인이 인상을 찡그리며 침묵했다.

    “죄송합니다. 조금 예의가 결여된 녀석이라.”

    “신경 쓰지 않는다. 평민에게 예법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냉담한 반응. 거기다 이쪽을 완전히 깔보는 듯한 모습이다. 레인이 혀를 차며 불편한 표정을 짓는 것을 로엘이 제지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성격이 원만하네…….’

    로엘이 가진 중세시대의 귀족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합법적으로 다른 이의 위에 군림하게 되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이들.]

     -딱 이 정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평민에겐 가차 없이 철퇴를 내리친다. 보다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멸시한다.

     불합리함의 극치지만, 그것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신분제의 본질.

     힘을 휘두르는 자도, 그 힘에 피해 입는 자도 그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않고 지적하지 못하는, 그것이 바로 신분제.

     방금 전 레인이 보인 모습은 중세의 지구였다면 문답 무용으로 척살당해도 할 말이 없는, 그런 태도였다. 그런데 상대는 ‘기사’라는 사회적 지위를 가진 준귀족임에도 그다지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것은 이 기사가 원래 그런 성정을 가진 탓일까, 아니면 이 세계의 신분제 자체가 옛 지구의 그것보다 부드러운 탓일까.

     그래도 귀족의 대열에 있는 만큼 본인이 이쪽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 정도는 가진 듯싶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서 넘길 수 있었다.

    ‘이형(異形)의 힘이 존재하는 세상이기 때문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이곳 엘레노어 대륙은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검사가, 세계의 법칙을 비트는 마법사가 존재하는, 그런 세계.

     그런 세계이기에 상당한 능력을, 힘을 몸 안에 내재하고 있는 평민이 존재한다.

     별 볼 일 없던 귀족 가문의 자제가 뜬금없이 현자나 검성이 되어 가문의 위세를 한순간에 몇 단계나 격상시키기도 한다.

     넓은 영토, 수많은 병사, 정략결혼을 통한 주변 영지와의 우호 관계 구축. 그런 것들이 겨우 몇 사람의 실력 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것만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귀족과 비등하거나 그들보다 더한 힘과 세력을 지닌 집단이, 이를테면 마탑이나 길드가 존재한다.

     그런 세계인만큼 귀족들이 평민을 대하는 태도가 중세 지구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다를지도 몰랐다. 아니, 다를 것임이 분명했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일단 의뢰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로엘은 간신히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지.”

    “우선은 의뢰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실력을 보여줬으면 싶군. 입만 산 녀석들을 굳이 고용할 생각은 없으니.”

    “…….”

     아무래도 단단히 찍힌 모양이었다. 로엘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기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살짝 이동하더니 대로 한가운데에 섰다.

    “덤벼봐라. 실력 판단은 이쪽에서 알아서 하겠다.”

     * * *

    “…….”

     로엘은 머리를 싸매 쥐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고용하기 전에 실력을 확인하겠다며 호기롭게 검을 뽑아 든 눈앞의 기사. 정말로 귀찮은 상황에 처했다.

    이겨도 져도 좋은 점 하나 없는, 그런 테스트다. 문제는- 

    “하.”

     대놓고 혀를 차는 옆자리의 친구(웬수). 로엘이 검지로 살짝 이마를 문질렀다.

    ‘저 성격을 제대로 날 잡고 뜯어고쳤어야 했는데.’

     이전에 파르엘과 대면했을 때 레인이 보였던 태도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레인의 성격에는 문제가 많았다. 어찌 보면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지만, 이런 성격은 주변과의 불화를 낳기 쉽다.

    “…….”

     로엘이 살짝 찡그린 눈으로 레인을 노려보았다.

     사실 최근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굳이 뜯어고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레인은 로엘과는 달랐다.

     로엘은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 수많은 것을 재는 사람이다. 그와는 반대로 레인은 그런 것 없이 맞부딪치는 타입.

     분명 레인의 성격은 다른 이와 쉽게 원활한 관계를 맺기는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하지만, 가감 없이 부딪혀나가기에 로엘으로선 얻는 것이 불가능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굳이 그에게 간섭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로엘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주 귀찮은 상황에 직면했다. 성격 존중은 개뿔이. 역시 진작에 뜯어고쳤어야 했다. 그저 한숨을 푹푹 내쉴 뿐.

    “어느 쪽이 나설 테냐?”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기사가 재촉했다.

    “테스트의 기준은?”

    “이쪽이 알아서 판단하겠다고 했을 텐데.”

    “모호한 기준은 좋아하지 않아. 제대로 정하지. 이를테면 합을 겨루는 횟수라든지, 혹은 시간이라든지.”

    “좋다. 1분. 1분을 버텨낼 수 있다면 실력을 인정해주마.”

     레인은 그 말을 듣고서 탁자에 손을 얹고 일어섰다. 그리곤 그다지 힘이 실리지 않은 발걸음으로 기사, 펠런의 앞에 마주 섰다.

     그가 시선을 펠런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

    “시간 재라. 로엘.”

     로엘은 어쩐지 레인이 무엇을 하려는 지 알 것 같았다. 그가 한 차례 한숨을 내뱉었다.

    ‘고용주와 칼부림을 해서 어쩌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착실히 시계를 꺼내 들었다. 주먹 크기의 회중시계.

     이 세계의 시계는 마나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사치품. 비싸다. 그렇지만 전생에 늘상 쓰던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불편해서 일단 구매해두긴 했다. 이런 데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젠 말려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로엘은 결국 반쯤 체념한 얼굴로 시계를 주시했다. 그리곤 초침이 12시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다 외쳤다.

    “시작!”

     외침과 동시에, 격돌.

     순식간에 맞붙은 두 사람. 검이 연속적으로 맞부딪혀 불똥을 튀겼다. 두 사람의 신형이 부딪혔다 떨어지기를 짧은 시간 동안 무수히 반복했다.

     레인의 실력에 놀란 기사가 토끼 눈을 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검을 내리쳤다. 딱 봐도 혼신의 힘을 실은 상단 내려치기. 작정을 했는지, 검의 표면에 검기가 일렁였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레인. 방어하듯이 치켜든 검이 기사의 검과 맞부딪힘과 동시에 미묘하게 기울어졌다. 검과 검이 마찰을 일으키며 불쾌한 쇳소리를 냈다.

     카가가가각!

     절묘한 각도 조절로 인해 기사의 검이 검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레인은 곧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

    “…….”

     멋대로 틀어진 검로 때문에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기사의 발에 레인이 살짝 자신의 발을 걸쳤다. 기사가 요란하게 앞으로 엎어지고, 그의 얼굴 바로 오른쪽 바닥에 레인이 내려찍은 검이 박혀 들었다.

     검이 스쳤는지 기사의 뺨에 조그마한 실선이 그어졌다. 한 줄기 피가 흘렀다.

     레인이 로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간은?”

    “30초.”

     검을 검집에 되돌린 레인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1분은 무슨.”

    “……이 화상아.”

     로엘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본심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상황이 아주 최악이었다. 의뢰주의 자존심을 뭉개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빌어먹을.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쩔 수 없지.’

     로엘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뚱한 시선으로 레인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그냥 네 성질대로 살아라. 네겐 그게 어울린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고민하고 중재하고 한숨 쉬는 역할은 내가 대신 맡도록 할 테니.’

     하슨 가의 기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번 의뢰는 글렀다고 봐야 하나.’

     의뢰는 고사하고 오히려 걱정이 들었다. 기사 양반이 눈이 돌아서 상처 입은 맹수처럼 달려든다거나, 앙심을 품고 나중에 복수하려 든다거나 하면 곤란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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