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호위 의뢰(7)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노인. 그는 곧바로 자신의 은신을 간파한 소년에게 흥미를 드러냈다.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기에 조금 더 지켜보려고 했거늘. 어떻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았느냐? 꼬마야.”
“질문은 내가 먼저 했다. 누구냐.”
마치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가 연상되는 반응. 소년의 가시 돋친 어조에 노인은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 경계할 것 없다.”
“그 말을 믿으라고?”
소년은 웃기지 말라는 듯 으르렁거렸다.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냐?”
“너 정도 되는 강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들을 몰래 감시했다고 말하려는 건가?”
“음?”
“처음에는 내가 괜히 예민해져 있는 건가 생각했지만, 방금 전에 확신했지. 어제부터 우리들을 따라다니지 않았나?”
레인은 전날부터 느꼈던 위화감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암살자들의 습격으로 인해 잠시 착각했었지만, 지금 확신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는 분명 저 노인이었다.
“허어.”
노인은 가슴께까지 곱게 기른 수염을 쓸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대로라면 소년은 그동안 미약하게나마 자신의 존재를 계속해서 감지했었다는 뜻이 된다.
여유로운 태도인 노인과는 반대로, 레인은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놓고 한껏 긴장한 모습이었다.
“······.”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노인은 엄청난 강자였다.
중원의 절대자라 칭송받던 열 명의 무인들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듯했다. 적어도 그들과 맞먹거나 그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장담할 수 있었다.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이나 기세로 미루어서 판단한 것이 아니다. 직감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기백은 되려 그냥 평범했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것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온몸을 찌르는 듯한,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섬뜩한 감각.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재미있는 녀석이로구나.”
노인이 씩 하고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경계할 것 없다. 나는 네 적이 아니니까.”
레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믿어도 되는 것일까.
거짓말이 아닐 가능성이 높긴 했다. 저 정도의 강자니까.
쉽게 말해 굳이 이쪽을 속이려 들 이유가 없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쪽을 순식간에 찍어 눌러버리는 것이 가능할 테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의심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일단 주위를 좀 정리한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할까.”
노인은 그렇게 말하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쩌적.
레인의 주의가 돌아간 틈을 타 슬금슬금 접근하고 있었던 암살자 한 사람의 눈앞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겨났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중에, 마치 유리에 금이 간 것처럼.
“?!”
갑작스럽게 눈앞에 생겨난 균열에 암살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와 동시에 막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 * *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지면에 부딪힌 공이 다시 튀어 오르듯, 잡아당긴 고무줄이 손을 놓음과 동시에 앞으로 쏘아져 나가듯.
노인의 마법은 공간을 비틀었다. 균열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하게.
일종의 자정 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그 균열을 메우기 위해 주위 자연으로부터 막대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무려 공간을 비틀어 생성된 균열이다. 그것을 원상복구시키기 위해 몰려드는 기운의 양은 그야말로 압도적.
그만한 기운이 일순간에 한 곳에 집중되어버리면 일어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공간이 수복됨과 동시에 막대한 에너지의 충돌로 인한 폭발이 일어난다는, 당연한 결말밖에.
콰아아아앙!
폭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폭발에 휩쓸린 암살자.
그 자리의 모두가 경직된 와중, 노인만이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로 연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딱. 딱. 딱. 딱.
쩍. 쩍. 쩍. 쩌적.
“흐억?!”
“뭐, 뭐야!”
암살자들이 기함했다. 방금 전 일어난 폭발. 그리고 느닷없이 눈앞에 생겨난 균열. 이 두 가지 현상으로 미뤄보아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명백했다.
콰아아아앙! 쾅! 콰광!
압도적인 폭음이 주위를 집어삼켰다. 암살자 넷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자취를 감췄다.
몇 초 되지도 않는 시간 동안 벌어진 일. 좌중의 모든 인물이 경악했다.
“······.”
레인의 얼굴이 한층 더 굳어졌다.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로 압도적이었다.
거리의 제약도 없는데 공격의 전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보아하니 마법인 듯싶은데 파르엘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정말로 저자가 이쪽의 적이 아니길 빌어야 할 판이군.’
적이라면 정말로 답이 없었다. 이미 이렇게 마주한 시점에서 싸움의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망치는 것조차 힘들 듯싶었다.
“제길!”
암살자들 중 누군가가 욕설을 내뱉으며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노인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드는가 싶더니-
“무, 무슨?!”
-돌연 허공에 생성된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곤 암살자의 뒤쪽에 생성된 또 다른 구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컥!”
암살자는 등 뒤쪽에서부터 심장을 꿰뚫려 절명했다.
“으으.”
“저 마법은 분명······.”
“왜 저런 괴물이 직접 여기까지!”
그 광경에 각양각색의 신음을 토해내는 암살자들.
“일단 물어둘까.”
노인이 여유롭게 살아남은 암살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어느 조직에서 나왔느냐? 청부자는 누구고?”
“······.”
당연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암살자들 입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니었다.
노인은 헛헛, 하고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다. 인간의 머리를 주무르는 데 도가 튼 녀석과 친분이 있으니. 조금 더 번거로워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암살자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저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정말로 그만한 인물과 친분이 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존재였으니까.
암살자들을 이끌던 인물, 제드가 입술을 짓씹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말씀드린다면 선처를 베풀어 주실 생각이십니까?”
“음?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노인의 무슨 그런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한 답변. 예상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제드는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다만 편하게 갈 수는 있을 게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그 인간에게 머리를 주물러지는 것보단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가슴을 긁적거리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재차 헛헛, 하고 웃었다.
“······.”
제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내 결연한 얼굴로 주위 암살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다! 조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모두 붙잡히기 전에 자결하라!”
말과 동시에 단검을 뽑아 들고 본인의 심장을 겨눴다. 주위 암살자들이 따라서 똑같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지체 않고 단검을 내리찍는 암살자들.
인간은 본디 자살이란 행위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스스로를 시해하려 하고 있었다.
조직으로부터 얼마나 세뇌를 받았는지, 이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콜록!”
“큭!”
갑작스레 얼굴 바로 앞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가루가 호흡기로 침입하자 암살자들이 기침을 토해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픽픽 쓰러졌다.
물론 노인이 행한 일이었다. 공간의 통로를 열어 주머니째 품속에 넣어뒀던 즉효성 수면 가루를 암살자들의 코앞에 살포했다. 그뿐이었다.
“쯧쯧. 굳이 권주를 마다하다니.”
노인이 혀를 찼다.
어차피 죽일 셈이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겠지만, 노인은 진심이었다. 그 인간에게 맡겨지느니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나으니까. 저들도 얼마 있지 않아 그것을 깨닫게 되리라.
“······.”
순식간에 정리된 주변을 둘러보며 로엘이 침음을 흘렸다. 과연 레인이 그렇게나 긴장한 이유가 있었다. 저만한 인원이 이렇게 순식간에 정리되어 버릴 줄은.
그야말로 공간을 격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식을 벗어난 공격들. 마법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이능의 힘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저 녀석들과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암살자들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뒤이어 로엘이 노인과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시선을 받음과 동시에 고개를 드는 의문. 어째서 이만한 인물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는가. 일단 언동으로 미뤄보아 적은 아닌 듯싶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쪽과 노인의 접점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노인이 이 자리에 등장한 이유는 혹시-
‘파르엘?’
-로엘이 졸도한 채 옆구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의뢰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아, 그럼. 다시 이야기를 해 볼까.”
“크어어어엉!”
“캬아아악!”
노인이 다시 여유로운 얼굴로 입을 여는 가운데, 주위 사방에서 온갖 짐승의 울부짖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몰려든 몬스터들이 지척에 다다른 것이다.
대화를 방해받은 노인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많기도 하군.”
레인이 기감에 걸려든 수많은 기척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전에 파르엘이 뭣도 모르고 화염 계통 마법을 사용했을 때조차 비교되질 않는 숫자. 이쯤이면 거의 군단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 와중 로엘이 파르엘을 내려놓고 뺨을 두드려 깨웠다. 이내 멍한 얼굴로 깨어난 파르엘의 얼굴을 돌려 노인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게 했다. 그러자-
“스승님?!”
-그가 현 상황을 명확히 이해시켜주는 말을 뱉어냈다.
“그래서, 가출 후의 여행은 즐겁더냐. 제자야?”
“······?!”
“그,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스승님.”
의아한 표정으로 노인을 올려다보는 레인. 파르엘이 급히 신형을 바로잡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
노인과 파르엘을 번갈아 바라보던 레인 또한 상황을 이해했다.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작게 원을 그렸다. 곧바로 일행을 중심으로 가운데가 뚫린, 거대한 원반 형태의 파장이 생성됐다.
“일단, 마저 정리하고 이야기하자꾸나.”
곧바로 손가락을 튕기자, 파장이 그 크기를 무섭게 불리며 주위 사방을 향해 날아갔다.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와 풀들이 파장의 궤적을 따라 통째로 잘려 나갔다.
대파괴.
쾅! 콰앙! 콰드드드득!
끼에에에!
크에에에엑!
퀘에에에에에!
굉음과 함께 수많은 나무가 밑동만 남긴 채 쓰러졌다. 엄청난 규모의 먼지가 일어나 주위를 잠식했다.
공간을 압축, 분사해 주위 모든 것들을 절삭시키는 대규모 범위 마법에 주위 환경이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그야말로 재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광경. 일개 개인이 행한 일이라 보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의 행사.
수많은 몬스터가 비명과 함께 고꾸라지고, 요행히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겁에 질려 달아났다. 그나마 흉성을 주체하지 못해 달려드는 몬스터들도 있었으나-딱. 딱. 딱. 딱. 딱. 딱.
쾅! 콰앙! 콰아앙!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일어난 폭발에 휘말려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
“······.”
대범위 마법으로 인한 붕괴와 그 여파로 인한 온갖 소음, 거기에 몬스터들이 달아나며 지르는 비명 소리까지. 그 모든 소음이 가라앉는 것을 기다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주위가 잠잠해지자 노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이 늙은이의 소개부터 하마.”
“······.”
“제국 소속, 바엘른 마탑(魔塔)의 탑주(塔主)인 로카인 파르테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