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호위 의뢰(6)
검강. 이 세계에선 오라 소드(Aura Sword)라고 불리는 기의 응집체. 막대한 기운을 응축시켜 형성하는 만큼 그 파괴력이 일품이다.
그러나 모든 검사들이 검강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그저 압도적인 파괴력을 손에 넣고자 해서가 아니다.
본디 검기라는 것은 검에서 벗어나 공기 중으로 떨어져 나가면 순식간에 흩어져버린다. 주인의 컨트롤을 벗어나면 그 즉시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검강은 강력한 힘이 압축된 응집체인 만큼 검에서 사출된 후에도 짧은 시간이나마 그 형태가 유지된다. 그 ‘짧은 시간’은 공격이 상대에게 적중되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그렇기에 검강을 발현할 수 있다는 말은 검사의 본질적인 한계인 ‘거리’의 제약을 극복했다는 말과도 같다. 뭇 검사들이 초일류 검사가 되기를 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은 굉장히 높고 두껍다. 평생을 검에 매진했음에도 이 벽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눈앞의 어린 소년이 그 벽을 넘은 초강자라니. 저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마가 검호(劍豪)라니.
“이 무슨.”
현재 암살자들을 통솔하고 있는 인물, 제드는 이 어이없는 현실에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질 줄이야.
“크악!”
“크억!”
교전 중간중간 날아드는 검강에 암살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수없이 날아드는 공격을 차분히 맞받는다. 그러다 기회만 잡았다 하면 검강을 형성, 사출한다. 그 단순한 패턴의 반복에 암살자들이 차례차례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었다.
나무 뒤쪽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암살자는 나무를 꿰뚫고 날아든 검강에 팔이 날아갔다.
나무 위쪽에 은신하고 있던 암살자는 예고도 없이 치솟아 올라온 검격에 다리가 날아갔다.
바위 뒤쪽에서 숨을 고르던 암살자는 바위 윗부분과 함께 목이 날아갔다.
이쪽의 은신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검호라면 필시 초감각을 지니고 있을 터. 기척을 전부 읽어내고 있는 것이겠지.
“은신은 의미가 없다! 모두 회피에만 주력해라!”
제드는 다급히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까지 조용한 목소리로 적절한 지시만 내리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만큼 그가 다급해졌다는 반증이었다.
그러던 와중.
탕!
모두가 움찔 하고 놀랄 정도로 큰 소음이 울려 퍼졌다.
“······?!”
“뭐지?”
바쁘게 움직이던 좌중의 인물들이 당황했다. 다른 곳도 아닌 펠라키 산맥에서 저토록 큰 소음이라니.
“미친.”
레인마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 * *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완성된 권총은 불안정했다.
공기 압축, 그리고 각 부품의 경도 조절 등을 위해 수없이 사용된 마법진. 그것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래저래 고치고 고치다가 그나마 쓸 만한 물건이 된 것이 지금의 권총이었다.
말 그대로 ‘그나마 쓸 만한’ 수준에서 개발을 멈춘 물건이었다.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었다.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너무 위력이 높은 것’이 문제였다. 위력이 높은 게 뭐가 나쁜가 싶겠지만, 그것도 정도껏일 때의 이야기다.
일단 무기의 내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마법진으로 보완을 해 뒀기에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몇 번이고 사용하면 망가져 버릴 터였다.
그리고 소음이 막대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본래 공기총은 그 위력이 강할수록 소음이 큰 물건이다. 장착된 공기탱크가 하나냐 둘이냐에 따라 소음이 천차만별로 변하곤 한다.
흔히 공기총은 소음이 거의 없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그것은 사격 체험장에 비치된 물건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공기 압축 정도에 따라 소음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었다.
당장 공기탱크 두 개가 장착된 밀렵용 엽총만 해도 그 소음이 화약총에 비견된다. 해양(석유) 탐사용으로 사용되는 공기총의 경우엔 그 소음이 북극고래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마법진을 이용해 빈약한 공기탱크를 보완한 로엘의 권총 또한 웬만한 화약총을 넘어서는 소음을 자랑했다. 그만큼 위력은 확실했지만.
“미치겠네.”
이마에 구멍이 난 채 무너져 내리는 암살자를 바라보며 로엘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이 이것이었다. 일단 급한 김에 저지르고는 봤는데······.
“얼마 안 있어서 몬스터란 몬스터는 죄다 몰려들겠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신형을 옆으로 확 하고 날렸다.
“이렇게 된 거.”
체념의 한숨을 한 차례. 이쪽으로 접근 중인 암살자에게 권총을 겨눴다. 사격 자체는 그다지 연습해 본 적이 없는 탓에 지근거리까지 접근해야 했다. 탄환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탕!
“크억!”
지근거리라곤 해도 상대가 무기를 휘두르는 반경 바깥쪽이다.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다. 탄환이 정확히 심장에 명중했다.
압도적인 소음. 옆구리에 매달린 파르엘이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것을 무시하며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로엘. 그가 사라진 자리로 단검이 날아들었다.
암살자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보는 무기도 무기지만, 방금의 소음으로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게 되면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어 버린다. 움직임이 상당히 다급해졌다.
로엘은 로엘대로 이왕 저지른 김에 아예 제대로 날뛰기로 했다. 앞으로의 전황은 혼전 양상으로 이어질 터. 그렇다면 이젠 포위망을 뚫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레인과 다시 합류해야 했다.
한 차례 격발. 어깨를 부여잡는 암살자를 뒤로하고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공중으로 신형을 띄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각종 투척 무기들이 날아들었다.
“컥.”
앞을 가로막는 암살자의 머리를 밟고 재도약.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날붙이들을 공중제비를 넘어 가볍게 회피했다.
가볍게 착지. 곧바로 질주했다. 전방에 위치한 암살자 한 사람이 로엘의 급접근에 당황하며 단검을 역수로 쥐고 휘둘러왔다. 그것을 슬라이딩하며 회피.
“크악!”
옆구리에 들린 파르엘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바닥에 처박혔다 떠올랐다. 곧바로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버둥거리는, 불쌍한 모습이 연출됐다.
탕!
로엘이 암살자를 스쳐 지나침과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암살자가 비명과 함께 다리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로엘은 곧바로 몸을 튕기듯 바로 세워 도약했다. 그리곤 전과 같은 방식으로 전방에 위치한 나무 위쪽으로 올라섰다.
“젠장!”
“쫓아!”
이젠 은밀하게고 뭐고도 없다. 암살자들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두 사람을 추격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투척 무기를 이용해 움직임을 제안하며 포위망을 좁히려 했다.
다만 방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로엘도 간간이 반격을 한다는 점.
결점이 두드러져서 그렇지 권총의 성능 자체는 확실했다. 총성 한 발에 한 사람씩 나가떨어지니 암살자들이 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로엘은 착실히 견제를 뚫어가며 레인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 * *
레인은 날아드는 암기를 전부 쳐내고 검강을 날려 암살자 한 명을 추가로 쓰러뜨렸다.
“큭!”
“크으······.”
살아남은 암살자들이 질린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이건 뭐 도저히 답이 보이질 않았다.
이미 포위망은 뚫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레인이 굳이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일 뿐.
총성을 듣고 난 이후부터 레인의 움직임에 명확한 변화가 일어났다. 포위망을 뚫어내는 대신 암살자 한 사람이라도 더 쓰러뜨리려는 쪽으로.
더 이상 로엘의 신변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긴 탓이었다. 굳이 억지로 다시 합류하지 않아도 당분간 제 몸은 스스로가 지킬 것이라는 판단.
오히려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었다. 그것을 대비해서 최대한 암살자의 숫자를 줄여두는 것이 좋았다.
“······.”
암살자들이 내던지는 암기들을 쳐내며, 레인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검을 쥔 오른팔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아직 불안정해서 그런지 무리가 온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딱히 지금 당장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이 계속해서 축적된다면 그땐 상당히 위험하겠지만.
‘앞으로 몰려들 몬스터까지 상대하려면 조금 위험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반쯤 와해된 포위망을 뛰어넘어 로엘이 바로 옆에 내려섰다. 옆구리에 들린 파르엘이 거의 졸도 직전에 다다라 있었다.
로엘의 갑작스런 등장에 암살자들이 포위망을 살짝 뒤로 물렸다. 곧바로 덤벼들지 않고 잠시 숨을 고를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몇 번이고 들려온 총성을 떠올리며 레인이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 내 코가 석 자인데.”
“그래도 그렇지.”
“거기다 너도 따로 움직여서 배후를 치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더니, 결과가 영 신통찮던데. 괜히 갈라져서 고생만 더 한 것 같고.”
워낙 암살자들의 대처가 좋았던 탓에 로엘이 한참 고생을 했다. 혼자서 의뢰주 보호하랴, 날아드는 공격 피하랴, 포위망 뚫으랴.
솔직히 굳이 갈라져서 움직인 보람이 있었느냐 하면 조금 미묘했다. 초반에 암살자 넷을 기습으로 제거한 것 이외에는 그다지 득 본 것이 없는 작전이었다.
“머리를 쳐냈는데 곧바로 다른 녀석이 통솔권을 잡고 대응하더라고. 예상외였어.”
“경험에서 비롯된 결정인 줄 알았더니.”
“전생엔 그렇더라도 배후로 뒤돌아 가는 쪽이 이득이었으니까. 어차피 포위당한 상황이라면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지.”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좀 그렇다만, 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로엘이 눈매를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흉성 가득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감에 걸려드는 수많은 기척에 두 소년이 혀를 찼다.
캬아아악!
쿠에에에엑!
그 자리에 위치한 모든 암살자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레인을 견제하던 이들도, 로엘을 뒤쫓아 포위망에 합류한 이들도.
그런데 그 와중에 묘하게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는 두 소년.
“고생깨나 하겠네.”
“그러게.”
암살자들을 물리치는 것이야 이젠 뭐 그다지 걱정되지도 않았다. 남은 암살자는 이젠 열 명이 조금 넘는 숫자에 불과했다. 두 소년 중 한 명만 나서도 전부 정리할 수 있는 숫자였다.
역시 문제는 몰려들고 있는 몬스터들. 이 자리에 몬스터들이 난입해 혼전 양상으로 들어가게 되면 상당히 힘들어진다. 심지어 두 소년 모두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지만 조금 지친 상태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죽기야 하려고.”
걱정해 봐야 나아지는 것도 없다. 두 소년은 일단 태세를 정비했다.
암살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기에 숨을 돌릴 틈은 있었다. 레인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로엘이 탄창을 갈아 끼웠다.
두 소년이 다시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을 느낀 암살자들이 긴장감을 높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와중에.
“······?!”
레인이 갑자기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
“왜 그래?”
레인은 로엘이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시선을 뒤쪽으로 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채로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그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기, 누구냐.”
“뭐?”
“······.”
로엘은 레인의 심각한 표정에 무언가 있음을 느꼈다.
‘누군가가 있는 건가? 저쪽에?’
레인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감까지 돋워 보았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레인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레인은 분명 ‘누구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사람이라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로엘 또한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누군가가 있다면, 상대는 자신의 역량을 가볍게 넘어서는 인물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도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후우.”
레인이 숨을 한 차례 골랐다. 그리고 조용히 내뱉었다.
“거기 있는 것 아니까, 모습을 드러내시지.”
그러자, 레인의 시선이 향한 나무 위쪽 공간이 이지러지듯 일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 흰색 로브를 걸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