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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호위 의뢰(5) (23/249)

 23화. 호위 의뢰(5)

 시간을 되돌려, 레인이 암살자의 존재를 눈치챈 그때.

“암살자?!”

“어. 정확히 이쪽을 향해 몰려들고 있어. 숫자는 대충 스무 명이 넘나. 아주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군.”

“아니, 기감으로 감지했다는 건 알겠는데, 상대가 암살자라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건데?”

“감으로.”

“······.”

 로엘은 입을 다물었다. 어처구니없지만, 신뢰성이 높은 발언이었다.

 다른 이들의 감과 레인의 감은 질적으로 다르다. 최근엔 전생의 기억과의 동화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으니 더더욱.

“이만한 숫자의 암살자가 노리는 인물이라.”

 레인이 파르엘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파르엘이 움찔 하고 반응했다.

“적어도 우리가 표적인 건 아니겠지. 애초에 그만한 은원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니.”

 일전에 용병들과 드잡이질을 벌이긴 했지만, 이런 결과로 이어질 만큼 대단한 해프닝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저들이 노리는 사람은 파르엘일 터였다.

“파르엘 씨. 짐작 가는 데가 있나요?”

 로엘이 물었다. 이즈음엔 로엘 또한 기감으로 그들의 기척을 느꼈다. 자연히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파르엘은 우물쭈물하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은 전혀 상정치 못했지만, 일단 벌어졌다 가정하면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로엘이 한 차례 후, 하고 한숨을 불어냈다.

“정말로 암살자가 몰려들고 있다고?”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긴 했지만, 파르엘에겐 두 소년과 같은 기감이 없다. 그렇기에 암살자의 존재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설명할 생각 없으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해.”

 굳이 심력을 소모해가며 설명해줘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 레인이 파르엘을 힐끗 돌아보며 내뱉었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다.

“그래서, 상대할 수 있겠어?”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로엘이 레인에게 물었다,

“글쎄다. 내 한 몸 지키는 것쯤이야 어려울 것 없지만.”

“파르엘 씨를 보호해가며 전부 상대하긴 조금 힘들다?”

“어.”

 아마 저들의 목표는 파르엘이다. 여차하면 레인이나 로엘을 무시하고 파르엘만을 쓰러뜨린 뒤 달아나버릴지도 모른다.

 로엘이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현 상황은 의뢰 내용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굳이 자신들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나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파르엘을 버리고 갈 생각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일단 ‘임시’ 딱지가 달린 만큼 실적을 쌓을 기회를 버리고 싶진 않았다.

“일단, 이 일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추가 요금을 청구할 겁니다.”

 로엘이 빙긋 웃는 얼굴로 파르엘에게 선언했다.

“!”

 파르엘은 내심 두 소년이 자신을 두고 자리를 벗어나려 할 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그 와중에 로엘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선언하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일단 의뢰주의 보호는 네게 맡긴다. 괜찮겠지?”

“꼭 너는 따로 움직일 거라는 듯이 말한다?”

“몰이 사냥을 당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나는 포위망의 바깥에서 반대로 놈들을 칠게.”

“이런 상황에선 네 판단을 따르는 게 맞겠지. 알겠다.”

 간단한 방침을 세운 두 소년. 곧바로 레인이 모습을 감췄다.

 * * *

 그리고 현재.

 정확히 경동맥을 베여 쓰러진 암살자 리더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이걸로 지휘계통에 혼란이 오면 좋을 텐데.”

 레인이 땅을 박차며 중얼거렸다.

 * * *

“크윽.”

“!”

 억눌린 신음 소리. 그에 반응한 인물이 있었다. 레인이 4번째 암살자를 처리했을 때 결국 이변을 알아차린 자가 나타났다.

 아주 작은 소음이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음을 느꼈다.

 완전히 포위망이 갖춰졌는데도 습격 지시가 떨어지질 않는 현 상황도 그렇고, 방금 전의 신음 소리도 그렇고.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볍게 생각하고 넘길 이변이지만, 수많은 살행을 경험한 그의 직감은 날카로웠다. 그는 곧바로 행동을 취했다.

“리더가 당했다. 지휘권은 내가 넘겨받는다. 타깃을 처리해라.”

 억눌린 목소리로 주위 암살자들에게 지시했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암살자들 중 서열 2위에 위치한 자. 1위인 리더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암살자들은 살짝 동요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명령을 수행했다.

 파삭!

 암살자 하나가 독침통을 입에 물고 독침을 발사했다. 독침이 풀숲을 가르고 파르엘을 향해 날아갔다.

“이쪽으로.”

“켁!”

 로엘이 파르엘의 뒷덜미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볼썽사나운 신음과 함께 끌려가는 파르엘. 직후 독침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

 당황한 파르엘을 옆구리에 끼운 로엘이 곧바로 땅을 박찼다. 기감으로 주위 암살자들의 움직임을 파악해가며.

 몇 개의 독침이 그가 떠난 자리를 지나쳐 날아들었다.

 퓻! 퓻! 퓻! 퓻!

 연속으로 날아드는 독침. 로엘이 그것을 회피하며 한쪽으로 움직였다. 레인이 이미 암살자들을 정리해놓은 방향이었다.

“!”

 꽤 쓸 만한 솜씨로 던져진 단검이 양옆에서 날아왔다. 숫자는 셋.

 타격을 목적으로 한 공격이 아니다. 두 사람이 공터를 벗어나지 못하게 그 경로를 차단하려는 의도. 여기에 발걸음이 지체되면 필시 독침 세례가 쏟아질 터다.

“훈련이 잘됐네.”

 로엘이 중얼거렸다. 기감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곧바로 도약, 전방을 가로막은 나무를 박차고 재도약. 공중에서 신형을 한 바퀴 휘돌며 기다렸다는 듯 날아드는 독침들을 회피했다.

 곧바로 한쪽 손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반동을 이용해 나무 위쪽으로 올라섰다. 일반인의 근력을 가볍게 초월한 로엘이다. 파르엘을 들고 있는 상태임에도 무리는 없었다.

“칫!”

“쯧!”

 암살자들이 혀를 차며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지도 못한 수준의 기동력. 이대로 두 사람이 포위망을 돌파하기라도 했다간 일이 심각해질 터였다.

 온갖 투척 무기가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들었다. 나뭇가지 위를 타 넘으며 온갖 공격을 회피하는 로엘.

“······.”

 로엘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지능 낮은 몬스터들의 포위망을 탈출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그리 쉽게 자리를 벗어날 순 없을 듯싶었다.

 준족이야 암살자들에 비할 바가 아닌 로엘이지만 숫자의 우위가 저쪽에 있었다.

 암살자들이 연속해서 이동 경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투척 무기를 던져대는 탓에 운신이 자유롭질 못했다. 좀처럼 확실하게 거리를 벌릴 수가 없었다.

 이쪽은 제대로 된 공격수단이 없었다. 일방적인 추격전이 벌어질 수밖에.

 로엘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옆구리에 들린 파르엘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 * *

“큭!”

 한편, 한쪽에선 암살자들과 레인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휘계통이 복구된 암살자 집단. 레인이 이변을 알아채고 일행과 다시 합류하려 하자 일부가 그것을 가로막은 것이다.

“크악!”

 레인의 검이 암살자 한 사람을 통째로 양단했다. 피 냄새가 퍼진다든가 하는 문제를 지금같이 바쁜 와중에 신경 쓸 순 없었다.

 막 암살자를 쓰러뜨리고 신형을 날린 레인의 앞쪽에 주머니 하나가 날아와 터졌다. 그 안에 든 것은 즉효성 마비독 가루.

 레인은 내달리던 몸을 급정거, 그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뛰어올라 흩날리는 독 가루를 회피했다. 그것을 노렸다는 듯 착지 예상 지점으로 날아드는 독침들.

 레인이 귀찮다는 표정을 한 채 곧바로 대응했다. 내력을 하반신에 집중, 천근추(千斤墜)로 지면에 내려서는 궤도를 억지로 꺾었다.

 하반신에 집중된 내력이 곡선으로 떨어져 내리던 신형을 강제로 직선으로 떨어져 내리게 만들었다. 내력이 집중되어 무거워진 다리가 지면과 충돌하며 소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직후에 풀숲에서 뛰쳐나온 암살자 하나가 소도(小刀)로 레인의 등을 꿰뚫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령문(幽靈門)의 독문보법으로 인해 생겨난 잔영이 꿰뚫렸다. 특수한 보행기술로 만들어진 잔영은 잠깐이지만 암살자 전원의 감각을 속였다.

“헉?!”

 촤악!

 갑자기 눈앞에 있던 적이 스러지듯 사라져 버리자 암살자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느새 배후로 돌아간 레인이 검을 휘둘러 암살자의 목을 날려버렸다.

 레인의 눈에 현재 이들을 통솔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자가 주위 암살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상대는 강하다. 겉모습에 속지 마라. 그러나 굳이 쓰러뜨릴 필요는 없다. 시간을 끌어라. 2분대가 표적을 처리할 때까지면 된다.”

 어느새 분대를 나눈 것일까. 예상했던 대로 표적만 처리하고 빠르게 발을 빼려고 하고 있었다. 귀찮은 상황이었다.

 이어지는 암살자들의 공격. 임시 리더의 지시대로 암살자들이 착실히 견제만을 가할 뿐인,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지지부진한 전투가 이어졌다.

 시야가 미치는 위치에서 날아드는 네 개의 독침. 그리고 시야의 사각, 뒤쪽 지면에 떨어진 독 가루가 든 조그마한 주머니들.

 적측의 경계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드러내듯 전부 원거리 공격뿐이었다. 레인이 빙글 뒤돌아 강하게 발을 굴렀다.

“각(脚).”

 콰앙!

 대지에 균열이 일어났다. 동시에 흩날리는 흙가루.

 주머니가 터지며 나온 독 가루에 흙가루가 섞여들었다. 독 가루는 레인이 있는 방향으로 더 퍼져나가지 못하고 허공을 부유했다.

 레인이 발을 구른 반동으로 몸을 빼냈다. 그로써 독침들을 회피했다.

“쯧, 아직 좀 불안정한데.”

 그가 혀를 찼다. 이대로 시간이 끌리는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밑천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었다.

 레인이 검을 든 손을 뒤로 당겨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검 표면에 아지랑이같이 일렁이던 검기가 순간적으로 화라락 일어나 밀집, 압축되어 명확한 형태를 갖췄다.

 모든 것을 베어버린다는, 초일류 검사의 상징과도 같은 그것. 검강(劍剛).

 혼원(圓=둥글 원)공의 원리는 원운동, 즉 회전에 있다.

 수많은 다른 성질의 내력을 몸속에 축적, 필요한 순간에 회전을 통해 서로 다른 성질의 내력을 일순간이나마 혼합시켜, 폭발적인 힘을 이끌어 낸다.

 쉽게 설명해서, 물과 기름은 본래 섞이지 않지만 한데 모아두고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일시적이나마 섞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본래 물감은 여러 색채가 섞일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지고, 빛은 여러 색채가 섞일수록 백색에 가까워지는 법.

 검 밖으로 표출된 것은 수많은 성질의 내력이 섞여들어 생성된 결정체.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유형화된 기운이 검 위에 덧씌워져 또 다른 검의 형상을 이뤘다.

 그것을, 전방으로 사출했다.

 퍽!

 암살자 한 사람의 머리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뭐야!’

‘어떻게 저 거리에서?!’

 그 광경에 암살자들이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오라를 무기에 실어 내던진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명확히 형태를 갖춘 기운이 검에서 사출되어 날아왔다.

 피나는 훈련을 거듭해온 암살자들인 만큼 입으로 생각을 표출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레인은 알 수 있었다.

“시간만 끌면 된다? 그래, 얼마나 끌 수 있을지 한번 보자.”

 * * *

 나무 위를 타 넘으며 암살자들의 공격을 피하길 수십 차례. 결국 로엘은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단순한 몬스터와는 달랐다. 유기적으로 연계해서 움직이는 상대였다. 심지어 하나하나가 상당한 훈련을 쌓은 실력자이기까지.

 거기다 로엘은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움직이는 무리와 교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옆구리엔 짐 덩이까지.

‘파르엘 씨가 마법으로 서포트해 주는 건 기대할 수 없겠군.’

 파르엘은 쓸모가 없었다.

 안 그래도 체력이 바닥이었던 그였다. 요 몇 분간 불안정한 자세로 매달린 채 쉴 새 없이 신형이 흔들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현재는 완전히 그로기 상태. 도저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젠장.”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보니 더 이상 발 디딜 공간이 없는 곳까지 다다랐다. 로엘은 혀를 차며 나무 아래쪽으로 내려섰다. 기다렸다는 듯 뒤쪽에서 달려드는 암살자.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한다.”

 품속에 손을 넣으며 로엘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 빙글 뒤돌아 암살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

 상대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뒤돌아보자 암살자가 움찔 하고 동요했다.

 그것도 잠시, 암살자가 눈을 매섭게 빛내며 손에 들린 단검을 상대를 향해 겨냥했다. 어차피 상대가 알아챘든 그렇지 않든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엘이 한발 빨랐다. 품속에서 꺼낸 물건을 솜씨 좋게 한 손으로 장전해 암살자의 이마에 겨눴다. 그리고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암살자의 의아해하는 시선과 로엘의 한숨 섞인 시선이 한순간 교차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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