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정령(2)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한 뒤.
로엘이 대장간에서 받아온 부품들을 이래저래 손보고 있는 것을 보고 레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뭘 하는 거냐?”
“무기 제작.”
“무기? 아무리 봐도 별 의미 없는 철 조각들인데.”
“하나하나가 부품이야. 이것들을 조립해야 완성품이 나오지.”
로엘은 거기까지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이쪽 세계의 기술력이 떨어지는 탓에 각 부품의 크기가 미묘하게 맞질 않는다는 거지만.”
보안을 위해 각 부품 제작을 각기 다른 대장간에 의뢰했다. 그 탓인지 부품들의 크기가 조금씩 차이가 났다. 조립이 되질 않았다.
부품 하나하나의 크기를 계산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의뢰했건만, 만족할 만큼 완벽하게 구현되진 못했다. 그래서 부품 하나하나를 조금씩 손봐서 그 크기를 맞춰야 했다.
“그나마 부피가 있는 부품들은 손보기가 쉬운데, 미세 부품들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네.”
그래도 웬만한 부품들은 소도로 조금씩 깎아내 그 크기를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철을 깎아내는 일이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익힌 무공 자체가 살상과는 거리가 먼 종류인지라 레인처럼 내력을 외부로 표출시켜 검기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기를 팍팍 주입해 검의 예기를 현저히 높일 수는 있었다.
다만 문제는 나사못을 비롯한 미세 부품. 이건 굉장한 정교함을 요구했다. 손놀림뿐 아니라 검에 싣는 내력의 조절까지 신경 써야 했다.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부품 자체가 못쓰게 되어 버릴 터였다.
“그건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하면 돼?”
“아, 부탁할게.”
아무리 어려운 작업이라도 레인이라면 무리 없이 해낼 터였다. 로엘은 레인에게 간단하게 해 줬으면 하는 일을 설명했다. 서로 마주 앉은 두 소년이 조용히 부품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레인의 도움으로 작업은 얼마 걸리지 않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부품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던 로엘은 이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그 후, 늘어놨던 부품들을 치우고 식사 시간에 했던 이야기대로 영약을 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
“고맙다.”
로엘은 웃는 얼굴로 레인이 건네준 영약을 받아들었다.
피곤했지만, 레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기 위해 쉬고 싶은 마음을 잠시 억누르기로 했다.
곧바로 씹어서 삼킨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로엘의 뒤에 자리 잡고 앉은 레인이 명문혈(命門穴)에 손을 얹고 내력의 운행을 도왔다.
* * *
다음 날.
로엘은 거처를 나서 곧장 거리로 향했다.
일정은 대부분 취소했다. 애나의 모친을 치료하는 일과 가정교사 일은 빼먹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시간이 남았다.
빈 시간 동안 상단 지부들을 돌아다니며 계획했던 대로 각종 물품을 주문했다. 레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동원할 수 있는 금액 전부를 챙겨왔다. 일단 물품 구입에 차질이 생기진 않았다.
구입한 물품들을 집에다 가져다 놓고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을 마친 후 곧바로 귀가했다. 서재에도 들르지 않았다.
곧바로 구입한 물품들을 늘어놓고 계획한 일에 착수했다. 직접 작성한 내용으로 가득한 종이 몇 장을 참고해가며.
“새겨 넣어야 할 마법진 한번 더럽게 많네.”
전 재산을 털어 구입한 재료들은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일단 새겨 넣을 마법진은 소형이긴 하지만, 마법진이란 게 원래 하나 그리는 데만도 상당한 금액이 소모된다.
전날 완벽하게 손질해 둔 부품들 중 몇 개를 집어 들고 마법진을 새겨 넣는 작업에 착수했다. 로엘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신중해졌다.
한 번 실수할 때마다 날아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시행착오는 최소화해야 했다.
새겨 넣는 마법진은 그다지 굉장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애초에 그 이상의 것들은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익힐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마법진을 이용하는 목적은 무언가 굉장한 마법을 구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으니까.
그저 완성될 물품의 안정성을 높여주기만 하면 족했다. 부족한 소재로 인한 한계를, 기술적 한계를 조금이나마 메꿔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로엘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작업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갔다.
“후우.”
작업을 마무리하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한밤중이었다. 이미 레인도 사냥에서 돌아온 후였다.
“그래서, 끝?”
로엘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레인이 바로 물어왔다.
“아니, 이제 조립해야지. 곧 끝나.”
로엘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로엘은 부품과 재료의 여유분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조립을 시작했다.
조용한 거실 안에 차칵차칵 하고 금속이 연결되는 소리, 그리고 끼릭끼릭 하고 나사못이 고정되는 소리가 한동안 울렸다.
드디어 완성된 물품. 로엘이 그것을 한 손으로 들고 빼먹은 부분은 없는지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였다.
“이제야 끝난 모양이네.”
“어.”
“그래서, 그게 대체 뭔데?”
레인의 질문. 로엘은 한 손으로 쥔 완성품에 시선을 고정하며 답했다.
“권총.”
“······?”
* * *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레인과 로엘 두 사람은 계속해서 산을 오르내리는 나날을 보냈다. 오로지 사냥, 사냥, 사냥.
레인이 사냥을 하면 뒤따르던 로엘이 부산물을 습득, 등에 짊어진 거대한 배낭에 담는다. 로엘이 부산물을 챙기는 중에는 레인이 주변을 경계한다. 효과적인 역할 분담.
간혹 대형 몬스터를 사냥하는 경우엔 로엘이 주의를 끌고, 레인이 강력한 일격을 먹이는 방식을 취했다. 간단한 연계지만 솔로 헌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성을 자랑했다.
페어를 짠 효과는 확실했다. 효율성이 몇 배는 올랐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금전도 상당히 늘었고. 소모하는 금액도 상당한 것이 문제였지만.
참고로, 이전에 제작한 첫 번째 시제품(권총)은 시험 사격 몇 발 만에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쓸 만한 물품을 완성한 것은 첫 시제품을 제작한 날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때였다.
그동안 돈이 잔뜩 깨졌다. 레인은 돈이야 또다시 벌면 그만이라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로엘로서는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권총이란 물건은 서로 다른 공정에서 제작된 여러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어야 하는 무구다.
각 부품은 경도가 다르고, 합금의 종류가 다르고, 제작 공정이 다르다. 당연하게도, 지금 당장 이쪽 세계에서 그것을 재현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쇠의 경도를 조절하는 마법진이나 조금이나마 충격을 분산시키는 마법진 등을 수없이 이용했다.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려 한 것이다.
화약을 제조할 수 없었기에 불가피하게 공기 압축식 권총을 제작해야 했다.
공기 압축을 보조하기 위한 마법진을 새긴 것은 물론이요, 직접 깎아 만든 나선형 쇳조각에 탄성 부여 마법진을 새겨 스프링까지 제작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매우 까다로운 제작 공정을 거쳐 어떻게든 쓸만한 수준의 물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만 조금 문제점이 있어서 완성된 물건을 사냥에 이용하진 않았다. 다른 장소에서면 모를까, 산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로엘이 품속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자신은 서포터에 불과했다. 대인전에 유용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사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무기 개량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자금을, 시간을 소모한 상태였다. 일단 최소한의 결과물은 나왔으니 당분간은 조금 휴식기를 가질 생각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소모된 자금을 보충하는 시간을 보냈다. 돈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모자랐다.
애나의 모친을 치료하는 일이나 가정교사 일은 진작 마무리된 상태였다. 참고로 베르딘의 모친이 계약 연장을 제안해 왔었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레인은 벽을 넘었다. 영약을 팍팍 섭취하고 매일같이 실전을 치르니 성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은 경지를 수습하는 와중이긴 하지만.
* * *
엘레노어 대륙 북부 대부분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 카이엔. 그 제국의 한 국가 기관 내에 소란이 일어났다.
“뭐야? 파르엘 그 녀석, 진짜로 가출해버렸잖아?”
콧수염을 얍삽하게 기른 한 중년인이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텅 빈 방 한가운데에 놓인 편지. 그것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직후 그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깨지는 건 또 나잖아!”
사내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진짜?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어떤 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고,
“이참에 손을 조금 써 둘까. 딱히 신경 쓸 것 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치워둬서 나쁠 건 없겠지.”
어떤 이는 음험한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으며,
“헛헛, 가출이라. 여전히 활기찬 녀석이군.”
또 어떤 이는 재미있다는 듯 웃어넘겼다.
그리고 이 해프닝을 전해 듣고 심심한 관심을 보이는 인물이 여기 또 하나.
“흐음.”
윤기가 흐르는 은색 머리칼에 심홍색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소녀였다.
미려한 얼굴선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아직 성장기임에도 벌써부터 완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몸의 굴곡. 거기에 차분해 보이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그야말로 도도한 미녀의 전형이었다.
소녀는 앞쪽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정말로 가출할 줄은 몰랐는데. 뭐, 적당히 떠돌다가 지치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그런 녀석이니까.’
입술을 축이고 찻잔을 제자리에 내려놓은 소녀. 그녀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들고 있던 서적의 페이지를 넘겼다. 일련의 행동에 기품이 배어 나왔다.
“뭐,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려나.”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가출 소동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이 심심한 해프닝이 훗날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이 시점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 * *
그날도 두 소년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한참 주위의 기척에 주의하면서 산을 오르던 중. 레인이 움찔 하고 무언가에 반응했다. 인간의 그것을 가볍게 초월한 오감을 지닌 그의 귓가에 조그마한 소음이 전해져왔다.
몬스터들이 울부짖는 소리. 대기를 울리는 파공음. 그리고 인간의 비명 소리.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레인은 로엘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주위를 경계하기 위해 풀어놓은 기감을 그대로 유지한 채 빠르게 발을 놀렸다.
펠라키 산맥은 여유 있게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못 되었다. 그렇지만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명 소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것이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음의 근원지가 눈에 들어왔다. 레인이 적당한 나무 위에 숨을 죽이고 앉아 그쪽을 주시했다. 로엘이 뒤따라와 그 옆에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의 시야에 적당한 넓이의 공터가 들어왔다.
오크 네 마리에 둘러싸여 있는 열두세 살가량의 소녀 하나가 있었다. 소녀는 오크들이 접근하려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일일이 반응하며 꺅꺅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죽으려고 용을 쓰는군.”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면 주변의 몬스터를 계속해서 불러 모으게 된다. 두 소년이 혀를 찼다.
“그건 그렇고······.”
“저게 말로만 듣던 정령술인가?”
소녀의 주위에 바람이 밀집, 압축되어 타원의 형태로 화했다. 그것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오크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조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상대에게 타격을 입히진 못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 위력이 낮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오크들도 괴성을 내지를 뿐 소녀에게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일종의 위협이 된 것이었다.
“마법은 아닌 것 같지?”
“어. 저렇게 패닉에 빠진 상황에서 발현할 수 있는 힘이 마법일 리는 없겠지.”
훌륭한 공격 수단을 지닌 소녀였지만, 경험은 일천한 모양이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어서 제대로 주변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로엘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보호자는 없나? 왜 저런 어린애가 산맥 내에 덩그러니 혼자 있대?”
“아니, 일단 우리하고 동년배인데.”
작게 중얼거린 레인이 쓴웃음을 흘리며 로엘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