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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해프닝(1) (11/249)
  •  11화. 해프닝(1)

     집 안으로 들어선 로엘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집안의 물건이라는 물건은 죄다 바닥에 쏟아져 있는 상태였다.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

     집안을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니는, 누가 봐도 용병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을 한 인물이 셋. 그중 하나가 방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코모도 가죽을 들고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후우.”

     로엘은 일단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일단 이 녀석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냥 돼먹잖은 용병일 가능성이 9할 이상이지만, 어쩌면 배후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너희는 누구지?”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용병들이 문가를 돌아보았다. 당황한 얼굴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로엘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너희는 누구냐고 물었다.”

     로엘이 재차 물었다. 그러자 한 용병이 피식 웃으며 대꾸해왔다.

    “보시는 대로, 돈벌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용병님이시다.”

    “그걸 왜 내 집에서 벌어.”

    “여기가 벌이가 좋다는 얘길 들었거든.”

     로엘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예상치 못했다.

    ‘······정말로 배후가 있었다고? 단순한 우연으로 이 집에 침입한 게 아니라?’

     무언가 귀찮은 일이 벌어진 듯싶었다.

     혀를 차고 있는 도중 기감에 걸려든 움직임이 둘. 아까 전의 물음에 대꾸한 용병을 제외한 나머지 두 용병이 슬쩍 로엘의 뒤쪽으로 가서 문을 막아섰다.

     로엘이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가소롭기는.’

     아무리 로엘이 익힌 무공이 무력의 상승과는 거리가 먼 종류의 것이라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기공을 수련한 적 없는 일반인은 가볍게 압도할 수 있다.

     상대의 실력이 뛰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빈집털이나 하는 용병이 제대로 된 실력자일 턱이 없다. 실력이 있다면 길드에서 인지도 쌓고 신용 쌓아 제대로 된 의뢰를 받겠지.

     이렇게 이름 팔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는 놈들은 애초에 팔릴 이름도 없는 녀석들이다.

    ‘그건 그렇고, 이것들, 제대로 난장판을 만들었네.’

     등 뒤의 용병들의 움직임보단 어질러진 집 쪽이 신경 쓰였다. 슬쩍 둘러보니 절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청소하려면 고생 좀 하겠군.’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로엘이 어느 한 지점에 눈을 고정했다.

    “······.”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나뒹구는 목함. 그리고 그 목함에서 튀어나와 근처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백년하수오.

     분명 레인이 어제 먹었다고 들었는데, 오늘도 채취해 온 모양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전날 영약을 채취했다며 드물게 기뻐하던 레인의 얼굴.

     만일 저 광경을 목도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레인이었다면?

    “자살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더니.”

     로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꼬마야,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먼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법이란다.”

     뒤쪽으로 돌아간 용병 하나가 이죽거리며 말해왔다.

    “이렇게 무턱대고 이렇게 집안으로 뛰어들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거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너는 운이 좋은 거다. 우리같이 선량한 사람들과 만났으니까.”

    “그럼. 적어도 우린 어린아이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악한까진 아니니까. 다행이지?”

     각자 되는대로 지껄이는 용병들.

     아무리 로엘이라도 듣다 보니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다.

     한 손에 코모도의 가죽을 들고 이쪽이 보란 듯 살짝 흔들고 있는 눈앞의 용병은 특히나 불쾌했다.

    “그래도 일단 묶어두긴 할 거거든? 도망쳐서 사람들을 부르면 안 되니까. 그러니 이리 와.”

    “······.”

    “좋게 말할 때 오는 게 좋을 거다. 너도 아픈 건 싫지?”

     안 그래도 가장 거슬리게 굴던 용병이 비열한 얼굴로 손짓했다. 그리고 그즈음에 로엘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오냐.”

     이마에 살짝 혈관이 불거진 로엘이 웃는 얼굴 그대로 답했다.

     내력을 순환시켰다. 일정한 경로로 몇 개의 혈도를 휘돌아 발끝에 모인 내력을 방출, 그 추진력을 이용해 신형을 날렸다.

    “헉?!”

     퍽!

     이죽거리고 있는 용병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용병의 몸이 확 뒤로 젖혀지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곤 화려하게 공중을 한 바퀴 돌아 바닥에 엎어졌다.

    “크악!”

     쓰러진 용병이 곧바로 얼굴을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생각지 못했던 광경에 동료 용병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일단 맞고 시작하자.”

     로엘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살벌하게 내뱉었다.

     * * *

     퍽퍽퍽퍽퍽!

     연속으로 울려 퍼지는 타격음.

    “이, 이게!”

    “컥!”

     일방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용병들이 나름 반격이랍시고 주먹도 내질러보고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아 휘두르기도 해봤지만, 로엘의 옷자락도 스치지 못했다.

     좁은 실내를 종횡무진 누비며 주먹을 내지르는 로엘. 제대로 된 형(形)도 뭣도 없는 마구잡이 주먹질이었지만, 위력은 확실했다.

     경신법 수련을 폼으로 한 게 아니다. 로엘이 움직이는 속도는 일반인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가속도가 실린 주먹질이 작렬할 때마다 용병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구석으로 몰아!”

    “젠장! 그게 됐으면 진작 했지!”

     구석으로 몰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암만 좁은 공간 내부에서의 전투라지만, 애초에 스펙 자체가 다른 상대였다. 흡사 어른과 아이의 싸움과 같았다.

     퍽!

    “크헉!”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용병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는 로엘. 용병의 몸이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이 자식!”

     옆에 있던 용병이 검을 내리쳤다. 로엘이 가볍게 신형을 물려 그것을 회피했다. 그리고 가속.

    “이익!”

     용병들이 악에 받쳐 덤벼들었다.

     본래라면 금방 제압할 수 있는 상대다. 그러나 로엘은 그러지 않았다. 열 받은 만큼 충분히 괴롭힐 생각이었다.

     쩍!

     그가 용병 한 사람의 뒤쪽으로 돌아가 로우킥을 먹였다.

     단숨에 상반신이 뒤쪽으로 젖혀진 용병. 곧장 위치를 옮긴 로엘이 상반신을 무자비하게 타격했다.

     퍽퍽퍽퍽퍽퍽퍽퍽!

    “끄, 으, 억, 억, 억!”

     쉴 새 없이 작렬하는 주먹질. 용병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완전히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빌어먹을!”

     동료 용병이 곧바로 검을 휘둘러왔지만 어림없다. 이번에도 가볍게 물러나며 피해냈다.

     로엘은 용병들 사이사이를,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며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를 보며 용병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대체 뭐야! 저 녀석은!”

    “무슨 꼬맹이가!”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빈민가에 거주하는 민간인, 그것도 이런 꼬마가 이렇게 강할 거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갈비뼈가 나갔어······.”

     방금 전 구타당한 용병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난 첫 공격에 코뼈가 나갔다. 목도 지금 제 상태가 아니야.”

     다른 용병도 연신 쏟아지는 코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우욱!”

     배를 직격당했던 용병은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용병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몸놀림으로 미뤄보았을 때 상대는 초짜 중의 초짜. 하다못해 주먹 쓰는 법조차 모르는 게 확실했다. 자신들보다도 수련이 얕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상대는 그저 압도적인 스펙의 우위로 이쪽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가 권투 조금 배웠다고 성인을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문제는 용병들 쪽이 어린아이의 입장이라는 것이었지만.

    “이건 무리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용병 하나가 뒤돌아 도망치며 소리쳤다. 도저히 가망이 없음을, 눈앞의 소년이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어딜.”

     그러나 로엘은 그가 도망치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신형을 이동, 그를 앞질러 먼저 문 앞에 당도했다.

    “흐억!?”

     용병이 기겁해서 신형을 급히 멈추려 했다.

     그 순간 로엘이 빠르게 달려들어, 용병의 얼굴에 주먹질을 가했다.

     콰득!

    “크억!”

     용병이 뒤로 휙 하고 날아갔다.

     이빨이 와장창 부서졌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가한 공격이이다.

     로엘이 손을 털며 말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 * *

    “흠흠.”

     로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는 마당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괴랄한 포즈로 고정된 세 사람의 용병이 있었다.

     로엘이 손을 탁탁 털며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차라리 죽여줘!”

     가운데에 배치된 용병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로엘이 웃는 얼굴로 답변했다.

    “물론 죽일 생각이야.”

     용병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상당히 거시기했다. 세 용병이 한 데 얽혀 한껏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자의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로엘이 그렇게 얽어놓고 세침을 빼곡하게 꽂아 고정시켜두었다.

     세침에 불어넣어 둔 내력이 각 근육을 경직시켜 움직임을 제한했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효과가 지속될 터였다.

    “사회적으로.”

    “차라리 물리적으로 죽여! 이 악마 새끼야!”

     로엘이 덧붙여 말한 내용에 용병이 절규했다.

     그러나 로엘은 키득키득 웃기만 할 뿐, 용병의 절규를 가볍게 무시했다. 타인을 대할 때는 항상 친절함을 가장하는 그이지만, 적에게는 가차 없었다.

     여담이지만, 용병들은 한참을 구타당한 뒤 삼엄한 감시 아래 집안을 대청소했다.

     현재 집 안쪽은 오히려 용병들이 처음 발을 들여놨던 때보다도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전투로 인해 망가진 가구나 집기는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슬슬 심문을 시작해볼까?”

    “심문?”

     느닷없는 로엘의 발언에 용병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너희가 이 집을 노리도록 유도한 녀석이 있다며?”

    “아······.”

     용병이 그제야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씩 하고 웃었다.

    “말해두겠지만, 나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말하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지 않으면 모를까.”

    “······.”

     아무래도 배후에 관한 정보를 현 상황을 타파하는 용도로 써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로엘이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암중에서 위협하는 이의 존재는 껄끄럽겠지? 그러니······.”

     용병의 의기양양한 발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로엘이 자르듯 말해왔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해하질 못한 모양인데.”

     로엘이 잔혹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해하기 쉽도록 도움을 주지.”

     로엘의 시선이 살짝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용병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너, 너! 설마!”

     육신의 통제권을 완전히 빼앗긴 탓에, 현재 용병은 시야가 제한된 상태였다. 그의 시야에는 로엘의 얼굴 정도만이 비쳐졌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용병은 로엘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살짝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고개, 내리깔아진 시선. 그 각도로 미뤄보아 그의 시선 끝에 위치한 것은- 

    “미, 미친!”

    “자아, 나머지 놈들도 잘 봐둬.”

     로엘은 친히 나머지 두 용병의 고개를 돌려 고정시켜주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확실하게 견식할 수 있도록.

    “아, 안 돼!”

    “돼.”

     발끝으로 지면을 툭툭 찼다. 그렇게 긴장감을 조성하고, 곧바로 무릎을 올려 찼다.

     그것은 흡사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에 비견되는, 숨 막히는 광경.

     퍽!

     지구의 어느 유명 소설 작가가 그랬던가. 알은 하나의 세계라고.

     이날, 두 개의 세계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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