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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영약(3) (10/249)

 10화. 영약(3)

 중원의 무인(武人). 그들은 체내에 내력을 축적, 그것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얻은 이들이다.

 무인이 발휘하는 압도적인 힘의 근간은 역시 내력. 그렇기에 그들에게 있어 내력은 생명과도 같다.

 영약은 그 내력을 크게 증진시켜주는 천고의 보물이다.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귀물.

 오늘, 레인은 영약을 얻었다. 천년만년 대자연의 기운을 축적해온 최상위 영약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상당한 효능을 지닌 준영약을.

 레인은 백년하수오를 눈앞에 두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행공에 몰입했다. 영약에 담긴 기운을 흡수하기에 앞서 만전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후우.”

 이내 짧게 숨을 내뱉은 레인이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그리고 기운을 끌어올린 상태를 유지하며 백년하수오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로엘도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이번에 영약을 섭취하는 것은 레인뿐이다. 산을 오르지 않는 지금의 내겐 영약이 필요하지 않다며 로엘 본인이 사양했다.

 후욱!

 레인이 백년하수오를 씹어 삼킨 직후,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레인이 각성한 기억의 배경. 중원.

 그곳에서는 보통 영약을 채취하면 그것을 단환 혹은 탕약으로 만들곤 했다. 섭취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운의 손실을 줄이고, 체내로 받아들인 기운의 흡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그에 반해 레인은 영약을 섭취할 때 잡다한 과정을 모두 생략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는 레인의 기운 통제 능력이 영약의 기운을 일체 손실 없이 흡수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레인의 경우, 환단, 탕약의 제조 과정에서 일어날 기의 미세한 소실마저 아까워했다. 그래서 항상 영약이 손에 들어오면 그걸 그대로 우적우적 씹어 삼키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레인은 즉시 내력을 운기, 몸 안에 퍼져나가는 기운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전생에 수많은 문파들을 멸문시키고 그 문파의 보물들을 탈취했던 레인이다. 그렇게 얻은 영약들을 흡수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몸속의 기운들을 제어해나갔다.

 백년하수오가 지닌 높은 밀도의 기운은 레인이 능숙한 인도에 따라 혈도를 휘돌며 차차 정제되어갔다. 정제된 기운은 레인이 본래 가진 기운과 동화되었고.

 레인은 그렇게 한참이나 운공에 힘을 쏟았다.

“후우.”

 그가 운공을 마친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전신에 충만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갈무리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시간이 잔뜩 흘러 새벽이 다 되어 있었다.

“배고프다.”

 레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픔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영약을 섭취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이미 잠들어 있을 시간이 다 되었다. 이 시간까지 깨어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간단하게 야식이나 해 먹을까.”

 레인이 주방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로엘이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말을 붙였다. 어쩐 일인지 그 또한 잠들지 않은 채였다.

“치킨?”

“좋지.”

 * * *

 다음 날 아침.

 레인은 사냥을 나서기 위한 준비를 갖췄다. 검을 차고, 몬스터의 부산물을 담을 자루를 준비했다.

 암기로 활용할 세침 다발도 품속에 갈무리했다. 사냥한 몬스터를 해체할 때 사용할 비도도 따로 챙겼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그가 집을 나섰다.

 발걸음을 옮기며 레인이 생각했다.

‘어제처럼 또 영약을 발견하면 좋을 텐데.’

 문득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생각이지만 참 실없는 바람이다. 영약이란 게 그렇게 쉽게 발견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동하던 레인의 발걸음이 갑자기 뚝 멈췄다.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그러고 보니, 영약이 보통 그렇게 쉽게 발견될 리가 있나?’

 영약이란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보물.

 위험한 산중에서 강력한 몬스터를 쓰러뜨리고서야 얻게 된 기연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어제 채취한 영약은 너무 쉽게 손에 들어왔다.

 약초를 채취하다 그냥 그 기운이 느껴져서 거저 얻은 영약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행운이란 말인가.

 영약을 발견했던 장소는 시야가 닿기 힘든 동굴 내부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골짜기 안쪽도 아니었다. 그냥 공터였다.

 펠라키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몬스터헌터는 자신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땅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영약을 발견하지 못했다니, 말이 되질 않는다.

‘어쩌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정이 있었다.

‘만약 가정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로 대박이다.’

 레인이 곧바로 대지를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가정의 진위를 확인하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 * *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레인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펠라키 산맥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대소를 터뜨렸다. 평소에는 이런 식으로 흥분하는 일이 거의 없는 레인이지만, 지금만큼은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레인이 세운 가정의 진위는, 그의 손에 들린 두 개의 백년하수오로 인해 확실하게 밝혀졌다.

‘이렇게나 보물이 가득한 땅을 몰라봤다니.’

 지금 레인의 눈에는 펠라키 산맥이 흙이 아닌 황금으로 쌓아 올린 땅으로 비쳐 보였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 깊숙이 들어가기만 하면 손쉽게 영약을 구할 수 있는 산이라니.

 이곳은 세인들이 말하는 저주받은 땅 따위가 아니었다. 노다지였다.

 레인이 세운 가정은 별것이 아니었다.

 본디 영약이 천금에 비견되는 보물인 이유는 이것이 무인들의 내력을 대폭 증진시켜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영약은 무인에게 큰 도움을 준다. 중원에나 존재하는 무인!

 이 세계에도 체내에 기를 축적해 그것을 활용하는 종류의 무술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검기나 검강을 뽑아내는 용병, 혹은 기사가 존재하니 그 기반이 되는 무술도 존재하는 것이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그 무공의 체계가 중원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

 중원의 무공과 달리, 이 세계의 무술이 영약을 섭취해도 그것이 무력의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쩌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영약을 그냥 적당히 효과 있는 약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구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기에 조금만 위험을 감수하면 얻을 수 있는 천고의 보물이 산 여기저기에서 마구 자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은 확신이 되었다.

 레인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영약은 무력 향상의 기폭제가 되는 귀한 물건이다. 그런 영약이 무더기로 자생하는 세계라니.

"하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력이 높은 곳, 즉 먹이사슬 상위권에 위치한 대형 몬스터들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대지를 찾아다니기만 하면 영약이 손에 들어온다.

 물론 영약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대형 몬스터와 맞부딪혀야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알게 뭐란 말인가.

 지금만 해도 바로 옆에 거대한 멧돼지의 형상을 한 몬스터, 자이언트 보어(Giant Boar)가 쓰러져 있지만 전혀 관심이 가질 않았다.

 대형 몬스터? 위험?

 얼마든지 감수해줄 수 있었다. 그 정도 리스크 따위.

 심지어 그조차 영약 몇 개만 섭취하고 나면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안 그래도 레인에게는 전생의 기억이 있다.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만큼 머릿속에 담긴 무(武)에 대한 깨달음, 경험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부족한 것은 내력과 육체적인 능력. 그리고 머릿속에 담긴 깨달음을 현생의 육체에 적용시키는 일.

 그런데 영약의 도움이 있다면 그 부족한 것을 채우는 과정에 들여야 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눈이 돌아갈 수밖에.

 레인은 영약들을 가죽 주머니에 집어넣고 재차 신형을 날렸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되고 나니 몸이 달았다.

 레인은 그날 해가 지기 전까지 종일 영약을 찾아 산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 * *

 로엘은 아침 일찍부터 영주성 안쪽까지 외출을 다녀왔다.

 우선 전날 계획했던 대로 대장간에 다녀왔다. 레인이 사냥해온 코모도 가죽의 시세도 겸사겸사 알아봤다.

 코모도의 가죽은 생각보다 가치가 훨씬 높았다.

 매끈하면서도 질긴,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고급스러운 소재. 그 기능성만으로도 뛰어난 물건이다.

 거기에 코모도는 펠라키 산맥에서만 서식하는 몬스터다 보니 희소성이 높았다. 부산물의 가격이 높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로엘은 그것을 확인하고 가죽 처분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만한 수준의 물건을 처리하면 상당히 눈에 띄게 된다.

 레인이라면 모를까 로엘은 그로 인해 꼬일 인간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레인에게 가죽 처분을 맡기자니 타인을 대함에 있어 영 서투른 녀석이라 불안했고.

 그렇게 해서 비싸기로 유명한 코모도의 가죽은 적당히 집 한구석에 처박히게 되었다.

 가죽의 판매에 관한 문제를 일단락한 로엘은 일과를 소화하러 집을 나섰다. 할 일이 많았다.

 진료 예약이 3건, 거기에 가정교사 일도 있었다. 그 후엔 애나의 모친까지 치료하러 가야 했다.

 * * *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저녁 시간. 로엘이 애나의 모친을 치료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던 때였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즈음에, 기감에 불온한 기척이 걸려들었다. 그 근원지는 집 내부.

‘모르는 이들의 기척이 있다.’

 기감은 레인의 조언에 따라 항시 활성화시켜두고 있었다. 일종의 훈련이었다.

 레인처럼 무력의 상승을 목적으로 수련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로엘도 무공을 익혔다. 꾸준히 시간을 들여 훈련하고 있었다.

‘찾아올 손님 같은 건 없을 텐데.’

 로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내력을 귀에 집중했다. 그것으로 동물의 그것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청력을 높일 수 있었다.

 높아진 청력을 통해 집 안쪽의 소음이 전해져왔다.

“어엇! 이거! 코모도의 가죽 아니야!?”

“헉! 정말이다!”

“대박이다!”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로 미뤄보아 숫자는 셋.

 로엘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도둑, 아니 용병인가.’

 로엘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런 사례가 넘쳐난단 이야기는 여러 차례 들은 적 있었다. 적당히 빈민가에 위치한 집을 털어 용돈벌이를 하는 용병이 많다고 했던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빈민가는 집값이 싼 만큼 치안이 형편없으니까. 뒤 세계 조직도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모양이고.

 실제로 겪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저들이 도둑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평범한 도둑이라면 3인조 이상으로 활동하지도, 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집에서 저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지도 않는다. 저건 역시 용병이었다.

 그러고 보니 레인의 기척이 없었다.

‘어딜 간 거지?’

 평소라면 레인이 집에 돌아와 있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었다.

‘쯧, 하필.’

 레인이 있었다면 저런 잡스러운 놈들은 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터였다. 대체 이런 때에 어딜 나돌아다니고 있는 거냐고, 로엘이 내심 투덜거렸다.

‘출출하답시고 노점이나 기웃거리고 있는 모양이지.’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레인이었다. 외출했다면 그 이유밖에 없을 터였다.

 인간관계엔 소원한 녀석이라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하아.”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로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일에 치여 피곤한 참이었다. 트러블은 사양하고 싶었다.

 로엘은 그대로 직진,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설마 레인이 문단속을 잊은 것일까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자세히 보니 열쇠고리 주변에 난폭하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철사 따위를 억지로 쑤셔 넣어서 문을 연 모양이었다.

‘망가지진 않았는지 모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로엘이 문을 확 하고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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