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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영약(2) (9/249)

 9화. 영약(2)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려나.’

 펠라키 산맥에서 개인이 몬스터와 장기 전투를 벌이는 건 자살행위다. 이 산맥을 무대로 활동하는 모든 헌터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속전속결.

‘내력은 아직 충분히 남았고.’

 계속해서 기감을 퍼뜨리며 이동해 온 탓에 상당한 내력을 소모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 덕에 지금까지 한 차례도 전투를 치르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내력에 여유가 있었다.

 레인은 풀숲에 몸을 숨긴 채 공터를 선회해 코모도 근처로 다가갔다.

 은신술이 효과를 발휘했다. 코모도는 전혀 레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레인은 이내 코모도의 지근거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일단 부딪쳐 봐야지.’

 이내 결심을 굳힌 레인이 풀숲에서 뛰쳐나오며 코모도를 기습했다.

 풀숲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 공격은 은밀하게,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나아갔다.

끼긱-

‘!’

 그러나 검은 코모도의 표피를 뚫어내지 못했다. 가죽이 긁히는 거북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격을 받은 부분에 약간 긁힌 자국이 났지만 그뿐. 코모도는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레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가 이렇게 질겨.’

 아무리 은밀성에 온 신경을 집중한 일격이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상상 이상으로 질긴 피부였다. 검기를 덧씌운 검 정도가 아니면 상처를 입히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을까.

 검기를 발현하면 뿜어져 나오는 기파(氣波)로 인해 기습의 묘리가 사라진다 여겼다. 상대는 몬스터니까. 분명 그것을 감안해 검격의 위력을 조절하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해도 오크의 살점 정도는 가볍게 꿰뚫어버릴 공격이었다. 이렇게 맥없이 무위로 돌아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귀찮게 됐네.”

 레인은 혀를 찼다.

 어차피 약초는 얻어야 한다.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들기까진 시간도 조금 있을 테니 정면 대결로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쿠아아아!

 코모도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커다란 입 안쪽에 촘촘히 박힌 이빨을 내보이며 달려드는 코모도. 그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달려드는 속도도 상당했다.

“시끄럽긴.”

 레인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마주 달려 나갔다. 저 소리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몰려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검에 검기를 덧씌웠다. 검에서 아지랑이 같은 형상이 일어나 위압감을 내뿜었다.

 그대로 검을 코모도의 입에 겨눴다. 코모도는 코모도대로 전혀 기세를 죽이지 않고 괴성을 지르며 마주 돌진해왔다.

 코모도와의 거리가 지척에 달했을 때, 레인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정면으로 맞부딪치려는 듯했던 모습은 속임수. 특수한 보행기술로 미끄러지듯 움직여 순식간에 왼쪽으로 빠져나왔다. 곧바로 코모도의 옆구리에 재차 검을 겨냥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코모도가 레인을 따라 몸통을 선회해 방어하기엔 늦었다.

“웃!”

 그러나 레인은 이내 검을 찔러 넣던 손을 거두며 급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코모도가 오히려 반대로 한 바퀴 돌며 꼬리를 휘둘러왔기 때문에. 파공음과 함께 코모도의 꼬리가 레인의 얼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다.

‘꼬리로 공격해올 줄은 몰랐네. 상당히 반응속도가 빠르다.’

 확실하게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은 인간이 아닌 대형 몬스터. 꼬리까지 전투에 활용하는 상대였다.

 오크와 같은 소형 종 몬스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코모도의 힘과 속도는 대단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가 특히 거슬렸다.

‘전생이었다면 똑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동요하지 않았겠지만.’

 자신은 전생의 그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딱히 투쟁으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다.

 레인은 새삼 전생의 자신이 얼마나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인물이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재차 코모도에게 달려들었다.

 카카카카카캉!

 연속으로 검격을 몰아쳤다. 코모도가 발톱을 휘두르며 맞대응해왔다. 검과 발톱이 연속해서 부딪히며 불똥이 튀겼다.

 레인은 살짝 감탄했다.

 놈의 발톱이 검기에 덧씌워진 검을 받아 내고 있었다. 눈에 띄게 무뎌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 강도를 지닌 발톱이었다.

 잘못하면 전투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안 되지.’

 레인이 확 하고 몸을 낮췄다. 갑작스러운 움직임. 이어 곧바로 하단으로 검을 휘둘렀다.

 코모도는 검을 피해 뒤쪽으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곧바로 다시 달려들 심산인 듯 상반신이 앞쪽으로 기울어진 상태.

 그 순간을 노린 레인이 신형을 한 바퀴 돌리며 들고 있던 검을 집어던졌다.

 푹!

 쿠에에에에에엑!

 격통에 코모도가 비명을 내질렀다. 오른쪽 다리에 레인이 내던진 검이 틀어박혔다.

 다행히 타이밍을 잘 맞췄다. 손에서 아예 무기를 놓아버린다는 리스크를 감수한 공격이었는데, 멋지게 성공시킬 수 있었다.

 레인은 코모도가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경공으로 빠르게 거리를 좁혀 발광하고 있는 코모도의 턱에 손을 얹었다.

 퍼엉!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쏘아진 장력이 코모도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다리가 묶인 코모도로써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코모도의 거체가 휘청거렸다. 레인은 곧바로 아래쪽으로 슬라이딩, 코모도의 하반신으로 파고들어가 다리에 꽂혀있는 검을 뽑아냈다.

 곧바로 바닥을 짚고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회전력이 실린 검을 코모도의 뱃가죽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검기를 듬뿍 머금은 검이 질긴 비늘은 물론 살과 근육을 단숨에 꿰뚫었다.

 쿠에에에엑!

 이전보다 더욱 처절한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배가 꿰뚫리고, 상처를 타고 흘러 들어간 검기에 의해 내장이 헤집어졌다. 혈액이 역류했는지 입으로 피를 뿜어내며 컥컥거리는 코모도.

 쿠웅!

 놈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요란하게 쓰러졌다. 코모도의 시체에 깔리기 직전에 기다시피 해서 빠져나온 레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힘들었군.’

 기습이 통하지 않은 탓에 쓸데없이 정면 대결을 벌였다. 역시 아직 대형 몬스터까진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이런 사냥을 몇 번이고 반복할 수가 없다. 이 산맥에서 솔로 헌터에게 요구되는 능력 최저치는 겨우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힘’ 정도가 아니니까.

‘이제 약초를 챙기고 자리를 떠야지. 몬스터들이 몰려들기 전에.’

 레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미리 봐뒀던 장소로 향했다.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흙을 털어낸 약초를 가죽 주머니에 담는 작업을 몇 번 반복하던 무렵.

“음?”

 레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미약하지만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봉한 레인이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

 의아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이내 무언가를 알아챘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걸음의 끝에, 그것이 있었다.

 언뜻 보기엔 그리 귀하지 않아 보이는 약초.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무인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귀중한 보물.

 레인은 내심 동요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행여 뿌리 한 올도 상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스럽게 그것을 채취했다.

“백년하수오(百年何首烏).”

 전생에 몇 번이나 접했던 준영약, 백년하수오.

 지력이 충만한 땅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성장하며 체내에 기를 축적하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 영초. 내가기공을 수련하는 이가 섭취하면 상당한 내력의 증진을 경험할 수 있는 귀물(貴物).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영약이었다. 중원의 무인들 중 구 할 이상이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접해보지조차 못하는 물건.

“생각지도 못한 부소득인데······?”

 레인이 멍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기연을 얻어서 기분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그가 입가에 짙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심봤군.”

 * * *

 로엘은 레인이 가져온 약초를 조합하고 정제했다. 그렇게 만든 약을 가지고서 애나의 집을 다시 찾았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푹푹 박아 넣었다. 이번엔 애나의 모친도 자신의 몸에 박혀 드는 침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치료법은 들어본 적도 없었던 탓에 그녀의 얼굴이 조금 떨떠름해졌다. 의외로 그리 아프지는 않았기에 내심 놀라기도 했지만.

 조용히 침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약효를 관조하던 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은 제대로 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내력을 운용해 폐에 생긴 염증을 제거하는 동안, 그로 인한 반동을 착실히 막아내 주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특수한 방법으로 정제한 비약이었다. 거기다 약 기운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로엘이 유도하고 있었다.

 생사의의 의술은 어떤 의미로는 지구의 그것조차 초월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웬만한 병은 급속 회복, 그것도 자연 회복 시킬 수 있는 기적의 의술. 그것이 현대의 의학 지식에 달통한 로엘을 만나 꽃을 피웠다.

 지난번엔 고통을 덜어내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정도에서 끝난 치료였다. 반면 이번 치료는 완치를 목적으로 한 것.

 애나의 모친은 며칠 정도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될 터였다. 암만 그래도 단숨에 전부 치료할 수는 없으니 일주일 정도 시간을 들여가며 상세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약효가 전부 흡수된 후, 로엘은 세침을 뽑아내며 말했다.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보름 내로 완치될 겁니다. 그때까지 무리해서 움직이려 하지 말고 되도록 누워서 쉬세요.”

“보, 보름? 겨우?”

 애나의 모친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하루 이틀 자고 일어나면 낫는 감기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만한 질병이라면 완치되는 데 최소 수개월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병이라는 게 의원을 찾아가기만 하면 뚝딱 낫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길어도 보름이면 그것을 완치시킬 수 있다니, 대단한 수준을 넘어섰다.

“보름은 말 그대로 최대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고, 웬만해선 열흘 내로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 고맙다. 고마워.”

 애나의 모친은 연방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회복되기 전까진 괜한 이유로 움직이는 일은 없으셔야 합니다. 일을 하러 나가시는 것도 금집니다. 그랬다간 다신 치료 따위 해 드리지 않을 겁니다.”

 로엘은 행여나 애나의 모친이 조금 몸이 나아졌다고 곧바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나가려 들지 않을까 경계했다. 그렇게나 몸을 혹사시켜가며 억지로 버텨온 위인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딸을 위해서랍시고 완치되지도 않은 상태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상세를 악화시켜서는 곤란하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미리 박아두었다.

 이렇게까지 말해두면 그녀도 무리한 행동을 하려 들진 않으리라.

“몸이 나을 때까지 먹을 음식을 조금 가져다 뒀습니다. 회복에 도움이 될 법한 것들로 챙겨 왔으니 잘 챙겨 드세요.”

“이걸 고마워서 어쩌지.”

“아, 그러고 보니.”

“······?”

“제 친구가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의외의 소득을 얻었다고. 음식들은 그 녀석이 보내온 겁니다.”

“무슨······?”

 애나의 모친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백년하수오에 관한 것을 그녀가 알 턱이 있나.

 실상 그녀가 뭔가 도움을 준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건 단순한 기분 내기에 불과했다.

 그답지 않게 잔뜩 들뜬 레인의 얼굴을 떠올린 로엘이 큭큭 웃었다. 애나와 그녀의 모친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치료를 일단락하고.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

 세침을 목함에 갈무리한 로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애나와 모친이 그대로 뒤돌아 집을 나서는 로엘을 고마움이 한껏 담긴 눈길로 바라봤다.

 애나의 모친이 주저주저하다가 말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으마. 무엇이든 우리가 도울 일이 있다면 말만 해 다오.”

“아, 아! 나도! 나도 도와줄게!”

 애나가 번쩍 손을 들어 올리며 덧붙였다.

 뒤를 돌아본 로엘이 입가에 웃음을 그렸다.

“뭐 꼭 그러지 않으셔도······.”

 반사적으로 겸양의 말을 뱉어내려던 로엘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

 볼을 긁적이던 그가 모녀에게 말했다.

“아니, 이후에 부탁드려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 * *

“조만간 대장간이나 들러야겠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로엘이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피가 좀 있는 부품들은 주문해 두면 받을 수 있겠지만, 미세 부품들은 역시 직접 만들어야 하려나.”

 그가 두서없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상념을 이어가며 한참 걷다 보니 이내 집에 도착했다. 이미 한밤중이 되었기에 주위는 어둠과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왔냐.”

“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레인의 성의 없는 인사가 들려왔다. 로엘이 똑같이 성의 없는 대응으로 되돌려 주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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