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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영약(1) (8/249)

 8화. 영약(1)

 통칭 빈민가라 불리는 외성 바깥의 거주지.

 솔직히 명칭과는 달리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게까지 빈곤하지는 않다. 빈민가가 빈민가라고 불리는 이유는 오로지 외성 밖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 하나뿐이다.

 굳이 그런 유쾌하지 않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를 들자면, 유사시에 영주가 그 땅에 거주하는 자들의 권익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전쟁, 이를테면 영지전이라도 벌어지면 가장 먼저 없어져 버리는 것이 바로 이 빈민가다.

 그런 이유로 외성 안쪽과 바깥쪽은 거주지의 가격에 큰 차이가 있다. 당연하게도, 일어날지 어떨지 확실치도 않은 전쟁의 위협보다 당장 자신의 돈이 아쉬운 이들은 빈민가로 모여들게 된다.

 그런 빈민가에서도 구석진 곳에 위치한 판자촌. 이곳은 그야말로 진짜 빈민들의 거주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로엘은 애나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집에 다다랐다.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끼워진 나무판자들이 눈에 띄는, 가난을 형상화한 것만 같은 집이었다.

 개의치 않고 집 안으로 들어선 로엘은 잠에 든 채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는 애나의 모친을 발견할 수 있었다. 뒤따라 들어선 애나가 모친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표정을 흐렸다.

“바로 검진부터 할게.”

“부탁할게요.”

 로엘은 자리를 잡고 앉은 후 환자의 손목을 붙잡고 내력을 퍼뜨렸다. 환자의 신체 정보가 낱낱이 전달되어왔다.

‘증상을 듣고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 폐렴이었나.’

 폐렴. 폐에 염증이 생겨나 폐의 정상적인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질병이다.

 주요 발병 원인은 세균, 바이러스, 그리고 곰팡이. 아무래도 위생적인 부분을 거의 포기하고 사는 판자촌 거주자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이다.

 눈앞에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이미 상당히 병이 진행된 상태였다.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까지 염증이 침범했다.

 이 수준이면 호흡을 할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요, 소화불량, 구토, 설사, 근육통까지 겪고 있을 터.

‘용케 참았네.’

 그만한 고통을 완전히 쓰러져버리기 전까지는 참아왔다는 것이 아닌가.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참아낼 수 있었던 건 아마······.’

 로엘이 애나가 있는 쪽을 살짝 곁눈질했다.

 애나의 모친이 그렇게까지 버텨가며 일상을 이어간 것은 딸아이 때문이 아닐까.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한없이 강해지기도 하니까.

 로엘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들었다. 목함 안에는 세침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가 세침을 하나 집어 들고 내력을 불어넣었다.

“······.”

 이어 환자의 옷을 들쳐 올리더니, 주저 없이 가슴께에 침을 찔러 넣었다.

“지, 지금 뭘 하는 거예요?!”

 애나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지금 로엘이 행한 치료는 한의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것. 엘레노어 대륙 어디에도 이런 치료법은 없다.

 당연하게도, 애나는 사람의 몸에 침을 꽂아 넣는다는 치료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제대로 치료하고 있는 중이야. 좀 특이해 보여도 효과는 확실하니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로엘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저런 반응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었다.

 애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치료의 효과와 안정성은 확실했다. 로엘은 몇 개의 세침을 더 박아 넣고 조용히 경과를 지켜보았다.

 * * *

 세침을 모두 회수했다.

 다시 손목을 붙잡고 내력을 흘려보내 몸 상태를 체크하고 있자니, 환자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로엘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아, 의원입니다.”

“의원?”

 한층 더 의아해하는 표정. 창백한 안색과 맞물려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의문스러운 얼굴을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로엘은 나이에 걸맞은 어린 외견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의원치곤 너무 젊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 근방에 상당한 실력을 지닌 소년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혹시?”

 그것도 잠시, 그녀가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로엘에 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모양이었다.

‘의외인데.’

 로엘은 일단 그녀의 물음에 빙긋 웃는 얼굴로 그렇다고 답했다.

 고정된 직업 없이 여기저기 손을 빌려주고 품삯을 받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들었다. 여러 일을 하는 만큼 발이 넓은 것일까.

“······고마워서 어쩌지.”

“예?”

“우리 형편에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분명 애나의 부탁을 받고 와준 거겠지? 심성이 상당히 바른 아이인 모양이구나.”

“······.”

 로엘은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심성이 바르다니, 그럴 턱이 있나. 검진을 온 이유는 그저 마음이 동했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못 되었다.

“괜히 번거롭게 만들었구나. 어차피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아닌데.”

“무슨 말씀이시죠?”

“진료를 해 봤다면 이미 알아챘을 테지. 치료를 받는다고 나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병이라는 걸.”

“뜻모를 소리를 하시는군요.”

“의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현재 내 몸 상태가 어떤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처연한 얼굴을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듯한 표정.

 확실히 그 자신의 말대로 그녀는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쪽 세상의 의학 수준으로 미뤄보았을 때,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질병인 폐렴에는 성력도 잘 듣지 않을 터.

“왜 그런 판단을 내리셨는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러나, 로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말했다.

“······?!”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완치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위로는 고맙다만, 조금 전에도 말했듯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단다. 지금 와서 노력해 봐야 늦었어.”

 아무래도 로엘의 발언이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한 위로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로엘이 피식 하고 웃고 말았다.

“알긴 뭘 압니까.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니, 어디 의원 앞에서 주름을 잡나요?”

“하, 하지만, 그 극도로 고통스러운 느낌은 분명······.”

“그거야 초기에 곧바로 치료하지 않고 무시하다 병이 커질 대로 커진 탓이죠. 병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

“제대로 치료하면 나을 수 있습니다.”

“그, 그런.”

“의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목숨을 포기하다니, 어리석은 행동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아프면 우선 의원에게 소견을 묻는 게 당연한 겁니다.”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재차 픽 하고 웃었다.

“오늘은 갑작스레 방문하느라 치료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제대로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처치밖에 못 했고요. 그래도 고통은 한결 가셨을 겁니다.”

“······!”

 그 말을 듣고 살짝 몸을 일으켜 본 애나의 모친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고통이 상당히 가신 상태였다.

 통증은 여전히 느껴졌지만, 이전처럼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진 않았다.

“어, 어떻게!”

“그러니까 말했잖습니까. 얼마든지 치료하는 게 가능한, 그렇게 대단할 것은 없는 병이라고.”

 로엘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해 둬야 할 것들도 있고, 내일 다시 오도록 하죠.”

“아, 그, 그래.”

“몸 잘 추스르고 계세요.”

 로엘은 당황하고 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판잣집을 나섰다. 애나가 바깥까지 뒤따라 나와 몇 차례나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

 * * *

 판잣집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로엘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하겠네.”

 그가 말하는 준비란, 물론 애나의 모친을 치료하기 위한 준비를 뜻했다.

 사실 로엘이 그녀에게 말했던 만큼 그녀의 병은 가볍지 않았다. 폐렴씩이나 되는 병이 가벼운 병일 턱이 있나.

 심지어 증상으로 미뤄봐서 병이 상당히 깊어진 상태였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자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굳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는 그녀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그녀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전에도 말했듯, 로엘은 의도적으로 남의 욕망을 부추길 법한 능력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번 치료는 표면적으론 폐렴 치료가 아닌 가벼운 질병의 치료가 되어야 했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인물이니 속이기는 쉬웠다. 속이는 데에 저항감도 없었다.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렇지 않은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의료업계에서 의사가 환자를 속여먹는 것 정도야 평범한(?) 일인 법.

“이 정도의 병을 혼자서 치료해 보는 건 처음이로군. 좋은 연습이 되겠네.”

 로엘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그동안은 의도적으로 피한 부분도 있고 해서 이만한 질병에 걸린 환자를 상대해보지 못했다. 이론적인 치료법은 꿰고 있었지만.

“필요한 재료가 좀 많겠지만, 그거야 레인에게 조달해 오라고 하면 되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로엘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도를 높였다.

 * * *

 레인은 평소와 같은 시각에 산을 올랐다.

 그가 오늘 산에 오르는 목적은 사냥이 아니었다. 로엘에게서 부탁받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사냥은 하루 쉬기로 했다.

“······귀찮아.”

 레인이 하품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최근 사냥에 재미가 들린 탓인지 상대적으로 긴박감이 적은 이번 산행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로엘은 레인에게 약초를 구해다 줄 것을 부탁했다. 애나의 모친이 앓고 있는 병이 가볍지 않은 만큼 철저한 준비가 이뤄져야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요상술과 시중에서 파는 약초를 이용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가벼운 질병만을 치료해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인 환자를 완치시키기가 불가능했다.

 병이 병인 만큼 필요로 하는 약초가 많았다. 심지어 그중에는 시중에서 판매하지 않는 종류의 것도 있었다.

 생사의의 치료술은 침에 내력을 불어넣어 특정 부위에 꽂아 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거기에 더해 약초술을 병행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여러 약초들을 짓이겨 즙을 내 조합하고, 내력을 이용해 그것을 정제한 액체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침 끝에 묻혀 체내에 주입하는 것. 마지막으로 내력을 이용해 약효를 제대로 퍼뜨리는 것이 중요했다.

 침술만으로도 가벼운 병은 웬만해선 치료가 가능하긴 하지만.

“······.”

 레인은 기감을 넓게 퍼뜨린 채로 움직였다.

 약초를 채취하는 것이 우선이므로 몬스터 사냥은 뒷전으로 미뤘다. 아예 몬스터와 마주치는 일 자체를 피했다.

 펠라키 산맥은 품질 좋은 약초가 많이 자생하기로 유명했다. 높은 품질의 약초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산맥 곳곳을 누비며 미리 준비해온 가죽 주머니에 발견한 약초를 차곡차곡 담아 넣었다. 약효가 떨어지지 않도록 약초를 조심스럽게 캐내느라 심력을 많이 소모했다.

 중원의 그것과 식생이 그다지 다르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중원과 지구도 환경적인 측면이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랐던 적이 있었지.’

 그것과 관련된 대화를 나눴던 때, 로엘이 뭔가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말을 중얼거렸던 기억이 났다.

 평행 세계라고 했던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레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시간이 꽤 지났군.’

 레인은 모종의 결심을 했다.

 필요로 하는 다른 약초들은 모두 모았는데, 한 가지 약초만은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약초 자체가 희귀한 탓에 발견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 듯했다. 중원에선 산이나 구릉을 지날 때면 비교적 자주 눈에 띄었던 약초였으니까.

 이곳이라고 다르진 않을 성싶었다. 이곳 대륙의 식생이 중원과 비슷하다는 것을 이미 확인해 두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그 약초가 자생하는 영역이 내가 지나온 길에 없다는 것.’

 지금까지 위험을 줄이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는 의도적으로 피해서 이동해 왔다.

 그렇지만 약초가 자생하는 장소가 위험성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면 행로를 바꾸어야 했다. 언제까지고 약초가 없는 곳만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을 버리느니,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나았다.

 결국 레인은 지나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레인의 판단은 옳았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다니던 약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레인이 은신술로 기척을 감춘 채 널찍한 공터 한편을 응시했다.

‘저기에 있군.’

 찾아다니던 약초를 발견했다. 그것도 무더기로.

 위치는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쪽.

‘문제는 저 녀석인데.’

 공터의 한편에서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가 처참하게 해체된 오크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코모도.

 광택이 있는 매끈한 검은 피부가 특징인 몬스터였다. 눈 이외의 모든 부분이 상당히 질긴 표피에 뒤덮여 있었다. 도마뱀인 주제에 이족보행체인 녀석이기도 했다.

 워낙 질긴 피부를 지닌 탓에 칼날도 잘 틀어박히지 않기로 유명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두꺼운 꼬리가 상당히 위협적으로 비쳐 보였다.

 산맥의 먹이사슬에서 당당히 수위권을 차지하는 대형 몬스터.

‘대형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은 아직 없는데.’

 레인이 낮게 숨을 골랐다. 그리곤 가늘게 뜬 눈으로 코모도를 응시하며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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