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성장(3) (6/249)
  •  6화. 성장(3)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가상의 전투에 맞춰 검을 휘두르고 발을 놀리며 호흡을 조절하는 연습. 그것이 현재 레인이 행하고 있는 수련이었다.

     살짝 들이쉬던 호흡을 멈춤과 동시에 검을 내지른다.

     중심인 하체에서부터 허리, 어깨를 거쳐 손목으로. 그리고 검신으로 이동한 힘이 가상의 적을 공격하는 시점에 집중된다.

     쉬익!

     검이 허공을 깔끔하게 가로지르는 소리가 났다.

     직후, 레인이 빠르게 검을 거두고 걸음을 뒤로하며 숨을 내쉬었다.

    “······.”

     역시 약간의 어긋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전생과 현생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괴리감 때문이겠지.’

     전생에 무공을 수련하면서 얻었던 수많은 깨달음. 그 깨달음은 여전히 레인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 깨달음을 육신에 적용시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거창하게 깨달음이라고 표현했지만 별 게 아니다.

     상대와의 간극 조절이나 정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지는 호흡, 원하는 만큼, 원하는 신체 부위로 기(氣)를 수급하는 능력 등등. 말하자면, 무공의 기반을 이루는 것들의 집합체.

     그 요령을 깨우치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깨달음은 육신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 그러니 현생의 육신이 전생의 육신과 다른 깨달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길을 나아가야 하는지 깨달음의 큰 줄기는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생에 올랐던 경지, 혹은 그 이상의 경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전생의 육체와 현생의 육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괴리를, 간극을 계속해서 메워나가야 하겠지.’

     그 간극은 경지가 낮을 때엔 그리 두드러지지 않겠지만, 아마 경지가 높아질수록 크고 넓어질 터였다. 그 간극을 얼마나 빠르게 메울 수 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터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레인은 잡념을 지우고 다시 몸을 움직이는 데에 집중했다. 결국은 부단한 수련만이 답이었다.

     * * *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검을 검집에 갈무리한 레인이 마당에서 몸을 돌려 집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곧장 욕실로 향해 대야에 미리 받아둔 물로 땀을 씻어냈다. 그런 이후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드리웠다.

    “후우.”

     잠시 그러고 있자니 로엘이 방에서 나와 레인 쪽으로 다가왔다.

    “레인.”

    “?”

     레인은 왜 부르느냐는 표정으로 로엘을 마주 보았다.

    “오랜만에 그거 먹자.”

    “그거? 좋지.”

    “가서 재료 사 와.”

    “왜 그걸 나한테 시켜?”

     일말의 주저도 없는 로엘의 지시에 레인이 황당하다는 듯 내뱉었다. 스스로 가면 될 것이지 왜 남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인지.

     그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네가 직접 사오면 되잖아.”

    “일단 너도 먹을 거잖아?”

     천연덕스러운 로엘의 대답. 레인의 미간에 파인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다.

     먹을 생각이긴 했다. 먹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레인은 먹을 것에 약했다. 그것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 전생에 굶주림이 일상화된 삶을 살았던 영향일 터.

     현생의 삶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후부터는 주위의 노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게 된 그였다. 그만큼 그는 먹을 것에 약했다.

     로엘은 그것을 잘 알기에 당연히 레인이 함께 먹을 것이란 전제로 말을 한 것이었고.

    “그렇다 해도 먹자고 제안한 사람은 너잖아. 왜 내가 사와야 하는 건데.”

     솔직히 자신이 그냥 다녀와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로엘의 막무가내에 따라주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이제 막 수련을 끝낸 직후라 몸이 노곤하기도 했다.

     게다가 로엘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저 상대방을 부려 먹는 데에 그 어떤 부담감도 느끼지 않는 태도가 괜스레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먹고는 싶어졌는데 밖으로 나가긴 귀찮으니 별수 있나. 결국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남을 부려먹는 것뿐이지.”

    “당연하긴 개뿔이. 나는 안 귀찮겠냐.”

    “빡빡한 친구 같으니. 그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가위바위보.

     간단한 게임이었다. 의견이 갈렸을 때 간단하게 해결하기에 좋았다. 그러나 레인에겐 그 제안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든 그가 한 차례 반발하듯 말했다.

    “그냥 네가 다녀오지? 먹고 싶다는 말을 꺼낸 건 너잖아.”

    “됐으니까 준비나 하시지.”

    “······.”

     예상대로 뻔뻔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레인이 별수 없다는 듯 한 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로엘이 빙긋 웃는 얼굴로 눈앞에 가위 모양을 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신경 쓰였다.

     몇 번이나 당해왔다. 저런 식으로 이쪽의 생각을 유도하고 그것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방식.

     분명 확률은 반반인 게임일 터인데 이상하게 이런 종류의 내기만 벌였다 하면 로엘의 승률이 높았다.

     레인은 생각했다. 심리전에 말려들지 말자고.

    ‘난 저 가위를 못 봤다.’

    ‘그래. 가위는 무시하자. 신경 쓰지 말자.’

    ‘역시 가위를 이기려면 주먹을······ 아니, 가위는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

    ‘······로엘은 내가 주먹을 낼 것이라 예상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로엘은 필시 보자기를 낼 터. 그렇다면 내가 가위를 내면 승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가위를 내자.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 아닌가.’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처음의 결심과 상당히 멀어지고 말았다. 이성보다 그때그때의 기분이 앞서는 레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가위, 바위, 보!”

     상념은 로엘의 목소리와 동시에 깨졌다. 레인은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로엘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빌어먹을.”

     * * *

     레인이 알아듣기 힘든 말을 구시렁거리며 집을 나섰다. 그런 그를 로엘이 낄낄 웃으며 손 흔들어 배웅했다.

    “단순한 친구 같으니.”

     이어 방금 전까지 레인이 앉아 있던 자리를 차지해 드러누웠다.

     누운 김에 재차 심법을 운용했다. 요즈음엔 뒹굴거리며 심법을 운용하는 데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내력을 운용하는 능력이 상당히 숙달되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로엘의 생각에, 기의 운용이란 것은 의외로 ‘펜 굴리기’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펜을 손 위에 놓고 굴리는 연습.

     처음에는 그것에만 집중한다고 해도 영 잘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익숙해지고 나면 수업을 들거나 책을 읽으면서도 무의식중에 능숙하게 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기의 운용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처음엔 의식을 내부로 침잠시켜 거기에만 온 신경을 쏟고 집중해야지만 반응을 보이던 기운이다. 그것이 지금은 적당히 뒹굴거리면서 의지를 일으키기만 해도 쉽게 반응해온다.

     아무래도 격한 움직임을 행함과 동시에 운기행공을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애초에 그것은 레인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와중에 펜 굴리기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능숙해진 것은 내력의 운용만이 아니었다.

     성장기에 접어든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주의하느라 조금 더디게 진행하긴 했지만, 꾸준히 경신법을 수련해왔다. 그 결과 요새는 경신법 또한 꽤나 능숙해지게 되었다.

     전적으로 레인의 지도를 받은 덕분이었다. 그의 세심한 지도는 무공의 수련이 로엘의 몸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최소화해주었다.

     레인의 그것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전력으로 경공을 펼치면 웬만한 성인 남성이 최고 속도로 달리는 것보다 2배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내 움직임이지만 놀랍단 말이지.’

     익히면 익힐수록 내력을 기반으로 하는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경신법에 익숙해진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레인과 함께 사냥도 나설 수 있을 듯싶었다. 직접 사냥할 능력은 없지만, 옆에서 서포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진짜로 레인을 따라서 사냥이나 다닐까.’

     지금의 직업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목돈을 벌기 위해선 몬스터 사냥이다. 얼마 있지 않아 레인이 뛰어들 업계의 일이었고.

     게다가 로엘은 앞으로 마법을 익힐 계획이었다.

     마법사만큼 돈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현재의 수입으로는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조만간 익힐 수 있겠지. 마법.”

     여담이지만, 마법을 익힐 방법은 일단 마련해 두었다.

    “왔네?”

    “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레인이 장을 봐서 돌아왔다. 상당히 빠르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로엘은 레인에게서 재료를 건네받아 요리의 밑 준비를 했다.

     먼저 레인이 구매해온 닭의 털을 뽑았다. 뜨거운 물을 받아둔 대야 주변에 레인과 함께 둘러앉아, 빠른 손놀림으로 닭을 나체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닭의 해체. 털이 제거된 닭을 부위별로 나뉘도록 매섭게 칼질했다.

     토막 낸 닭고기를 적당한 크기의 통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곤 고깃점들이 잠길 정도로 우유를 부은 뒤 뚜껑을 닫았다.

     그렇게 밑 준비를 마치고, 적당히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 용병들을 노린 살인사건이 기승인 모양이던데.”

    “그래?”

    “뒷골목 구석진 곳에서 자꾸 시체가 발견된다 하더라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고깃점들을 통에서 건져냈다. 건져낸 고기는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했다.

     이쪽 세계에서 후추는 의외로 그렇게까지 비싼 물품이 아니었다. 지구의 중세 시대와는 다르게.

     이 역시 마법이 관련되어 있는 탓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도 마냥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

     차르르르르르.

     그랬다. 만들어진 것은 무려 치킨이었다.

     노란 튀김옷이, 표면에 좌르르 흐르는 기름기가 보는 이의 침샘을 자극하는 그 치킨.

     두 소년은 이내 완성된 치킨을 그릇 위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맥주를 세팅했다.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마주 앉아 곧바로 시식. 가장 먼저 집어 든 부위는 당연하게도 다리였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자 흡족한 식감의 튀김옷이,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점이 입 안에서 뒤섞이며 기분 좋은 맛의 조화를 이뤄냈다.

     꼭꼭 씹어 살점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후 입 안에 남은 느끼한 감각을 맥주로 씻어냈다. 이 기름기가 씻겨나가는 감각이 참을 수 없이 좋다.

     이 세계엔 미성년자의 음주를 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있어도 그것을 강제하는 법(法)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낄 것은 없었다.

     레인과 로엘 두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감탄사를 뱉어냈다.

    “크······!”

    “크으으!”

     솔직히 로엘에게 있어선 빈말로라도 현대 지구의 그것보다 낫다고 볼 수 없는 맛이었다. 애초에 그가 아는 치킨의 조리법은 그야말로 약식이기도 했고.

     하지만, 치킨은 치킨이다. 그 기본적인 맛이 어디 가진 않는다.

     어차피 운기행공을 하면 주독을 배출해 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두 소년은 마음 놓고 먹고 마셨다.

     그래도 일단 미성년자이고 하니 술은 절제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성적인 생각은 머릿속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다.

     절제?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훌륭한 치킨교 신자는 뒷일을 생각하면서까지 살점을 뜯지 않는 법이다.

     * * *

     다음 날 아침.

     하루의 시작은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마루 위에서 이루어진다.

    “후우.”

     레인은 혈도 구석구석까지 휘돌던 기운을 단전 깊숙이 갈무리하고 난 후에 눈을 떴다. 그리곤 조용히 자신의 몸 상태를 관조했다.

     잠시 후,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운공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 사냥을 위한 준비물을 챙겼다.

     곧바로 집을 나선 뒤 펠라키 산맥으로 향했다.

     산맥에는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아나 생기가 돌고 있었다. 완연한 봄이 찾아온 것이다.

     레인은 적당히 산을 올라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틈에 은신했다.

    ‘그러고 보니 사냥도 오랜만이군.’

     한동안 산에 오르지 않았다. 수련을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겨울의 펠라키 산맥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몬스터에게 식량이 부족해지는 계절이다.

     야생 동물들이 활동량을 현저히 줄이는 만큼 그들의 사냥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음식을 저장하는 습성이 없는 몬스터들이 겨울에 굶주리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기에 겨울철이 되면 몬스터들 중 산맥의 중심부를 터전으로 삼는 상위의 포식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힌다. 그에 따라 하위 포식자들의 영역도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로 인해 평소엔 비교적 안전한 지대였던 산맥 외곽이 몬스터들의 소굴로 둔갑하게 된다. 심한 경우엔 몬스터들이 산맥을 넘어 인간들의 마을을 침범하는 경우까지 있다.

    “······.”

     은신해있는 레인의 앞쪽에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났다. 토끼는 레인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적당히 풀을 뜯다가 자리를 이동했다.

     펠라키 산맥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감각이 뛰어나다. 상위 포식자인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대지가 삶의 터전이니까.

     그럼에도 토끼가 바로 근처에 위치한 레인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레인의 은신술이 그만큼 뛰어남을 의미했다.

     쿠엑!

     쿠에에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은신하고 있는 레인의 눈앞에 한 떼의 오크 무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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