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성장(2) (5/249)
  •  5화. 성장(2)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야. 이걸 꾸준히 수련하면 미남이 된다고.”

    “허어.”

     잠시 설명의 시간이 흐르고.

    “하하.”

     모든 설명을 듣고 난 로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듣자 하니, 이 심법은 골격을, 특히 얼굴의 골격을 바로잡아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부를 깨끗하게 하고 이목구비를 조화롭게 배치시키는 등 전반적인 외견 레벨을 상승시킨다는 듯했다.

     심법의 정체. 그것은 레인 본인이 직접 창안한 미공(美功)이었다. 그것도 레인이 중원의 수많은 미공들을 결집시켜 창안한, 미공의 정수와도 같은 심법이라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보조적인 미용 수단일 뿐인 여타의 미공들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라는 듯했다. 아예 근본적인 부분부터 뜯어고치는 괴물 같은 공능을 자랑한다고.

    “그런데, 이런 심법은 왜 만든 거야?”

     갑자기 든 생각에 로엘이 물었다.

     이전에 전생에 대해 물었을 때, 레인은 이렇게 답했다.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일생이었다고. 그런 그가 주변 상황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이런 무공을 창안한 여유는 대체 무엇일까.

    “·····.”

     레인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로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뭐 하긴, 의문을 가질 것은 또 무엇인가.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로엘은 이 사심 가득한 무공을 창안한 장본인, 레인을 가늘게 뜬 눈으로 응시했다. 레인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그쪽에 아무것도 없어 인마.’

     제 스스로도 어지간히 민망한 모양이었다.

     로엘은 쯧쯧 혀를 찬 후 주먹 쥔 오른손을 앞으로 살짝 내밀며 말했다.

    “너 이 자식, 잘했어.”

     욕망에 충실한 인간인 것은 로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

     레인은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이내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곤 자신도 손을 내밀어 툭 하고 주먹을 마주쳤다.

    “그런데, 이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

    “비전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빛을 발한다고 했던 것.”

     이전에 레인이 그 자신의 독문무공인 혼원공을 전수하려 했을 때, 로엘이 그것을 거절하며 했던 말이다. 현재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아 말하고 있지만.

    “당연히 기억하지.”

    “이 심법은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전수해선 안 된다는 것, 알고 있겠지?”

     로엘이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훗날 네가 다른 이들에게 중원의 무공을 전수하게 될지라도, 이 심법만큼은 절대 전수하지 않아야 해.”

     확답을 구하듯 이어지는 발언. 로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구차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좀 치사하더라도 반드시 해둬야 하는 말인 것을.

     이 심법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안됐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한데, 어떤 이유에선지 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비전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는 의견엔 너도 동의했을 텐데?”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어째서.”

    “당연한 것을 묻는군. 내가 이걸 전수한다면 그 대상은 여성에 한해서다.”

    “······!”

     로엘은 크게 감탄했다.

     여담이지만, 레인이 창안한 미공의 이름은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굳이 이름까지 붙일 이유를 느끼지 못해 지금까지 그냥 두고 있었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로엘이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심법의 이름은 성형공(成形功)이 되었다.

     * * *

     다음 날 아침.

     두 소년의 아침은 운기행공을 통해 피로를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내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된 로엘. 그가 깔끔하게 내력을 갈무리하고 눈을 떴다.

     새벽부터 시작한 운공이건만, 눈을 떠 보니 상당히 주위가 밝아진 상태였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로엘이 마당 쪽으로 난 마루에 자리 잡고 앉았다.

     레인은 먼저 운공을 마치고 마당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쉭쉭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변칙적인 궤적을 그려내는 검이 떠오르고 있는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객관적으로 봐서, 열두 살 어린아이가 수련하는 검식이라기엔 지나치게 뛰어났다. 보통의 어린아이는 저렇게 몸의 관절을 유연하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검식을 태연하게 펼치는 것이 불가능할 터.

    ‘함부로 따라 하려고 했다가는 온몸의 근육이 파열되겠지.’

     로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레인의 검식은 온몸의 근육들을 고루 발달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문제는, 레인의 나이가 겨우 열두 살에 불과하다는 것.

     성장기 어린아이가 무리한 운동을 하면 신체에 걸리는 부담이 크기 마련이다. 문제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레인은 몸에 걸리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정밀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전생에 무예를 수련했던 기억을 지닌 그만이 선보일 수 있는 기예였다.

     보통의 어린아이라면 정확한 움직임을 찾기까지 시행착오를 겪는 와중에 몸이 먼저 망가져 버리고 만다. 그런데 레인은 그 시행착오의 과정을 대부분 건너뛰어 버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흐음.’

     끊임없이 검술에 정진해온 검사라고 해도 저런 식의 움직임을 보일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의문이다.

     그런데 레인은 이미 온몸의 근육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자신의 통제하에 놓고 있었다.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따라 할 엄두도 못 내겠군.’

     로엘이 턱을 괴고 작게 중얼거렸다.

     매일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쪽은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기에 더더욱.

     로엘은 레인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가볍게 건너뛸 수 없었다.

     로엘이 익히고 있는 것은 경신법, 그리고 금나수. 딱 두 가지뿐이었다. 금나수 정도는 생사공으로도 어떻게든 펼칠 수 있는 터라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겨우 그 정도만을 익힐 뿐이지만, 로엘은 신중에 신중을 가하고 있었다. 그 형(形)을 익히기 위해 거쳐야 하는 시행착오는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니까.

     어린아이의 연약한 육체로는 함부로 무리해서 수련할 것이 못 되었다. 눈앞의 괴물 정도쯤 되는 인물이 아니고서야.

     현재 중점적으로 익히고 있는 것은 내가기공이었다. 기를 축적하고, 축적한 기를 순환시켜 혈도를 넓히고, 그 움직임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수련.

     그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기에 쌓인 내력의 양만 놓고 본다면 레인과 필적할 정도였다. 그나마 보람이 느껴지는 성과였다.

     물론 그것은 로엘이 심법에 치중해 있는 동안 레인은 검법, 권각법, 보법 등등의 수많은 기술들을 심법과 균등하게 수련했기에 가능한 일이였지만.

    ‘내 경우엔 무공을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로엘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수련을 마친 레인이 검을 갈무리하며 다가왔다. 그렇게나 움직였는데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신경 쓰이게.”

    “아, 방해됐어? 미안.”

    “아니, 미안할 것까진 없고.”

     레인은 고개를 저으며 로엘의 옆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의원 일은 혼자서도 할 만하냐?”

    “문제는 없어.”

    “하긴, 경험적인 측면만 빼면 네가 나보다 오히려 낫지.”

    “그러는 넌. 지난번에 가르쳐준 것들은 잘 기억하고 있어?”

    “뭐 어떻게든. 조금 분량이 많아서 머리 아프긴 하다만.”

     레인과 로엘은 의학이라는 분야에 대해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이었다.

     로엘은 레인에게 21세기 지구의 외과적, 한의학적 지식을 총망라한 의학 지식을 가르쳤다. 레인은 지구인 입장에선 기적의 치료법이라고 여겨도 무리가 없을 내가요상술을 가르쳤고.

    “오늘도 수고해라.”

    “너도.”

     짧은 대화 후,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는 두 사람.

     잠시 햇볕을 쬐며 아침 공기를 즐기던 두 소년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집 안으로 되돌아갔다.

     * * *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열세 살이 되었다.

     지난 일 년 사이에 레인과 로엘의 생활상은 또다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한 차례 더 이사를 했다. 전보다 규모가 있는 집을 구했다.

     깔끔하고 세련된 거주지였다. 여전히 영주성 바깥 거주지이긴 했지만.

     겉모습도 꽤 달라졌다. 로엘은 금발과 푸른 눈동자가 돋보이는 선이 갸름한 얼굴, 거기에 깔끔한 옷차림을 갖춘 미소년으로 성장했다.

     마찬가지로 레인도 미소년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외견으로 성장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로엘과는 달리 날카로운 인상이라는 것일까.

     물론 두 소년의 준수한 얼굴은 성형공의 덕을 많이 보았다.

     아니,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해서 효과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처럼 꾸준히 미공을 운용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절세의 미남이 될 터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상당히 신장이 자랐다. 잘 먹고 무공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무공 또한 많은 진전을 이뤘다.

     레인의 경우, 검 위에 검기(劍氣)를 덧씌울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상당히 완숙해져서, 이젠 슬슬 본격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시작해도 될 듯싶었다.

     로엘 또한 내력의 운용이 상당이 익숙해졌다. 요즈음 로엘은 침대 위에 누워 뒹굴며 심법을 운용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가부좌를 틀지 않으면 심법에 몰두할 수 없었던 로엘이었다. 그런데 이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면서도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내력의 운용에 얼마나 능숙해졌는지 알 수 있는 일면이었다. 능숙해진 운용력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면 그냥 게으름뱅이 정도로 보이겠네.]

     오죽하면 레인이 그런 평가를 내렸을 정도였다.

     로엘은 최근 쉬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전생에 과로사(死)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엔 여유시간이 나기만 하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기 일쑤였다. 누가 봐도 훌륭한 게으름뱅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론 운기행공을 하고 있는 것이니 그리 게으른 것만도 아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뒹굴거리면서 운기행공에 몰두하다가, 이따금씩 엎드린 자세로 종이 위에 이것저것을 끄적인다. 그러다 팔이 아프면 다시 심법을 운용하길 반복한다.

     로엘의 여가 시간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재정적인 여유가 생겼기에 조금 비싼 가격대의 종이도 무리 없이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이쪽 세계에선 중세의 지구만큼 종이가 귀하지 않았지만.

     로엘이 여가 시간을 보내며 그때그때 끄적인 종이들은 나중에 한데 묶여 책의 형태로 보관되었다. 기록하는데 사용한 문자는 한글.

     이쪽 세계에서는 아는 인물이 없는 문자인 만큼, 보안성은 최고였다. 훗날 유용하게 사용될 터였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요즘의 레인은 직접적인 전투를 상정한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조만간 시작할 몬스터 사냥을 대비해서.

     최근 몇 달 동안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쳐 사냥을 다니지 못했다. 계속 수련만을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 세계에는 헌터라 불리는 직종이 있다. 말 그대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부산물을 취해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뜻했다.

     용병, 현상금 사냥꾼과 맞먹을 정도로 위험한 직종이 바로 헌터였다. 항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그만큼 목돈을 만져보기 쉬웠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력에 빠져들었다. 그중 반수 이상이 은퇴하기 전에 죽어버리지만.

     조만간 레인 또한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터였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해 온 동물 사냥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사냥의 대상이 다를 뿐 그저 지금까지 해온 사냥의 연장선일 뿐. 적어도 레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감이라는 능력을 가진 그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사냥의 난이도가 크게 올라갈 테니 감각을 가다듬기 위한 수련은 필요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역시 조금씩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군.”

     문득, 레인이 중얼거렸다. 미묘하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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