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성장(1) (4/249)
  •  4화. 성장(1)

    “······그 말은, 너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뜻?”

    “어. 나도 겪었지.”

     로엘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담담한 표정으로 뒷말을 덧붙였다.

    “딱히 해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

     예상과는 다른 담백한 반응에 레인이 머쓱해졌다.

    “이제 난 간다?”

     로엘은 뒷목을 긁적이는 레인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로엘이 레인에게 무공을 전수받았던 때.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 무공은 직접적인 무력 상승과는 거리가 멀어. 나중에 원망하지 마라.”

     무공을 전수하며 레인은 그렇게 말했다.

    “뭐 그건 별로 상관없는데. 구태여 그걸 강조할 이유가 있는 건가?”

    “있지. 무공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이 무공은 오로지 내가요상술(內家療傷術)과 경신법(輕身法)을 위해 창시된 무공이거든.”

    “그래?”

    “일단 무공의 이름은 생사공(生死功)이다.”

    “생사공이라.”

    “앞서 말했듯 오로지 치료와 도망, 이 두 가지를 위해서만 창시된 무공이다. 검술이나 권각법(拳却法) 따위를 사용하려고 해봐야 무공의 특성상 그런 방면으론 기의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지.”

    “특이하네.”

    “네가 요구한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되긴 한다만······.”

     본래 레인은 자신이 익히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무공을 로엘에게 가르치려 했다.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한 무공임에도.

     다른 사람도 아닌 로엘에게라면 그러지 못할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어릴 적의 경험도 있고 해서, 서로에게 가족 이상의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데 로엘이 그것을 거절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바라는 종류의 무공도 아니라며. 그 뒤에 로엘이 레인에게 요구한 내용에 정확하게 부합된 무공이 바로 생사공이였다.

    [나더러 살상용 무공을 익히라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

    [상대가 날붙이를 들고 덤벼드는데 이쪽도 마주 달려들라고? 도망쳐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레인이 재차 자신이 익힌 무공, 혼원공(混圓功)을 권했을 때 로엘이 한 말이었다.

     당시 레인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선 한두 문장으로는 부족하리라. 뭐 레인에게야 어이없고 황당한 답변이었지만, 21세기 지구의 주민이었던 로엘으로선 당연한 감상이었다.

    “내가 말한 조건에만 부합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어. 그걸로 배울게.”

    “네 뜻이 그렇다면야.”

     그렇게 로엘은 생사공이라는 무공 아닌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로엘은 전수받은 무공을 한참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중이었다.

     * * *

    “매번 고맙구나.”

     허리에 꽂힌 세침들을 회수하고 있는 로엘에게, 치료 대상인 노인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뇨. 무료로 치료해 드리는 것도 아니니까요.”

    “허허, 그렇다고 해도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게다가 그리 비싼 값을 받지도 않지 않느냐. 이만한 효과의 치료임에도.”

    “암만 효과가 뛰어나대도 일개 의원의 치료일 뿐인데요, 뭐.”

     로엘이 회수한 세침들을 자그마한 목함에 갈무리하며 그렇게 답했다.

    “덕분에 최근 허리가 많이 좋아졌구나. 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그렇게 쑤셨거늘.”

    “오늘 경과를 지켜보니까, 몇 번만 더 치료받고 적당히 요양하시면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을 정도로 회복될 것 같네요.”

    “좋은 소식이구나.”

     노인이 기뻐하는 얼굴로 허허 하고 웃었다. 로엘은 가만히 목함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제 가려고?”

    “네.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쉬세요.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그대로 엎드린 채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약효가 잘 들도록.”

    “오냐. 조심해서 가거라.”

    “또 오겠습니다.”

     로엘은 엎드린 자세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노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노인의 집을 나섰다.

    “이걸로 오늘 일정은 다 돌았나.”

     그가 대로로 빠져나와 한 차례 하품하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나도 꽤나 익숙해졌네.”

     하품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는지 목을 좌우로 꺾어가며 피로를 달래는 로엘.

     지난 시간 동안, 로엘은 쭉 의원 노릇을 해 왔다. 원래는 레인과 함께 2인조로 움직여왔는데, 레인이 사냥을 하겠다고 나선 탓에 오늘부터 혼자 활동하게 되었다.

     의원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이것저것 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레인에게서 배운 무공의 특성에서 기인했다.

     생사공은 레인이 전생에 접했던 인물, 생사의(生死醫)의 비전이다.

     레인의 말을 빌리자면 생사의는 기억 속 몇 안 되는 진정한 협사 중 하나로, 일반인, 무림인 가리지 않고 온갖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중원 최고의 의원이었다고 한다.

     로엘이 어떻게 생사의의 비전을 습득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레인은 드물게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몰려든 무림인들 사이의 분쟁에 휘말려 죽었다고 답했다. 나중에 우연히 그 시체를 발견하고 품속의 비급을 챙겼다던가.

     그런 인물의 무공을 배운 로엘이다. 그 특기를 살릴 무대는 당연하게도 의원이라는 직함을 내세워야 만들 수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이왕 이쪽 계열 무공을 배우게 되었으니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요상술까지 확실히 익히자고 결심한 로엘은 레인에게 내력을 이용한 특수한 치료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천재인 데, 마침 그 본인의 의학적 지식도 풍부했기에 배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가르치는 레인 쪽이 훨씬 많은 것을 배워가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력을 운용하는 특수한 치료라는 부분만 빼면 레인이 가진 지식은 로엘에게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중원의 의학 수준은 현대 지구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로엘에게 부족한 점은 기껏해야 실전경험, 그리고 운용할 수 있는 내력량 정도. 내력량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터였지만 경험적인 부분은 직접 발로 뛰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내력이 축적되자마자 레인과 함께 의원 일을 다녔다. 직접 환자의 거처에 방문하는 방식으로. 그즈음부터 하수도 일은 관뒀다.

     초반에 주변 사람들에게 인식된 두 사람은 의원 놀이를 하는 꼬마 2인조 정도였다. 지금에 와선 입소문이 퍼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명의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지만.

     부족한 경험을 채우기 전까진 레인의 조수 격으로 활동한 로엘이었지만, 그 경험이 채워지기 무섭게 레인과 동등한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의원이 되었다.

     말했듯 지금에 이르러선 레인 없이 혼자서 활동하게 되었고.

     로엘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면 상당히 잘 고른 직업이란 말이지.”

     이쪽 세계에선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레인과 로엘이 가진 지식은 정말로 특별하다. 너무나도 특별하기에,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한 지금 다른 이에게 그것이 드러나게 되면 험한 꼴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의원이라는 직업은 상당히 괜찮은 편에 속했다. 성력(聖力)이란 기적의 힘을 발휘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의원이라는 직종은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으니까.

     레인이나 로엘이 의원으로써 아무리 이름을 날려 봐야 그 비전을 노리고 두 소년을 겁박하거나 할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명의라도 일개 성직자 한 명보다 못하다는 것이 이 세계의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따로 의방을 차리지도 않고 방문식으로 진료를 다니기에 더더욱 눈에 띄지 않는다. 정식 의원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에 손님(환자)들도 대부분 빈민가의 인물들이다.

     돈은 벌어야 하겠는데 눈에 띄긴 싫었던 두 소년에게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벌어들이는 금액이 크다곤 할 수 없지만, 생활 수준을 높일 정도의 수입은 충분히 올릴 수 있었다. 동시에 개인적인 수련(실전)도 되니 일석이조.

     여담이지만, 성력은 외상에 강하고 질병에는 약한 특성이 있었다. 그저 그런 질병이면 모를까,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수준의 강력한 질병에는 성력보다도 생사공이 훨씬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터였다.

     확실히 그런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부각될 일은 없었다.

     환자야 가려서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런 환자가 흔하지도 않았다.

     문제가 될 소지는 없었다.

    “그건 그렇고.”

     로엘이 생각을 전환했다.

    “나도 무력을 기를 수단을 손에 넣긴 해야 할 텐데 말이지.”

     최근 가진 지식을 정리하고, 그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여러모로 궁리해보는 중이었다. 그리 급할 것도 없으니 천천히 하고 있긴 했지만.

     언젠가, 늦어도 몇 년 이내로 정리한 지식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날이 올 터였다. 그 이전까진 어느 정도 무력적인 측면을 강화해둘 필요성이 있었다.

     적어도 그때 몰려들 부나방들에게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역시······.”

     강해지기 위한 수단은 이미 염두에 둔 것이 있었다.

     마법. 그리고 그 자신이 가진 전생의 기억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 어디서 마법사 하나 나타나서 연줄 좀 되어줬으면 좋겠네.”

     마법을 가르쳐줄 만한 인물이 주위에 없다는 것.

     그 부분만큼은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로엘. 그는 이내 한 주택 앞에 도착했다. 다음 환자가 있는 집이었다.

    “일단 지금은 할 일이나 해야지.”

     로엘은 문을 두드려 자신의 방문을 알린 후, 주택 내부로 들어섰다.

     * * *

     로엘이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에 되돌아 왔을 땐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로엘은 레인과 식사를 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운기행공으로 피로를 달랬다. 그런데 그러고 있자니 레인이 방에 들어서며 말해왔다.

    “이제 너도 운기행공엔 완전히 익숙해진 듯하니, 오늘은 새로운 심법 하나를 더 전수해 줄 생각이야.”

    “지금? 나 피곤한데. 거기다 내가 요구한 종류의 무공은 이미 전부 가르쳐 주지 않았었나?”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건 배워두는 게 좋아. 안 배우는 게 손해지.”

     로엘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자, 레인이 목을 긁적이며 답했다.

    “······?”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재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로엘.

     그렇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심법을 배우겠단 의사를 전했다. 적어도 레인이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진 않으리라 판단했으니까.

    “우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로엘은 레인의 지시를 순순히 따랐다. 레인은 로엘의 뒤쪽에 앉아 명문혈에 손을 댔다.

    “내가 인도해 주는 대로 내력을 운행해. 구결도 불러 줄 테니까 외우도록 하고.”

     단전에 축적해온 내력을 뽑아내 레인이 인도하는 대로 온몸을 순환하도록 의지를 부여한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이 헛되지 않아 내력이 자연스럽게 혈도를 타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레인과 로엘은 동시에 눈을 떴다.

     레인이 불러 주는 구결은 모두 암기했다. 그리고 어떤 경로로 내력을 운행했었는지도 마찬가지로 암기했다.

     특이한 운기행공이었다. 운공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혈도들이 지금까지 단련해왔던 혈도들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상이한 것들이었다.

     특히 기의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머리 쪽으로 편중된 순환이 이루어졌다.

    “흠.”

     로엘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공능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심법이었다.

     생사공에 비해 기를 축적하는 데엔 영 쓸모가 없었다. 솔직히 운공을 함으로써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기운이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기를 정제하는 공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몸 안에 이미 축적시켜져 있는 기를 특이한 방법으로 몸속에서 순환시켰다는 점 이외엔 어떤 감흥도 일지 않는 무미건조한 운기행공이었다.

    “어땠어?”

    “솔직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로엘의 답변에 레인이 키득키득 웃음을 흘렸다.

     로엘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웬만해선 이런 식으로 웃는 모습을 별로 보이지 않는 레인이다.

    “현시점에선 심법의 공능을 체감하기 힘들겠지.”

    “?”

    “운기행공을 하면서 뭔가 느낀 점 없었어?”

    “글쎄. 내력의 축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과 얼굴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운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빼면 그다지 특이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느꼈네.”

    “그래서, 이 심법은 무슨 효능이 있는 건데?”

     로엘의 질문에 레인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 심법을 착실히 익히면······.”

    “······?”

    “잘생겨지게 되지.”

    “뭐?”

     로엘은 일순 얼빠진 표정을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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