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각성(2)
펠라키 산맥은 인간의 발걸음을 허락지 않는 땅으로 유명하다.
이 세상에는 몬스터라는 생명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인간을 위협하는 맹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다만 개체에 따라 일반적인 맹수보다도 위험성이 높은 녀석들이 존재한다. 집단성이 높은 몬스터, 지능이 짐승의 범주를 넘어선 몬스터, 거기다 한 개체가 지닌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몬스터까지 있다.
산맥 내에는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다. 소형 종인 고블린부터 대형 종인 미노타우로스, 트롤, 오우거까지.
너무나도 많은 몬스터가 서식하는 땅이기에, 그곳에서의 사냥은 난이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산맥에서의 사냥은 단순히 강자의 논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 그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의 사냥은 레인에게 있어서 시험의 장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기반으로 수련한 무공이 이 세계에서 통용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생계를 책임질 수단이 될 수 있을지를 파악하기 위한.
그것을 위해 먼저 적당한 상대를 물색했다. 산맥에 넘쳐나는 게 몬스터다 보니 오래지 않아 딱 적당한 상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오크.
인간과 비슷한 체구를 가진 소형 종 몬스터.
이들은 몸뚱이만 놓고 보면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저 인간보다 조금 흉측한 정도.
다만 피부색이 푸르스름한데다 머리가 돼지의 그것이다. 인간의 시점으론 추악해 보이는 외견이라 할 수 있으리라.
레인은 몸을 숨긴 채 표적으로 삼은 오크의 외견을 훑었다. 쩍쩍 갈라진 피부에 근육질 몸매가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로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군.’
레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동시에 기감을 풀어 주위의 기척을 감지.
사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현재의 레인 정도의 무력 수준으로 펠라키 산맥에 발을 내딛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구전으로만 펠라키 산맥의 위험성을 전해 들었을 뿐인 레인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레인은 산을 올랐다. 나름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무공은 이 세계의 인간이 익히는 무예와는 궤를 달리한다. 아예 다른 차원의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는 동격의 다른 무인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특이한 기술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기감(氣感).
레인은 체내에 축적한 기를 주변에 엷게 풀어 근처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기운을 탐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위험한 상대의 기척을 사전에 감지해 미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원치 않는 전투는 사전에 회피하면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한 셈이었다. 그것을 믿고 산을 오른 것이었고.
“······.”
레인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오크 이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군.’
그가 마지막으로 살짝 갈등했다.
생각대로라면, 이기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터였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보통의 열두 살 소년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 무력을 일신에 지니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몬스터’와의 조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직접 맞부딪쳐 본 경험은 전무. 그럼에도 눈앞의 상대에게 질 것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다.
‘문제는 놈이 동료를 부를지도 모른다는 건데······.’
레인을 고민에 빠뜨린 가장 큰 원인은 오크의 무력이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상대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오크가 자신의 동료를 불러들이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질 수 있었다. 아니, 불러들이지 않아도 놈들이 알아서 몰려들 가능성 또한 높았다. 사냥의 무대가 펠라키 산맥이니까.
전투를 치르면 소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부터 비명 소리까지. 그 소음에 주변의 동료 오크들이 몰려올 가능성도 있다.
이쪽이 아무리 나이의 한계를 넘어선 무력을 일신에 지니고 있다곤 해도, 오크 여럿에게 합공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전생의 기억이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의 것이다. 현생의 자신은 전생의 자신과 다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오크를 이길 수 있다는 것도 그저 전생의 경험에 근거한 판단. 막상 전투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상념이 길어지다 보니 이런저런 잡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급할 것도 없는데, 조금 더 실력을 쌓고 나서 다시 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레인은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미루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두려움에 먹혀드는 것도 마찬가지.
어차피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었다. 미루지 않고 바로 해내는 것이 좋겠지.
첫 번째가 어려운 법이다. 다음은 쉽다. 그러니 우선 한 발을 내디뎌야 했다.
풀숲 사이에 숨겨뒀던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오크가 기척에 반응해 레인이 서 있는 방향으로 신형을 돌렸다.
“후우.”
쿠에에에!
레인이 검을 뽑아 들고 바닥을 향해 한 차례 숨을 불어내는 사이에 오크가 바로 지척까지 접근해왔다.
자세를 잡고 고개를 든 레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두꺼워 보이는 근육질의 팔. 간격이 좁혀지자마자 지체 없이 휘둘러지는 몽둥이.
쿠에에!
괴성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
횡으로 휘둘러진 몽둥이가 레인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 들어왔다.
“윽.”
퍽! 하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레인이 크게 옆으로 뛰어 물러났다.
몽둥이가 휘둘러진 궤적에 검을 두어 오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충격이 전해져온 반대 방향으로 살짝 뛰어올라 데미지를 반감시킨다. 그 뒤 곧바로 안정되게 착지한다.
‘역시 근력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구나.’
충격을 감소시켰는데도 검을 든 팔이 저릿저릿했다.
당연했다. 열두 살 어린아이의 근력이 근육질의 오크에게 미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내력이 스며들어 강인해진 근육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내력을 조금 끌어다 사용하면 정면에서 받아칠 수도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이만한 힘의 격차를 메우는 데에 내력을 마구 소모했다간 순식간에 기운이 고갈되어버릴 터였다.
‘정면 대결은 지양해야겠고. 속도와 기교로 우위를 점해야겠지.’
내력을 순환시킨다. 그것을 다리에 위치한 혈도로 인도, 일정한 경로를 따라 운행시키고 발바닥을 통해 발출한다.
그렇게 얻은 추진력은, 레인이 압도적인 속도의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레인은 오크의 주변을 빠르게 맴돌았다.
직접적으로 몽둥이와 부딪치진 않도록. 철저한 회피 중심 전투. 간혹 어쩔 수 없이 무기가 맞닿는 경우엔 검의 각도를 기울여 최대한 흘려냈다.
처음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었는데, 점차 익숙해졌다. 전생의 기억을 통해 익혀온 무공을 실전을 통해 점차 몸에 익숙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촤악! 촤악! 촤악!
자잘한 상처를 계속해서 입혀 상대를 자극했다. 내력을 흘려보내 예기를 높인 검은 손쉽게 오크의 가죽을 갈라냈다.
‘좋아.’
오크를 가볍게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레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전투 시작으로부터 3분 즈음이 지났을까.
‘완력만 좀 더 있었다면 진작 쓰러뜨렸을 텐데.’
레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씩 고개를 쳐드는 조바심을 억눌렀다.
생각한 대로. 오크는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힘만 조금 셀 뿐 굼뜨기 그지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요리할 수 있었다.
다만,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이었다.
조금만 더 완력이 강했더라면 눈앞에 무수히 드러난 허점을 이용해 상대를 단숨에 해치울 수 있었을 터였다.
미묘하게 출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좀처럼 결정타를 가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부터 아쉬운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레인의 육신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 육신으로는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렇기에 충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결정적인 공격을 날릴 수 있을 타이밍이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
레인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시간은 이쪽의 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위험해지는 건 이쪽이었따.
펠라키 산맥의 전투는 속전속결(速戰速決)이 기본이었다. 빠르게 사냥하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사냥은 불가능했다. 몰려든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기감을 이용해 최대한 다른 무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놈을 골랐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하나 그뿐이었다. 이 이상 전투가 길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떨쳐냈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전생의 기억을 너무 맹신한 게 아닐까 하는. 너무 성급하게 사냥을 나선 게 아닐까 하는.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입술에 혀를 축였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솜털이 곤두섰다. 긴박하고 여유 없는 상황이 피부에 짜릿한 감각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지금까진 어딘가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느껴지던 전생의 기억이, 조금은 멀게 느껴졌던 그 기억이 갑작스레 선명해졌다. 마치 무언가의 리미트가 풀리기라도 한 듯.
레인은 핫, 하고 짧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이런 여유라곤 없는 상황. 늘 있어 왔던 일이 아니었던가.
초조해하고 있을 시간도 아깝다. 다른 생각은 일체 배제, 하던 대로 하면 된다.
생각이 조금 차분하게 정리되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상황을 냉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차분하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조급해할 것도 없었다.
확실히 동료 오크들이 몰려오기 전에 상황을 종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긴 하지만, 몰려든다고 문제 될 것도 없다.
또 다른 오크가 접근하면 포위되기 전에 달아나면 그만이다. 내력을 이용한 특수한 보행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게다가-
“쿠에에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대는 이쪽보다도 더욱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터.
계속되는 공방을 통해 입힌 수많은 상처. 하나하나가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출혈을 일으키고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월등한 완력을 지녔음에도 조그마한 꼬마 따위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는,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다. 인간에 비해 감정 조절 능력이나 상황 판단력이 한참 떨어지는 몬스터라면 말할 것도 없다.
“쿠에에에에!”
오크의 흉성이 폭발했다.
더욱 거친 움직임으로 몰아쳐 온다. 더욱 위협적인 공격이 쏟아진다. 좀 더 큰 궤적으로 휘둘러진 몽둥이에, 한층 강한 힘이 실린다.
레인의 눈이 빛났다. 전투의 분기점이 찾아왔다.
보다 큰 궤적으로 몽둥이를 휘두른다는 것은, 그만큼 동작이 커진다는 뜻. 그 반동으로 생겨나는 허점 또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쪽의 대응법에는 변함이 없다.
직접적으로 맞붙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상대의 빈틈을 노려 공격하고, 뒤이은 공격을 경계해 물러난다.
기백에 눌려 당황하지만 않으면 된다. 상대측 움직임의 변화는 이쪽에 유리하면 유리하게 작용하지 불리하게 작용하진 않는다.
후욱!
몽둥이가 크게 휘둘러졌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커다란 반경으로 휘둘러졌다.
드디어 만들어진, 완벽한 기회.
다리를 살짝 굽혀 가볍게 피했다. 훤히 드러난 오크의 목덜미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푹!
힘이 부족해 완전히 꿰뚫지는 못했지만, 즉사하기에는 충분한 깊이로 검이 박혀 들어갔다.
“크륵.”
쿵.
성인 남성만 한 크기의 오크가 쓰러지면서 살짝 흙먼지를 일으켰다.
레인은 곧바로 쓰러지는 오크에게서 신경을 거뒀다.
곧바로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전투에 집중하느라 거둬두었던 기감을 재차 풀었다.
오크와의 접전이 완력 부족으로 인해 생각보다 길어졌다. 다른 몬스터가 접근해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했다.
“후우.”
다행히도 주위에 다른 생명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레인은 작게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어찌 됐든, 승리했다. 레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정신적으로 조금 피로가 쌓였기도 했기에, 레인은 그날의 사냥을 일찍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음?”
조금 지친 얼굴로 집에 들어서려던 레인은, 마침 진료를 나서던 로엘과 맞닥뜨렸다.
“왔냐.”
“왔다.”
레인을 발견한 로엘이 성의 없는 인사를 건넸다. 그것을 레인이 똑같이 성의 없는 인사로 맞받았다.
“사냥은 어땠어?”
“나쁘지 않았어. 생각한 대로 기감을 활용해서 산 내부를 누비는 정도는 문제없었고.”
“너무 이르지 않나 했는데, 괜찮다니 다행이네.”
“아직 몬스터 사냥은 조금 힘들긴 하더라고. 완력이 부족해서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으니. 당분간은 동물만 노려야겠지.”
“초원도 아니고 몬스터들이 들끓는 산맥에서 동물이나 사냥하려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거다.”
“기감을 키우는 훈련으로는 나쁘지 않으니까.”
레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한 대답에 로엘이 피식 웃었다.
“나 진료 다녀온다.”
“아, 잠깐만.”
“?”
“내가 오늘 조금 묘한 경험을 했는데······.”
레인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로엘에게 설명했다. 각성한 기억이 갑자기 확 하고 가깝게 다가왔던, 특이한 경험.
그 이야기에 대한 로엘의 대답은 굉장히 간결했다. 그러나 레인이 예상치 못한 답변이기도 했다.
“너도 겪은 모양이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