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2/192)
  • “지구의 공기는 어때?”

    [크큭……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웃음을 터트렸다. 목이 막히며 육체가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괴물이 팔을 창연에게 뻗었다.

    [이런 짓마저 가능할 줄이야…… 이게 너희 세계의 죽음인가…… 나름대로 재미있구나…….]

    “잘 가.”

    [경고를 보내야겠어…….]

    퍼어엉!

    괴물이 쓰러졌다. 바닷속으로 천천히 몸을 가리기 시작했다. 창연이 손을 흔들어 시체를 들었다.

    “네 시체는 나름 유용하게 써 줄게.”

    [왕이시여. 이건.]

    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지구의 개념을 괴물에게 적용한 겁니까?]

    “지금까지 뭘 본 거야? 맞아.”

    [세상에.]

    데스가 한탄했다. 창연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대체. 그 수많은 지배자조차 해내지 못한 것을. 설마 벌써 세계의 창조를…….]

    “아니. 아직 그건 못 해. 그래서 개념을 빌렸지.”

    지구란 건 하나의 세계. 창연은 거기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개념을 이용할 수 있는 유지력이 있었다.

    유지력으로 지구에 담긴 개념을 빌린다. 지구의 주민이니 빌린다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쓰면 됐다. 그리고 원전의 힘을 이용해 괴물이 가진 개념을 덧씌운다. 그게 끝이었다.

    “일단 여기에 강림했다는 거 자체가 반쯤은 발 걸치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지.”

    [아니요. 그건 불가능한 말입니다.]

    데스가 단언했다. 지배자들이라고 그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몇 번 시도하다 포기했다. 원전 이전의 문제였다.

    개념을 덧칠한다. 말은 좋았다. 하지만 그 말을 제대로 파고들면, 상대의 근본을 뒤바꿔 버린다는 소리. 개미와 인간 수준의 차이라도 없는 이상 불가능한 말이었고, 비틀린 존재는 지배자들과 비슷한 수준의 괴물. 당연히 먹히지 않았었다.

    [대체…….]

    “이미 된 걸 어쩌라고?”

    창연이 태연히 말하며 시체에 손을 얹었다. 회색 기류가 퍼지며 그 안에 담긴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좋네. 좋아.”

    창연이 흡족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가 지금까지 사용한 죽음보다 더 많은 양이 회복됐다. 게다가 유지력도 상당히 늘었으며, 원전의 강화도 제법 되었다.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것도 쓸 만할 거 같은데.”

    창연이 시체를 매만졌다. 죽었지만 꿈틀거리며 창연의 손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장도 뼈도 뇌도 아무것도 없는 육체. 지구의 개념과는 다른 성질을 품고 있는 살점. 잘만 활용하면 괜찮은 게 나올 수 있을 거 같았다.

    “근데 그전에 처리 좀 해야겠네. 데스.”

    [네. 왕이시여.]

    “이놈들은 거대한 하나의 일부라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를 조지지 않는 이상 계속 온다는 소리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럼 그걸 조져야겠네.”

    창연의 몸이 허공을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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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말했다. 자기는 그저 일부라고. 그리고 저런 놈이 하나의 지부에만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다른 지부에도 배치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정말 이상한 장소에 다 있다니까.”

    창연이 해수면 위에 서 있었다. 옛날의 사람이 보면 예수라고 착각할 정도의 행동이었지만 창연에겐 일상이었다. 창연이 수면 위에 손을 올렸다.

    “터져.”

    쿠우우웅!

    바다가 폭발했다. 파도가 하늘에 닿을 정도까지 치솟으며 주위의 모든 것이 밀려났다. 그리고 그 안에 이질적인 건물이 보였다. 창연이 손을 흔들었다.

    “장막.”

    우웅.

    푸른 장막이 건물과 창연 사이를 두른다. 창연이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고 꺾었다.

    “빵.”

    무음의 폭발이 터졌다. 건물에서 강한 충격파가 퍼지며 창연에게까지 덮쳤다.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잔재에서, 뒤틀린 존재가 나타났다.

    [크어어어어!]

    콰아앙!

    검은 팔로 몸을 두른 괴물이 거칠게 흔들었다. 팔들이 뻗어 가 창연을 후려치려 했다. 창연이 망치를 들어 내려찍었다. 굉음과 함께 잔재 사이에 처박혔다.

    [크으으으. 움직임 한 번 빠르구나.]

    “시간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하하. 옳은 말이지. 그렇다면 한번 치고받고 싸워 보자꾸나.]

    “싫어.”

    창연이 손을 뻗었다.

    “너에게 명한다. 네가 가진 개념. 이치. 상식. 비틀림. 그 모든 걸 잃고 이 세계에 물들어라.”

    [이건…….]

    개념이 괴물을 덧칠한다. 상식을 비틀며 진실을 부정한다. 괴물의 몸이 천천히 쓰러진다.

    [비겁하기 짝에 없는 힘이구나.]

    “홈파이팅이란 말 몰라? 내 집에선 당연히 내가 유리해야 하는 법이지. 너희가 비겁했던 거야.”

    창연이 심드렁하게 말하며 괴물의 위로 올라탔다.

    “네가 가진 개념의 일부를 되찾아라.”

    [음?]

    괴물이 가진 속성 줄 일부가 돌아온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여전하지만 당장 죽을 일은 없었다.

    [뭐지. 자비라도 베풀겠다는 소리는 아닐 텐데. 혹시 고문에라도 취향이 있나?]

    “설마.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창연이 괴물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냥 알아야 할 내용이 있어서. 네가 가진 정보를 전부 털어놔라.”

    쿠우웅!

    문장이 명령이 되어 괴물의 내부를 뒤흔든다. 괴물이 가진 사실과 기억이 천천히 창연에게 들어온다. 괴물이 이채를 띤다.

    [호오. 그게 바로 원전의 힘인가. 확실히 대단하군.]

    “흠.”

    창연이 눈을 감았다. 그들의 고향. 그 대략적인 위치가 그려졌다. 창연이 실소를 흘렸다.

    “이딴 곳이란 말이지. 정말 말도 안 되는군.”

    하나하나 천천히 추적한다. 세계가 그려지고 점차 이동한다. 그 심연이 보이며,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꺼진다.

    “어라?”

    창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뗐다. 괴물이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보아하니 만능의 힘 같지만, 그 한계는 명확한 거 같군. 초장부터 다 해먹으려 하면 곤란하지.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쯧.”

    창연이 혀를 찼다. 괴물 하나로 볼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있는 거 같았다. 괴물의 세계 말고 수장의 위치. 이영애의 장소. 그리고 아직도 파악되지 않은 숨겨진 지부. 그것들도 찾아야 하는데 이리되면 곤란했다.

    [욕심 부리지 말고. 느긋하게 하는 게 어떤가.]

    “싫어.”

    창연이 괴물을 향해 손짓했다. 개념이 다시 풀리며 천천히 죽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괴물이 열리지 않는 입을 간신히 놀렸다.

    [성격이 나쁘구나…….]

    “너 하나로 안 되면 다른 놈들을 쓰면 되지.”

    창연이 머리를 짓밟았다. 콰득하며 부서지고 움직임이 멈췄다. 그 안에 담긴 것들을 흡수하고 몸을 일으켰다.

    “목표를 잡아야겠네.”

    괴물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괴물들로 얻는다. 괴물마다 얻을 정보로 정하고 움직이면 됐다. 창연이 몸을 날렸다.

    비틀린 세계.

    [하하하! 어서 와라! 이탈자!]

    “안녕. 그리고 잘 가.”

    창연이 손을 뻗고 내뱉었다. 개념이 덧칠하며 괴물의 모든 게 뒤바뀐다. 괴물이 쓰러지며 킬킬댔다.

    [이건 정말이지. 유쾌하기 그지없구나. 설마 아무것도 통용되지 않을 줄이야. 방법이 없어.]

    “네가 가진 정보 중. 네가 토해 낼 수 있는 방향까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내뱉어라.”

    창연이 괴물의 말을 무시한 채 명령했다. 괴물이 가진 내용이 천천히 창연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창연이 손을 들었다.

    “그럼 잘 가.”

    콰득.

    괴물이 부서졌다. 창연이 힘을 흡수하고 시체를 공간에 집어넣었다. 데스가 물었다.

    [시체는 왜 모으시는 겁니까?]

    “쓸모가 있으니까.”

    창연이 손을 털고 눈을 감았다. 지부 여러 개를 작살냈다. 그동안 모인 정보는 꽤나 됐다.

    ‘일단 이놈들의 고향.’

    이들이 가진 세계. 그쪽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잡혔다.

    그 가장 깊숙한 곳. 심연에 가까운 곳에 이들의 본체가 있었다. 그놈을 조져야 했다. 그러려면 준비가 조금 필요했다.

    “그나저나 약간 아리까리하단 말이야…….”

    괴물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면서 알아낸 사실이 몇 개 있었다. 우선 지배자의 수장. 그놈은 아직도 세계에 강림한 상태가 아니었다.

    자신의 세계를 부분적으로 강림시켜, 거기서 명을 전달하고 다시 회수한다. 자잘한 것들은 계시라는 형식으로 인간들의 뇌에 직접 명한다.

    “이리되면 힘든데.”

    일단 강림이든 뭐든 지상에 연결되어 있어야 찾아갈 수 있었다. 지금 수장은 연결을 하다가 끊고 하다가 끊고 하는 방식. 따지자면 단절된 상태라 그쪽 세계로 넘어가기 힘들었다.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어려웠다. 창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것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부장들의 뇌를 아무리 헤집어 봤자 보이지 않았던 숨겨진 지부들. 그건 괴물들의 뇌를 뒤집어 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추정이 됐다.

    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그들조차 알 수 없는 곳. 위치. 그렇다면 단 하나였다.

    “다른 세계에 짱박아 뒀겠지. 참.”

    창연이 혀를 찼다. 확실히 그러면 그가 못 찾은 것도 이해가 됐다. 아예 별개의 영역이면 연결되지 않은 이상 무리였다.

    “꽁꽁 숨겨도 놨네.”

    하지만 창연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있기에 숨겨 놨겠지. 털면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하나만 더 털면 되겠네.”

    창연이 공간을 도약했다. 산맥으로 이동하며 손을 내려찍었다. 강한 힘에 의해 일부가 파이며, 모습을 감춘 건물이 무너졌다. 단 몇 초도 되지 않아 지부 하나가 사라졌다.

    [너무 빨리 오는 거 아닌가. 마무리 정도는 하게 시간을 주는 건 어떤가.]

    그리고 잔재에서 괴물이 몸을 일으켰다. 팔로 몸을 치장한 괴물. 괴물이 창연을 향해 자세를 취했다. 창연이 손을 들었다.

    “너에게 명한다. 네가 가진 개념. 이치. 상식. 비틀림. 그 모든 걸 잃고 이 세계에 물들어라.”

    [이거 정말 반칙이야…….]

    괴물이 처량하게 쓰러진다. 데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들도 일부라 하지만 상당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리 간단하게 사라지다니…….]

    “저런 놈이 이런 세계로 넘어오면 당연한 일이지. 그래도 이제부턴 쉽진 않을걸.”

    [네?]

    창연이 공간을 열어 괴물의 시체들을 꺼냈다. 그게 모이자 거대한 동산의 크기 정도가 되었다.

    [왕이시여. 무엇을 하시려고.]

    “간단해.”

    창연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웅하며 공간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네놈들이 원래 위치한 세계. 갇혀 있다가 풀려난 세계. 그 거대한 육신 덩어리가 있는 세계. 그곳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라.”

    [……설마.]

    공간이 비틀린다. 시체가 원래 있었던 세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데스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친다.

    [저들의 세계로 가시려는 겁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안하지만 가야 해.”

    이놈은 지구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있는 놈들을 다 족친다고 해서 끝날 리 없었다. 본체를 없애야 했다.

    “쟤들도 왔는데 나라고 안 될 건 어딨냐.”

    창연이 손을 잡아당겼다. 공간의 균열이 더욱 커져 나갔다.

    캬아아아…….

    공간 너머로 울음이 들린다. 보이는 것은 어둠. 그리고 꿈틀거리는 무언가. 창연이 미소를 지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거 같네.”

    [왕이시여. 그건 위험합니다.]

    데스가 다급히 말렸다. 창연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어.”

    [저 세계는 지배자들 또한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그 중, 돌아온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개념 자체가…….]

    “알고 있다니까.”

    창연이 데스의 말을 끊었다. 공간 너머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제일 확실해.”

    계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세계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 나온 놈들을 전부 없앤다 해서 멈출 거 같진 않았다. 계속해서 오겠지.

    그렇다면 아예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것. 그게 그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며, 해결책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다만 위험한 건 확실했다.

    [하지만…… 저 너머는 왕께서 흔히 아시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아무리 왕이시라 해도,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도 그렇긴 한데.”

    창연이 공간 너머로 손을 집어넣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래도 난 이게 좋아.”

    창연이 몸을 구겨 넣었다. 공간이 닫히고 서로의 연결이 끊겼다.

    “흐음.”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에 엄습했다. 창연이 숨을 들이켰다. 산소가 통하지 않았다. 손을 움직이자 짙은 감촉이 찰싹 달라붙었다.

    ‘……확실히.’

    창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창연이 쓰게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이 주변의 공간들. 개념을 내 세계의 것으로 바꾸어라.]

    의지가 발현됐다. 거기에 힘이 담겨 주위로 뻗어 나갔다. 창연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의 개념이 비틀렸다.

    “이제 좀 살 거 같군.”

    목소리가 나왔다. 질척이는 감촉도 사라졌다. 숨을 들이켜자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상황이 마련되자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참.”

    창연이 기가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개념이 다른 세계. 얼마나 다를까 기대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공간이 불규칙적이었다. 점성이 짙은 액체가 공기처럼 세상 전체를 두르고 있어 시야가 왜곡되어 보였으며, 하늘 높이론 거대한 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검은 태양이 흑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뱀이 움직여 빛이 지상에 닿을 때마다 대지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창연이 바닥을 내려다봤다. 돌로 보이는 땅은 자세히 보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창연이 손을 댔다.

    “……생명이네.”

    촉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창연이 감각을 펼쳐봤다. 그가 비틀은 영역 바깥으로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창연이 몸을 일으켰다.

    “흐음.”

    이건 정말로 비틀린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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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도착하셨군요. 왕이시여.]

    들어오고 말이 없던 데스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그녀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어쩔 수 없죠. 저는 왕을 따르는 존재. 그대의 의지를 받들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계에서 너는 별로 쓸모가 없을 거 같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별개인 세계라. 저는 별반 힘을 쓸 수 없겠죠.]

    “그러겠지.”

    창연이 그의 영역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질척이는 촉감. 손을 휘젓자. 시야가 거칠게 일그러졌다. 허공에 퍼진 것들이 그에 따라 일렁였다.

    “……다른 세계.”

    창연이 묘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괴물들을 족치면서 좀 알아보긴 했지만, 이건 정말 특이했다.

    “이게 이 세계의 공기인가.”

    창연이 주먹을 쥐고 잡아당겼다. 손을 펴자 물과 같은 검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창연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그 형태를 바꾸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이시여. 바로 비틀린 존재를 찾으러 가실 겁니까?]

    “아니. 그건 힘들 거 같고.”

    아까 확인해 본 바로는 지구와의 시간 차이는 그리 없었다. 기껏해야 하루에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은 충분했다.

    “……일단 파악 좀 해야겠네.”

    창연이 영역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신에 질척이는 촉감이 느껴졌다. 질색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호흡은…… 역시 무리군.’

    숨 정도는 한 달 넘게 안 쉬어도 됐다. 과격하게 움직이면 시간이 줄긴 하지만 그래도 며칠 정도는 느긋하게 버틸 수 있었다.

    ‘독성은 없나.’

    닿는다고 피부가 벗겨지는 그런 일은 없었다. 창연이 의지를 발했다.

    [차단. 왜곡. 은신.]

    창연의 인기척이 흐릿해진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세계. 초장부터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창연이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저 하늘의 뱀은 뭐지.’

    창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숫자가 제법 되었고, 길이 또한 상당히 길었다. 눈으로 전부 확인할 수 없는 길이. 아마 이 세계를 두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치 북유럽 신화의 우로보로스처럼.

    꾸구국…….

    창연이 대지를 내려다봤다. 아주 미세하지만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세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다. 혀를 차며 앞으로 나갔다.

    ‘흐름을 파악해야 해.’

    어떤 식으로 굴러가며 이곳에 사는 생명체는 무엇이 존재하고 그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가는지. 누구나 아는 그런 기본적인 내용을 알아야 했다. 창연이 발에 힘을 주었다.

    쿠웅.

    짧고 굵은 소음이 퍼졌다. 창연의 몸이 허공을 도약하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원전은 안 통해.’

    원전을 쓰려면 그의 영역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넓은 영역을 만들 만큼 힘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일이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눈을 쓸어내린다. 시야에 닿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모든 걸 파악하고 관찰하며 분석한다. 잠시 공중을 영유하다 착지한다.

    ‘흐음.’

    일단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세계는 넓었다. 시야 끝에서도 지평선이 닿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거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거 지구 같은 형태가 아닌 거 같은데.’

    구체의 행성이 아닌, 좀 다른 형태 같았다. 이를테면 사각형. 정사각형의 박스 같은 형태의 행성. 그런 게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다른 차원이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골치 아프군.’

    [왕이시여.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돌아가 정비를 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만…….]

    ‘아니.’

    창연이 허공을 열어 망치를 꺼냈다.

    ‘돌아갈 생각은 없어.’

    [으으으으…….]

    창연의 괴물의 앞에 도착했다. 동그라한 괴물. 몸을 두른 구더기 같은 생물이 꿈틀거렸다. 아까 하늘을 날았을 때 확인한 괴물.

    [으으으으…….]

    조그마한 양팔로 대지를 처박은 채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크기는 농구공 정도. 창연이 천천히 다가가자 괴물이 움찔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연을 바라봤다.

    ‘워우.’

    창연이 속으로 감탄했다. 얼굴이 존재는 하지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형태였다. 눈과 코와 입이 비틀리고 섞여 구역질이 날 생김새. 괴물이 고함을 질렀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콰아아앙!

    동시에 부풀어 오른다. 농구공의 형태를 잃고 거머리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벌레의 파도가 창연을 향해 들이닥친다.

    쿠웅!

    창연이 망치를 잡고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거머리들이 쓸려나갔다. 살아남은 것들이 한 데 뭉치며 다시 울음을 터트린다.

    [우우우우우!]

    [닥쳐.]

    창연이 인상을 찡그리며 돌진했다. 대지를 밟고 손을 당기며 망치를 내려찍었다. 초월적인 힘이 세상을 관통하며 주위의 것들을 쓸어버렸다. 거머리들이 잔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왜 잡으시는 것입니까? 그냥 지나쳐도 되실 거 같으신데.]

    ‘다른 방법 좀 찾으려고. 그나저나 이 난리 쳐도 바닥은 지랄 안 하네. 좀 더 과격하게 움직여도 되겠어.’

    창연이 괴물이 있던 허공에 주먹을 쥐었다. 기류가 그의 몸으로 흡수되며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거면 되겠네.’

    창연이 다시 몸을 날렸다. 그가 이루어 낸 공간으로 이동하고 숨을 내쉬었다.

    “숨 안 쉬어도 상관은 없는데, 좀 거슬리긴 하네.”

    창연이 투덜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창연이 손을 뻗었다.

    “이 주변의 공간들. 개념을 내 세계의 것으로 바꾸어라.”

    후욱.

    공간이 확장한다. 개념이 비틀리며 창연에게 맞춰진다. 아까 만들어 낸 것의 두 배 가까운 영역이 그의 손에 들어온다. 창연이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이 세계 놈이라서 그런지. 가진 힘보다 더 넓게 얻을 수 있네.”

    [왕이시여. 이건…… 설마.]

    “뭘 하려는지 알겠어?”

    데스가 신음을 흘렸다.

    [……이 세계를, 당신의 영역으로 만드실 생각인 겁니까?]

    “전부는 아니고.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으로만.”

    저 세계를 그냥 움직이는 건 불안하기 짝에 없었다. 비틀린 존재처럼 강한 존재가 있을 리가 없지만, 물리적인 타격만 먹히는 존재들. 불안 요소는 충분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천천히 영역을 넓혀 가자. 이 세계의 괴물들은 그의 영역에서는 무력했다. 간단한 손짓 하나면 쓰러트릴 수 있었다.

    “땅따먹기 한다 생각하면 되겠지.”

    창연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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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어어어어어.]

    괴물이 쓰러진다. 다리는 젓가락만 한 데 몸집은 산처럼 거대했던 괴물이 반응을 멈춘다. 창연이 혀를 차며 괴물에게 손을 뻗는다.

    후욱.

    괴물이 품었던 힘이 흡수된다. 창연이 의지를 발했다. 공간이 비틀리며 그의 영역이 확장된다.

    “제법 모으긴 모았구나.”

    창연이 바닥에 손을 댔다. 웅하며 기파가 대지를 쓸며 그의 범위 안에 담긴 것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흐음.”

    그가 영역을 넓히려는 또 하나의 이유. 바로 탐지를 위해서였다. 비틀린 존재는 심연에 존재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는 심연이 어딨는지 몰랐다.

    그래서 하나하나 찾아가면 되겠지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영 그른 판단 같았다.

    “아직도 안 잡히는군.”

    창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그가 넓힌 영역은 지구의 반절 정도. 겨우 이틀이란 짧은 시간 만에 넓힌 거 치고는 상당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세계는 더 거대했다.

    “……얼마나 넓은 건지.”

    [옛 세계와 비슷하거나, 아마 살짝 작은 정도일 겁니다.]

    “옛 세계라.”

    그가 아득해질 정도의 시간을 걸어야 겨우 둘러봤던 세계 정도의 크기. 창연이 실소를 흘렸다. 무언가 단서라도 잡힐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다니.

    “이쪽 사정을 알고 있는 놈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만난 놈은 지성이 없는 괴물들뿐. 가진 정보를 뜯어냈지만, 자신의 영역 내부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아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주변의 지리를 더 잘 파악하는 정도. 그 이상의 도움은 되지 못했다.

    “길잡이가 필요해.”

    단지 그게 불가능할 뿐. 창연이 투덜거렸다.

    “이 세계는 뭔데 주민이 없어? 나름 하나의 세계라며? 지성 있는 인간 같은 생명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야 비틀린 세계니까요. 가능성은 있다만 멀리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번 각 잡고 횡단해 볼까…….”

    창연이 고민하는 순간, 갑자기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창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났다.

    “……뭐야.”

    누군가가 그의 영역에 침범했다. 지성 없는 괴물들은 그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기에 그놈들은 아니었다. 자그마한 무언가가 꾸물꾸물 기어왔다.

    “누구야?”

    창연이 공간을 도약했다. 손을 뻗어 침입자의 머리를 붙잡고 대지에 처박았다. 그러자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아악!]

    “……박쥐?”

    창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인간 크기의 박쥐가 그의 손에 짓눌린 채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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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박쥐가 발버둥 치며 외쳤다. 창연이 재빨리 박쥐를 쓸었다.

    전신이 검은색. 크기가 큰 걸 제외하면 지구의 박쥐랑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눈이 똘망똘망하니 어떻게 보면 제법 귀여웠다.

    하지만 창연은 방심하지 않았다. 괴물들은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몰랐다. 창연이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꺄, 꺄아아악!]

    “넌 누구야.”

    [저, 전 에스텍입니다!]

    “에스텍? 그게 뭐야?”

    [저희 종족명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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