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신계의 전설적인 보물 (2)
그럼 설마 하네프가 환신들의 침입을 예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는 다른 예언 천사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정말 이 예언이 적중한다면 하네프는 상훈이 강제로라도 대천신 최측근 마천사로 배치할 것이다.
‘이럴 수가! 정말이군.’
그때 상훈은 대마계의 환계 통로 쪽에 환신들이 나타났음을 간파했다.
그쪽에서 경비를 서던 리카이스의 군단이 즉각 조화합벽진을 펼쳐 그들과 맞서는 중이었다.
“너의 말이 맞구나. 오늘부터 너는 대천신 직속의 수석 예언 마천사다.”
“영광이옵니다.”
하네프의 표정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리오니스와 에메스도 그녀를 향해 미소 지어 주었다.
“아쉽지만 오늘 산책은 여기에서 그쳐야겠군. 난 대마계의 통로로 가보겠다. 리오니스는 혹시 모르니 대천계의 통로쪽을 잘 살피고, 에메스는 하네프와 함께 대천궁으로 복귀해라.”
“명을 받들겠어요.”
리오니스 등이 공손히 예를 취하자 상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대마계의 환계 통로로 이동했다.
“크하하하! 너희들이 바로 환신들인가? 이곳에 무슨 꿍꿍이가 있어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리카이스는 12명이나 되는 환신들이 나타났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가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존재들이라 극도로 조심히 대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상훈이 시킨 가상 전장 훈련에서 그의 군단은 수십 명의 환신들을 상대로도 어렵지 않게 방어를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한 훈련 덕분인지 그의 부하들은 환신들이 통로에 나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조화합벽진의 결계에 가둬버렸다.
“리카이스! 그대가 우리들을 가로막다니! 설마 계약을 파기할 셈인가요?”
환신 중에는 리카이스에게도 익숙한 존재가 하나 있었다.
금빛과 은빛으로 어우러진 신비한 형체의 여신 아르타나.
리카이스는 싸늘히 웃었다.
“계약 따위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 너희들이 무슨 꿍꿍이로 나에게 도움을 주려 했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건 필요없어졌거든.”
비굴했던 이전과 달리 리카이스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한 객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르타나는 리카이스와 그의 부하들이 펼친 기괴한 합벽진에 무척이나 당황했다.
‘믿을 수 없구나. 어찌 천신과 마신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을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신수들까지 합쳐져 상상도 못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저들 각각은 환신들이 손가락 하나만 튕기면 해치울 수 있을만큼 하찮은 존재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합벽진을 이루는 순간 상황은 반대가 되고 말았다.
완벽한 방어진은 무슨 수를 써도 뚫기 어려워보였고, 그것을 무시한채 무리한 공격을 하다간 되려 치명상을 입어 죽게될 수도 있었다.
위기를 느낀 아르타나 등은 즉시 환계로 피했다.
멀리 리카이스의 대마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바라보이는 지점.
그곳에서 그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섣불리 공격하지 않는 게 좋겠구나.”
“모든 걸 떠나 미스티코의 율법상 대천계나 대마계의 계약자가 계약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는 이곳에 개입할 명분이 없어진다.”
“그러하다. 그것을 무시하고 저들을 공격한다면 우리가 그리포스의 신들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느냐?”
아르타나와 함께 온 환신들의 말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상훈에게 패배해 도주한 후 그녀보다 훨씬 강한 환신들을 데려온 터였다.
그들조차 지금 이 상황에 무척이나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델란님의 유물을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 세월 그 유물을 찾았는지 잊으셨나요? 어렵게 이곳 대마계 쪽에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냈어요. 그것은 대마신 리카이스의 협조가 아니면 찾기 불가능해요.”
그러자 환신 중 하나가 탄식했다.
“그리포스의 힘이 갈수록 강맹해지는 터에 고대 십이장로 중 한 분의 유물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 큰 힘이 되겠지.”
“두 개의 유물은 미스티코의 신들 중 두 분이 얻으셨지만, 나머지 열 개 중 무려 아홉 개가 그리포스에게 넘어갔다고 해요.”
“어차피 그들은 미스티코의 환신력을 쓸 수 없으니 유물이 있어도 우리에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미리 가로챈 것일 뿐이지.”
“속단할 수 없는 일이예요. 그리포스의 신들이라면 그것을 어떻게든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최악의 사태가 오겠지.”
“따라서 마지막 유물은 우리가 반드시 찾아야 해요. 이곳 대마계에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델란님이 머무셨던 곳들 중 하나임이 밝혀진 이상 대마신의 협조를 얻어 마역들을 샅샅이 수색해봐야 해요.”
그때였다. 환신들 중 거대 기계 장치 형상의 신이 다급히 외쳤다.
“대마계 쪽에서 아주 위협적인 존재가 오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서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환신 중 하나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루이로드? 환신이 아니면 이곳 환계에서는 잠시라도 견디지 못하는 걸 모르는가?”
환신력이 없으면 환계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령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들어왔더라도 튕겨나듯 알 수 없는 신계 중 한 곳으로 날려가버린다.
그 와중에 어지간한 신들은 그대로 소멸되어버릴 것이다.
환신들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지녔다해도 마찬가지다.
환신력이 없으면 그 누구도 환계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아르타나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존재가 하나 있어요. 그의 몸에는 미스티코의 환신력이 존재하고 있어 작정하면 이곳으로 나오는 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때 대마계의 통로쪽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상훈이었다.
그는 12명의 환신들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르타나를 향해 잘 걸렸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다시 나타난 건가?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불가능하다. 패거리를 끌고 왔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오늘 너희는 다 죽는다.”
아르타나를 비롯한 환신들은 깜짝 놀랐다. 상훈에서 뿜어져나오는 기세는 방금 전 조화합벽진의 기세보다도 훨씬 막강했기 때문이다.
“대체 그대는 누구인가? 미스티코의 환신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편에 서야 정상이다.”
환신 중 하나가 외쳤지만 상훈은 냉소했다.
“천만에! 나는 너희들의 편에 설 생각이 없어.”
아르타나가 탄식하며 물었다.
“어째서 우릴 죽이려고만 하는 거죠?”
“당연한 걸 묻는군. 너희들이 죽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감히 대마계와 결탁해 나를 죽이려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너희들이 환신이라는 이유다.”
“앞에 것은 이해하겠는데, 우리가 환신이라는 것이 어째서 죽을 이유가 된다는 건가요?”
“너희들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다. 말도 안 되는 시스템 같은 걸 만들어두고 너희 멋대로 세상 모든 걸 조종하려고 하는 것. 그거야 말로 너희들이 반드시 사라져야 할 이유다.”
그러자 아르타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대마계와 계약해 당신을 공격한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우린 시스템을 제멋대로 조종하려 한 적이 없어요. 그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되기 때문이죠.”
“너희에게도 불행한 일이라고?”
“우리도 알 수 없는 아득한 고대의 환신들이 만든 그 시스템은 신계의 모든 질서를 조율하고 있어요. 그대로만 유지되면 신계의 모든 것은 조화롭게 진행되죠. 그것을 방해해 신계를 비롯한 모든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이들이 그리포스의 신들이고, 우리 미스티코의 신들은 그들과 맞서 신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예요.”
상훈은 안색을 굳혔다.
“그렇다는 자들이 대마계와 결탁해 나를 공격한 이유는 뭐냐? 너희가 그리포스의 신들과 다를 바가 뭐지?”
“사정이 있어요. 우리의 입장에서는 대천계나 대마계나 그리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특별한 명분 없이는 절대 개입할 수 없는 미스티코의 율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훈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아르타나는 자신들이 대마신 리카이스와 계약을 맺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나자 상훈은 가볍게 탄식했다.
“그러니까 이걸 찾기 위해 리카이스의 협조가 필요해서였다는 건가?”
상훈이 손가락에 끼고 있는 환신 델란의 반지는 보통 때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반지를 끼고 있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번쩍!
곧바로 신비한 환신력의 광채가 번쩍이는 반지가 상훈의 손가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오오! 저것은!”
“맙소사!”
아르타나를 비롯한 환신들이 탄성을 질렀다.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안 됐지만 이건 이미 내게 영구 귀속되었다. 줄 마음도 없지만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다는 뜻이지. 그보다 실망이군. 환신들이 고작 이 따위 별 것도 아닌 물건에 기댈만큼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었던가?”
그러자 아르타나가 기막힌 듯 말했다.
“보잘 것 없다고요? 그대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물건인지 정녕 모르고 있나 보군요.”
“모르긴. 델란의 진전은 모두 이해했다.”
상훈은 환신병 델란의 반지에 환신력을 주입했다.
순간 그의 몸이 환신력의 폭풍에 휩싸였다.
신비한 빛줄기들이 그의 몸을 마구 휘감는가 싶더니 그의 몸이 돌연 수십 배는 되는 거대한 모습으로 변했다.
그냥 모습만 커진 것이 아니라 마치 메카닉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거대 전투 로봇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환신병이 가진 비밀!
물론 단순한 전투 로봇이 아니다.
환신병을 통해 변신한 것인만큼 신적인 권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저 주먹과 발을 휘두르기만 해도 어지간한 신들은 그대로 날아가버릴 테니까.
이 자체의 전투력이 천라검신공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화멸검신공에 비하면 별 것 아닌 위력이라서 상훈은 환신병이 그저 번거롭기만 할 뿐이었다.
이 상태로는 상훈이 여의천병이나 여의마천병을 사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의천병 등을 통해 이 상태로 조화멸검신공이나 천라검신공을 펼쳐낼 수 있다면?
아니, 그보다 하위에 있는 조화검신공이나 멸검마신공 정도만 펼쳐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사기적인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상훈이 그간 별 시도를 다해봤지만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포스의 신들입니다!”
그런데 그때 거대 기계 장치 환신 하나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자 상훈이 거대 전투 로봇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경이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던 아르타나 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한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각종 기괴한 형체를 가진 환신 20여 명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유독 거대한 거대 뱀 형상의 형체를 하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가공스러운 환신력이 느껴졌다.
“피해야 해요!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자들이예요!”
아르타나를 비롯한 환신들이 깜짝 놀라며 피하려는 순간이었다.
상훈이 거대화된 몸체로 그쪽을 향해 이동하더니 그리포스의 신들을 공격했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지만, 기왕 변신한 상태이니 한 번 이 거대화 된 환신체의 위력을 시험해보는 중이었다.
퍼퍼퍽! 퍽! 퍼억!
상훈은 먼저 그리포스의 신들 중 가장 거대한 형체를 가진 뱀 형상 환신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환신이 반응하기도 전에 주먹으로 머리를 몇 번 후려치자 환신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악!”
가장 강해보이던 환신이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이어서 거대한 정사면체 형상의 신!
그는 상훈의 주먹 한 방을 견뎌내지 못했다.
퍼어억-
상훈의 주먹이 정사면체의 몸체를 뚫고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신비한 광채들이 혈액처럼 쏟아져 나와 상훈에게 흡수되었고, 정사면체는 이내 먼지가 되어버렸다.
“피, 피해라!”
“우리가 당해낼 수 없는 자다!”
그러자 그리포스의 환신들이 기겁하더니 도주하기 시작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버리는터라 상훈도 그들을 모두 쫓을 수가 없었다.
검신공 같은 걸 펼칠 수 있으면 원거리 공격이라도 펼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육탄 공격외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래서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니까.’
그래도 꽤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터라 도주하는 두 명의 환신들을 추격해 후려쳐 죽이는데는 성공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그리포스의 신 네 명을 가볍게 해치우고 그들의 환신력까지 흡수한 상훈의 모습을 아르타나 등은 경악이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