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신계의 전설적인 보물 (1)
리오니스의 군단이 그리포스의 환신들을 훌륭하게 격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상훈은 조화합벽진의 미비점을 좀 더 보완해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공격력을 보완한 것이 아니었다.
더 완벽한 방어력을 갖춘 진법으로 만든 것이다.
조화합벽진을 이루고 있으면 환신들이 몇날 며칠이 아니라 수백 년을 공격해도 막을 수 있게 말이다.
‘어디까지 환신들을 막아낼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겠군.’
상훈의 생각대로라면 이제 하나의 군단이 환신 서너 명이 아니라 수십 명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실전과 같은 가상 훈련을 통해 환신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상상결계와 유사한 가상 전장.
이는 미스티코의 환신력을 이용한 결계로 환신 델란의 진전을 얻으며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이미 환신과 수차례 싸워봤던 상훈이기에 그와 유사하거나 좀 더 강력한 형태의 환신들을 가상 전장에 등장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리오니스의 군단과 리카이스의 군단은 가상 전장에서 조화합벽진을 펼쳐 다수의 환신을 막아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역시나 각각의 군단은 가상 전장에서 아주 가공스러운 위력을 발휘했다.
최상급 천신 150, 최상급 마신 150, 최상급 신수 100으로 이루어진 각 군단의 조화합벽진이 환신들 수십 명이 나타나도 막아낼 수 있을 수준이 된 것이다.
‘훌륭해. 이 정도면 내가 자리를 비워도 이곳에 문제가 생길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저와 같은 군단들을 몇 개 더 만들어두는 게 더욱 안심이 될 것이다.
곧바로 상훈은 리오니스와 리카이스에게 말했다.
“아직 신력석은 충분히 남아있으니 군단을 몇 개 더 만들 생각이다. 리오니스는 최상급 천신이 될만한 천신이나 선신들을, 리카이스는 최상급 마신이 될만한 마신이나 악신들을 찾아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리오니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신력석을 이용하면 중급이나 하급 천신도 최상급 천신으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
대천계에 하급 천신들은 수두룩한 터라 그 중에서 엄선해서 추리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대마계에도 여전히 하급 마신들은 수두룩했다.
상훈이 모든 마역을 다 돌면서 마신들을 다 괴멸시킨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하급 마신들에 악신들까지 합치면 1만여 명이 넘는다.
다만, 그들 중 징벌의 시험을 얼마나 통과할지가 문제였다.
아무리 리카이스가 지휘를 한다해도 참회하지 않은 마신들을 최상급 마신으로 만들어놓으면 천신들과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간청이 있사옵니다. 저를 믿고 징벌의 강도를 대폭 낮춰주십시오. 고통의 시간을 백 년에서 오십 년 정도로 줄인다면 제법 많은 녀석들이 징벌의 시험을 통과하며 참회할 것입니다.”
상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사실 처음에는 상훈이 마신들 중 참회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백 년의 고통을 부과했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참회한 대마신 리카이스가 지속적으로 부하 마신들을 다그치고 있으니 말이다.
‘벌을 주자면 끝이 없지.’
그간 마신들이 한 짓을 보면 백 년이 아니라 수 만 년을 벌주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훈은 절대마신이 되어 그들을 포용해 이끌고 가야 한다.
그렇다면 대부분 탈락하게 되는 징벌의 시험보다는, 웬만큼 참회의 마음을 갖게 되면 통과할 수 있도록 강도를 낮춰주는 게 좋을 것이다.
“징벌보다는 참회를 위한 수련의 시험으로 바꾸겠다. 그 기간은 대략 십 년 정도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마신들이 포기하지 않고 참회의 시험을 통과할 것입니다.”
리카이스는 반색했다. 그리고는 그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결계를 만들었다.
참회의 결계.
이곳으로 들어간 마신이나 악신들은 현실에서는 하루의 시간이지만, 안에서는 십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간 자신이 한 악행을 반성하고 참회하며 지독하고도 끔찍한 지옥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다.
“이곳을 통과한 녀석들을 최상급 마신으로 만들되, 혹시라도 그 이후에도 정신을 못차리는 녀석이 있으면 다시 이곳에 집어넣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다시 예전의 유혹에 빠지는 녀석들이 없겠지.”
이로인해 마신들 중 참회의 시험에 통과하는 이가 대폭 늘어났다.
그들은 상훈에게 신력석을 지급받아 최상급 마신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에게 맞는 마신병과 마신공도 전수받았다.
그 후에는 천신들과 함께하는 조화합벽진의 수련 과정을 거친 후 군단에 배속되는 식이었다.
그렇게 리오니스와 리카이스가 새로운 군단을 만들고 있는 사이 상훈은 대천계의 대천궁 직속 천신들을 대부분 최상급 천신으로 만들었다.
그로인해 20품 천신이던 여신 에메스도 6품의 최상급 천신이 되었다.
곧바로 그녀는 상훈이 있는 하늘 정원으로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
“대천신께서 소신에게 이토록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에메스는 자신이 6품 천신이 된 것이 꿈만 같은 모양이었다.
상훈은 미소 지었다.
“부담가질 것 없다. 너뿐만 아니라 대천궁의 많은 천신들이 최상급이 되었으니까. 에메스, 너는 지금처럼 신입 선신들을 잘 교육해 멋진 천신이 되도록 만들어라.”
상훈은 에메스에게 신입 선신 교육에 관한 전권을 맡겼다.
에메스는 황송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토록 큰 소임을 맡겨주시니 기대에 부응하도록 신명을 바쳐 일하겠어요.”
“좋아! 왔으니 한 잔 마셔라. 이건 너에게만 특별히 주는 거야.”
상훈은 1단계 정성이 깃든 아이스 카페라떼를 한 잔 내밀었다.
에메스는 반색하며 그것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시고 싶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던 그녀는 돌연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보다 대천신님께 한 가지 간청이 있어요.”
“간청이라고? 부담갖지 뭐든 말해라. 너의 부탁이면 다 들어주겠다.”
지구와 불멸계를 지켜준 에메스에게는 뭐든 아까울 게 없었으니까.
이미 신병과 신공도 내려주었지만, 다른 뭔가 더 필요하다면 내줄 것이다.
그런데 에메스의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대천신님의 애신이 되고 싶어요.”
“애신이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에메스는 상훈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상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에메스라면 당연히 그로서도 환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애신이 있다.
리오니스를 두고 또 다른 애신을 둘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에메스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사양하려고 했지만.
“리오니스님께 허락 받았어요.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시던 걸요.”
“이미 둘이 얘기를 끝낸 거야?”
“네. 대천신님만 괜찮으시다면.”
에메스는 수줍어하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나야 물론 괜찮아.”
상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여신 에메스는 상훈의 애신이 되었다.
* * *
리오니스는 상훈의 명령에 따라 계속 최상급 천신들이 될 재목을 찾고 그들을 최상급 천신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끔은 그녀 휘하 군단장들에게 맡겨두고 상훈을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상훈은 리오니스, 에메스와 함께 천역과 마역들을 시찰 중이었다.
두 명의 아름다운 애신들과 함께 산책하듯 대천계와 대마계를 둘러보는 건 상훈에게는 매우 즐거운 휴식이었다.
“천역들이 많이 발전하고 있군. 천사들과 선녀 시종들이 다들 열심히 잘 해주고 있어.”
상훈의 말에 리오니스와 에메스가 미소 지었다.
“모두 대천신께서 천사들과 시종들을 많이 구해준 덕분이죠.”
“대천계가 이토록 평화로운 시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천사들은 하부 세계의 사정들을 살피고, 선녀 시종들은 천역을 개발시켜 천족들이 살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천족들이 많아질수록 그 천역은 신력도 풍부해지고 각종 보물들도 많이 수확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천역의 하부 세계들도 더욱 윤택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식이었다.
마역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마천사들이나 마시종들이 마신이나 악신들의 유희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상훈에게 천신의 성광을 입은 뒤로는 천사들처럼 행동했다.
덕분에 마역에서 새로 생겨난 마족들 또한 기존의 마족들과 달랐다.
성격은 좀 거칠지만 마천사들을 도와 하부 세계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며 살기 좋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상훈은 천역 몇 개를 둘러보고 마역 하나를 막 돌아보던 중이었다.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대천신님께서 이 누추한 마역에 방문하여 주시니 정말 영광이옵니다.”
마역의 아리따운 여마천사 하네프가 상훈 등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다가와 엎드렸다.
상훈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신경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 해라. 열심히들 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대천신이시여! 실은 이 미천한 종이 마역에서 아주 귀한 보물을 발견했사옵니다. 대천궁에 바치려했는데 이곳에 오셨으니 친히 이것을 받아주옵소서!”
하네프는 찬란하게 빛나는 열매 하나를 내밀었다.
그것을 본 리오니스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회복 신과(神果)가 분명해요.”
“고갈된 신력을 단 번에 모두 회복시켜주는 신계의 전설적인 보물! 이게 정말 있긴 있었군요.”
에메스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상훈도 뜻밖이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워낙 희귀한 것이라 대천고나 대마고에서도 없던 보물이었으니까.
‘이게 있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사 회생할 수 있다.’
강적들과 싸워 신력이 모두 고갈되었을 때 이걸 먹으면 최상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으니까.
환신들과 싸우기 위해 조만간 환계로 떠날 상훈에게는 매우 든든한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보물을 발견하다니! 네 공로가 아주 크구나. 뭐든 원하는 포상을 말해봐라.”
회복 신과를 아공간으로 넣어둔 상훈은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하네프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하네프가 황송한 듯 대답했다.
“포상은 일전에 저에게 내려주신 천신의 성광으로 충분하옵니다. 그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더는 바랄 것이 없사옵니다.”
“그거야 포상이라고 할 것 없지. 괜찮으니 뭐든 원하는 걸 말해봐라.”
천신이나 마신이 회복 신과를 얻어 상훈에게 바쳤으면 일약 품계나 급수가 몇 단계 상승하는 특급 포상을 받게 되었을 테니까.
“그럼 대천신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다면 이 종에게는 그보다 더한 영광이······.”
말을 하던 하네프는 돌연 싸늘하게 쏘아져오는 시선들에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 호의적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리오니스와 에메스의 표정에 냉기가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저 여신들의 분노를 마천사인 그녀가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네프는 그녀들이 자신의 뜻을 크게 오해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황급히 말했다.
“그러니까 이 종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저와 같은 미천한 종이 어찌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려하겠습니까? 그저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대천신님을 가까이 모시는 마천사로서의 직분을 의미하는 것이옵니다.”
그러자 리오니스와 에메스의 표정이 비로소 누그러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들이 오해를 할만한 것이 하네프의 용모가 여신들인 그녀들에 버금갈 만큼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대천계의 천사들 중에서도 단연 찾아볼 수 없는 용모였으니까.
“일전에 대천신께서 이 종에게 천신의 성광을 뿌려주셨을 때 특별한 예지 능력이 생겼사옵니다.”
“예언 마천사가 되었구나.”
“그러하옵니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특별한 신과를 찾아내는 것은 예언 천사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미 상훈에게는 적지 않은 숫자의 예언 천사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간혹 틀릴 때도 있고, 전쟁의 승패도 규모가 커지면 쉽게 그 결과를 예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큰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때 하네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잠시 후 대마계 쪽에 심상치 않은 적의 침입이 있을 것이옵니다. 미리 대비하신다면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니 속히 조치를 취하시옵소서.”
“적의 침입이라고?”
“틀림없사옵니다.”
하네프는 자신있게 말했다. 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침입할 적이라면 환신들밖에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