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대천고와 대마고 (2)
대마계 대마고(大魔庫).
이 또한 대천계의 대천고처럼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규모 자체로 보면 이곳이 대천고보다 몇 배는 더 방대했다.
“미천한 종 하르나크, 대마신을 알현하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 마천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수석 천고지기 마천사 하르나크를 비롯해 모두가 여자 마천사들이며, 하나같이 나체 상태였다.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너희들은 왜들 다 벗고 있는 것이냐?”
“대마신 리카이스님의 지시에 의해서 저희들은 언제든 봉사를 할 준비가······.”
하르나크는 음란하게 몸을 비틀며 대답했다.
“됐으니 다들 옷을 입어라.”
상훈은 한숨이 나왔다.
‘하여간 리카이스 놈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놈이군.’
천사와 선녀 시종들을 그렇게 많이 노예로 만들어 둔 것도 모자라 대마고의 천고지기 마천사들까지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는 말인가.
하긴 달리 대마신이었겠는가.
그런 악의 종자가 참회를 했다는 것은 진정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마천사나 마시종들은 마신이나 악신들과 달리 그들의 주인이 누구이냐에 따라 철저히 성향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즉, 이들은 만약 천신인 상훈의 권속이 되면 그 즉시 천사와 비슷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그런 걸 무시하고 모조리 죽여버렸지만, 이제 상훈은 절대천신이자 절대마신으로 살기로 결심한 터다.
불쾌할지라도 마천사들과 마시종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던 상훈은 혹시나 싶어 그녀들에게 천신의 성광을 펼쳐보았다.
화아아악!
그러자 아니나다를까, 요사하면서도 음란해보이던 마천사들이 모두 뭔가 건전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아아!”
“저희들에게 이런 은혜를 내려주시다니!”
“대마신님께서 어찌 이런 성스러운 광채를!”
물론 여전히 그녀들의 외모는 천사들과는 구별되었다.
음란함이 뭔가 세련된 섹시함으로 바뀌었고, 음침했던 눈빛이 차분하면서도 맑게 바뀌었을 뿐 마천사는 마천사였다.
그래도 상훈이 볼 때 한결 나아보였다.
‘마신이나 악신과 달리 천신의 성광이 통해서 천만다행이군.’
마신이나 악신에게 아무리 펼쳐봤자 그들이 가진 근성은 바뀌지 않는다. 성광은 오직 천사들이나 시종들에게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안에도 하부 세계의 보물들과 신계의 보물들이 따로 보관되어 있겠군.”
“그렇사옵니다.”
“신계의 보물들이 있는 곳으로 날 안내해라.”
“종을 따라오시옵소서.”
마신과 악신들의 숫자가 천신들보다 몇 배 많은 편이다보니 대마고의 규모가 이렇게 커졌을 것이다.
언제고 환계까지 평정하고 난 이후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면, 대천고나 대마고들을 돌아보며 각종 보물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지금은 신계의 보물들을 확인한 후 곧바로 수련에 매진해야 한다.
환계의 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아직 상훈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쪽은 신력석입니다. 180,485개가 남아 있사옵니다.”
“제법 많네.”
“최근에 갑자기 늘었습니다.”
마신들이 상훈에게 무더기로 죽으면서 그들이 가진 신력석들이 모두 이곳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대천고에 있는 것보다 4만개나 많았다.
신수석은 2,823개.
또한 신병들은 무려 2만개가 넘었고, 진전 비급들의 숫자도 대천고에 있는 것보다 몇 배 더 많았다.
“이쪽은 리카이스님을 비롯한 대마신들이 특별 관리하던 서고입니다.”
그리고 대천고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특별한 서적들이 몇 권 존재했다.
마찬가지로 신공과 마신공을 모두 섭렵해 완벽히 터득한 상태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환계의 비급을 어디선가 얻은 모양이었다.
위력은 천라검신공과 흡사해 상훈에게는 별다른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그것말고 이상한 제목이 붙어있는 신비한 책이 한 권 더 있었다.
-오직 특별한 기운을 가진 자만 이 책을 볼 수 있으리라.
책의 표지 위에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이 원하는 어떤 특별한 기운이 없는 존재는 무슨 수를 써도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대마신들은 이 책을 따로 분류해놓았을 것이다.
표지를 제외하고는 한 글자도 볼 수 없었을 테니까.
파락-
상훈은 무심코 표지를 넘겨 내용을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대가 미스티코의 신임을 의미하리라. 이는 내가 이 책의 글자들을 오직 미스티코의 환신력을 가진 이만 읽을 수 있게 조치해두었음이니라.
‘미스티코의 환신력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 또한 환계의 신이 쓴 책이었다.
그것도 반드시 체내에 미스티코의 환신력이 존재해야 했다.
상훈의 체내에는 현재 두 종류의 환신력이 잠재력화 되어 있다.
그리포스의 환신력과 미스티코의 환신력.
이는 그가 그리포스의 신을 둘 해치우고, 미스티코의 신 셋을 해치운 후 그들의 환신력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포스의 힘이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는 이 때에 미스티코의 후대 신이 나 델란의 진전을 잇게 되어 다행이로구나. 예상치 못한 그리포스의 음모에 의해 나는 소멸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이에 나의 진전을 남기노니 이것을 읽는 미스티코의 후대 신은 나의 진전을 활용하여 환계가 그리포스에게 장악되지 않도록 하라.
놀랍게도 미스티코의 환신 델란의 진전이 담긴 책이었다.
그는 그리포스의 어떤 음모에 의해 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했는데, 마지막으로 이것을 남긴 것이다.
파라라락-
상훈은 책의 내용을 모두 읽어보았다.
글자들이 빨려들 듯 모조리 기억되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책이 그대로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스스.
그와 함께 하나의 반지가 나타났다.
겉으로 볼땐 그저 아름다운 보석이 박힌 장신구 반지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미스티코의 환신만이 사용가능한 환신병(幻神兵)이었다.
여의신병과 여의마신병처럼 이 환신병 또한 상훈에게 영구 귀속되었다.
물론 환신병의 사용법은 상훈이 모두 기억해둔 터였다.
‘거대 환신체로 변해서 싸우는 건 제법 강력해 보이지만 위력 자체는 조화멸검신공에 비하면 못한 수준이군.’
고대 환신의 진전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상훈의 입장에서는 별 볼일 없었다.
물론 이는 상훈이 조화멸검신공을 창안한 상황이라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 사실 이 환신병의 위력은 대천고에 있던 환계의 비전 천라검신공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이었다.
따라서 상훈이 조화멸검신공을 터득하기 이전이었다면 이런 환신병을 가진 환신을 이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관련 지식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본래 환계에는 미스티코의 신들만 존재했고, 그들이 정통적인 환신이라 할 수 있는데 어느날 변종 환신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바로 그리포스의 환신이라는 것.
그때부터 미스티코의 환신들과 그리포스의 환신들이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그래도 환신 델라가 자신의 심득을 상세하게 설명해둔 것이다 보니 상훈은 환신력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 중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잠재력화 되어 있는 것을 사용 가능한 환신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환신력으로부터 파생된 각종 힘들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나와 있었으니까.
심지어 상훈이 이전에 혼돈자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몽환력도 환신력의 하위 힘 중 하나임을 알았다.
혼돈 시스템에서 별세계처럼 존재했던 몽환공역이라는 것도 모두 환계의 신들이 만들어둔 것이다.
또한 각 대천계나 대마계마다 환계로 통하는 통로가 하나씩 존재하는데, 상훈은 환신력을 이용해 그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 * *
잠시 후 상훈은 리오니스와 리카이스를 불러 말했다.
“이제 나는 환계와의 전투에 대비해 최상급 천신 150명과 최상급 마신 150명으로 구성된 정예 군단 두 개를 만들 생각이다.”
그러자 리오니스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려면 최상급 천신 300명과 최상급 마신 300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오나 현재 대천계에 최상급 천신을 다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
리카이스는 더욱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대마계에 최상급 마신은 불과 십여 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모두 상훈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상훈이 미소 지었다.
“걱정할 것 없어. 신력석을 대거 사용할 생각이다.”
그러자 리카이스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대번에 표정이 밝아졌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대마고에 있는 신력석만 활용해도 그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대마고에서 빼온 신력석 1만 개와 마신병 300개, 최상급 수준의 마신공 비급 300권을 리카이스에게 건넸다.
“마신들 중 징벌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최상급 정예 마신이 될 자격이 있다. 그들 모두가 최상급 마신의 수준에 이를 때까지 신력석을 아끼지 말고 먹여라. 또한 신병과 비급을 전수하고 그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익히도록 지도해라.”
“알겠사옵니다. 맡겨주십시오.”
리카이스는 명을 수행하기 위해 사라졌다.
상훈은 리오니스에게도 동일한 숫자의 신력석과 신병, 신공 비급 등을 내주었다.
“리오니스 또한 믿을만한 천신들을 300명 선발한 후 이 신력석으로 최상급 천신급의 신력을 얻게 만들어라. 각자에게 적합한 신병과 신공도 전수해주도록 해.”
“명을 받들겠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최상급 천신과 마신들로 구성된 두 개의 정예 군단들은 나뉘어 대천계와 대마계에 존재하는 환계의 통로를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각 통로마다 천신 150명, 마신 150명이 대규모의 조화합벽진을 이루게 되면 얼마전 나타났던 아르타나나 기계 장치 환신들 정도는 충분히 물리치고도 남았다.
거기에 신수들까지 합세하면 더욱 강력해진다.
상훈은 천신들과 마신들이 소유한 신수 200마리를 추려 각 100 마리씩 두 개의 군단으로 편성한 후 신수석을 먹여 그것들을 최상급 신수가 되게 했다.
그 후 그것들의 지휘권을 리오니스와 리카이스에게 각각 맡겼다.
이로써 대천계에 존재하는 환계의 통로는 리오니스가 이끄는 군단이, 대마계에 있는 통로는 리카이스의 군단이 지키게 되었다.
* * *
상훈은 부하들의 훈련 상황 및 환계의 두 통로 등을 계속 살피면서 천라검신공과 조화멸검신공을 수련했다.
부하들의 훈련 상황은 순조로웠다.
또한 그 사이 새로운 환계의 신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군. 그리포스건 미스티코건 어디라도 한 군데는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는 이제 천라검신공과 조화멸검신공은 둘 다 완벽하게 터득했다.
물론 환신병을 다루는 능력도 완벽하게 수련했다.
작정하면 환신체가 되어 전투를 벌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대천계와 통하는 환계의 통로에서 정체불명의 존재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나타난 건가?’
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환신력을 보니 그리포스의 환신들이군.’
그는 양쪽의 통로를 주시하고 있는 터라 대천계와 대마계 어디서든 그곳에 적이 나타나면 알 수 있었다.
“당황하지 말고 모두 조화합벽진의 진형을 유지하라.”
환신들이 나타났지만 리오니스는 침착하게 군단의 천신들과 마신들, 신수들로 이루어진 조화합벽진으로 그들을 포위했다.
스스스.
그로인해 조화합벽진의 결계가 환신들을 둘러쌌다.
“어리석은 놈들! 감히 우리가 누군줄 알고 감히 덤비는 것이냐?”
“하등한 신들 따위가 죽고 싶어 미친 것이로군.”
괴상한 괴수 형체의 환신들은 천신들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지만 거대한 방패 형상의 막이 나타나 그 공격을 차단했다.
동시에 방패에서 무수한 광채들이 쏘아져나왔다.
화아악! 화아아악-
그 광채들은 천신들과 마신들이 펼친 신공과 마신공들이 광채화되어 발현된 것이었다.
“크으윽!”
“으윽!”
그러다 보니 환신들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물론 이 정도로 그들이 큰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 광채들에 오래 노출되면 무시못할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믿을 수 없군. 저와 같은 합벽진이 존재하다니!”
“일단 물러나는 게 좋겠다. 이대로라면 우리가 당하고 만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조화합벽진의 결계에서 벗어나 도주했다.
“어딜 달아나는 거냐?”
그때 싸늘한 음성과 함께 그들의 몸을 거대한 빛기둥이 쓸고 지나갔다.
상훈이 결계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여의천병으로 그들을 후려친 것이다.
“크으으윽! 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처음으로 펼쳐본 천라검신공!
그것 한 방에 환신들은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츠으으읏!
상훈이 신경쓰지 않아도 환신력은 알아서 흡수되었다.
그러나 그는 환신력을 얻은 것보다 부하들의 승리가 더욱 뿌듯했다.
‘훌륭해. 내가 없이도 환신들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조화합벽진의 위력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