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대마계 정벌 (1)
대천계 북천 382천역.
각종 신계의 자원도 거의 나지 않는 황폐한 곳이다보니 고대부터 이곳에 천신궁이 세워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대천궁이 생겨났으니!
물론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불의의 사태로 인해 대천신이 황급하게 대천궁을 이곳으로 천도한 것이다.
‘참으로 암담한 상황이로구나.’
대천궁의 정원에서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신.
그는 대천신 무타티오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대천궁에 소속된 천신 중 절반 정도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앙은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리라.
사천에 속한 천신들이 또 얼마나 죽어나갈 것인가?
‘이 모든 건 다 나의 부족함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마계와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니고, 대천계 내부에서 벌어진 반란으로 인해 대천계의 힘이 절반 아니, 그 이하로 줄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대마계를 무슨 수로 정벌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대천계는 여전히 내란 중이었다.
사천 중에서 무타티오의 편에 속한 쪽은 북천뿐.
나머지 삼천은 소노루에게 넘어가버린 상황이고, 과연 내란을 평정할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었다.
‘소노루의 배후 세력!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무엇보다 무타티오의 마음을 무겁게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소노루의 본래 능력으로는 내란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갑자기 엄청난 힘을 주입해주고 내란을 조장한 배후의 존재들이 있는 한, 당금의 내란을 평정한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천신님! 적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그때 아주 급박한 음성이 들려왔다.
2품 천신 네라칸!
그런 그가 만신창이 상태로 달려오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스스스스-
그리고 이내 소멸되었다.
“······!”
무타티오의 안색이 굳었다.
네라칸은 그를 제외하면 대천궁에서 가장 강한 천신이었다.
대천궁의 외곽에서 엄중한 경비를 서고 있던 그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 이하 경비를 담당하던 상급 천신들도 전멸했다는 뜻.
콰쾅! 콰르르릉!
“아아아악!”
“크아악!”
대천궁이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천신들이 학살당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무타티오는 그들을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괴상한 형체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림자처럼 흐물거리지만 그것은 뱀의 형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뱀의 머리는 흐릿하지만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요괴와 같은 모습!
그러나 그런 하찮은 몬스터가 아닌 신급 존재였다.
천신도 마신도 아닌 정체불명의 신!
그 기세는 무타티오로서도 감당할 수 없을만큼 강력했다.
“너희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냐?”
무타티오가 노기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괴상한 형체의 신이 대답했다.
“내 이름은 크보라넨.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신이란다.”
“무슨 목적으로 소노루를 배후에서 조종해 대천계를 장악하려느냐?”
“너는 그런 걸 알 자격이 없다, 무타티오. 확실한 건 이제 너의 시간이 종결되었다는 것이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무타티오는 전신에 있던 신력이 그대로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떨었다.
“으으! 이럴 수가!”
동시에 그의 몸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항해볼 엄두도 낼 수 없는 극강의 존재 앞에서 그는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대천궁 도처에서 학살당하는 이들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아아악!”
“으악!”
검은 그림자와 같이 흐릿한 형체들이 대천궁의 천신들과 선신들, 그리고 천사와 선녀 시종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었다.
“눈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아라. 너에게 충성을 바치던 녀석들이 처참히 죽는 모습을 말이야.”
“대, 대체 왜 이런 일을······.”
“저들을 몇이라도 살리고 싶다면 대천신의 인장을 내놓아라. 그럼 이 정도에서 살육을 그치도록 하겠다.”
“대천신의 인장! 그게 목적이었느냐?”
그런데 그때 다시 뭐라 말하려던 크보라넨이 돌연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천궁의 한곳을 노려봤다.
그곳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용모의 여신 한 명이 서 있었는데, 그녀 또한 그림자 형체의 괴존재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 난데없이 번쩍 나타난 한 명의 천신이 그림자를 그대로 흩어버렸다.
“아, 당신은?”
여신은 다름아닌 천신 에메스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죽음 직전에서 살려준 이는 물론 상훈이었다.
“이걸로 조금은 신세를 갚은 건가?”
에메스는 상훈을 대신해서 지구와 불멸계를 지켜준 여신이다.
그런만큼 상훈 또한 그녀를 지켜줄 의무가 있었다.
에메스는 별 일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상훈에게는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으니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이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에메스는 상훈을 보자 왜 이리 든든한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상훈의 입가에 피어있는 여유로운 미소 때문일 것이다.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가득한 이곳에 단신으로 나타났지만 그는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언제든 아이스 카페라떼가 먹고 싶으면 말해라. 너에게는 아깝지 않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바람처럼 대천궁을 누비며 그림자들을 모조리 흩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대천신 무타티오가 있는 하늘 정원 위로 번쩍 솟구쳐 올라 크보라넨을 향해 돌진했다.
이는 모두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타티오 정도만이 상훈이 그같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간신히 눈치챘을 정도였다.
스스스!
그런데 상훈의 기세가 심상치않자 크보라넨은 그 즉시 결계를 펼쳐 상훈을 가뒀다.
결계 속에서 크보라넨은 최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신이 온갖 신비한 광채로 휩싸여 있는 거대한 뱀의 형상.
그것이 바로 크보라넨의 실체였다.
“어리석은 놈! 감히 내가 누구라고 덤비느냐? 나는 너 따위 하등한 천신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지고한 존재이다.”
“그래봤자 환신이겠지.”
“네놈이 그것을 어떻게? 네놈의 정체는 무엇이냐?”
크보라넨이 놀란 듯 물었다. 상훈이 대답했다.
“대천계 북천의 6군단장, 전상훈이다.”
“호호호호! 가소롭구나. 고작 일개 군단장 따위가 내게 대항하겠다는 것인가?”
“네가 죽을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 중 세 가지만 말하지. 첫째는 환신이라는 것, 둘째도 환신이라는 것, 셋째도 네가 환신이라는 거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못 알아들었나 보군. 환신은 다 죽인다! 이유불문! 너를 포함해 환계에 있는 모든 환신들을 다 쓸어버리겠다.”
“미친 놈이군. 환계가 어떤 곳인지 네놈이 안다면 그 따위 망발을 절대 하지 못할 텐데.
크보라넨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상훈을 공격하려했지만, 이미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 사이 상훈의 검에서 쏟아져나온 광채가 그녀의 거대한 몸체를 쓸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아아악!
그것은 그녀로서도 상상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이었다.
대천신이나 대마신들의 공격도 우습게 여기는 그녀조차 어쩔 수 없는 미증유의 신력이 담긴 공격!
10단계 조화검신공을 여의신공으로 증폭시켜 날린 검격 앞에 환신인 크보라넨의 몸체도 버텨내지 못했다.
“끄으윽! 이럴 수가! 내가 너 따위 하찮은 존재에게······ 끄아아아악!”
크보라넨의 몸체에 균열이 일더니 그대로 산산조각나버렸다.
그와 함께 온갖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광채의 기운들이 상훈에게 그대로 흡수되었다.
크보라넨의 환신력이었다.
상훈은 이미 정사면체 환신의 환신력도 흡수했던 터라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환신력이 흡수될수록 마음에서 알 수 없는 욕망 비슷한 것이 생겨나는 느낌이다.’
환신력 자체에 강한 욕망의 기운이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훈은 다행히 대천신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방법으로 그런 불순한 감정들은 소멸시킬 수 있었다.
또한 케시우스가 전해준 태초의 눈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것만 조심하면 환신력도 언젠가 나의 신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뭔가를 해치운다고 잠재력화된 환신력이 신력으로 흡수되는 건 아니었다. 아마도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어야 환신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케시우스 스승님이 전해준 잠재력은 신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어.’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환신들과 싸워 이기자 케시우스의 마신력 중 일부가 상훈의 신력으로 전환된 것이다.
마신력이나 신력이나 여의신공을 익힌 상훈에게는 동일 성질의 힘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 두 힘이 합쳐지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끄아아아아악!”
한편 그렇게 상훈이 결계에서 크보라넨을 해치우자 무타티오의 앞에 있던 크보라넨의 몸체가 무수한 조각으로 찢겨진채 널브러졌다.
그것은 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상훈이 에메스를 구해준 후 대천궁에 있는 모든 그림자 괴수들을 처치하고, 그대로 하늘 정원으로 솟구쳐 크보라넨의 몸을 처참히 조각내버린 것까지!
그리고 크보라넨의 죽음으로 대천궁을 휘감았던 암운은 사라졌다.
“대천신님!”
상훈은 전신이 녹은 채 사라지고 있는 무타티오에게 다급히 신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무타티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틀렸다. 그리고 설령 회복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가까이 와서 나를 좀 부축해라.”
“예.”
상훈이 주입한 신력 덕분에 무타티오의 몸은 일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상의 회복을 거부한 상태라 이대로라면 그는 잠시 후 대천계에서 소멸된 후 고대 선신의 무덤으로 이동하게될 것이다.
“대천계를 이꼴로 만들었는데 내가 어찌 살 자격이 있겠느냐? 고대 대천신들을 무슨 면목으로 뵐지 암담하기만 하구나.”
“반역도들은 제가 모두 죽였습니다. 대천신님께서만 옥체를 보존하시면 대천계는 본래대로 돌아가니 걱정 마십시오.”
“그들을 모두 죽였다고?”
“예. 최상급 천신 이상은 한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러자 무타티오가 탄식했다.
“죽어 마땅한 녀석들이긴 하지만 그들이 모두 죽었으니 대마계를 어찌 막아낼지 걱정이로구나.”
“대마계는 곧 없어집니다. 그럼 공격해올 마신들이 없으니 대천계는 영원히 평화로울 겁니다.”
그 말에 무타티오가 잠시 기막혀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유쾌한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바로 그것이다. 네가 있어 내가 그나마 고대 대천신들을 뵐 면목이 생기겠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무타티오가 대천궁의 천신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모두 들어라! 나 무타티오는 이제 대천신의 보위를 전상훈에게 계승하고자 한다.”
쿠웅!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상훈도 깜짝 놀랐다. 천신들도 모두 경악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대천계의 대천신으로서 나 무타티오의 시대가 끝났음이니! 앞으로는 새로운 대천신 전상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
그 말과 함께 무타티오는 상훈에게 두 개의 물건을 내주었다.
하나는 대천신의 인장이고, 또 하나는 대천고의 열쇠였다.
대천신의 인장은 황제의 옥새와 같은 것으로, 대천신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오직 이 인장을 통해서만 천신의 품계나 지위를 정할 수 있었다.
또한 대천고의 열쇠는 아공간에 위치한 대천신의 창고를 열 수 있는 물건이었다.
대천고 안에는 신력석이나 신수석을 비롯해 대천계의 귀한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