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천 년의 한을 풀다 (1)
대마계 제 7 대마역 소속 제 3 군단성.
4급 마신 바스로크의 마신성이기도 한 이곳은 수많은 크고 작은 궁전들의 숲과 같았다.
거대한 군단성 내에 각 마신들의 궁전들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급수가 높은 마신일수록 보다 화려하고 큰 궁전을 보유할 수 있는 터라 궁전의 규모만 봐도 그 궁전의 주인이 대략 몇 급의 마신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마신들의 궁전 400여개가 중앙에 있는 바스로크의 마신성을 중심으로 빙둘러져 지어있는 것이 전체 군단성이었다.
악신들은 궁전을 갖지는 못하되 각 궁전에 마련된 거처에서 마신들을 보좌하면서 지냈다.
그런 악신들만 대략 800명.
그 이하 마천사가 2000여명, 마시종들이 3000여명.
이는 각각의 마신들이 휘하에 있는 마천사나 마시종들을 모두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군단성 주위로 드넓게 형성되어 있는 끝없는 평원에는 마왕과 마족들이 득실거렸다.
하부 세계에서나 마왕들이 대단한 존재이지, 이곳에서는 일개 마시종보다도 훨씬 못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내게 두는 건 마왕과 마족들이 마신들에게 바치는 각종 봉헌물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마역 세계가 형성된 중심에 제 7 대마역 제 3군단장 바스로크가 있었다.
대마계 전체 서열 50위권 안에 드는 그인만큼 그 자부심이 대단했다.
“멍청한 데라수스 놈! 고작 하찮은 하급 천신 따위에게 당해서 이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군.”
“덕분에 3군단의 병력이 늘었으니 오히려 잘 된 것 아니겠습니까?”
군단 참모의 말에 바스로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물론 그렇다만, 데라수스 놈 때문에 제 7 대마역의 위상이 위축된 상태이다. 대마신장 카두라스님이 그로인해 매우 분노하셨다. 뿐만 아니라 대마신 리카이스님도 기분이 몹시 좋지 않으신 상태란 말이다.”
“거기에 대천계에서 작정하고 전면전을 벌이고 있으니 대마계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바로 지금이야말로 바스로크님께서 큰 공을 세우시면 리카이스님과 카두라스님께 큰 포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라? 큰 공을 세울 기회가 있겠느냐?”
“대천계 북천의 천신들이 곧 이 근처 마역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바스로크님께서는 그 어떤 도발도 응하시지 말고 이곳에 굳건히 계시다가 기회를 틈타 놈들의 배후를 공격한다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바스로크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마역괴류가 있는 한 대천계의 대천신이나 사대신장들이 모두 몰려온다 해도 함락될 위험이 없지.”
“흐흐, 마역괴류가 있는 한 북천의 천신들은 이곳에서 큰 좌절을 겪게 될 것입니다.”
바스로크와 군단 참모의 표정에는 득의만만함이 가득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지금 이곳 군단성에 엄청난 재앙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콰아아아! 콰콰콰콰-!
하나의 마역을 통째로 뒤덮어버리는 가공스러운 마신력의 거대한 기류!
저것이 바로 마역괴류(魔域怪流)라 불리는 대마계의 이상 현상이었다.
저런 것이 왜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기괴한 현상이라 괴류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확실한 건 천신들이 저 괴류에 휩싸이게 되면 극심한 부상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력이 대폭 하락하게 된다.
반대로 마신들은 전투력이 대폭 상승하게 되니, 저 안에서 마신과 천신들이 전투가 벌어지면 어떤 지경이 펼쳐질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그러나 4품 천신인 상훈은 마역 괴류에 들어서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신력을 마신력으로 바꿔 놓으니 오히려 힘이 나는군.’
여의신공을 통해 상훈은 자신의 신력을 마신이나 악신처럼 마신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
그 순간 그는 천신이 아닌 마신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
마역괴류가 그에게 보약과 같은 기운이 되어 전투력이 대폭 상승하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신력이 마신력으로 바뀐 상태에서는 고대 대천신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신공을 펼칠 수 없다.
대신 고대 대마신 스승들에게 전수받은 마신공은 얼마든지 펼칠 수 있으며, 신병은 여의천병이 아닌 여의마천병을 사용해야 했다.
‘마신공으로 마신들을 학살하게 되는 건가.’
마신들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곧바로 상훈은 여의마천병을 차크람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고대 대마신 자룬의 뇌륜마신공(惱輪魔神功)!
이것을 익히느라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이제 그 고통을 마신들과 악신들에게 돌려줄 때였다.
그렇게 상훈이 여의마천병을 꺼내들 때까지도 그의 앞에 마신이나 악신들이 가로막지 않았다.
마역에 천신이나 선신이 출몰하면 경고음이 울리게 되어 있는데, 상훈이 마신과 같은 상태로 나타났으니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방비가 허술하다니! 마역괴류를 너무 맹신하고 있군.’
그러나 천신이나 선신들을 상대로 마역괴류만큼 완벽한 방어망은 없다.
이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할 수 있는 천신은 고대의 전설적 존재인 절대천신 벡사티오의 진전을 이어받은 상훈뿐이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마역괴류를 통과해 마역의 내부로 들어온 상훈은 초거대 규모의 군단성과 그 외곽으로 마왕과 마족들이 초호화 문명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신이나 선신들이 얼씬도 할 수 없는 곳이니 그야말로 마신과 악신들의 신세계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그때 마역 정찰을 돌던 12명의 악신들이 상훈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전상훈. 소속은 북천이다.”
상훈의 차크람에서 붉은 빛이 파동처럼 뻗어나가 악신들을 단번에 동강냈다.
“크윽!”
“으아악!”
악신들이 그렇게 죽임을 당하자 즉각 경고음이 울리며 근처로 마신들과 악신들이 떼로 몰려왔다.
“감히 어떤 녀석이!”
“네놈은 누구냐?”
순간 차크람의 날에 맺혀 있던 마신력의 광채가 상훈을 중심으로 거대한 차크람의 형상으로 변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류류류류-
사방 공간을 가르며 회전하는 거대한 광채의 차크람!
그 회전 반경 안에 있던 마신과 악신들은 차크람에 깃든 뇌륜마신공의 파괴력에 의해 모조리 먼지로 변했다.
“크아아악!”
“으아악!”
하급 마신이나 중급 마신들은 물론이고 상급 마신들도 예외가 없었다.
“감히! 죽인다!”
최상급 마신 하나가 달려들었다. 거대한 방패와 도끼를 신병으로 쥔 그는 자신의 방패 마신병으로 차크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촤아악!
그러나 결과는 끔찍했다. 뇌륜마신공의 파괴력이 방패와 함께 그의 몸체를 그대로 뭉개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악!”
이에 마신들과 악신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그 사이 생성된 수십 개의 거대 차크람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살육을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으아악!”
그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붉은 빛이 깃든 차크람이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로 늘어났고, 그것이 사방 공간을 휘저었다.
도주하던 마신들과 악신들이 모두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이는 여의마신공을 펼쳐 뇌륜마신공의 위력을 한 번 증폭시켜보자 벌어진 일.
‘케시우스 스승님이 공연히 절대마신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군.’
뇌륜마신공을 전수해준 고대 대천신 자룬이 이 광경을 봤어도 믿을 수 없다며 두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바로 그때 우레치는 굉음과 함께 군단성 쪽에서 일단의 마신들이 튀어나와 상훈의 앞에 위치했다.
제 3군단장 바스로크를 포함한 최상급 마신들.
바스로크는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너는 대체 뭐냐? 어디에서 온 놈이냐?”
난데없이 등장한 정체불명의 적에 의해 3군단 전력의 이 할 정도가 날아가버렸다.
마신 80여명, 악신 150여명이 죽었다.
군단장인 그가 어떻게 손도 써보기도 전에 벌어진 일.
대마신장 카두라스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상훈이 싸늘히 웃었다.
“나는 대천계 북천의 제 6군단장 전상훈이다. 오늘 너희들은 모두 죽는다.”
그 사이 상훈은 여의마신공을 펼쳐 마신력을 본래의 신력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여의마천병을 집어넣고 여의천병을 꺼냈다.
어차피 마역의 외곽에만 마역괴류가 흐르고 있는 터라 이 안에는 굳이 마신력을 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바스로크가 상훈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러고 보니 네놈이 바로 데라수스를 죽인 그 놈이구나. 마역괴류를 어떻게 뚫었는지 모른다만 살아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바스로크와 최상급 마신들, 그리고 그 사이 나타난 수많은 마신들과 악신들이 상훈을 포위했다.
그 중 일부는 신력합벽진을 펼쳐 바스로크와 최상급 마신들에게 신력을 전달하려 했지만, 그 전에 상훈의 검에서 빛기둥이 형성되어 전방으로 쏘아져나갔다.
“크아아악!”
“아아악!”
그 빛기둥은 그대로 바스로크와 최상급 마신들의 몸체를 뚫고 지나갔다. 단 한 방에 제 3군단장 바스로크와 그의 주력 부하들이 전멸한 것이다.
‘고작 한 방도 버티지 못하다니!’
여의신공으로 조화검신공의 위력을 증폭시켜보자 벌어진 일.
상훈도 그 위력에 놀랄 정도이니 다른 마신들과 악신들이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으으!”
“피, 피해라!”
단 번에 최수뇌부가 사라졌으니 그 하위 마신들과 악신들이 전의를 상실할 것은 당연했다.
상훈은 여의천병을 검에서 활로 변환시켰다.
“한 놈도 도망 못간다!”
그는 상공을 향해 신력의 화살을 날렸다.
순간 거대한 미사일 크기의 화살이 상공으로 날아가 정지,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푸른빛의 광채가 사방을 뒤덮었다.
화악! 확! 화아악!
광채에서 갈라진 무수한 빛줄기들이 신력의 화살로 변해 마신과 악신들의 몸을 꿰뚫었다.
고대 대천신 스승 드루즈의 천광궁신공(天光弓神功)!
그것의 10단계 비기가 여의신공에 의해 증폭되어 펼쳐진 것이다.
단번에 대부분의 마신과 악신들이 녹아버렸지만, 그나마 수십 명의 마신들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들의 몸은 이내 모두 부서지기 시작했다.
“크으윽! 마, 말도 안 돼!”
“이, 이게 대체 뭐냐?”
“크아아아악!”
그들은 죽는 순간에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했다.
“쿠아아아아아!”
“구오오오오오오!”
“캬아아아아아!”
한편 그렇게 마신들이 전멸하자 그들 중 일부가 소유하고 있던 마신수 수십여 마리가 일제히 자유를 얻어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그나마 제일 쓸만해 보이는군.’
아무리 상훈이라해도 이 상황에 마신수 전부를 얻을 수는 없었다.
최상급 수준의 기운을 풍기는 마신수 고양이 하나만 붙잡아 굴복시켰다.
달아난 다른 마신수들은 언제고 신계에서 다시 인연이 있으면 만나게 될 것이다.
냐옹!
거대한 괴수 고양이 형상이었던 녀석은 상훈에게 굴복되자 마신수가 아닌 신수가 되었고 작은 고양이로 변했다.
둥그런 얼굴에 짧은 다리, 신비하게 반짝이는 털에 두 눈은 초록색으로 보석처럼 빛났다.
그냥 보면 귀여운 고양이지만 신수로서의 전투 능력은 6품 천신 정도.
상훈에게는 충성스러운 부하가 하나 생긴 것이었다.
“궁전에 갇혀 있는 천사들과 선녀 시종들을 모두 풀어 이곳으로 모이게 해라.”
“냐옹!”
신수 고양이는 눈깜짝할 사이에 군단성의 곳곳에 비참한 상태로 갇혀 있는 천사들과 선녀 시종들을 상훈의 앞으로 데려왔다.
군단성의 규모가 크다보니 포로들도 많았다.
천사 156명
선녀 시종 107명
상훈은 그들 모두를 천신의 성광을 통해 본연의 모습과 능력을 찾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