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대천신의 선포 (2)
무투회의 출전자는 단 네 명.
상상결계로 이루어지는 승부이니 만큼 굳이 멀리갈 필요도 없었다.
출전자들은 대천궁의 대전으로 모였다.
그들은 상상 결계의 승부를 벌이지만 그것을 다른 천신들도 다 볼 수 있었다.
6품 천신 전상훈 – 북천 제 6군단장
4품 천신 아제라스 – 남천 제 1군단장
4품 천신 넬칸 – 동천 제 1군단장
4품 천신 카드안 – 서천 제 1군단장
상훈을 제외하면 다 4품 천신이고, 모두 각 소속 대신장 이하 1군단장들이었다.
그 중에서 남천의 제 1군단장 아제라스는 대천신과 대신장들을 제외하면 최강의 천신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다.
“군단장들의 결투에 앞서 한 가지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남천의 대신장 드리칸이 말했다. 무타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라.”
“비록 급하게 연 무투회이오나 그래도 대천계 최강의 군단장들이 결투를 벌이는만큼 우승자에게는 큰 포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생각한 포상이라도 있느냐?”
“대천신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이번 무투회의 포상은 대신장들이 준비하는 게 좋다 생각됩니다. 소신은 신력석 1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동천의 대신장 블란디오와 서천의 대신장 소노루도 흔쾌히 수락했다.
“소신 역시 신력석 1개를 내놓겠습니다.”
“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리오니스가 한숨을 내쉬며 신력석 1개를 빼들었다.
“그럼 소신도 어쩔 수 없겠지요.”
무타티오가 껄껄 웃었다.
“대천신인 내가 군단장들의 용맹스러운 결투에 어찌 포상을 아끼겠느냐? 이번 결투의 우승자는 품계를 높여주겠다. 또한 신력석은 대신장들이 준비했으니 나는 신수석 2개를 내놓도록 하지.”
“역시 대천신이십니다.”
대신장들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리오니스를 제외한 다른 대신장들은 이 순간 들떠 있었다.
다르칸은 당연히 자신의 부하인 아제라스가 우승할 것이라 확신했다.
반면에 블란디오와 소노루는 자신들의 부하인 넬칸과 카드안도 그 못지 않다 여겼다.
‘승부는 붙어봐야 알지. 넬칸이 우승할 것이다.’
‘카드안의 진정한 실력을 알면 다들 놀라겠지.’
그들과 달리 리오니스는 상훈이 그저 최선을 다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막 군단장이 되었는데 혹시라도 패배로 인해 기 죽거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녀는 상훈이 이번 무투회에서 패배할지라도 꿋꿋이 버티며 더욱 강한 천신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때 소노루가 말했다.
“우승자에 대한 포상이 있으면 패배자에 대한 징벌도 있어야 한다 생각하옵니다. 패배자에게 확실한 징벌이 있어야 군단장들이 사력을 다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징벌이라. 어떤 징벌을 주었으면 하는가?”
“품계를 낮추고 군단장 직위를 박탈해야 마땅합니다.”
그러자 무타티오가 고개를 흔들었다.
“패배자에게는 패배 자체만도 충분히 징벌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품계를 낮추고 직위를 박탈한다면 그는 좌절하고 말겠지. 그것은 곧 대천계의 유능한 천신 하나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나는 우승자에게 과한 포상을 내려 승리를 축하하는 것 외에 패배자에게는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을 것이다.”
“대천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소노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리를 숙였다.
그런 그를 보며 무타티오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한심한 녀석 같으니! 대신장이라는 녀석이 저리 옹졸해서야.’
무타티오가 이 급작스러운 무투회를 허락한 것은 사실 상훈을 위해서였다.
다르칸을 비롯한 대신장들은 무투회를 통해 상훈을 조롱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리오니스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지만,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그는 이미 대천궁 소속 천신들의 분석을 통해 상훈이 데라수스를 단신으로 상대해 격파할 만큼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분명 이번 무투회의 승자는 상훈이 될 것이다.
그 승리를 명분으로 상훈의 품계를 4품으로 올려준다면 더 이상 다수의 천신들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무엇보다 최강 군단장으로서의 명예는 향후 상훈의 입지를 튼튼하게 해줄 것이다.
‘리오니스와 전상훈이 함께 하면 북천을 위협하는 세 개의 대마역을 쓸어버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대신장 리오니스와 군단장 상훈의 조합!
이는 단순히 북천이 안정되는 것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지난 천 년 동안 방어에만 주력했던 대천계가 대마계를 향해 공세(攻勢)를 취하게 될 일대 전환기가 온 것이다.
빼앗겼던 천역도 되찾을 뿐 아니라 대마계의 세력을 대폭 위축시킬 절호의 기회!
무타티오는 상훈이 그 선봉에 서게 될 존재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다르칸, 블라디오, 소노루 등은 그런 큰그림은 보지 못하고 그저 대천계에서 자신들의 세력만 강화시키려고 하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정같아서는 그 셋을 싹 정리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방대한 대천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이 있어 남천, 서천, 동천을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
못마땅한 부분이 많아도 최대한 천신들을 화합시키며 대천계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이 대천신으로서의 사명.
그런 그에게 있어 혜성처럼 등장한 상훈과 같은 존재는 기껍지 않을 수 없었다.
* * *
무투회의 첫 번 째 결투.
먼저 남천의 제 1군단장 아제라스와 서천의 제 1군단장 카드안의 승부였다.
스스스.
상상 결계의 전장에서 둘은 마주섰다.
대검 신병을 손에 쥔 아제라스는 누가 봐도 강해보였다.
또한 방패와 한손 검으로 무장한 카드안 역시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아제라스의 승리였다.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아제라스가 카드안을 계속 몰아붙이더니 그 기세가 이어졌고, 결국 카드안은 아제라스의 대검에 목이 날아가고 말았다.
두 번째 전투는 상훈과 동천의 제 1군단장 넬칸.
다들 당연히 넬칸에게 상훈이 맥없이 당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상훈이 돌진해 휘두른 검이 넬칸을 두 쪽 내버렸다.
1초! 아니 0.1초도 안 결렸다.
그냥 넬칸이 허수아비처럼 서있는 걸 상훈이 가서 베어버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넬칸은 패배했다.
“오오!”
“저럴 수가!”
“믿기지 않는군.”
대천궁의 대전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무타티오는 미소지었고, 리오니스는 감탄했다.
드리칸과 소노루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고, 동천의 대신장 브란디오는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자신의 부하가 저리 맥없이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최후의 승자를 가려야겠군. 아제라스! 전상훈! 건투를 빌겠다.”
아제라스와 상훈은 무타티오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상상 결계의 전장으로 진입했다.
스스스.
아제라스는 상훈이 보이자마자 달려와 대검을 휘둘렀다.
그냥 평범하게 휘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일격에 그가 가진 신력과 신공의 모든 것이 다 녹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상황에서 그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절묘하게 빠른 움직임!
아제라스는 자신의 이 일격이 상훈을 단번에 쪼개버릴 것을 의심치 않았지만.
푸화아아악!
그보다 빨리 상훈의 검에서 피어난 푸른 광채가 아제라스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다.
“크윽!”
그것이 끝이었다. 아제라스의 몸은 광채에 뚫리다 못해 녹아버렸으니까.
스스스.
상상 결계가 사라졌다.
상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전에 서 있었고, 그 앞에 있던 아제라스는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천의 대신장 다르칸 또한 큰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제라스를 한심하다는 듯 힐끗 노려보던 그는 이내 상훈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블란디오와 소노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상훈의 전투력이 다른 군단장들을 압도할 만큼 강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대천신 무타티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상훈이 마지막에 펼친 신공을 단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고대 대천신 디파운님의 조화검신공이라니!’
검신병(劍神兵)을 통해 펼쳐내는 극강의 신공!
이는 대천신들의 신공들 중 최상위에 위치한 전설적인 신공이었다.
무타티오는 상훈이 고대 대천신 중 한 명의 진전을 이은 줄은 알았지만, 설마 디파운과 인연이 닿았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볼 때 상훈의 조화검신공이 최소한 6단계에는 이르렀다는 것!
마지막에 아제라스를 단번에 날려버린 검격은 조화검신공이 6단계에 이르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전상훈의 전투력은 대신장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상훈이 이미 조화검신공을 10단계까지 대성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의 위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여의신공은 펼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상훈이 100개가 넘는 고대 대천신의 신공들을 모두 대성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타티오라 해도 기절초풍하고 말 것이다.
“무투회의 승자인 전상훈은 앞으로 나오라.”
상훈은 곧바로 무타티오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무타티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미 말한대로 무투회의 승자인 전상훈의 품계를 높여주겠다. 이후로 전상훈은 북천의 제 6군단장이자 제 4품 천신이 되었음을 모두에게 선포하노라.”
단번에 2단계가 상승해 4품 천신으로!
그러자 리오니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반면에 다르칸 등은 떨떠름한 듯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그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상훈의 전투력이 4품 천신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이곳 대전에 있는 모든 천신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강의 군단장이라는 명예를 얻은 이상 위화감 조성과 같은 걸로 승품을 반대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다르칸은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상훈을 축하해주었다.
“하하하! 축하한다. 이것은 무투회의 승자에게 주는 나의 성의이니 받으라.”
약속대로 다르칸은 신력석 1개를 상훈에게 건넸다. 블란디오와 소노루 또한 최대한 호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신력석을 1개씩 건넸다.
“북천에 용장이 탄생했군.”
“그대가 있어 대천계의 앞날이 밝구나.”
신력석이 무척이나 아까운 듯 손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표정관리를 하려 애썼다.
반면에 리오니스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신력석을 건넸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북천의 위상을 높여주어 고맙구나.”
또한 무타티오 역시 크게 기뻐하며 신수석 2개를 건넸다.
“아주 훌륭했다. 하나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신공의 단계를 높여나가길 바란다. 그것이 네게 진전을 남겨주신 분의 바람일 것이다.”
“명심하겠사옵니다.”
상훈은 무타티오가 조화검신공을 알아봤음을 알고는 미소 지었다.
“그보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라.”
“소신은 비록 4품 천신이 되고 북천의 제 6군단장이 되었지만 지금처럼 북천의 북동부 최전방 지역에서 대마계의 마신들을 상대하고 싶습니다. 부디 후방으로 저를 부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무타티오가 리오니스를 쳐다봤다. 리오니스는 미소 지었다.
“그거야 오히려 소신이 바라던 것이옵니다. 전상훈과 같은 용장이 그곳에 버티고 있으면 제 7 대마역은 더 이상 북천의 북동부 도발을 감행하지 못하겠지요.”
“나의 생각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북천이 수세만 취하고 있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
무타티오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하나의 깃발을 꺼내 상훈에게 하사했다.
“받으라!”
“이것은······!”
“대천신기(大天神旗)다. 마역을 점령한 후 그 중심에 이 깃발을 꽂으면 그곳이 천역으로 변할 것이다.”
상훈은 깜짝 놀랐다. 설마 무타티오가 대천신의 깃발을 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는 마역을 천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깃발인 만큼 오직 대천계의 대천신만이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도한 신력이 소모되는터라 지금껏 대신장들에게만 하나씩 주었을 뿐이다.
따라서 군단장인 상훈에게 대천신기를 내린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처사였다.
“제 7 대마역의 5군단장 데라수스가 죽었다고 대마계의 북천 도발 의지가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도발해올 가능성이 높을 터, 나는 전상훈을 선봉으로 하여 대마계를 침공하고자 한다. 천 년 전 대마계에게 빼앗겼던 북천의 일부를 이 기회에 되찾고 말겠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대마계 침공이라니!
무타티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대신장들도 깜짝 놀랐다.
“어차피 대마계가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모르는 천신은 없을 것이다. 그 전장이 대천계가 되면 수많은 천역들이 초토화될 터, 나는 차라리 우리가 선공을 하여 대마계의 마역들을 초토화시키고자 한다.”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북천 뿐만이 아니다. 모든 대신장들은 더 이상 방어만 하지말고 대마계의 마역들을 점령해 천역으로 만들라.”
대천계의 대천신 무타티오가 대마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