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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대천신의 선포 (1) (13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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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신의 선포 (1)

[대마계 제 7대마신장 카두라스 휘하 제 5군단인 데라수스의 군단을 그대가 격파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대의 뛰어난 용맹과 위용에 찬사를 보낸다.

북천에 그대와 같은 천신이 있다는 것이 실로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부디 앞으로도 계속 북천에 남아 대마계의 마신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대신장 리오니스]

[추신 – 지난 번에 에메스를 통해 보내준 정성이 깃든 아이스 카페라떼는 아주 맛있게 잘 마셨다.]

그와 함께 동봉된 선물은 놀랍게도 신력석이었다.

신계의 보물이라 불리며 신들의 신력을 높여주는 신비한 돌.

‘이런 걸 내게 주다니 뜻밖이군.’

그런데 사실 신력석은 신력이 아주 높은 신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신력이 낮은 신은 신력석을 통해 많은 신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신력이 높을수록 신력석의 효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상훈은 이제 어지간한 대천신급의 신력을 가진터라 사실 신력석을 먹으나마나였다.

리오니스가 희귀한 신계의 보물인 신력석을 내준 이유는 안봐도 뻔했다. 상훈이 앞으로도 북천에 머물며 그녀를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다른 대신장들에 비하면 가장 괜찮은 편이긴 하지.’

리오니스는 상훈이 이곳 대천계에서 그나마 괜찮게 생각하는 천신이긴 했다. 따라서 굳이 사천 중 한 곳을 선택하려면 북천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이곳에 있을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그녀의 밑에서 북천이나 지키며 살 생각은 없었다.

‘신력석은 일단 아공간에 넣어두자.’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술이라도 좀 보내주는 게 좋겠군.’

고대 선신의 무덤에서 고대 대천신들이 정성이 깃든 술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이 떠올랐다. 리오니스도 술을 좋아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보내보기로 했다.

‘안 마시면 부하들에게라도 나눠주겠지.’

곧바로 상훈은 아공간에서 정성 4단계 과실주 1병과, 정성 1단계 소주 100병, 그리고 막걸리도 100병을 꺼냈다.

또한 정성 1단계 아이스 카페라떼 100잔도 꺼냈다.

리오니스가 서신의 추신에 맛있게 마셨다고 남겨놨으니 이것도 빠뜨릴 수가 없었다.

“리오니스님께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라. 그리고 이것들은 내가 보내는 답례품이니 그 분께 가져다 드리도록 해.”

그러자 전령 천사 루아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신계의 존재이다보니 정성이 깃든 아이템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신 르디넬 또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맙소사! 정성이 깃든 술이라니! 리오니스 님이 보시면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그 분이 술을 좋아하시나 보군.”

“전쟁 중에는 거의 안드시지만 평시에는 무척이나 즐겨드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잘됐네.”

상훈은 미소 지었다. 신력석을 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약소하기는 하긴 하지만 그래도 예의는 확실히 차린 것이니까.

전령 천사가 돌아간 후 상훈은 대전을 나와 궁전을 산책했다.

신수 공작새와 장난을 치며 기린이 뛰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워낙 작고 귀엽게 생긴 녀석들이라 누구든 저것들이 가공스러운 능력을 지닌 신수라는 걸 알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상훈이 나타나자 즉각 달려와 상훈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댔다.

“궁주님! 대천궁에서 천신 에메스님이 오셨습니다.”

르디넬의 말에 상훈은 다시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금발에 푸른 날개를 가진 여신 에메스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더군요, 전상훈님. 지금 대천궁은 당신이 데라수스의 군단을 격파한 것으로 떠들썩하답니다.”

평소와 달리 그녀는 상훈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무척이나 정중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상훈이 놀라자 에메스가 대답했다.

“이제 당신의 품계는 저로서는 바라볼 수 없는 높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무타티오님께서 당신을 제 6품 천신이자 북천의 제 6군단장으로 임명하시겠다고 하셨거든요.”

1품에서 6품까지를 최상급 천신이라 칭한다.

상훈은 단번에 하급 천신에서 최상급 천신이 된 것이었다.

24품에서 단번에 6품으로 무려 18단계를 껑충 뛰어올랐으니 대천궁이 떠들썩할 법했다.

“그렇군요. 조용히 있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러자 에메스가 황송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더 이상 제게 존대하지 마시고 하대해주세요.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상훈은 끄덕였다. 이런 거야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일이니까.

“좋아, 에메스. 비록 내가 품계는 높아졌지만 이전처럼 나에게 친숙하게 대해주길 바란다.”

그나마 상훈이 대천계에서 유일하게 친한 신이 에메스였다.

갑자기 상훈이 높은 신분이 되어 그녀가 어려워 찾아오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섭섭할 것이다.

물론 에메스는 워낙 붙임성이 좋은 여신이다보니 상훈이 최상급 천신이 되었다는 이유로 멀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염려마세요. 저는 대천신 무타티오님도 자주 찾아뵙는 걸요. 군단장님께도 심심하면 찾아올 테니 맛있는 것 많이 주세요.”

“맛있는 것?”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 같은 맛있는 음료를 또 마실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죠.”

이 말은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를 한 잔만 달라는 소리였다.

상훈은 흔쾌히 아공간에서 그것을 한 잔 꺼내 주었다.

“마셔라.”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아직 정식으로 임명된 것도 아닌데 군단장은 무슨.”

“무타티오님이 이미 결정하셨어요. 형식적인 절차가 남아있을 뿐 당신은 이미 6품 천신이자 북천의 군단장이십니다.”

“제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고 하지 말아야 하는데.”

“군단장이 되시면 좀 더 안전한 천역으로 가는 게 당연한 일이예요.”

“난 여기가 좋아. 그러니 네가 가서 무타티오님께 잘 말씀드려라. 6품이건 군단장이건 다 할 테니 그냥 날 여기에 놔두라고 말이야.”

그러자 에메스가 미소 지었다.

“그건 직접 뵙고 말씀드리는 게 어때요? 어차피 지금 군단장님도 대천궁으로 가셔야 하거든요.”

“그럼 여기는 누가 지키고?”

“대천궁 소속의 상급 천신들이 잠시 후면 올 거예요. 대마계에서 북천의 동북부를 노리고 있음을 알게된 이상 이곳은 이제 군단장님만의 전장이 아니랍니다.”

결국 대천궁에서 지원군을 파견하겠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하긴 자칫하면 북천의 일부를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이니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좋아. 그럼 대천궁으로 가자. 내가 직접 무타티오님과 담판을 벌이는 게 좋겠지.”

“아마 곧 그곳으로 리오니스님도 오실 테니 그 분과도 잘 상의해 보세요.”

“알았어.”

상훈이 북천의 군단장이 되면 대신장 리오니스가 직속 상관이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후 대천궁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상훈은 즉시 에메스와 함께 대천궁으로 이동했다.

* * *

대천계 대천궁의 대전.

대천신 무타티오는 엄숙한 표정으로 상훈을 비롯한 천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천신 전상훈의 품계를 6품으로, 또한 그를 북천의 제 6군단장으로 임명하겠노라!”

이 자리에는 북천의 대신장 리오니스를 비롯한 4대신장들을 비롯해 대천계의 최상급 천신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다수가 이번 상훈의 파격적인 승품을 반대했다.

특히 상훈이 북천의 군단장이 될 것을 알게 되자 남천의 대신장 다르칸, 동천의 대신장 블란디오, 서천의 대신장 소노루를 주축으로 상훈의 승품이 너무 파격적이라며 강력히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타티오는 그들의 주장을 일축시켰다.

대마계의 일개 군단을 혼자서 패퇴시킨 상훈의 공로 정도면 본래 4품 천신이 되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단장의 직위는 대신장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라, 북천의 대신장 리오니스가 상훈을 군단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래도 반대의견이 너무 많은 터라 무타티오는 상훈의 품계를 최상급 천신 중에서는 가장 낮은 6품으로 올려준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다르칸 등의 표정은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져 있었다.

“소신은 아직도 믿기지 않사옵니다. 신입 천신인 전상훈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어찌 혼자서 데라수스의 군단을 패퇴시킬 수 있었겠사옵니까?”

2품 천신이자 동천의 대신장 블란디오가 결국 다시 불만을 터뜨렸다.

무타티오가 블란디오를 노려봤다.

“나는 이미 대천신의 권위를 발동해 전상훈을 6품 천신이자 북천의 군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그대는 지금 나의 뜻에 불복하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옵니다. 다만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진 이들이 대천계에 적지 않을 것은 분명하옵니다. 하오니 전상훈이 과연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아니면 뭔가 흉계를 꾸며 전공을 조작했는지에 대해 소상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밝히자는 것인가?”

그러자 블란디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지요. 각 대신장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과 상상결계의 전투를 통해 대결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순간 1품 천신이자 남천의 대신장인 다르칸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소신 또한 그 말이 맞다 여기옵니다. 대마계가 끝도없이 대천계를 도발하는 이때에 천신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사천의 군단장들 중 누가 가장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 무투회를 여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에 북천의 대신장 리오니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들을 노려봤다.

“지금 북천은 전쟁 중이다. 무투회나 열만큼 한가한 상황인 줄 아는가?”

“북천 뿐 아니라 동천과 서천, 남천도 전쟁 중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대천계가 언제 한시도 전쟁 중이 아닌 적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럴수록 사기 진작을 위해 군단장 무투회를 열어 우승자에게는 포상을 주고, 자격 미달자는 직위에서 박탈하거나 품계를 낮추는 등의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옵니다.”

리오니스를 제외한 3명의 대신장들이 군단장 무투회를 열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는 북천에서 대신장 리오니스를 제외하면 그 아래있는 군단장들의 전투력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었다.

군단장 무투회가 벌어지면 리오니스 휘하의 군단장들은 다른 대신장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에게 대부분 패배하고 말 것이다.

북천군의 사기가 대폭 저하될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따라서 본래라면 당연히 군단장 무투회가 열려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천신 무타티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로군. 하지만 사천의 모든 군단장들이 다 참여하는건 번거로우니 각 대신장이 자신의 군단 중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군단장을 한 명씩 추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것도 나쁘지 않사옵니다.”

다르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휘하에 있는 군단장들은 대천신과 대신장들을 제외하면 대천계 최강의 천신이라 불리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무타티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북천에서는 이번에 신임 군단장이 된 전상훈을 내보는 게 어떤가? 모두들 그의 전투력에 대해 의심을 하니 이 기회에 더 이상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야.”

“그건······.”

리오니스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직 상훈이 싸우는 장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데라수스 군단을 격파한 것만 따지면 북천의 군단장 중 가히 최강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전투 경험이 많은 군단장들보다 상훈이 더 강할지는 속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천신 무타티오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녀가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대천신의 뜻이 그러시다면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급작스럽게 대천궁에서 군단장 무투회가 벌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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