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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북천의 최전방 (2) (12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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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의 최전방 (2)

“오랜만이군요, 에메스님.”

상훈이 인사하자 에메스가 미소 지었다.

“네. 오랜만이네요. 눈빛과 달라진 기세를 보니 고대 대천신 중 누군가의 진전을 이은 것 같군요.”

“물론입니다.”

“축하해요! 그럼 이제 그대는 더 이상 신입 선신이 아니예요. 교육은 오늘로 종료되고 정식 선신이자 천신이 되었어요.”

“그렇군요.”

에메스와는 2년 만에 만난 것인데도 마치 어제 만났다 다시 만난 것처럼 친숙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상훈은 자신이 고대 선신의 무덤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이 2년이 훌쩍 지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지구에 있는 그의 아바타가 가진 기억을 읽어들였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지구에는 별 일 없었다.

가족들도 모두 무사할 뿐 아니라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다.

물론 지구 내부에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끊임이 없지만 초월적 영역 이상에서 지구에 뭔가 위기가 찾아오거나 한 적은 없었다.

선신들이 지구를 지켜주기 때문이었다.

또한 혼돈자 베누스가 지키고 있는 불멸계 역시 무사했다.

상훈은 불멸계에 직접 가지 않아도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다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상훈이 창조한 시스템 세계이니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그 사이 혼돈자 몇 녀석이 불멸계를 공격하려 했군. 그들을 에메스가 쫓아버렸고.’

불멸계에서 있었던 일이 자연스럽게 상훈의 기억 속으로 들어오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불멸계를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에메스님.”

그러자 에메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에메스님이 아니었다면 불멸계는 무사하지 못했겠지요.”

20품 천신인 에메스에게는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혼돈자들을 쫓아버릴 수 있으니 아주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멸계는 지금쯤 어떤 지경에 처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오죽하면 상훈은 에메스의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메스는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제가 그대에게 받은 선물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에메스는 상훈에게 받은 정성 4단계 머리장식과 정성 5단계 팔찌를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것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그녀의 미모는 더욱 돋보였다.

정성 아이템이 발하는 신비한 빛 때문이었다.

“이건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라는 겁니다. 좀 달긴 하지만 정성이 깃들어 있어서 맛이 괜찮으니 한 잔 드세요.”

상훈은 아공간에서 그것을 꺼내 에메스에게 내밀었다.

상대에게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게 줄 수 있는 1단계 정성 음료.

그래서인지 에메스는 반색하며 받았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에메스는 스트로우를 통해 캬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며 무척이나 맛있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이곳 대천계에는 별 일 없었나요?”

“크고 작은 전쟁이야 항상 있는 일이죠. 요즘 들어 대마계의 마신들이 이전보다 작정을 하고 전쟁을 걸어오는터라 대천신 무타티오님도 여러모로 골머리를 썩고 계세요.”

“그럼 난 당장 전장으로 가야겠군요.”

상훈에게는 전쟁이 반가운 일이었다. 잠재력을 신력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말이다.

그러자 에메스가 살짝 탄식하며 말했다.

“본래 저는 그대의 성적이 매우 뛰어난만큼 저와 같은 대천궁 소속의 천신으로 추천했지만 그게 어렵게 되었어요. 최근들어 대마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이유로 그대는 대천궁이 아닌 북천으로 가게 될 거예요.”

“전쟁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곳인가 보군요.”

“네.”

상훈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얘기였다.

만약 에메스의 추천대로 대천궁에 배속되었다면 할 일없이 행정업무나 보고 있어야 할 판이었으니까.

“북천은 매우 광활한 공간이지만 그곳을 지키는 천신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마신들이 많이들 출몰하는 곳이죠. 그래도 리오니스 님이 북천의 대신장이 되신 이후에는 지금껏 한 번도 북천이 크게 위기에 처한 적은 없어요.”

에메스는 아공간에서 환하게 빛나는 두루마리를 한 장 꺼냈다.

“받으세요.”

“이게 뭐죠?”

“발령장이에요. 본래라면 북천의 대신장궁에 가서 직접 리오니스님께 받아야 하지만, 지금 북천은 전쟁 중이라 대신장 리오니스님은 물론이고 그 이하 최상급, 상급 천신들도 모두 출전한 상태이죠. 그래서 제가 대신해서 당신께 발령장을 가져왔어요.”

“당장 출전하는 겁니까?”

상훈은 기대감이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당장은 아니예요. 하지만 이미 마신들을 해치운 공적이 있는 그대이니 머지않아 출전의 기회가 주어지겠죠. 그때까지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고 있으면 돼요.”

“제 임무가 뭔데요?”

그러자 에메스는 조금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가 담당할 천역(天域)이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유쾌한 임무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버티시고 어떻게든 공을 세우셨으면 해요. 대천신 무타티오님도 그걸 바라고 계신답니다. 그래야 그대의 품계를 높여도 최상급 천신들이 반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에요.”

“대체 무슨 임무인데요?”

“그건 그대의 천신궁에 가면 알게 돼요.”

에메스는 차마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침묵하며 대천궁의 중앙 포탈을 통해 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북천의 한 천역에 위치한 부유섬이었는데, 그 섬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궁전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이 궁전이 바로 그대가 머물 천신궁이예요.”

“꽤 화려하군요.”

“그리고 이곳 천역은 그대의 관할 구역이예요. 인간들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영지라고 해야겠죠. 이곳 궁전은 그대의 성이라 할 수 있고요.”

상훈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이곳은 북천의 광활한 천역들 중 24품 천신인 상훈에게 주어진 영역인 것이다.

“자세한 건 궁전 안에 있는 그대 직속의 선신이나 천사들이 설명해줄 거예요. 저의 임무는 그대를 여기까지 안내해주는 것이니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여러모로 신세 많이 졌습니다, 에메스님.”

“뭘요? 뭐든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없이 저를 찾아주세요.”

에메스는 빙긋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더니 대천궁으로 귀환했다.

* * *

천신궁(天神宮).

이는 대천계에 속한 천신들이라면 아무리 품계가 낮아도 주어진다.

상훈이 비록 24품 말단이지만, 그 역시 엄연히 천신이니 천신궁에서 지내는 것은 당연했다.

“위대하신 천신 전상훈님을 알현하옵니다. 저는 이곳 천신궁에서 당신을 보좌할 선신 르디넬입니다.”

은발의 미청년 르디넬.

그는 이곳 천신궁에 소속되어 있는 단 한 명의 선신이었다.

선신들은 천신들과 달리 따로 궁전이 주어지지 않고 자신이 소속된 천신궁 안에 있는 전각에서 지내야 했다. 선신의 거처인만큼 그 전각도 제법 화려하고 멋지지만 그래봤자 천신궁을 이루는 수많은 건물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르디넬.”

“궁주님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선신이 되자마자 그 즉시 천신에 임명되셨을 뿐 아니라 교육 훈련 중에 마신 다섯 명과 악신 일곱 명을 해치우셨다니! 저를 포함한 수많은 선신들에게 궁주님은 전설적 존재입니다.”

“별일 아니었으니 그리 추켜세우지 마라.”

상훈은 미소 지었다.

그보다 궁주라!

천신궁의 주인이니 궁주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성의 주인을 성주라 부르듯 말이다.

그간 각종 호칭을 다 들어봤지만 궁주라 불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이쪽은 천사 슬렛과 콜린입니다. 둘 다 천신궁의 각종 실무를 담당하고 있지요.”

르디넬은 두 명의 천사를 소개했다.

슬렛은 남성 천사이고 콜린은 여성 천사였다.

어깨에 환하게 빛나는 백색 날개를 달고 있는 그들은 중급 수준 혼돈자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천사 슬렛, 궁주님을 알현합니다.”

“천사 콜린, 궁주님을 알현합니다.”

그들에 이어 르디넬은 한 명의 미소녀를 소개했다.

“궁주님의 시종인 선녀 티아입니다.”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용모도 아름다웠지만 눈빛이 총명하게 반짝였고 기세도 심상치 않았다. 시종이지만 초급 혼돈자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신계에 들어오니 클래스 자체가 달랐다.

여기서는 시종도 혼돈자급 전투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래봤자 신들의 전쟁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궁극의 혼돈자를 넘어 그 경지까지 초월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신이기 때문이다.

혼돈자 수백이 모인다 해도 최하급 전투력을 지닌 신 한 명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좋아! 다들 반갑다. 그런데 설마 너희들이 다인 건 아니겠지?”

그러자 르디넬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들이 다입니다.”

천신궁의 규모는 가히 수 만 명을 다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그런데 현재 그 넓은 궁전에 달랑 넷뿐이라니.

물론 이제 상훈을 포함하면 다섯이었다.

“원래 천신궁이 다 이런 건 아닐 텐데?”

“물론입니다. 아득히 오래 전에는 이곳 천역에도 수백만이 넘는 천족들이 살고 있었고, 천신궁에도 일 만이 넘는 천족들이 거주했습니다. 이곳에 배속된 선신들만 수십 명에 천사들은 수 백, 선녀 시종들도 백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이 꼴이 된 거지?”

“북천의 일부가 대마계에 장악되며 이곳이 최전방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북천의 일부가 대마계에 넘어갔다고?”

“대략 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북천의 힘이 매우 약해 대마계에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다행히 리오니스님이 북천의 대신장이 되신 이후부터는 더 이상 대마계에 밀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천 년 전 빼앗겼던 천역을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사실 북천이 워낙 넓다보니 지금 있는 천역들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실정이라 천역을 다시 찾는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긴 합니다.”

르디넬이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궁주께서 오시자마자 이런 말씀을 드리기 그렇지만 따라서 언제든 철수할 태세를 갖추고 계셔야 합니다.”

“철수라고?”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오늘 발령받아왔는데 철수라니!

그런데 르디넬의 표정은 진지했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궁주님의 체면을 생각해 제가 신력으로 천신궁을 복구해 놓긴 했지만, 본래 이곳은 폐허 지역입니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북천에서 대마계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주요 길목이 수십 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마신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최전방의 천역! 이른바 죽음의 전장이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상훈은 그제야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일종의 초소같은 곳이군. 마신들이 나타나면 북천의 본부에 그 사실을 알리고 즉각 철수해야 하는 초소 말이야.”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경계의 수정구들이 배치 되어 있지요. 마신들이 나타나면 즉각 경고음이 울리니 그 즉시 철수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우레가 치는 듯한 경고음이 울렸다.

우우우웅-

<<긴급! 천역에 마신 부대가 출현했습니다!>>

그러자 르디넬이 흠칫 놀라더니 즉시 수정구를 꺼내 상훈에게 보여주었다.

[마신 부대]

-부대장 : 17급 마신 가란트

-구성 : 중급 마신 1명, 하급 마신 7명, 악신 24명.

“마신 8명에 악신 24명이나 되는 대규모 부대입니다! 본래는 서너 명 규모로 출몰하는데 32명이 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곳에 천신궁이 복원된 걸 보고 작정을 한 게 분명합니다.”

“빠르기도 하군.”

천신궁이 복원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쳐들어온다는 말인가?

“당장 북천의 본부에 보고하고 철수하겠습니다.”

르디넬은 다급해 보였다. 천사 슬렛과 콜린, 선녀 시종 티아도 모두 사색이 되어 있었다.

“기다려라.”

상훈은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르디넬이 다시 조급히 외쳤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저들은 이곳까지 5분도 안되어 도달할 것입니다.”

“철수 따위는 안한다.”

“예? 그럼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싸워야지.”

그 말에 르디넬뿐 아니라 천사 슬렛과 콜린, 시종 티아도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려 32명이나 되는 대규모 마신 부대가 쳐들어왔는데 싸운다니!

이쪽에 있는 신들은 천신 1명에 선신 1명뿐이었다.

“무모한 일입니다!”

르디넬이 기겁하며 만류했지만 상훈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수정구의 입체 지도를 통해 공간 좌표를 확인한 그는 이미 마신 부대의 앞쪽으로 이동한 상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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