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절대천신의 부탁 (1) (120/159)

 # 120

절대천신의 부탁 (1)

시대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고대.

지구가 속한 우주는 빅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선신계에 수백 개의 대천계가 속해 있었고, 마찬가지로 악신계에도 같은 숫자의 대마계가 존재했다.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던 선신계와 악신계가 급기야 대전쟁을 시작하게 되고.

그 전쟁은 두 절대자의 동귀어진으로 막을 내렸다.

선신계의 절대천신 벡사티오

악신계의 절대마신 케시우스

선신계에 있는 수백여 대천신 중 최강의 존재인 벡사티오와, 악신계의 수백여 대마신 중 최강의 존재인 케시우스가 동시에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대천신이나 대마신들과 구별하기 위해 절대천신과 절대마신으로 지칭되었는데, 이들이 사라지자 하나로 통합되었던 선신계와 악신계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 각각의 대천계와 대마계들은 알아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지금 상훈이 속해 있는 대천신 무타티오의 대천계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같은 신계의 고대 역사는 교육 훈련 중 에메스에게 들은 터라 상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특히 절대천신 벡사티오나 절대마신 케시우스의 존재는 신계에서도 그저 전설처럼 이어지는 내용이라 천신들조차 그들이 정말 실존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상훈은 그 전설 중 하나를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고대 선신의 무덤 26층에 존재하는 숲.

그 숲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돌산의 정상.

그곳에 있던 선신은 자신이 바로 벡사티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절대천신 벡사티오님이십니까?”

“절대천신이라는 말은 후대의 신들이 그냥 듣기 좋게 지어낸 말일 뿐 난 그저 대천신 중 하나였을 뿐이다.”

아득한 고대의 신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벡사티오의 외모는 20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려하면서도 강인한 절대자의 풍모!

저 아래 마을에 있던 일백 여 고대 대천신들은 벡사티오에 비하면 그저 평범한 선신에 불과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어쨌든 네가 이곳에 올랐다는 건 마을에 있는 대천신들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겠지. 너라면 나의 진전을 잇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저로서는 영광일 따름입니다.”

상훈은 가슴이 뛰었다.

역시나 마을에 있는 대천신들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기를 잘한 것이다.

그러자 벡사티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는 내가 생전에 가졌던 신력과 신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물론 신력은 네가 곧바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으로 남을 것이니, 이후 네가 꾸준히 노력하여 그것을 너의 진정한 힘으로 만들어야 하리라.”

“명심하겠습니다.”

곧바로 벡사티오의 가르침이 이어졌다.

그 역시 상상결계를 통해 자신의 여의신공(如意神功)을 전수했다.

“여의신공은 어떤 특별한 무기의 형태와 관계없이 신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신공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신공과 동시에 펼칠 경우 그 신공의 위력을 증폭시켜줄 것이다.”

다른 신공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신공이라니!

즉, 디파운의 조화검신공을 여의신공과 함께 펼칠 경우 신력을 아끼면서도 조화검신공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진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여의신공의 진정한 위력은 다른 신공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니, 네가 마을의 대천신들에게 신공들을 전수받지 않았다면 이 자체로는 별 위력을 낼 수 없는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푸른빛의 검 한 자루를 상훈에게 건넸다.

은은한 푸른 색을 띠고 있어 겉으로 보기엔 그리 대단한 무기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그 어떤 무기로도 변환이 가능한 절대천신 벡사티오의 절대신병인 여의천병(如意天兵)이었다.

“스승님과 이 여의천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신명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상훈은 여의천병을 받는 순간 가슴이 세차게 뛰는 듯했다.

드디어 그에게도 신병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어떤 형태로도 변환이 가능한 절대신병!

이로써 그는 여의천병을 변환시켜 대천신들에게 전수받은 100여 가지 신공을 모두 실전에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너에게 모든 신력을 전해 주기 앞서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고자 한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스승님.”

상훈은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실제로 그의 진심이었다.

상훈에게 신력과 신병을 넘겨주게 되면 이제 벡사티오는 진정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곳 고대 선신의 무덤에서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상훈에게 모든 걸 전해주고 그는 소멸되는 것이다.

그런 스승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저 틈새가 보이느냐?”

벡사티오는 돌산 멀리에 보이는 웬 틈새를 가리켰다. 그곳 저편에는 알 수 없는 붉은 산이 보였다.

“보입니다.”

상훈은 깜짝 놀랐다.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틈새였다.

본래 이곳 공간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작은 산 크기의 숲 정도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 안에 마을이 있고 숲의 중앙에 이곳 돌산이 존재했는데, 언제 저런 괴상한 틈새가 생겨난 것일까?

더구나 그 틈새 너머의 붉은 산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심상치가 않았다.

“저곳이 어딘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다만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건대 좋은 곳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것이다. 저곳은 바로 고대 마신의 무덤 최상층이기 때문이지.”

그 말에 상훈은 깜짝 놀랐다.

고대 선신의 무덤이 아닌 고대 마신의 무덤이라니!

그것도 최상층이라면?

“설마 고대 대마신들이 있는 곳입니까?”

“그렇다.”

벡사티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 아득한 세월 동안 별도의 위치에 존재하던 이 두 공간을 겹쳐지게 만드는 것은 말이야.”

“그럴 수가! 그럼 저곳으로 건너가면 대마계가 나온다는 뜻입니까?”

“그냥 무덤의 최상층만 잠시 겹쳤을 뿐 저곳을 통해 대마계로 나가는 것이 가능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고대 대마신들을 만나는 건 가능하다는 것이지.”

벡사티오는 탄식하며 말했다.

“너에게 과연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나로서도 잘하는 일인지 알 수 없구나. 그러나 이후에 다시 닥칠 신계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계에 대재앙이 일어난다는 뜻입니까?”

“네가 나의 진전을 이은 것처럼 머지않아 절대마신 케시우스의 진전을 이을 대마신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그때 신계는 고금에 없던 끔찍한 전란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신계에 존재하는 신들은 물론이고, 초월자, 혼돈자, 심지어 모든 차원계에 존재하는 하부 세계들까지 모조리 다 멸망하게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큰일이군요.”

상훈은 전쟁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신계의 큰 전쟁으로 하부 세계가 다 멸망해버린다면 그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

“하여 내가 네게 하고자 하는 부탁은 네가 저 틈새 너머로 건너가서 절대마신 케시우스의 진전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 순간 상훈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스승 벡사티오의 입에서 너무도 황당한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혹시 농담이 아닌가 했지만, 벡사티오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너라면 절대마신의 여의마신공을 익혀도 사악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신계의 모든 악신과 마신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너의 그 뜻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니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다. 여의신공을 운공하면 너의 신력을 선신이 아닌 마신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여의신공에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을 줄이야.

선신이 악신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을 이용해 너는 신입 악신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곳에서는 네가 진짜 악신인 듯 행동해야 의심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마신들의 인정을 받은 후 절대마신 케시우스의 진전을 이어라. 그 이후에 네가 가진 압도적인 능력으로 악신계를 모조리 쓸어버리면 신계에 우려했던 끔찍한 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다.”

상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허무맹랑한 계획이지만 그대로만 실현된다면 악신계를 모조리 쓸어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하겠습니다.”

“나는 지금껏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특별한 힘으로 저쪽에서 이곳을 보지 못하게 막아두었다. 따라서 아직 케시우스 역시 고대 신들의 무덤이 서로 연결된 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벡사티오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잠시 후 내가 너에게 신력을 다 전해주고 나면 결국 저 봉인된 틈새가 드러나 저쪽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될 터, 나는 죽기 직전 저 틈새를 영원히 없애버리고자 한다.”

“그게 좋겠군요.”

“그리고 나의 신력은 봉인된 구슬 형태로 너의 아공간에 보관될 것이다. 신력을 너의 몸에 주입하게 되면 케시우스를 비롯한 대마신들의 눈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의천병 또한 너는 아공간에 봉인해두고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

“예. 염려마십시오. 하지만 그 전에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인지 해보거라.”

상훈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스승님께 마지막으로 정성이 깃든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잠시 저의 아공간을 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긴 그러고보니 정성이 깃든 술과 음식을 먹어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구나.”

벡사티오는 흔쾌히 상훈이 아공간을 열 수 있게 해주었다.

상훈은 그 즉시 4단계 정성이 깃든 과실주 한 병과 5단계 정성의 요리 세 접시를 꺼냈다. 3단계 정성이 깃든 술잔과 포크도 잊지 않았다.

1단계와 달리 4단계 정성 술은 그리 많지 않지만, 스승 벡사티오와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아끼겠는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스승님.”

“하하하! 정성이 가득한 훌륭한 술이로군. 내가 마지막 순간에 이토록 멋진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제자를 아주 잘 둔 것 같구나.”

상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벡사티오가 마지막 술잔까지 마시는 걸 지켜봤다.

“한 병 더 마시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니 여기서 그만 끝내도록 하자꾸나.”

잠시 후 벡사티오는 자신의 신력을 구슬의 형태로 응축시켜 상훈에게 건넸다. 상훈은 벡사티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아공간을 연 후 그 안에 신력의 구슬과 여의천병을 넣었다.

“되었다. 이제 나는 잠시 후 이곳에서 소멸될 것이다. 너에게 무거운 짐을 떠넘기고 가게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만, 네가 잘 해낼 것이라 믿기에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기도 하구나.”

“스승님······.”

상훈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한 마음을 느꼈다.

상훈에게 있어 진정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벡사티오와 잠시 후면 영원히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나는 이제야 진정한 신들의 안식처인 영천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신들의 안식처인 영천(永天)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훈도 벡사티오로부터 들어 알게 되었다.

무덤에서 자신의 진전을 후대의 신에게 모두 넘겨준 신들만이 갈 수 있는 안식처.

그러나 아무나 갈 수 있는 건 아니라 했다.

신들 또한 신들의 행적에 대해 심판을 받고 그 중에서 자격이 되는 이만 영천에 오르고 그 외에는 소멸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악신이나 마신들은 영천에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고, 심지어 선신이나 천신들 중에서도 소수만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언제고 저 또한 그곳에서 스승님을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벡사티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지금처럼 악신과 마신들을 쓸어나간다면 영천은 이미 너의 집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나는 네가 그곳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 영원히 이곳에 남아 악신들과 마신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구나.”

영천은 죽은 신이 가는 곳이다.

즉, 상훈이 영천에 가게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패배해 죽었을 때의 얘기다.

그런데 절대천신의 진전을 이은 상훈이 패배한다는 건 악신계에 그야말로 가공스러운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대재앙이었다.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

상훈은 두 눈을 강렬히 빛냈다.

“절대 패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의 명,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너를 믿겠다. 이제 여의신공을 운공한 후 내가 일으키는 바람에 몸을 맡겨라.”

“예, 스승님.”

상훈은 마지막으로 공손히 절을 한 후 일어섰다.

곧바로 벡사티오가 상훈에게 미량의 신력을 불어넣었다. 상훈이 스스로 신력을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 그것으로 여의신공을 운공해야 했다.

“이제 너는 스스로를 악신이라 생각해라. 그것도 최악의 악신 말이야. 그래야 너의 신력이 사악한 기운으로 바뀔 것이다.”

“예.”

상훈의 두 눈에서 사악해보이는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것을 본 벡사티오가 즉시 손을 휘저었다.

휘이이잉-

갑자기 세찬 바람이 일어나 상훈의 몸을 아득한 붉은 산이 있는 쪽으로 날려버렸다.

그와 함께 다시 찬란한 빛이 일어나더니 두 개의 공간을 연결했던 틈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돌산의 정상 위에 있던 벡사티오의 모습도 사라졌다.

다만 찬란한 광채가 한동안 돌산 위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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