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돌산에 오르다 (2)
“보시는 대로 정성이 깃든 술들입니다.”
상훈은 맥주와 막걸리 병을 근처의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디파운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것들을 살피더니 말했다.
“정말로 내게 이 술들을 주겠다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그러자 디파운이 막걸리 뚜껑을 열어 살짝 한 모금 마시고는 눈을 감고 음미하더니 기분좋게 미소 지었다.
본래는 지구의 각성자들이 퀘스트를 통해 받은 평범한 막걸리였지만, 그것을 봉헌함으로 인해 1단계 정성 아이템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병 자체에도 신비한 빛이 반짝였고 술에서는 꿈결처럼 감미로운 향기가 흘렀다.
하물며 맛은 말할 것조차 없었다.
“그렇지. 바로 이 맛이야. 신력으로 그냥 만들어먹는 술과는 비교가 안 되는군. 이건 진정으로 정성이 깃든 술이 틀림없구나.”
“예.”
“좋아! 그렇다면 약속대로 돌산을 오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내가 아는 바를 말해주마.”
“경청하겠습니다.”
상훈은 눈을 빛냈다.
역시나 신계에서는 정성 아이템이야말로 최고의 재산이었다.
절대 안 가르쳐줄 것처럼 말하던 디파운이 정성 술 몇 병에 입을 열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일단 지금대로라면 네가 무슨 수를 써도 돌산 위를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 십만 번이 아니라 수천억 번을 시도한다고 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지.”
“그럴 수가!”
상훈은 놀랐다. 디파운의 말대로라면 상훈 역시 공연히 시간 낭비만 할뻔했던 것이다.
“이곳에 들어온 선신들은 누구나 착각을 한다. 저 돌산이 마치 불굴의 의지를 시험하는 곳이라고 말이야. 따라서 저 돌산 위에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를 쓴다. 하지만 결국은 그것이 헛짓이었음을 알게 되면 절망을 하고 말지. 나 또한 그랬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너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대체 그럼 무슨 방법으로 저 돌산을 오를 수 있는 겁니까?”
순간 디파운이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오래도록 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른 대천신들과 논의도 해보았지. 그래서 내린 결론은 누구라도 저 돌산에 오르려면 이 마을에 있는 모든 대천신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 백여 명의 고대 대천신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 모두에게 어떻게 인정을 받으라는 것인가?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 한 명에게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은데 백여 명 모두에게 무슨 수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내지 않으면 저 돌산 위로 올라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 말에 상훈이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그럼 먼저 당신께 어떻게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알려주십시오.”
“나에게만 인정받는다고 될 일이 아니야.”
“어차피 돌산을 계속 오르다보면 언젠가 다 한 분씩 만나뵐 수 있겠지요. 모두에게 인정받겠습니다.”
기왕 시작한 일이다. 상훈은 반드시 저 돌산을 오르고 말 생각이었다.
그러자 디파운이 막걸리를 다시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 말했다.
“나의 제자가 되어라. 그러면 너를 인정해주마.”
“그건······.”
“부담가질 것 없다. 정성이 깃든 술을 한 잔 마시고 나니 네 녀석이 왠지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너로 하여금 나의 모든 진전을 잇게 만들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니 몇 가지 가르침이라도 주고 싶어서다.”
디파운이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신력과 신병을 전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진정으로 나와 인연이 닿은 녀석에게 줄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녀석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 너에게 신력과 신병을 제외하고 내가 가진 강력한 전투 기술들을 전수해주마. 그걸 배우면 네가 악신들과 마신들을 쓸어버리는데 적지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디파운에게 신력과 신병을 받게 되면 상훈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파운에게 뭔가를 배우는 건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마나와 마법 장비는 전해주지 않지만, 마법은 가르쳐주겠다는 뜻.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내공과 무기는 제외하고, 그저 무공만 가르쳐주겠다는 것과 같은 얘기였다.
“제자 전상훈이 스승님을 뵙습니다.”
상훈은 그 즉시 디파운에게 공손히 절했다.
어차피 강해지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다.
고대의 대천신과 같은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신생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기회.
말 그대로 이것은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디파운이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상상 결계를 통해 너를 수련시키도록 하겠다. 네가 나의 모든 걸 전수받았다 싶은 순간 너를 인정하도록 하마.”
곧바로 상상 결계가 펼쳐졌다.
스스스.
그리고 그 안에서 디파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순간 상훈은 깜짝 놀랐다.
디파운이 상상 결계에 들어와 모든 힘을 드러내자 그 기세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대단하군.’
지금까지 상훈이 만난 신들 중 최강자였던 대천신 무타티오조차 지금의 디파운에 비한다면 몇 단계는 아래라 할 것이다.
“상급 마신까지는 적당한 신력을 갖추고 쓸만한 신병만 손에 쥐고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최상급 마신부터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아. 그들보다 강력한 신공을 터득하지 않으면 신력이 많아도 오히려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지.”
곧바로 디파운의 가르침이 이어졌다.
상훈은 그에게 신력의 효율적인 운용, 최상급 마신, 대마신과 같은 강한 적들과의 전투 요령, 신계의 각종 다양한 전장에서의 전쟁 요령을 하나하나 배웠다.
또한 검 종류의 신병을 통해 펼칠 수 있는 강력한 신공도 배웠다.
조화검신공(造化劍神功)!
이는 신병인 검을 손에 쥐고 있어야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공이지만, 그래도 배워둬서 나쁠 것은 없었다. 언젠가 검 종류의 신병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전수하는 이 조화검신공을 펼치게 되면 설령 신병이 없을지라도 어지간한 상급 마신 쯤은 충분히 죽일 수도 있다.”
신력을 검으로 형상화한 후 조화검신공을 펼치면 신병을 들고 있는 상급 마신도 이길 수 있다는 것!
이는 조화검신공이 그만큼 가공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했다.
신병이 있어야만 신병을 가진 신을 죽일 수 있다는 신계의 상식을 깨뜨릴 만큼 말이다.
더구나 조화검신공은 그 이름만큼 방어에도 매우 위력적이었다.
그런만큼 그것을 배우기란 상훈도 쉽지 않았다.
신공의 이름만 보면 초월자가 되기 이전 배웠던 검법 등과 유사해보이지만, 그 위력은 물론 수련 방법조차도 애초부터 비교불가하니까.
신력을 극도로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입문이 가능했고, 마치 강력한 마법을 펼칠 때 특별한 방법으로 마나를 재배열하듯 신력 또한 그런 비밀 공식이 존재했다.
물론 그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래도 부단한 노력 끝에 조화검신공의 모든 공식과 요의를 완전히 터득한 순간 상훈은 신력이 왜 신의 힘이라 불리는 건지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요의를 이해한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제부터 나와의 결투를 통해 조화검신공을 너의 몸에 완전히 체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 후로도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상훈은 수련에 집중하느라 시간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물론 상상 결계 속에서는 아득한 시간이 흘렀지만, 실제로는 며칠 정도에 불과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이는 대천신 디파운의 신력을 통해 만들어진 상상 결계여서 가능한 일.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나의 모든 걸 전수받은 것 같구나. 너의 깨달음이 빨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승님께 인정받을 수 있어 기쁠 따름입니다.”
덕분에 상훈은 그 사이 또 한계를 돌파했다.
이제 그는 맨손으로도 상급 마신을 이길 수 있다.
신병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어지간한 최상급 마신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고, 누군가의 진전을 얻어 대량의 신력만 확보한다면 대마신이 나타나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 말고 다른 대천신들의 인정도 받아야 할 터, 각오는 되어 있느냐?”
“물론입니다.”
돌산을 계속 오르다 죽는 걸 반복하면 무작위로 누군가와 연결된다고 했으니 그때 디파운에게 했던 방식으로 그들에게 계속 인정을 받으면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훈은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자 디파운이 껄껄 웃었다.
“염려마라. 네가 나의 인정을 받은 이상 마을에 있는 모든 대천신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이 스승에게 맡기거라.”
“무슨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이제 잠시 후면 마을에 있는 모두가 널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 너는 잔치상을 거나하게 차려두어라. 네 아공간에 많이 있다는 정성 술이나 음식을 아끼지말고 팍팍 풀어 놓는다면 단번에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곧바로 상훈은 디파운의 도움을 받아 아공간을 열어 각종 1단계 정성 술 수천여 병과 각종 요리들을 마을의 광장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디파운이 흡족해했다.
“훌륭해! 이 정도면 다들 너에게 흠뻑빠지고 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가 지나자 그동안에는 상훈을 알아보지 못했던 마을의 대천신들이 모두 상훈을 바라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훈이 아니라 잔치상을 보고 놀란 것이다.
정성이 가득한 술과 음식들!
“오! 저것은 정성이 깃든 술이 분명해!”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디파운?”
“어디에서 저리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이 나타난 것이오?”
“설마 저 신입 선신이 가져온 것입니까?”
대천신들은 모두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러자 곧바로 디파운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보다시피 이것은 나의 제자가 그대들을 위해 차린 잔칫상이오. 모두가 정성이 깃든 귀한 술과 음식들이지. 이것을 먹는 대신 나의 제자가 돌산 위에 오를 수 있도록 모두 협조를 부탁하겠소.”
“돌산에 오르겠다?”
“그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나?”
“불가능한 일이예요, 디파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디파운은 그들을 참을성 있게 설득했다.
그리고 다소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모두 디파운의 뜻을 이해했다.
“전상훈이라 하였느냐? 선신계에 실로 멋진 선신이 탄생했구나.”
“악신과 마신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상하도다.”
“그저 객기로 말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이니 기특하군.”
“이 음식들을 차린 정성을 보아 한 번 믿어보도록 하겠다.”
대천신들은 상훈이 자신들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그들 역시 상훈이 자신들의 진전을 잇지는 못할지라도 자신들의 모든 걸 배우기 원했다.
따라서 상훈은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상상결계를 통해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는 며칠 정도지만 상상 결계에서는 아득한 시간의 수련.
그런 걸 백여 번이 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조화검신공을 배워둔 덕분에 다른 신공들은 좀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상훈은 각 대천신들로부터 100여 개의 신공은 물론 신계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심지어 신으로서의 각종 기괴한 잡기까지 온갖 것을 다 배웠다.
그리고 결국 모두에게 인정받는데 성공했다.
“스승님들의 가르침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이 제자는 돌산을 오르려 하니 부디 도와주십시오.”
마지막 고대 대천신의 인정을 받고나자 상훈은 다시 한번 거나하게 잔칫상을 차려 스승들을 대접한 후 말했다.
그러자 디파운을 비롯한 모든 대천신들이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지금 즉시 돌산에 오르도록 하거라.”
“네가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도울테니 염려마라.”
상훈이 돌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고대 대천신들이 돌산 아래서 빙 둘러 선 채로 각자의 신력을 쏘아냈다.
“드디어 돌산에 오르는 존재가 탄생하겠구나.”
“불가능한 일이라 여기던 일이 실현될 줄이야!”
그들이 가진 신력은 가히 미증유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미량의 신력 외에는 쓰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신력들이 합쳐지자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돌산의 중턱을 휘돌던 폭풍도 그들에 의해 흩어졌다.
그로인해 상훈은 무리없이 돌산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장하구나. 지금껏 이곳까지 이른 이가 없었다.”
신비한 음성의 주인. 그는 돌산의 정상에 있는 바로 그 정체불명의 고대 선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