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7.고대 선신의 무덤 (2) (117/159)

 # 117

고대 선신의 무덤 (2)

에메스는 대천궁의 대전에서 있었던 일을 상훈에게 간략하게 전해 주었다. 그녀 또한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고 비스엘라에게 들은 걸 그대로 말해준 것 뿐이었다.

“대천신님께서는 이번 공적에 대한 포상으로 그대의 품계를 올려주려 하셨는데, 안타깝게 되었어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대신장들이 셋이나 반대한 상황이니 그냥 밀어붙이기란 쉽지 않겠죠.”

상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는 솔직히 천신들 사이에서 서열 놀이하는 데는 아무 관심 없었으니까.

그보다는 교육 평가 만점이 받아들여져 고대 선신의 무덤 최상층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라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모든 일에 대신장들이 반대를 하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도 신맥을 좀 만들어둬야겠다.’

인맥(人脈)이 아닌 신맥(神脈)이다. 친하게 지내며 상훈을 지지해줄 신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앞으로의 신생에서 여러모로 편할 테니 말이다.

일단 가까이에 있는 에메스부터!

곧바로 상훈은 아공간에서 정성 4단계 머리장식과 정성 5단계 팔찌를 꺼내 에메스에게 내밀었다.

“이제 교육이 끝났으니 이걸 줘도 상관없을 것 같군요.”

“그건?”

에메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통의 머리장식이나 팔찌라면 관심도 두지 않겠지만, 정성이 깃든 봉헌 물품이라면 그녀 역시 무척이나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지난 번 상훈이 이 두 보물들을 그녀에게 보여준 후 계속 그것들이 눈에 아른거렸던 것이다.

“부담갖지 말고 받아요. 앞으로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주는 겁니다.”

“그런 의미라면 받을게요. 고마워요.”

에메스는 기쁜 듯 환하게 웃으며 상훈이 내민 머리장식과 팔찌를 받았다.

아마 시스템 알림이 가능한 곳이라면 친밀도가 증가했다는 내용이 나왔을 것이다.

물론 신에게 그런 게 통할리는 없지만, 그래도 에메스의 표정이 무척이나 호의적으로 변한 것은 틀림없었다.

‘역시 여신들에게는 장신구 봉헌 물품이 효과가 좋군.’

베누스가 혼돈의 괴수들을 대량으로 처치하면서 봉헌한 덕분에 상훈에게는 이런 류의 4단계나 5단계 정성의 장신구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불멸계의 천궁 창고에는 지금도 봉헌 물품들이 쌓이고 있었다. 지구의 각성자들은 사라졌지만, 초월자 노예들과 퀘스트 행성들의 수많은 아인족들이 곳곳에 지어진 상훈의 신전에 와서 정성스런 봉헌을 하기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불멸계가 있는 한 상훈은 정성 아이템이 없어서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이예요. 저는 입구까지만 안내가 가능하니 이제부터는 그대 혼자 들어가야 해요.”

고대 선신의 무덤 26층.

그곳의 입구는 육중한 철문으로 닫혀 있었다.

오직 대천신이 소지한 열쇠가 있어야만 열리는 철문.

결계로 봉인된 상태여서 강제로는 절대 열리지 않았다.

그 열쇠는 에메스가 받아온 상태였고, 그녀는 곧바로 자물쇠를 열었다.

쿠구궁.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이제 들어가세요. 그대가 들어가면 이 문이 닫히고 밖에서는 다시 열 수 없어요. 나오기 위해 문 앞에 서면 철문은 다시 열리게 되죠.”

“알겠습니다.”

“혹시 부탁할 것이 있으면 하세요.”

“부탁이요?”

상훈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에메스가 빙긋 웃었다.

“정성이 깃든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뭔가 보답하고 싶어서요. 그대가 저 철문 안에 들어가면 언제 나오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고대 선신들의 진전을 얻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또한 밖의 세계와는 모든 게 차단되는 터라 아바타를 비롯한 분신은 물론이고 누구와도 연락을 취할 수 없게 되죠.”

그 말에 상훈도 흠칫했다. 현재 상훈은 지구에 한 명의 아바타 분신을 만들어둔 상태다. 알아서 분신이 상훈의 삶을 잘 살고 있지만, 상훈은 그 모든 걸 다 보고 느끼고 있어서, 실상 상훈 자신이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이제 그 분신과의 연결이 끊긴다는 뜻.

이는 유사시 지구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분신의 능력은 준혼돈자급이다. 또한 혼돈의 시종급 전투력을 지닌 서린도 함께 있는 터라 어지간한 라트로들이 나타난다 해도 걱정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천신을 비롯한 선신 수십 명이 지구가 속한 선계를 지켜주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길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터라 상훈은 에메스에게 지구쪽을 신경써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상훈이 창조한 불멸계도 마찬가지.

거기는 혼돈자 베누스가 알아서 잘 지키고 있지만, 그녀는 초급 혼돈자 수준일 뿐이다.

혹시라도 상훈이 없는 사이 다른 혼돈자들이 공격이라도 해온다면 낭패를 겪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20품 천신인 에메스가 지켜준다면 그곳은 안전할 것이다.

더구나 에메스는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천신 직속이라 상당한 신맥을 가진 여신이었다.

“지구와 그대의 불멸계란 곳을 지켜달라는 거군요. 그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이니 염려 말아요.”

“번거롭겠지만 부탁 좀 드립니다.”

상훈은 아공간에서 아이스 카페라떼 8잔을 꺼낸 후 캐리어를 만들어 그것에 담았다.

각 네 잔씩 담겨 있는 캐리어 두 개를 에메스에게 건냈다.

물론 모두 정성 1단계 아이템!

“그리고 이건 저의 성의니 받아주세요. 혼자 드셔도 되고 같이 드실 분 있으면 함께 드셔도 됩니다.”

에메스가 반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번에 마셨던 아이스 카페라떼 생각이 간절했던 그녀였지만 정성 아이템이다 보니 차마 달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훈이 알아서 무려 8잔이나 건네주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부담갖지 말아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럼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상훈은 곧바로 철문 안으로 사라졌다.

쿠구구궁.

곧바로 철문은 닫혔고 이내 그 철문의 모습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고대 선신의 무덤 26층은 상훈이 나오지 않는한 누구도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디 고대의 대천신 중 한 분의 진전을 얻게 되길 바랄게요.”

에메스는 사라진 철문이 있던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양손에 쥔 캐리어를 보며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귀한 정성 음료라 남 주긴 아깝지만, 그렇다고 혼자서만 먹기에도 너무 아까운 음료들이었다.

‘일단 대천신님께 한 잔 드리고, 북천의 대신장 리오니스님, 그리고 비스엘라님께도 한 잔 드려야겠구나. 3품 천신이신 예리엘님도 빠뜨릴 수 없지.’

그녀는 자신과 친한 신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대천궁의 한적한 정원.

대전에서 천신 회의를 마치고 산책 중이던 무타티오를 찾아온 여신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에메스였다.

“20품 천신 에메스, 지존하신 대천신 무타티오님을 알현합니다.”

“어서오너라, 에메스. 무슨 일로 나를 보자 한 것이냐?”

무타티오는 에메스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에메스가 빙긋 웃더니 아공간에서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을 꺼내 바치며 말했다.

“맛있는 음료 한 잔 드리려고 왔어요.”

“오! 이건 정성이 깃든 음료로구나.”

무타티오야 대천신이다보니 정성이 깃든 봉헌 물품은 꽤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 얘기이지 이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하부 세계의 존재들도 많지 않아 최근에는 뜸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상훈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봉헌을 받는 건 대천신으로서의 체통 상 쉽지 않은 일이고, 게다가 그런 것에 신경쓸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대마계와 전투를 벌이며 대천계를 지배하는 일만해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비록 1단계지만 정성이 깃든 아이스 카페라떼를 보자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이것을 구했느냐?”

“24품 천신 전상훈에게 받았어요.”

“그 녀석은 지금 고대 선신의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들어가기 전에 이걸 나눠마시라고 저에게 전해줬어요.”

“이런 귀한 것도 나눌줄 알다니 기특하군. 나중에 보거든 내가 아주 잘마셨다고 전해주거라.”

“네, 대천신님.”

에메스는 대천궁의 정원을 나와 북천의 대신장궁으로 이동했다.

대천궁과 북천의 대신장궁은 아득히 먼 거리에 있지만 대천궁에 있는 신력 포탈을 통해 손쉽게 이동이 가능했다.

“대신장님! 20품 천신 에메스가 대신장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에메스가 무슨 일로? 들어오라고 해라.”

북천의 대신장 여신 리오니스.

자타가 공인하는 대천계의 서열 2위인 그녀는 대부분의 천신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성격상 직속부하들 외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메스는 예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20품 천신 에메스, 북천의 대신장 리오니스님을 알현합니다.”

“무슨 일로 이 먼곳까지 왔느냐, 에메스?”

“대신장님께 맛있는 음료 한 잔 드리려고 왔죠.”

에메스는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을 건넸다. 그리고는 상훈이 전해준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자 리오니스는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전상훈이라면? 아까 천신 회의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녀석이군. 어쨌든 잘 마시겠다고 전해라.”

1단계 정성 아이템의 좋은 점은 누구나 경계하지 않고 기분 좋게 받아준다는 데 있다.

물론 정성 아이템이니만큼 당연히 받는 쪽은 어떤 식으로든 호의를 느껴 기뻐하게 된다.

에메스는 그저 순수한 의도로 상훈의 커피를 전달한 것 뿐인데, 어쩌다 보니 상훈은 자신도 모르게 대천계의 굵직굵직한 신들의 호감을 조금씩 얻고 있었다.

* * *

한편 상훈은 고대 선신의 무덤 26층 안에 들어와 있었다.

‘부디 쓸만한 신병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군.’

인연만 닿으면 고대 대천신의 능력뿐 아니라 그가 사용하던 신병도 얻게 될 것이다.

‘신병만 생기면 상급 마신들 따위는 가볍게 처치할 수 있을 거야.’

그 생각을 하자 상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어떤 대단한 신병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되어서였다.

‘그런데 웬 숲이지?’

어쨌든 무덤이라고 하기에 봉분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와는 달리 울창하게 뻗어있는 숲만 보였다.

그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작은 산 하나 정도의 숲이랄까?

‘알 수 없는 힘이 능력을 제한하고 있어.’

무엇 때문인지 상훈은 신력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는 신력 뿐 아니라 하위의 힘인 혼돈력이나 차원력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심지어 그보다 하위의 힘인 마나조차 사용이 불가능했다.

마치 평범한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왜 이런 제약을 해둔 거지?’

분명 뭔가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상훈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곳에 웬 마을이 하나 보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깔끔하게 지어진 가옥들.

그리고 마을의 중앙에는 광장과 같은 공터도 보였다.

‘누군가 있네?’

인간도 있고 엘프도 있고 다른 이종족처럼 보이는 이도 보였다.

“하하하! 그거 봐. 내게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한 판 더 두자고!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주지.”

장기를 두고 있는 엘프와 인간.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

무덤 안에 숲이 있고 마을이 있고 살아있는 이들이 있다.

‘저들은 뭐지? 그보다 여긴 무덤 맞는 거야?’

어딘지 모를 다른 세계와 연결된 곳이 아닌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뭔가 특이했다.

상훈이 마을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상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일종의 환영과 같은 존재들이군. 그러나 인연이 있는 자에게는 환영이 아닌 실체로 나타나겠지.’

저들은 여기서는 평범해보이지만 모두 살아있을 때 대천신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상훈은 그 같은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일단 광장 쪽에는 없는 것 같고.’

상훈은 마을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모든 집을 다 들어가 방문을 열어보기도 했고, 혹시나 싶어 지하실 같은 곳까지 내려가보기도 했다.

그런 곳에도 간혹 환영이 있긴 했지만 상훈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뭐냐? 설마 나는 대천신들과 인연이 없다는 건가?’

이곳에서 아무런 인연을 찾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아니야. 분명 있다는 느낌이 온다.’

천신으로서의 직감이라 틀림없었다. 분명 어딘가 있는데 상훈은 그를 못찾고 있었다.

‘하긴 이 숲에 마을이 하나뿐일리는 없겠지.’

숲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이런 마을 두세 개는 충분이 있을 법한 규모였으니까.

그래서 상훈은 마을을 벗어나 숲을 뒤져봤다.

그런데 또 다른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 오직 한 곳뿐이었던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설마 정말 대천신들 중 아무와도 인연이 없는 것일까?

그러나 상훈은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땀이 나는군.’

마나조차 사용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 되다보니 금세 숨이 차고 땀도 났다. 그래서 잠시 쉴까하고 바위에 기대 앉았는데 문득 숲의 중앙에 거대한 돌산이 있는 걸 발견했다.

거대한 기둥 형상으로 우뚝 솟아 있는 돌산.

그 돌산은 가파른 것은 물론이고 높이조차 알 수 없었다.

구름이 중턱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저 위에 있는 건가?’

상훈은 왠지 자신과 인연이 있는 고대의 선신이 분명 저 돌산의 정상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틀림없어. 저 위에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신력은 물론이고 혼돈력, 차원력, 마나조차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체력조차 평범한 인간처럼 낮아진 상태라 저 가파른 돌산을 올라가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구름이 요동치고 있는 걸 보면 중턱부터는 바람도 세차게 부는 것 같았다.

저길 대체 어떻게 올라가라는 건가?

‘하긴 못 올라갈 것도 없지.’

곧바로 상훈은 돌산을 조금씩 기어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