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신입 선신 교육 (3)
대마신 리카이스가 지배하는 대마계에서 마신들은 1급에서 24급까지 존재한다.
1급 – 6급 : 최상급 마신
7급 – 12급 : 상급 마신
13급 – 18급 : 중급 마신
19급 – 24급 : 하급 마신
이렇게 24급을 위에서부터 최상급, 상급, 중급, 하급의 네 단계로 분류하는데, 이것은 천신들도 동일했다.
1품 – 6품 : 최상급 천신
7품 – 12품 : 상급 천신
13품 – 18품 : 중급 천신
19품 – 24품 : 하급 천신
따라서 이런 식의 분류에 의하면 12급 마신 카수스는 상급 마신에 속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24품에 불과한 하급 천신인 상훈은 그저 잡졸과 같이 가소로운 존재일 뿐이었다.
“마신 둘을 해치운 녀석이 바로 너인가?”
24급 마신 쿨루크와 24급 여마신 스카루스가 이 근처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선신 하나!
그래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나 대답대신 곧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응축된 신력의 강기가 미늘창의 형태로 변해 날아들었으니!
“건방진 녀석! 하급 말단 천신 따위가 감히!”
카수스는 재빨리 검으로 공격을 막았다.
짙은 흑색의 검신을 가진 이 검은 신력이 응축되어 형상화된 것이 아니라 신병(神兵)이었다.
고대 마신의 유물을 얻은 것으로 신력을 증폭시켜 파괴력도 높여주는 위력이 있었다.
쾅! 콰콰아앙!
상훈의 미늘창과 카수스의 검이 연속으로 격돌했다.
그 순간 상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나의 공격이 먹히질 않는 건가?’
놀랍게도 그가 신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공격을 날려도 카수스가 무슨 조화를 부리는지 모조리 막아냈다.
무슨 수를 써도 도무지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는 비로소 무엇 때문인지를 눈치챘다.
‘저 검 때문이군.’
빈틈을 노려 카수스를 가격해도 신병이 상훈의 공격을 흩어버리고 있었다.
‘혹시 저게 바로 신병이라는 건가?’
신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 쓸 수 있다는 특별한 병기!
말로만 듣던 신병의 위력이 실감났다.
신병이 없는 상훈으로서는 무척이나 불리한 전투일 수밖에 없었다.
에메스의 말에 의하면 고대 선신들의 무덤에서 인연이 닿으면 신병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높은 품계의 천신들과 인연이 닿아야 한다.
신병은 매우 희귀한 무기이다 보니 적어도 12품 즉, 상급 천신들이 아니면 좀처럼 보유하기 어려웠다.
신병은 그 주인인 신에게 영구각인이 되어 그 신이 죽더라도 다른 신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신이 죽으면 신의 무덤에서 함께 잠들어버리는 것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누군가 그 신의 진전을 얻게 되어 모든 걸 물려받게되면 신병 또한 그 신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게 된다는 것.
‘아무래도 신병 없이는 상급 마신들을 상대하는 건 어렵겠어.’
상훈은 신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전투력 자체는 자신이 훨씬 막강한 것 같은데 도무지 카수스를 죽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공연히 신력만 소모할 뿐 전투의 의미가 없었다.
한편 그때 카수스는 상훈과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믿을 수 없군. 맨손으로 신병을 막아내다니!’
그가 가진 검은 일반적인 무기가 아니다. 신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신병이다.
물론 상훈은 신력을 미늘창으로 형상화시켜 싸우는 터라 맨손이 아니었지만, 신병을 가진 입장에서보면 무기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저건 24품 천신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천신 비스엘라에게 악신들의 급수를 알 수 있는 수정구가 있듯이 카수스에게도 동일한 성능의 마경(魔鏡)이 있었다. 이 특수한 거울을 통해 그는 상훈이 24품 천신이라는 사실을 미리 파악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신병이 없이는 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신병을 들고 있는 신을 신병이 없는 신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
카수스는 결국 자신이 상훈을 처치할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기대였을 뿐, 그 후로 온갖 기를 써서 검을 휘둘렀지만 상훈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상훈 역시 갖가지 방법으로 카수스를 죽이려 해봤지만 실패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물러나는 게 좋겠군.’
공연히 신력만 소모해봤자 좋은 것이 없으니까.
그래도 스스로의 전투력이 신병을 쥐고 있는 상급 마신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정도임을 확인했으니 시간 낭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전방에 또 하나의 마신이 나타났다.
12급 마신 지게르.
하나의 몸체에 남성과 여성의 두 개의 머리를 가진 괴상한 형상의 마신.
“카수스, 고작 24품 천신 하나를 못죽이고 고전하고 있느냐?”
“호호호! 신출내기 선신들을 잡아온다더니 꼴 좋구나.”
그러자 카수스가 인상을 구겼다.
“닥치지 않으면 입들을 찢어버리겠다!”
그는 지게르의 말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듯 상훈을 향해 더욱 난폭하게 공격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아주 대단한 녀석이군. 맨손으로 신병을 막아낸다는 건가?”
“확실히 24품 말단 천신이 낼 수 있는 전투력은 아니야. 대마신 리카이스님이 저놈을 탐내셨던 이유가 있었구나.”
지게르는 상훈을 알고 있는 듯했다.
“건방진 놈! 네놈이 감히 악신계와 선신계를 저울질하더니 선신 쪽으로 붙었느냐?”
“오늘 살아돌아갈 생각은 하지마라.”
그러자 카수스와 전투를 벌이던 상훈이 신경질적으로 지게르를 쏘아보더니 곧바로 미늘창을 날렸다.
“시끄러워 죽겠군. 너부터 죽여주마.”
순간 지게르의 두 얼굴들이 흠칫하더니 재빨리 쌍검을 꺼내 상훈의 공격을 막았다.
그 또한 신병이었다.
그때부터 카수스와 지게르의 합공이 이어졌지만, 상훈은 둘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도 그 둘에게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이거 신병 없는 신은 서러워서 살겠나.’
신병만 있었어도 이미 저 두 마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상훈은 어쩔 수 없이 그만 퇴각하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
“카수스님! 지게르님! 저희들이 돕겠습니다!”
24급 마신 7명과 악신 10명이 나타나 합류했다.
보통 때라면 그들의 합류를 반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수스는 다급히 외쳤다.
“멍청한 놈들! 당장 전장밖으로 철수해라!”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병이 없어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던 상훈에게는 뜻밖의 화풀이 대상들이 대거 나타난 것이니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콰아아앙!
상훈이 미늘창을 크게 휘둘러 카수스와 지게르의 공격을 쳐내더니 곧장 마신들과 악신들을 향해 돌진했다.
번쩍-!
상훈의 미늘창이 날아들자 마신 하나가 비슷한 형상의 창으로 맞섰다.
촤아악!
그러나 미늘창의 창날이 마신의 창대를 가르고 그의 몸체를 사선으로 쪼개버렸다.
“크아아아악!”
마신 하나가 죽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마신이 상훈을 향해 무더기로 화살을 날렸다.
“건방진 천신 놈! 죽어랏!”
파파파파-
파괴적인 기운이 가득한 화살!
그 또한 신력이 응축되어 형상화된 무기였다.
상훈은 미늘창을 휘둘러 그것들을 가볍게 흩어버리고는 그대로 돌진해 마신의 목을 날려버렸다.
“크아아아악!”
이에 놀라 흩어지는 악신들을 향해 상훈의 미늘창이 빛을 뿜었다.
번쩌쩍-!
미늘창에서 쏘아져 나간 신력의 강기들이 악신들의 등에 적중, 그 즉시 그들은 가루로 변해 흩어져버렸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12급 마신 두 명이 덤벼도 어쩔 수 없던 상훈이다.
그런 상훈의 공격을 24급 마신이나 악신들이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그들은 신병같은 건 들고 있지 않았으니 상훈에게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멈춰라!”
“감히! 죽여버리겠다!”
카수스와 지게르가 다급히 마신들과 악신들을 보호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악신 7명과 24급 마신 3명이 죽임을 당한 상태였다.
“으으!”
“피, 피해라!”
살아남은 마신 4명과 악신 3명이 기겁하며 달아났다.
상훈이 뒤쫓으려 했지만 그 사이 카수스와 지게르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사납게 공격을 해왔다.
“도저히 용서 못한다!”
“오늘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카수스와 지게르는 얼마나 분노했는지 가히 폭주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상훈에게도 지원군이 나타났다.
12품 천신 비스엘라.
그는 신입 선신 9명을 에메스를 비롯한 천신들에게 맡기고 즉각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그는 상훈이 혼자서 12급 마신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한 상태였다.
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 두 명을 따돌린 채 하급 마신들과 악신들을 무참히 도륙해버리는 모습은 비스엘라 그로서도 흉내조차 내기 힘든 것이었다.
‘저럴 수가!’
비스엘라는 처음엔 잘 못 본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두 눈으로 목격했다.
24품 천신에 불과한 상훈이 가히 상급 천신들이나 가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을 말이다.
‘정말 놀랍구나. 신병이 없는데도 저 정도라면 신병을 손에 쥐면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
경악에 물들었던 비스엘라의 표정은 이내 희열로 가득했다.
대천계에 막강한 전쟁신이 등장했으니 그로서는 당연히 반길 일이었다.
비록 지금은 상훈이 24품 말단 천신이지만 머지않아 6품 이상의 최상급 천신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 확신했다.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어느새 비스엘라는 푸른빛이 번쩍이는 거대한 양손 도끼를 손에 쥐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신병이었다.
“사악한 마신 놈들! 죽여주마!”
상급 천신 비스엘라가 합류하자 카수스와 지게르는 기겁했다.
물론 본래라면 별로 겁낼 것도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 두 명이서 상훈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스엘라가 공격을 해온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도주하며 외쳤다.
“제길! 두고보자!”
“전상훈! 네놈은 절대 용서못한다.”
“네놈뿐 아니라 애지중지하던 지구도 멸망시켜버리겠다.”
그 순간 상훈의 두 눈이 번쩍였다.
그의 신형이 빛살처럼 이동해 마신 지게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으며 외쳤다.
“도망치려면 입을 벌릴 힘도 아껴야 했다. 네가 죽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지게르는 쌍검을 휘두르며 막았다. 그러나 그는 불안했다.
앞에서는 상훈이 공격을 해오고 있지만 뒤쪽에는 12품 천신 비스엘라가 쫓아오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훈의 공격이 워낙 막강해서 다른데 정신을 팔 수가 없었다.
퍼어어억!
그리고 결국 그가 우려한 상황이 오고 말았다.
비스엘라가 상훈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가와 지게르의 허리를 갈라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신병 도끼에 의해 허리가 양단되자 지게르는 이내 검은 액체로 변했다가 증발해버렸다.
12급 마신 지게르의 최후였다.
멀리서 그것을 본 카수스가 치를 떨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빠른 속도로 도주해 공역의 전장을 순식간에 벗어나버렸다.
“대단하군, 전상훈. 그대 덕분에 상급 마신을 처치할 수 있었다.”
상급 마신을 처치한 것은 엄청난 공적이었다.
상급 천신과 상급 마신들이 전투를 벌여도 대부분 전세가 불리해지면 도주하는 터라 죽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비스엘라의 표정은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다.
“비스엘라님이 적시에 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한 놈을 놓친 것이 아쉽군요.”
비스엘라는 씩 웃었다.
“아쉽긴 하다만 상급 마신 하나를 처치한 것만으로도 대천계에서는 경사를 벌일 만한 일이라 할 수 있지. 게다가 그대는 홀로 마신 5명과 악신 7명을 처치했다.”
비스엘라는 장하다는 듯 상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는 신입 선신으로서 그야말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뜻하지 않는 일로 오늘 교육이 중단되었지만 다른 신입 선신들과 달리 그대는 훌륭히 실전을 마무리지었다. 나의 직권으로 그대의 교육 점수를 만점으로 평가하겠다. 또한 나는 오늘 그대의 공로를 대천신께 보고하여 그대가 합당한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상훈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는 다른 포상보다 교육 점수가 만점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이로써 선행 업적과 현재 능력, 그리고 교육 점수까지 모두 만점을 받은 것이니까.
이는 고대 선신의 무덤 최상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곧바로 상훈은 비스엘라와 함께 대천궁으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