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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혼돈계를 통일하다 (1) (106/159)

 # 106

혼돈계를 통일하다 (1)

세루나가 미소 지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나오는 게 너답지. 악신이 될 녀석이라면 말이야.”

그녀는 뭐든 다 들어줄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말해보아라. 어차피 네가 신이 되면 웬만한 건 네 스스로 다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 특별히 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들어주겠다.”

그러자 블라우가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악신과 타협하시면 안됩니다. 뭔가 원하시는게 있다면 저희 쪽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보십시오. 어떤 것이든 저들이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라면 우리 쪽에서 들어줄 수 없는 건 없습니다.”

그 말에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지금 나보고 그걸 말하라는 건가?”

“말해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야 들어줄 수 있다.”

“나도 몰라. 너희들이 내게 뭘 줄 수 있는지. 일단 확실한 건 난 신이 되면 이 시스템을 없애고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릴 생각이다.”

그러자 세루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군. 네가 이 시스템을 이루는 힘을 모두 흡수하면 처음부터 두 배는 더 강한 신이 될 수 있다. 왜 그런 이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냐?”

반면에 블라우는 환하게 웃었다.

“역시나 당신은 선신에 어울리는 분입니다. 왜곡된 세계를 본래로 돌려놓는 건 선신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책무이죠. 당신의 힘을 강하게 만들려고 하부 세계가 가진 힘을 흡수해 소멸시키는 건 악신들이나 하는 사악한 짓입니다.”

그러나 상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든 내가 거는 조건은 이거다. 이건 변하지 않는 조건이고, 여기에 추가로 내게 뭘 줄 수 있는지는 너희들이 고민할 부분이야. 조건만 맞으면 난 선신이 아니라 악신도 상관없으니까.”

그러자 세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의 힘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건 네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니 우리로서도 못들어줄 건 없다. 다만 네가 매우 약한 악신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쯤은 각오해야 하겠지. 하지만 다른 조건을 원하는 것 같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겠다. 그럼 다음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마.”

그 말과 함께 세루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블라우도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조건이든 악신들이 들어줄 수 있다면 우리 쪽에서 못들어줄 건 없습니다. 그러니 그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악신 쪽에 가시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럼 저도 대천신님께 가서 오늘 일을 보고 드린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블라우도 그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때까지 얼어붙듯 경직되어 있던 프루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상훈을 쳐다봤다.

상훈이 선신들과 악신들을 상대로 조건을 걸며 협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뭔가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다 신들이 분노하기라도 하면 어쩔까 싶어서다.

그러나 상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 사이 올라온 헌물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볶음밥은 제법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것 같군.”

시종 아이리스가 상훈을 위해 정성스럽게 볶음밥을 만들어 봉헌한 것이었다.

그로인해 아이리스는 2단계 축복을 받았다.

이렇게 천계로 올라온 요리들은 즉각 먹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상훈이 먹을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 품질이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식당의 식탁 위에 올려두거나 혹은 아공간에 넣어두고 나중에 꺼내먹어도 되는 것이다.

서큐버스 프루아가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지만 상훈은 태연했다.

그는 어차피 선신이 되기로 결정한 상태였으니까.

‘기왕 갈거면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가는 게 낫겠지.’

솔직히 말해 상훈은 선신들에 대해서도 아주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들이 정말로 선신들이라면 지구가 이런 괴상한 시스템에 휘말리지 않도록 도와주었어야 정상인 것이다.

물론 선신이 탄생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간다지만, 만약 악신이 탄생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 이 혼돈 시스템 속에 있는 수많은 하부 세계들은 모조리 소멸되고 말 것이다.

‘결국 그들도 말만 선신일 뿐 하부 세계에 큰 관심은 없는 게 분명해.’

그렇다 해도 그나마 선신들이 악신들보다는 낫다.

그래도 웬만큼은 하부 세계를 지켜주려고 시늉은 하고 있으니까.

반면에 악신들은 하부 세계에 관심이 없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 하부세계를 멸망시키고 그 힘을 이용해 강해지려는 놈들이었다.

스케일만 신급으로 확장된 것뿐 결국 그들도 라트로나 마찬가지!

라트로를 그 무엇보다 증오하는 상훈에게 있어 악신들은 모조리 쓸어버려야할 대상인 것이다.

‘어쨌든 이제 고민은 그들이 하겠지.’

상훈은 기왕이면 악신들이 최대한 좋은 조건들을 들고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선신들이 그에 상당하는 만큼 상훈에게 혜택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조건이든 악신들이 들어줄 수 있다면 우리 쪽에서 못들어줄 건 없습니다.’

이는 블라우의 말이었다. 상훈은 이제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 *

그 후로 시간은 계속 흘렀다.

혼돈자 에칸드가 나간 이후로 더 이상 이 게임에 도전하겠다는 혼돈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에칸드가 버티고 있다가 쫓아버리기 때문이었다.

악신 세루나에게 호되게 당한 상태에서도 에칸드는 계속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듯했다.

‘에칸드에게 언제고 신세를 갚아야겠군.’

그래도 게임이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는 없었다.

에칸드보다 더 강한 혼돈자가 이곳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로서도 쫓아낼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큰일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나타나면 상훈이 손을 봐주면 되는 일이었다.

다만 그만큼 혼돈계를 장악하는 시간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이 번거로울 뿐.

[군주 혼돈의 마녀 베누스가 제 10혼돈계를 장악함에 따라 혼돈계가 크게 진동합니다.]

[제 10혼돈계와 제 15혼돈계를 가로막는 혼돈의 벽이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제 10혼돈계와 제 16혼돈계를 가로막는 혼돈의 벽이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제 어느덧 혼돈계의 통일도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이 10혼돈계의 모든 문제해결도가 상승해 다른 혼돈계와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군주 혈무혼의 15혼돈계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군주 혼돈의 마녀 베누스가 제 2혼돈계를 장악함에 따라 혼돈계가 크게 진동합니다.]

[제 2혼돈계와 제 23혼돈계를 가로막는 혼돈의 벽이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제 2혼돈계와 제 34혼돈계를 가로막는 혼돈의 벽이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이번에는 2혼돈계와 군주 실비아나의 34혼돈계가 연결되었다.

앞으로 24시간이 지나면 베누스는 혈무혼과 실비아나를 동시에 공격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천의 신 암황과 동천의 신 아킬라도 상훈이 전투를 걸 수 있게 된다.

[초월자 유서린이 퀘스트의 보상으로 숨겨진 불멸의 페르틸라를 찾아냈습니다.]

[군주 혼돈의 마녀 베누스가 불멸의 페르틸라를 획득했습니다.]

때맞춰 서린이 퀘스트를 통해 숨겨진 불멸의 페르틸라를 찾아 베누스에게 전해줬다.

‘기특한 녀석 같으니.’

서린은 그야말로 퀘스트의 여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퀘스트 행성의 자질구레한 퀘스트들부터 시작해 극상 난이도의 퀘스트까지!

그녀가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냄으로 인해 상훈에게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이제 혼돈계 장악이 얼마 안남았군요.”

프루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상훈이 물었다.

“내일이면 나 이외의 혼돈자들을 다 없애고 페르틸라도 10개 다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장악되지 않은 혼돈계들까지 모두 점령해야 이 게임이 끝나는 건가?”

“그건 아니에요. 더 이상 당신 부하 이외의 군주가 존재하지 않고, 다른 혼돈자도 없는 상태에, 10개의 페르틸라를 당신의 부하가 모두 소유하게 되어 혼돈의 절대군주가 되면, 혼돈계는 완전히 통일됩니다. 내일이면 당신은 이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하실 수 있습니다.”

프루아는 경이로워하는 눈빛으로 상훈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당신은 선신이나 악신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의지에 따라 이 시스템의 힘을 당신의 신력으로 흡수하거나 혹은 그냥 소멸시켜 모든 하부 세계들을 본래로 되돌릴 수 있죠.”

“이미 어떻게 할지는 결정했다. 그런데 내가 이 시스템을 소멸시키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자 프루아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 시스템을 소멸시킨다 해도 초월자 이상의 존재들은 소멸되지 않아요. 그들을 어떻게 할지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당신이 풀어주면 자유롭게 되는 것이고, 노예로 만들면 노예가 되겠죠. 저를 비롯한 네 명의 서큐버스 초월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은 어차피 이 게임의 최후 승자에게 귀속되는 전리품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프루아가 북천의 신인 상훈을 보좌하듯 또 다른 세 명의 서큐버스 초월자들이 다른 신들을 보좌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운명도 이제 내일이면 상훈에게 달려있는 것이었다.

“라트로들은 모두 죽이고, 그 외의 초월자들은 모두 자유롭게 해주겠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어디 가서 라트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내 손에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러자 프루아가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저는 당신의 부하가 되고 싶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그동안 여기서 당신의 부하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당신의 부하가 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 말이죠. 라면 하나를 끓이면서도 모두의 표정이 즐거워 보였거든요.”

“난 아무나 부하로 받지 않아.”

“부탁이니 부하 후보라도 들 수 있게 해주세요. 정말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언제고 제가 자격이 된다 싶으시면 그때 저를 부하로 받아주세요.”

프루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을 이었다.

“저는 비록 준혼돈자급 초월자이지만 전투 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각종 차원 시스템을 다루는데는 관심이 아주 많죠. 저를 받아주시면 어떤 식으로든 당신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좋아. 일단 지켜보겠다.”

“정말이신가요?”

프루아의 안색이 환해졌다. 상훈은 미소 지었다.

“나는 능력보다 충성심을 우선으로 보는 걸 잊지마라.”

“잘 알고 있습니다. 기왕 저를 받아주시는 김에 다른 서큐버스 자매들도······.”

“그들도 모두 너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어?”

“네. 절대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너는 나를 따르고 싶어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야.”

“그건 걱정마세요. 이미 그렇게 되기를 다 간절히 원하고 있거든요.”

알아서 서로 연락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모두 지켜보겠다.”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당신을 로드라 불러도 되죠?”

“물론이다.”

“감사합니다, 로드!”

덕분에 아주 유능한 서큐버스 초월자 부하 후보들이 네 명이나 생겼다. 전투력만 따지면 베누스급이 4명 더 생긴 것이지만, 그녀들은 전투보다 차원 시스템을 다루는데만 관심이 많다고 하니 특이했다.

‘그보다 이제 드디어 지구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건가?’

사실 상훈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게 더 중요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설렜다.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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