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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혼돈자 vs 혼돈자 (2) (9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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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자 vs 혼돈자 (2)

한편 상훈이 서큐버스와 대화를 하다 가이룬의 카드를 선택하기 직전.

제 10혼돈계 메인 거점 행성을 지키려 파견된 카멜라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이곳은 현재 그녀와 이네르타, 사로스, 그리고 다카룬이 지키고 있었다.

“아크엘의 말대로군. 아르곤이 이곳으로 쳐들어왔어.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거야.”

카멜라의 말에 이네르타 등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그녀들이 있는 한 아르곤이 제 10혼돈계의 메인 거점을 함락시키기란 불가능했다.

아르곤의 능력이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이네르타 혹은 사로스 중 한 명과 간신히 동급을 이룰 뿐이니까.

그녀들보다 한 수 위인 혼돈의 시종 카멜라까지 있는 한 아르곤은 죽으러 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신들이 혼돈계에 간섭하게 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아르곤은 혼돈계의 신 에칸드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로인해 그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의 전투력은 대폭 상승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카멜라 등은 저주를 받았다.

[혼돈계의 신 에칸드가 당신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당신의 공격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당신의 방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당신의 명중률이 대폭 하락합니다.]

······

이로인해 그녀들은 전투력과 관련된 모든 능력이 대폭하락하고 말았다.

모두 그녀들이 신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

신을 섬기고 있었다면 그 신이 적대 신의 저주를 막아줄 뿐 아니라 전투에 유리한 가호 즉, 버프를 걸어주겠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그렇게 카멜라 등의 전투력이 대폭 하락한데 비해, 아르곤 등은 전투력이 대폭 상승했으니, 이 전쟁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혼돈의 마녀 베누스가 있는 42혼돈계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비록 베누스와 시종들도 트로모스가 선택한 신 가이룬의 저주를 받아 전투력이 대폭 하락하긴 했지만, 본래 준혼돈자급의 베누스는 여전히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베누스는 그때까지 누가 쳐들어오던 신경쓰지 않고 상훈에게 몽환력을 주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훈의 몸이 사라져버리자 놀란 상태였다.

바로 그때 경천동지의 알림이 울려퍼졌으니!

[신들의 전쟁으로 혼돈계의 모든 전쟁이 일시적으로 중단됩니다.]

[전상훈과 가이룬의 결투가 시작됩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갑자기 신들의 전쟁이라니!

게다가 본래 혼돈계의 군주였던 전상훈이 신 가이룬과 결투를 한다고 한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마녀님?”

“로드께서 왜 가이룬과?”

시종들이 모두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베누스는 이내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놀랄 것 없다. 그가 드디어 혼돈자가 된 것이니까.”

사실 그간 그녀가 몽환공역을 보고는 있었지만, 상훈이 강해지고 있다는 건 알 뿐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상훈이 경지가 상승할수록 그와 그의 분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그녀가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신의 이름으로 혼돈계에 이름을 알린 것이니, 비로소 혼돈자가 되었음을 확신한 것이다.

“와아! 꿈만 같아요!”

“로드께서 혼돈자가 되시다니!”

“역시 로드시군요!”

“로드의 시종이 된 것이 자랑스러워요.”

시종들은 모두 가슴이 벅찬 듯했다.

“로드께서 가이룬을 꼭 쓰러뜨리셔야 할 텐데요.”

“나도 걱정이다만 그는 승산없는 전투를 할 자가 아니다. 분명 승리할 거야.”

베누스는 상훈의 승리를 확신했다.

물론 제 1혼돈계의 아크엘도 알림을 듣는 순간 환호하고 있었다.

‘오! 저 말은 곧 로드께서 혼돈자가 되셨다는 뜻이 아닌가?’

초현자인 그는 그 알림 하나로 어떤 상황인지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을 카멜라 등에게 전했다.

-로드께서 혼돈자가 되셨다. 이제 혼돈계에서 신의 반열에 드신 것이니, 앞으로 더 이상 적대 신들의 저주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자 카멜라와 사로스, 이네르타의 표정이 환해졌다.

“결국 로드께서 해내셨군.”

“로드는 이제 신이야!”

“가이룬과의 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셨으면!”

초월자 노예들 중 유일하게 신을 선택하지 않고 끝까지 상훈의 편에 남아있던 다카룬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이제 로드께서 날 부하로 받아주시면 좋으련만.’

그는 상훈의 노예가 아닌 부하가 되고 싶었기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 * *

이 상황에 가장 황당한 자는 당연히 혼돈자 가이룬이었다.

난데없이 자신에게 누군가 도전해올 줄이야.

물론 그는 이것이 혼돈자의 룰에 있는 내용임을 알고 있었다.

도전을 받아들이면 전투가 벌어지고, 도전을 거부하면 그는 자동으로 혼돈 시스템에서 신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혼돈 시스템에 간섭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혼돈 시스템에 눈독을 들이는 녀석이 또 나타난 건가?’

하긴 혼돈자라면 당연히 몰려올 것이다.

이 시스템을 소유하게 되면 혼돈자로서의 능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도전자가 매우 강한 혼돈자라면 가이룬이 물러나는 게 맞다.

공연히 더 큰 힘에 욕심을 내다 죽는 것은 바보짓이니까.

‘어차피 에칸드만 빼면 암황과 아킬라는 나와 비슷한 수준. 설마 에칸드와 같은 강자가 또 나타난 것은 아닐 테고.’

그런데 그 이름을 보니 뜻밖이었다.

군주 전상훈!

몽환공역에서 그에게 치욕을 안겨준 바로 그놈이었던 것이다.

‘그놈이 어떻게 내게 도전을?’

전상훈이 혼돈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가이룬의 입가에는 곧바로 가소롭다는 미소가 피어났다.

몽환공역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그가 패배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몽환공역에서 뭔가 기연을 얻은 모양이로군. 하지만 이제 막 혼돈자가 된 녀석이 나를 상대로 감히 도전장을 내밀다니!’

가이룬은 즉각 도전을 받아들였고 그는 즉시 혼돈계 밖에 존재하는 신들의 전투장으로 이동되었다.

상훈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이룬의 카드를 선택하고, 가이룬이 즉각 응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순간 그 또한 신들의 전투장으로 위치가 바뀌었다.

그곳에는 이미 백발의 신선과 같은 용모를 가진 가이룬이 오연한 미소를 흘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분수도 모르고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혼돈자가 되자마자 소멸되는 불행은 네 스스로 자초한 것이니라.”

“너야말로 그때 쓴맛을 봤으면 분수를 알고 혼돈계를 떠났어야 했다.”

상훈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가이룬은 몽환공역에서 상훈에게 전력을 다 드러냈었던 터라 그가 어느 수준인지 상훈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카드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자 가이룬이 두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번뜩였다.

“가소로운 놈! 네놈에게 진정한 혼돈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곧바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가이룬의 오른쪽 손가락 위에서 빛이 번쩍이는 순간 그 위로 둥그런 구형체가 생겨나더니 그것이 눈깜짝할 사이에 확대되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가 가진 혼돈력을 모두 구형체에 응축시킨 후 그것을 폭발시킨 것이다. 이 신들의 전투장을 이루는 공역의 어느 경계이든 이 폭발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이 공역 안의 온도는 가히 무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치솟았다.

그런 미증유의 열기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장소는 가이룬이 서 있는 일정 반경뿐.

상훈을 가소롭게 생각하면서도 가이룬은 이 결투에 생사가 달려있는만큼 처음부터 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을 펼친 것이다.

‘이런 공격을 당하면 나도 버텨내기 힘들다. 하물며 갓 혼돈자가 된 애송이 녀석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가이룬은 상훈이 소멸되었을 거라 확신했다.

지금의 공역을 뒤덮은 이 뜨거운 기운은 단순히 온도만 높은 것이 아니다. 그것에 닿는 모든 걸 소멸시키는 혼돈력의 파괴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이룬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떴다.

언제 생겨났는지 공역의 한 곳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는데, 공역을 뒤덮었던 혼돈력의 기운들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회전함과 동시에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 기운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흡수되고 있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담담히 위치하고 있는 상훈의 손으로.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네놈이 어떻게 그런 경지에······.”

가이룬은 경악했다. 그의 모든 공격을 그대로 흡수해버린 상훈의 능력은 그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상훈이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그 순간이 그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파스스스-

상훈의 손에서 광채가 번쩍이는 순간 가이룬의 몸이 그대로 녹아 흩어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스스.

그 순간 상훈은 신들의 전장에서 다시 미지의 빛이 가득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엔 서큐버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제 나도 참여자격을 얻은 거냐?”

“무, 물론입니다. 설마 당신이 가이룬님을 이기실 줄은 상상도 못했군요.”

“별로 대단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혹시 다른 녀석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이 게임에 참여하신 혼돈자들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룰 중 하나입니다. 그것을 어기는 순간 저는 죽습니다.”

“게임이라고?”

상훈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서큐버스를 노려봤다. 서큐버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게임이라는 용어가 불쾌하게 느껴지신다면 전쟁으로 바꿀까요? 이 게임 아니, 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앞으로도 적지않은 혼돈자들이 이곳에 몰려올 것입니다.”

“그 따위 용어는 뭐를 쓰던 상관 없어.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이 따위 시스템이 뭐라고 혼돈자까지 되는 자들이 이곳에 몰려오는지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듯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상이 없다면 그 어떤 혼돈자가 자신이 패배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게임에 참여하겠습니까?”

“그 보상이 뭔데?”

“이 혼돈 시스템을 손에 넣게 되면 혼돈자들은 더욱 강력한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더 강해질 수 있다?”

“이 시스템에는 무수한 비밀이 숨겨져 있죠.”

상훈이 차갑게 웃었다.

“대체 그놈의 의도는 뭐지?”

“네?”

“그놈 말이야. 이 시스템을 만든 놈! 초월자들을 모을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혼돈자까지 끌어모으고 있어. 그놈이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 그야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당신이 혼돈 시스템을 장악하시면 자연스레 그 분을 만나뵙게 될 테니 그때 여쭤보시면 됩니다.”

“혹시라도 내 말을 전할 수 있으면 전해라. 만나면 이유불문하고 내가 죽인다고. 그가 누구이든 말이야.”

“네······.”

서큐버스는 몸을 떨었다. 상훈의 시선이 너무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직 당신이 가이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한 가지 측정만 거치고 나면 당신은 혼돈계의 신으로 이 게임의 진정한 참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뭘 측정한다는 거냐?”

“혼돈자들은 신들의 전투장에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 것 외에는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신의 가호와 신의 저주라는 두 가지로만 이 게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요.”

“그런데?”

“그 신의 가호와 저주는 혼돈자의 능력에 따라 단계가 결정됩니다. 즉, 보다 강한 혼돈자일수록 자신의 신도들에게 더 강한 위력의 가호를 주고, 적들에게는 무서운 저주를 줄 수 있죠.”

“신도들을 강하게 만들고 적을 약하게 만들라는 얘기군.”

“강력한 신도들이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그들이 적대 신의 신전을 점령하면 당신은 그 신에게 직접 전투를 걸 수도 있으니까요.”

“그때는 신들의 전투장에서 전투를 벌여 적대 신을 죽일 수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뭐 좋아. 그럼 어디 측정을 해봐라.”

그러자 서큐버스가 뭐라 주문을 외웠다.

순간 신비한 빛이 반짝이는 큼직한 수정구가 상훈의 앞에 나타났다.

“거기에 그냥 손만 대주시면 단계가 측정됩니다.”

슥.

상훈이 손을 대자 수정구가 급격히 팽창하더니 그대로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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