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절대 충성의 부하들 (1) (89/159)

 # 89

절대 충성의 부하들 (1)

제 42혼돈계 메인 거점 행성 C42001.

본래는 켈라크스 제 7군황 바스타오의 군황성이 있는 곳이다.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초마왕 사르탄이 이곳을 공격해 바스타오를 죽이고 군주가 되었다.

그 사르탄은 오늘 혼돈의 마녀 베누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베누스는 적월의 페르틸라를 보유하여 42혼돈계의 군주가 된 것이었다.

“군황성의 내성 궁전에 마녀님의 거처를 마련했어요.”

“누추하지만 중립 행성의 궁전보다는 이곳이 지내기 편하실 듯해요.”

시종7을 제외한 여섯 명의 시종들은 베누스가 어비스에서 알려준대로 각 중립 행성에 있는 또 하나의 비밀창고에서 혼돈계 이동권을 얻었다. 그리고 그 즉시 이곳으로 이동해온 것이었다.

베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전상훈 놈이 쳐들어 올 것이다.”

“후후, 지금쯤 그 놈은 마녀님이 이곳 혼돈계의 군주가 된 것에 꽤나 놀라고 있을 걸요.”

“그 놈이 오는 순간 저희들도 총력을 다해 공격하겠어요.”

“그 놈은 만만치 않으니 너희들도 충분히 대비를 해야 한다.”

베누스는 아공간에서 각종 극초월 무기와 장비들을 꺼내 시종들에게 건넸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모두 10강까지 강화된 상태였다.

“10강 암흑화룡검!”

“이건 10강 자린화룡창이예요!”

“정령왕의 망토도 10강이라니!”

시종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베누스를 쳐다봤다. 베누스는 미소 지었다.

“그 정도면 너희들은 적어도 두 배 이상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너희들이 그놈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분산시켜줄 수 있다면, 내가 승리를 거두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놈의 정신을 분산시키겠어요.”

베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최대한 빠르게 이곳 혼돈계를 장악하는데 전념해라.”

“네, 마녀님.”

시종1은 전체 병력을 지휘하고, 시종2는 메인 거점 관리자로!

시종3과 시종4는 중립 행성으로 가서 각성자들을 고용해 퀘스트 행성에 투입!

시종5와 시종6은 이곳 군황성의 1000여 초월자들을 노예로 재편성하라!

이것이 베누스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시종3이 먼저 중립 행성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 * *

시종3은 황금발의 엘프 미소녀였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조화를 이룬 이목구비.

무척이나 하얀 피부에 푸른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였다.

늘씬하지만 볼륨감 있는 몸매의 그녀는 멀리서 봐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봐, 시종3. 잠깐 나 좀 볼까?”

각성자들을 고용하기 위해 중립 행성의 인력 관리소로 향하던 시종3은 난데없이 자신의 앞을 불쑥 가로막는 웬 청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네, 네놈은 전상훈?”

그녀는 상훈을 처음 보지만 단번에 알아봤다. 상훈은 미소 지었다.

“날 안다니 잘됐군. 잠깐 너와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와라.”

그러자 시종3이 냉소했다.

“헛소리 지껄이지마라, 전상훈. 난 너 따위 하등한 녀석과 얘기를 나눌 생각은 없으니까.”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일단 선물부터 받고 얘기하자.”

“······?”

순간 상훈은 감미로운 혼돈의 빛구슬 하나를 꺼내 그녀의 눈 앞에 내보였다.

화아악!

투박했던 구슬에서 신비한 빛이 환하게 번쩍였다. 그 빛을 본 시종3의 두 눈이 커졌다.

“그, 그건?”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눈 앞에서 너무도 감미로운 빛구슬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자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상훈으로부터 그것을 받아쥐고 말았다.

[시종3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2000]

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시종3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이, 이런!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라니. 난 그저 네게 선물을 주고 싶을 뿐이야.”

계속해서 상훈은 아공간에 있던 빛구슬과 팔찌, 반지들도 그녀의 손에 하나씩 건네주었다.

[시종3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시종3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시종3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

[누적 친밀도 32900]

놀랍게도 그녀와 관련된 친밀도 아이템 수량이 꽤나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절대 충성도인 2만을 넘어선 것은 물론이고 3만도 돌파했다.

“······!”

그런데 시종3은 너무도 극심한 충격을 받았는지 그대로 실신해버렸다.

“이런!”

룬델과 달리 시종3은 상훈에 대한 적개심이 극도로 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반대되는 감정이 폭발적으로 들어왔으니 정신을 수습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혼돈의 시종답게 실신한 즉시 금세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그대로 일어나지 않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일어나라, 시종3.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너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해.”

상훈은 시종3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상훈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훈의 손을 잡고는 일어나 서며 물었다.

“새로운 운명?”

“그래. 나의 시종이 될 운명이지.”

“······.”

더 이상 그녀의 표정에 상훈을 향한 적개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건지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제가 언제 당신의 손에 키스를 했나요?”

그녀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투는 아까와 달리 더없이 정중해져 있었다.

“어비스에서 시종7이 바로 나였다.”

친밀도가 절대 충성도를 넘어선 이상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상훈은 그녀에게 솔직하게 카멜라와 관련된 얘기를 해주었다.

“아, 그럴 수가! 어쩜 시종7도 그렇게 감쪽같이 우리를 속이다니!”

시종3은 기막혀했지만 그렇다고 상훈과 카멜라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녀는 철저히 상훈의 시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이 저의 첫키스 상대였군요.”

심지어 시종3은 그 말을 하며 수줍어하는 표정도 지었다.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카멜라에게 들어 이럴 줄은 알았지만.

“손등에 키스 좀 한 거로 무슨 첫키스냐? 그건 인사일 뿐이야.”

“저에게는 첫키스라고요. 그거만 기억해주세요.”

상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꼭 기억할게.”

그러자 시종3은 기뻐하더니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미천한 시종이 위대하신 혼돈계의 군주이신 로드께 인사드려요. 앞으로 로드의 좋은 시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어요.”

“그래.”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하죠? 로드의 시종이 되어버린 걸 모두에게 말해야 하나요?”

“아직은 아니야. 특히 마녀나 다른 시종들에게 절대 들켜서도 안 돼. 자세한 건 여기서 말하기 그러니 날 따라와라.”

“네.”

상훈은 시종3을 룬델의 궁전으로 데려왔다.

이곳 궁전의 대전은 이제 상훈 전용이었다.

“잘 들어라, 시종3.”

곧바로 상훈은 앞으로 다른 시종들은 물론 혼돈의 마녀 베누스까지 친밀도를 올려 아군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시종3은 깜짝 놀랐다.

“맙소사! 마녀님까지요?”

“쉽지 않아도 그게 최선이야. 그렇지 않으면 난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어.”

“그건 안 돼요! 제발 마녀님을 살려주세요, 로드.”

시종3은 울먹이며 부탁했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희들을 죽이려고 작정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희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 나를 죽이겠다며 작당한 것 외에는 크게 나쁜 짓 한 것도 없고 말이야.”

“고마워요, 로드. 그리고 아까 무례하게 말한 것 용서해주세요.”

“하등이 어쩌고 했던 말?”

“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어요.”

“나의 시종이 되기 전에 했던 말이니 용서해주마.”

상훈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넌 시종3이 아니라 아이리스다.”

이름에 선택권을 주기보다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 하나 결정하는 걸로 몇 시간 이상 걸릴 테니까.

“아이리스?”

“베누스와 달리 난 너를 단순한 시종이 아니라 부하로 여길 거야. 그러니 새로운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름도 받아들여라. 내가 알던 어떤 제국의 1황녀가 쓰던 품격 있는 이름이니까.”

“고마워요. 로드의 뜻에 따르겠어요.”

시종3 아니, 아이리스의 표정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이제 너의 임무는 다른 시종들을 자연스럽게 내 앞에 데려오는 거야.”

한 명을 포섭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시종들을 모두 포섭해 놓아야 마녀를 끌어들이기 쉬워질 것이다.

“그녀들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겠죠.”

아이리스는 상훈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시종들을 데려오는 순간 그녀들 또한 상훈의 시종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배신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모두 그들을 살리기 위한 일이니까.”

“로드의 깊은 배려에 정말 감사드려요.”

“알아준다니 고맙구나.”

“근데 시종7은 잘 있는 거죠?”

“아주 잘 있으니 염려마. 그리고 시종7의 이름은 카멜라야.”

“카멜라! 예쁜 이름이군요. 그럼 다른 시종들의 이름도 모두 지어주실 거죠?”

“물론이야. 이미 다 지어뒀어. 넌 가서 어서 데려오기나 해라.”

“시종4는 저랑 같은 임무를 받아서 데려오기 쉬운데 다른 시종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이리스는 상훈에게 시종들의 상황을 설명해줬다. 마녀가 어떤 임무를 내렸는지 말이다.

“그냥 잠깐 중립 행성에 놀러가자고 하고 데려오면 되지 않을까?”

“절대 안 될 일이예요. 시종들은 마녀님의 지시가 없으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어요. 저 역시 중립 행성의 각성자들을 고용하라는 임무를 받지 않았다면 이곳에 올 수 없었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방법은 내가 생각해볼 테니 넌 가서 시종4를 데려와.”

“네, 로드.”

아이리스는 궁전 밖으로 사라졌다. 상훈은 고심에 잠겼다.

‘이럴 것 없이 그냥 확 쳐들어가서 선물을 던져줄까?’

시종들에게는 가능하다. 가볍게 제압한 후 선물을 안겨주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나 준혼돈자급의 전투력을 지닌 혼돈의 마녀 베누스에게는 불가능한 일.

그녀는 상훈을 보자마자 공격할 것이 분명하고, 그런 와중에 선물을 꺼내 던져줄 틈도 없었다. 던져준다한들 격전의 여파에 아까운 친밀도 아이템은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다.

“혹시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군주님?”

그때 룬델이 대전으로 들어오며 조심스레 물었다. 상훈이 쳐다보자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화 결계에서 기다려도 오시지 않기에 올라왔는데 군주님께서 뭔가 고심하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잘 왔다. 혼돈의 마녀와 시종들의 친밀도를 올릴 방법을 연구 중인데 뭐 좋은 방법 있으면 얘기해 봐.”

절대 충성도를 가진 룬델에게는 굳이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다.

거점 관리자라면 혹시 뭔가 좋은 방법을 알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아니나 다를까, 룬델은 즉시 답을 내놓았다.

“친밀도 아이템은 절대 충성도를 가진 부하가 있으면 대신 전달도 가능합니다. 이미 손에 키스를 받으신 상황이라면 전달을 이용해보시는 게 어떠실지요.”

“그래?”

상훈은 반색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다만 이때는 반드시 서신도 함께 전달해야 합니다.”

“편지를 쓰라는 거야?”

“예. 한 줄이라도 좋으니 군주님이 전하는 선물이라는 내용의 서신이 있어야 친밀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그거 아주 편리한 방법인데?”

“다만 직접 선물을 전해주는 것보다 친밀도 상승폭이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지요.”

“얼마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10% 정도는 깎일 겁니다.”

“그 정도라면 해볼만해.”

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은 방법을 알려줘서 고맙다, 룬델.”

“그것이 군주님께 도움이 되었다니 저로서는 영광일 뿐입니다. 이후에도 군주님께 저의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너의 충정을 잊지 않겠다.”

곧바로 상훈은 룬델과 함께 강화 결계로 내려가 극초월 장비들을 모두 10강까지 강화했다.

그 후에는 다시 궁전의 대전으로 돌아와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이제 혼돈자의 경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 남은 건 수련 뿐이다.

‘베누스와 결투를 하면 좀 더 빨라질 수 있을 텐데 아쉽군.’

그러나 베누스와 현실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둘의 전투로 인해 혼돈의 공역조차 찢겨나갈 정도였으니 혼돈의 괴수 행성은 오죽하겠는가.

그곳이 공역으로 변한다 해도 자칫 경계가 찢겨나가 또 페르틸라의 공역과 연결이 되기라도 한다면 42혼돈계 전체가 소멸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따라서 가장 좋은 건 그녀와 상상 결계로 수련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와의 친밀도를 반드시 올려야 할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전까지는 혼자서 충분히 수련을 해두자.’

그때 아이리스가 시종4와 함께 대전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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