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3강 해줄 테니 키스해! (2)
그런데 시종7은 순간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3강 무기가 탐나서 승낙했던 일이지만 키스를 해야한다니!
그것도 남자의 손에!
“잠깐! 그냥 이걸로 대신하면 안될까?”
그녀는 재빨리 아공간에서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 1개를 꺼내 내밀었다.
그것은 불완전한 혼돈석과 초월 등급 강화석을 연금해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만큼 그 가치는 엄청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훈은 지금 그걸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거였다면 3강 대리 강화 조건으로 처음부터 강화석을 달라고 했을 테니까.
“약속을 어기겠다는 거냐? 강화석은 집어넣고 어서 내 손등에 키스해.”
“모, 못해.”
“왜 못해?”
“미안하지만 난 한 번도 남자에게 키스한 적 없어.”
“입에다 하는 것도 아니고 손등에다 살짝 하는 건데 뭘 그래? 이건 그냥 인사나 마찬가지야.”
“나에겐 그 둘이 다르지 않아. 그러니 다른 걸로 바꿔라. 강화석을 원하면 하나 더 줄 수도 있어.”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혼돈 시스템의 최종 보스인 혼돈의 마녀. 그 마녀의 시종의 입에서 저와 같은 말이 나오니 뭔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잡을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놨군.’
상훈이 볼 때 시종7은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처음엔 상훈도 시종7의 정체가 뭔가 했다.
무식한 전투 능력을 보고 이네르타와 같은 전투로봇인가 싶었다. 혹은 사로스와 같은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종족인가 했다.
물론 둘 다 아니었다.
초월자인 그의 직감으로 볼 때 믿기지 않지만 그녀는 인간이었다.
분명 인간이지만 보통의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
혼돈 시스템의 힘으로 탄생한 신인간!
하넬처럼 게임과 같은 시스템이 아니라면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였지만, 그 능력에 있어서는 가히 사기적이었다.
다만 그녀의 그런 무시무시한 능력과는 달리 성격은 상당히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약속을 안지킬 셈인가 본데 그럼 이 3강 무기도 줄 수 없다.”
“그, 그건 안 돼.”
시종7은 암흑화룡검(+3)을 반드시 받아야 했다.
그러나 상훈은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줄 기세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상훈의 손등에 키스를 하고 말았다. 무척이나 무성의하게 슬쩍 입을 가져다 댄 후 잽싸게 떼었지만 그녀의 뺨은 붉어져 있었다.
“됐지?”
그제야 상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암흑화룡검(+3)을 건넸다.
이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친밀도 작업을 하려는 판에 약속을 안 지키면 친밀도에 악영향을 미칠 테니까.
“좋아. 이제 검을 받아라.”
“두고 봐!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
시종7은 상심과 적개심이 가득찬 눈빛으로 상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훈은 그 사이 자신의 아공간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깜짝 놀랐다.
‘어? 저건?’
핑크빛으로 유독 화려하게 반짝이는 아이템!
[시종7 친밀도]
-고대 괴조의 깃털 : 친밀도 0.01 상승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 : 친밀도 2000 상승 (♥)
아르나나 하넬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되지 못했던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이 시종7에게는 개당 친밀도를 무려 2000이나 올려주는 초대박 아이템이었을 줄이야.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
-등급 : 신화
-용도 : 친밀도 아이템
-고대 혼돈의 괴수가 파괴될 때 극히 희박한 확률로 드롭하는 구슬로 그 빛이 매우 영롱하며 아름답다고 전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투박할 뿐이다. 오직 특별한 존재에게서야 이 구슬의 진가가 드러나며 그때 비로소 숨겨진 영롱한 빛을 내뿜을 것이다.
-시종7 친밀도 2000 상승
상훈의 아공간에는 이것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었다.
부하들과 파티를 맺고 혼돈의 괴수를 처치하다 얻은 드롭템들이었으니까.
‘정말로 단번에 2000이나 상승한다는 건가?’
그는 잽싸게 그 중 하나를 꺼냈다. 과연 시종7이 이 구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다. 그때 시종7은 싸늘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잠깐만! 너 혹시 이 구슬에 관심있어?”
“······?”
시종7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상훈이 쥐고 있는 구슬을 쳐다봤다. 그 순간 칙칙한 색을 띠고 있던 투박한 구슬이 갑자기 신비한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화악!
꿈에서나 볼 법한 신비롭고 영롱한 빛! 그것은 환상 그 자체였다.
“아.”
시종7의 두 눈이 커졌다. 빛구슬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경탄으로 물들었다. 처음 보는 구슬인데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틀림없군. 이 구슬에 관심이 있어.’
상훈은 시종7의 표정을 보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넬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상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놀라운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냐는 듯 말이다.
“어때? 이걸 줄까? 갖고 싶다면 줄 수도 있는데.”
그러자 시종7은 반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굳힌 채 상훈을 노려봤다.
“그걸 내게 주는 대신 또 무슨 조건을 걸려고 하는 거지?”
“조건은 없어. 그냥 네게 주는 선물이야.”
“선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난 이유없는 호의는 받지 않겠다.”
그녀는 정말로 빛구슬이 탐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상훈을 경계하는 마음이 강하다보니 선물을 거절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상훈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힐끗 하넬을 쳐다봤다. 지원 요청이었다. 그러자 하넬이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상훈을 향해 다가왔다.
“어머! 이 멋진 구슬을 사양하다니! 나라면 그냥 받을 텐데. 군주님, 이거 그냥 저 주시면 안 돼요?”
“너도 이 구슬에 관심이 있어?”
“물론이죠. 여자라면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빛을 내는 구슬을 싫어할까요? 이걸 제 방에 장식해두고 아침 저녁으로 매일 쳐다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시종7에게 줄 선물이야.”
“시종7님은 싫다고 거절했잖아요. 그냥 저에게 주세요.”
“하긴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줄수는 없겠지. 그럼 하넬 네가 가······.”
그런데 그 순간.
“자, 잠깐!”
멀리 계단 쪽에 있던 시종7이 어느새 상훈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초조해 보이는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그 선물 내가 받겠다.”
상훈은 하넬의 수법에 감탄했다. 그녀가 전투력은 시종7에 비할 수 없이 약하지만 이런 식으로 머리를 쓰는 면에서는 한 수 위인 것이다.
“좋아. 애초에 네게 주려던 선물이었으니까. 하넬 네겐 미안하게 됐다.”
“아니에요. 시종7님이 받겠다면 어쩔 수 없죠.”
하넬은 짐짓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곧바로 상훈은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을 시종7에게 건넸고, 그녀는 즉시 그것을 받았다.
“아.”
구슬을 쥔 채 그것을 바라보는 시종7의 표정은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시종7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2000]
[시종7과의 누적 친밀도가 2000이 되어 격려 1단계를 펼칠 수 있습니다.]
단번에 격려 스킬을 펼칠 수 있을 정도까지 친밀도가 오른 것이다.
‘잘됐어. 그럼 마저 4000까지 올리자.’
하넬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잘 믿기지 않았는데, 정말로 혼돈의 시종과의 친밀도를 높일 수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때 시종7이 돌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구슬을 받는 순간 갑자기 상훈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봐온 친구처럼 친근감이 들었다.
‘미쳤어. 내가 미친 거야.’
물론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녀는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전상훈과의 친밀도가 2000이 되었습니다.]
방금 전 이같은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친밀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가 모를 리가 없다.
1도 아니고, 100도 아니고, 무려 2000이라니!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큰일이야. 나 이제 어떻게 해?’
당장이라도 구슬을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쁜 놈······! 바로 이것을 노리고 내게 선물을 준 것이군.”
그녀는 분한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하지만 웃기는 생각이야. 나와 친밀도를 높인다고 내가 널 좋게 생각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시 만나면 이 검으로 널 반드시 주······.”
하지만 죽이겠다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왠지 상훈을 절대로 죽일 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상훈이 뭔가 부탁을 하면 들어줘야할 것 같았다.
더 이상은 혼란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그대로 계단을 빠르게 올라 달아나버렸다.
“잠깐! 이것도 받아.”
상훈이 빛구슬을 하나 더 꺼내 보였지만 시종7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도망쳤네.”
“혼란스럽겠죠. 저라도 미칠 거예요. 죽여야 할 적인데 죽이기가 싫어졌으니 말이죠.”
“날 보는 눈빛에서 적개심이 사라진 건 확인했어. 이것도 마저 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그러자 하넬이 두루마리 한 장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이 지도를 통해 시종7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요.”
“위치 추적 지도야?”
“군주님께만 특별히 해드리는 거니 어디 가서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염려마. 너와의 비밀은 절대 지킬 테니까. 그리고 이번 일에서 너의 공로를 절대 잊지 않겠다.”
하넬이 아니었다면 시종7의 친밀도를 높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상훈이 칭찬하자 하넬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의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예요. 군주님께서 혼돈계를 통일하시는 데 어떤 도움이라도 아끼지 않겠어요.”
[하넬과의 친밀도가 1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2703]
뭔가 이렇게 훈훈한 대화가 오가면 친밀도가 상승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종일 대화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하넬과의 친밀도는 나중에 친밀도 아이템을 구해와서 왕창 올리기로 하고 일단은 시종7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편 그때 시종7은 빠르게 하넬의 궁전을 빠져나와 그녀가 있던 도시의 여관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잠근 후 곧바로 그녀는 눈을 감고 명상을 취했다.
의식적으로 상훈에 대한 안 좋은 생각을 해서 친밀도를 하락시켜볼 작정이었지만, 그 조차도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왠지 그러기가 싫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아공간에서 마도구를 꺼내 혼돈단톡을 열었다.
(시종7) 나 암흑화룡검 3강 성공함!!!
그러자 금방 반응이 왔다.
(시종3) 정말?
(시종6) 벌써?
(시종2) 부럽다. 난 아직 1강도 못했는데.
(시종1) 축하해.
(시종5) 근데 친밀도를 어떻게 그리 빨리 올린 거야?
(시종4) 그러게. 친밀도 아이템 암시장에도 거의 안 나오덴데...
시종7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시종들의 톡을 보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아서였다.
(시종7) 근데 나 그놈에게 친밀도 아이템 선물 받았어. 이제 어떻게 하지? 누적 친밀도가 2000이나 되는데......
그러나 그렇게 톡을 전하려던 그녀는 이내 그것을 지워버렸다.
왠지 이걸 쓰면 안 될 것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도 계속 톡은 이어지고 있었다.
(시종1) 그보다 어비스가 곧 열릴 텐데?
(시종4) 어비스? 우리도 거기 들어갈 수 있어?
(시종1) 응. 그때 그놈이 포인트를 못얻도록 방해해야 해.
(시종2) 좋은 생각이야. 그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합공하면 버텨낼 수 없을 걸.
(시종6) 근데 거기서 우린 어떻게 서로 알아보지?
(시종1) 그게 문제이긴 해.
(시종4) 어떻게든 되겠지.
(시종3) 연구해보자.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우리끼린 공격하면 안되잖아.
(시종1) 시종7 혹시 좋은 생각 있어?
(시종7)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그와 함께 들리는 소리.
“그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시종7. 당장 문 열어.”
상훈의 음성이었다. 시종7은 흠칫 놀랐다.
‘어떻게 이곳을?’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열어선 안 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걸어가 문을 열고 말았다.
“여긴 무슨 일이지?”
시종7은 상훈을 싸늘히 노려봤다. 상훈은 즉시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걸 주려고 왔다.”
“그, 그것은!”
화악!
투박한 빛깔의 구슬이 시종7 앞에서는 다시 환상적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시종7은 반사적으로 그 구슬을 받았다. 그것을 보는 순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종7과의 친밀도가 2000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4000]
‘됐다.’
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면에 시종7은 친밀도가 또 2000이나 상승해 누적 친밀도가 4000이 되어버리자 이제는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대체 날 어쩔 생각이지? 이렇게 친밀도를 올려버리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시종7은 상훈을 원망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어쩌긴. 나와 친해지면 되는 거지.”
“웃기지 마. 난 너와 절대 친해질 수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차 한 잔 안 줄 거냐?”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꺼져.”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상훈을 쫓아내거나 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와 상훈의 친밀도는 누적 포인트 2703의 하넬보다도 높았다. 훨씬 더 친밀한 사이가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차만 빨리 마시고 가든가.”
“고마워.”
그렇게 상훈은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탁자 위에서 웬 스마트폰처럼 생긴 물건을 발견하고 놀랐다.
“어라? 이거 혹시 스마트폰이야?”
톡! 톡-!
게다가 소리도 났다.
“뭐지? 꼭 톡하는 소리 같네?”
“잠깐! 그건 보면 안 돼!”
시종7이 깜짝 놀라 그것을 집으려 했지만 이미 상훈의 손에 들어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