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안 되는 것도 되게 만드는 능력 (1)
제 10 혼돈계 C10012 행성.
이곳은 지도 두루마리에 붉은 빛으로 표시된 행성이었다.
라인카스와 그의 부하들의 능력으로는 잡을 수 없었는지 혼돈의 괴수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아크엘, 이네르타와 사로스를 10혼돈계로 보내.
-예, 그녀들에게 즉시 로드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부하들을 키워줄 좋은 기회였다. 잠시 후 그녀들은 중립 행성 중앙 포탈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드! 저희들 왔어요.”
“불러서 왔다, 로드.”
“어서들 와.”
상훈은 중앙 포탈 앞에서 그녀들을 맞이했다. 곧바로 그녀들에게 파티를 걸었고 C10012행성부터 시작해서 10개 행성을 모두 돌았다. 덕분에 그녀들은 지난 번에 이어 또다시 대폭 전투력이 증가했다.
불완전한 혼돈석 6개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 2개
고대 괴조의 깃털(전설) 4개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전설) 7개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신화) 2개
부하들은 강해지고 상훈은 아이템을 챙기고!
물론 이밖에 상급 차원석과 루나 및 잡템들도 수두룩하게 아공간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중에서 상훈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바로 불완전한 혼돈석과 강화석, 그리고 친밀도 아이템들이었다.
특히 상훈이 궁극의 강화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면서 혼돈의 괴수를 처치할 때 강화석 드롭률이 상승했다. 불완전한 혼돈석과 별도로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불완전한 혼돈석은 장비 만들 때 쓰고, 강화석으로만 강화를 하면 되겠군.’
상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무적인 건 부하들과 파티 사냥을 하자 혼자서 괴수를 처치할 때에 비해 확실히 아이템 드롭률이 조금은 상승한다는 것! 이는 한 마리가 아니라 도합 13마리의 괴수를 사냥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덕분에 친밀도 아이템들도 제법 모였다.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
-등급 : 신화
-용도 : 친밀도 아이템
-고대 혼돈의 괴수가 파괴될 때 극히 희박한 확률로 드롭하는 구슬로 그 빛이 매우 영롱하며 아름답다고 전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투박할 뿐이다. 오직 특별한 존재에게서야 이 구슬의 진가가 드러나며 그때 비로소 숨겨진 영롱한 빛을 내뿜을 것이다.
-아르나 친밀도 0.01 상승
“이건 아르나에게 줘봤자 소용없겠군.”
친밀도가 0.01밖에 오르지 않는다는 건 아르나에게 맞지 않는 선물이란 뜻.
신화 등급의 친밀도 아이템을 무려 2개나 얻었는데 막상 줄 대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하넬에게 한 번 보여줘볼까?’
거점 관리자와 친밀도가 높아지면 꼭 강화할 때만 좋은 게 아니었다.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들을 자발적으로 알려주기도 하니 친밀도는 높여두는 게 편할 것이다.
‘어차피 친밀도 아이템은 달리 쓸데도 없으니까.’
이네르타와 사로스를 1혼돈계로 돌려보낸 후 상훈은 10혼돈계의 거점관리자 하넬을 찾아갔다.
“거점 관리자, 하넬! 위대하신 제 10혼돈계의 군주이신 전상훈님을 알현합니다.”
하넬은 이제 상훈을 제 1혼돈계의 군주가 아닌 제 10혼돈계의 군주라 칭했다.
“일어나라. 볼일이 있어서 널 찾았다.”
“실은 저 역시 군주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군주님의 명대로 궁전을 깨끗이 청소하고 새단장 해놓았거든요.”
“궁전은 천천히 가면 되고,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뭐가 궁금하세요?”
“너도 거점 관리자이니 친밀도라는 걸 올릴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그러자 하넬이 반색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군주께서 제게 희귀한 선물을 주시면 친밀도를 올릴 수 있어요. 그럼 강화 성공 확률도 대폭 증가하고, 그밖에도 여러모로 제가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죠.”
“좋아. 그럼 너와 관련된 친밀도 아이템을 내가 알아볼 수 있게 해줘. 손등에 키스하는 것 맞지?”
“맞아요. 잘 아시는군요.”
“이 정도야 기본이지.”
상훈이 오른 손을 내밀자 하넬이 그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곧바로 상훈은 아공간에서 핑크빛으로 반짝이는 친밀도 아이템들의 정보를 살펴봤다.
[거점 관리자 하넬]
-고대 괴조의 깃털 : 친밀도 0.01 상승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 : 친밀도 100 상승 (♥)
-영롱한 혼돈의 빛구슬 : 친밀도 0.01 상승
하넬과 관련한 친밀도를 살펴보니, 그녀에게는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것에 하트 표시가 떠 반짝이고 있어 알아보기 쉬웠다.
‘엘프치고는 별 괴상한 취향을 갖고 있군. 어쨌든 아르나의 말대로구나.’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는 아르나에게 0.01의 친밀도밖에 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르나도 받기를 거절했고, 그것을 좋아할만한 다른 누군가에게 주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던 것이다.
그런데 하넬에게는 그것이 무려 친밀도 100의 선물이었다니!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 - 28개
오늘 얻은 7개와 합치니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는 무려 28개나 되었다. 기존에 21개를 갖고 있었으니까.
‘그럼 친밀도를 무려 2800이나 올릴 수 있다는 얘기인가?’
아르나는 620을 올렸을 뿐인데 3강까지 사실상 안전 강화가 가능했다. 오늘 얻은 괴조의 깃털로 400을 더 올린다 해도 1020뿐인데.
하넬은 무려 2800인 것이다.
‘이거 대박인 걸.’
아무래도 앞으로는 전용 강화사를 아르나가 아닌 하넬로 갈아타야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혹시 너 이런 것에 관심있어?”
“뭔데요?”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
상훈은 아공간에서 그것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괴상한 빛깔의 암석 부스러기로 형태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대단한 기운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훈으로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물건.
그러나 하넬은 깜짝 놀라며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잠깐! 그건? 혹시 혼돈의 괴수를 죽이고 나온 부스러기 아닌가요?”
“맞아.”
“정말 대단해요. 그 희귀한 걸 얻으셨다니!”
“그래서 이걸 네게 선물할까 하는데?”
“정말로 제게 주실 건가요? 주신다면 염치없지만 사양하지 않을게요.”
“좋아. 가져.”
상훈이 부스러기를 건네주자 하넬은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정말 고마워요. 제겐 정말 멋진 선물이에요.”
[하넬과의 친밀도가 100 상승했습니다.]
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체 그걸 어디에 쓰려고 관심을 두는 거야?”
“예술품을 만들 생각이에요. 이게 좀 더 많으면 멋진 작품이 나올 텐데 일단은 하나뿐이니 잘 모아둘게요.”
“하나뿐이긴. 이것들도 다 가져.”
상훈은 아공간에 있던 고대 괴수의 부스러기 27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
순간 하넬은 너무 놀랐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환호했다.
“와아! 세상에! 이걸 정말 제게 다 주시는 건가요?”
“물론이야.”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에게는 그저 잡템에 불과한 건데,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라도 좋아해주니 의미가 있긴 했다. 친밀도 아이템이라는 용도를 떠나서 말이다.
[하넬과의 친밀도가 2700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2800]
“아아, 정말 고마워요, 군주님.”
하넬은 대량의 선물을 받자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였다.
“부스러기가 이만큼 모였으니 드디어 제가 원하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기대할게. 너라면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완성되면 군주님께 꼭 보여드릴게요.”
[하넬과의 친밀도가 1 상승했습니다.]
[누적 친밀도 2801]
말을 예쁘게 해주자 친밀도가 1 올랐다. 아르나처럼 20씩 상승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1이라도 어디인가.
[친밀도 관련 특별한 능력이 개방되었습니다.]
[격려 1단계]
-등급 : 전설
-친밀도가 높은 대상에게 펼칠 수 있는 스킬로 대상을 감동시켜 평소 안 되던 것도 되게 만드는 능력. 격려를 받은 대상은 당신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가능한 한 들어주려 노력할 것이나, 너무 곤란한 요구를 하면 친밀도가 대폭 하락할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강화 시에는 강화 성공 확률이 5% 증가함.
-대상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면 발동됨.
-누적 친밀도에 따라 최대 3단계 격려까지 펼칠 수 있음.
[격려 단계]
-누적 친밀도 2000 : 1단계 개방
-누적 친밀도 5000 : 2단계 개방
-누적 친밀도 10000 : 3단계 개방
‘별게 다 생기는군.’
대상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도 들어주려 노력한다니!
무슨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건가?
어쨌든 있어서 손해볼 능력은 아니었다.
더구나 강화시에는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보다 이제 강화 확률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해볼까?’
하넬과의 누적 친밀도가 무려 2801이니 강화 성공률이 아르나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강화 확률은 어떻게 됐어?”
그러자 하넬이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군주께서 저에게 호의를 베푸신 덕분에 4강까지는 100%, 5강 82%, 6강 26%, 7강 2%, 그 이상은 알 수 없어요. 정말 놀라운 성공률이죠? 이건 저와의 친밀도뿐 아니라 군주께서 궁극의 강화자 칭호를 갖고 계신 터라 상향 조정된 확률이예요.”
“그렇군.”
친밀도를 2800이나 올렸는데 안전강화는 고작 4강뿐이라니.
고강화로 올릴수록 친밀도 효율이 극히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라도 어디인가.
게다가 격려 스킬이 생겼으니 여기에 5%를 추가로 올릴 수 있다.
곧바로 상훈은 하넬과 함께 궁전 지하의 어비스 강화 결계로 내려갔다.
“그럼 강화를 시작할게요. 이미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을 갖고 계시니 장비와 강화석을 결계에 넣어주세요.”
상훈은 게로드의 검(+3)과 강화석을 결계에 넣었다.
그러자.
번쩍!
결계 안에서 환한 광채가 일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게로드의 검(+4)을 얻었습니다.]
4강은 100%이니 무조건 성공!
문제는 5강이다.
확률은 82%.
실패 확률도 있지만 강화석의 여유도 있으니 한 번 가보기로 했다.
“5강도 가자. 넌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넬.”
[격려 1단계가 발동됩니다.]
[강화 성공 확률이 5% 상승합니다.]
격려 스킬 때문인지 하넬이 잠시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군주께서 저를 그렇게 믿어주시니 이 강화는 반드시 성공시키고 말겠어요.”
“좋아. 기대할게. 넌 내가 본 중 최고의 강화사야, 하넬.”
[이미 격려 1단계가 발동 중입니다.]
혹시나 싶어 또 하넬을 격려하는 말을 해봤지만 아쉽게도 격려 스킬은 연달아 발동되지 않았다.
이로써 성공 확률 87%.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상훈은 담담했다.
어차피 실패해도 강화석만 날릴 뿐 장비가 깨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 5강까지 강화 실패시 장비 보호.
이 또한 궁극의 강화자 칭호 효과 중 하나였으니까.
번쩍!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게로드의 검(+5)을 얻었습니다.]
“호호, 성공했어요!”
“잘했어.”
역시 격려의 효과 때문인가? 그래도 혹시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단 번에 성공했다.
[게로드의 검(+5)]
-등급 : 극초월
-어비스의 대장장이 게로드가 군주 전상훈이 건네준 불완전한 혼돈석과 레시피를 재료로 제작한 검. 불완전한 혼돈력의 기운을 증폭시켜 가공스러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음.
-강화 효과 : 무기 공격력 80% 상승, 적중시 대상의 회복력 감소.
5강이 되자 공격력이 대폭 증가했다. 또한 적중 대상의 회복력 감소 옵션도 붙었다. 이는 혼돈의 시종과 같은 적과 싸울 때 아주 유용한 옵션이었다.
“강화를 더 하실 건가요, 군주님?”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강화석이 생기면 또 하겠다.”
이제 몹에게 강화석이 드롭되는 이상 불완전한 혼돈석을 강화석을 만드는 데 소모할 수는 없는 일.
“혹시 중립 행성에서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다 돕겠어요.”
확실히 친밀도를 올려놓으니 이런 면에서 편하긴 했다.
중립적 위치에 있는 거점 관리자가 알아서 도와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맞아. 넌 이곳 행성의 관리자이니 어쩌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뭐가요?”
“숨어 있는 혼돈의 시종을 중립 행성 바깥으로 추방시킬 수 있어?”
혼돈의 시종이 비록 상훈을 두려워하고 있어 조용하게 웅크리고 있지만, 혹시라도 상훈이 이곳 10혼돈계를 떠나 다른 혼돈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방해 활동을 개시할 것이다.
10혼돈계의 메인 거점을 점령하거나 퀘스트 행성에서 작업 중인 초월자 노예들을 학살하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피곤해질 거야. 오늘 어떻게든 처리한다.’
그런데 하넬은 상훈이 설마 그런 걸 요구할 줄은 몰랐다는 듯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전혀 방법이 없는 거야?”
“그건 저의 능력 밖의 일이거든요.”
“세상에 안 되는 일이란 없어. 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하넬.”
[격려 1단계가 발동됩니다.]
상훈은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든다는 격려 스킬의 위력을 한 번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