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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또 하나의 장벽을 깨부수다 (1) (6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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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장벽을 깨부수다 (1)

그 순간 제 1혼돈계 C1094행성 중앙 포탈 앞.

포탈 관리자 옆에는 거점 관리자 아르나도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늘로 제 1, 2, 10혼돈계가 서로 연결되며 어느쪽으로도 이동이 가능해졌어요.”

“그쪽에서도 이곳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다는 뜻이군.”

“네. 다만 각 혼돈계의 중립행성에 위치한 중앙 포탈을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해요. 군주께서는 어디로 이동하시겠어요?”

“먼저 제 10혼돈계로······.”

그런데 그때였다.

화아아악!

갑자기 중앙 포탈이 환하게 빛나더니 자줏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웬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눈에 확 띄는 미소녀. 그러자 포탈 관리자가 갑자기 당황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제가 당신에 대한 정보를 알 수가 없군요.”

초월자들이 외부 차원계에서 이곳 제 1혼돈계로 진입하면 무조건 이곳 중앙 포탈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그러면 포탈 관리자는 그 즉시 그 초월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들어온 소녀는 정체불명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외부 차원계가 아닌 제 2혼돈계에서 이곳으로 이동했다는 것뿐이었다.

“······.”

그런데 소녀는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힐끗 주변을 훑어보다 상훈을 힐끗 노려보며 알 수 없는 차가운 조소만 짓고 있었다.

“넌 뭐냐?”

상훈은 소녀를 보는 순간 상당히 놀랐다.

일단 소녀의 파괴적인 기세 자체가 지금껏 상훈이 봐웠던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의 노예가 되었던 어비스 랭킹 2위 다카룬은 저 소녀에 비하면 그냥 어린 아이 수준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클래스가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존재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더구나 포탈 관리자도 모르는 존재라면?

“너 혹시?”

상훈은 문득 짚이는 바가 있었다.

“혼돈의 시종이냐?”

소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갑게 빛나는 눈빛에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뭐 하자는 수작인지 모르겠지만.”

미소녀가 호의적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라면 기분 나쁠 리가 없겠지만, 저 시종 소녀의 표정에는 파괴와 죽음만 가득하다. 웬만한 자들은 저 시선만 마주쳐도 심장이 얼어붙어버리고 말 것이다.

“나와 싸우러 온 건가?”

그러자 소녀가 의외로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처음으로 상훈의 말에 어떤 식으로든 대꾸를 한 것이다.

곧바로 상훈의 표정이 험상궂게 변했다.

“따라와라.”

혼돈의 벽이 사라진 이상 제 10혼돈계야 언제든 손볼 수 있다.

일단 혼돈의 시종부터 처치한다.

그는 걸어오는 싸움을 피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만일 저 위험한 존재를 이대로 두고 1혼돈계를 떠났다가는 지구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츠으으읏!

상훈은 C1099 행성으로 포탈을 열었다. 이곳은 혼돈의 괴수가 있던 행성이었다.

파앗-

순간 소녀가 그 즉시 상훈을 공격했다. 그러나 상훈이 더 빨랐다.

촤악!

상훈은 게로드의 검(+3)을 수직으로 내리쳐 소녀의 몸을 그대로 두 쪽 내버렸다.

이 모든 건 모두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

소녀가 혼돈의 시종이건 뭐건 적대적으로 덤벼드는 이상 인정사정봐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스스.

그런데 두 쪽으로 갈라진 소녀의 몸체가 각각 다시 온전한 소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소녀가 상훈을 공격해왔다.

‘극초월 무기에 맞고도 멀쩡해?’

방금 전 공격은 대충 날린 것이 아니었다. 소녀를 쪼갠 검에는 불완전한 혼돈력의 기운이 증폭되어 있고, 따라서 궁극의 초월자를 넘어선 자들이라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두 개의 분신으로 변했다.

분신들의 모든 움직임은 혼돈의 괴수들이 폭주했을 때보다 빨랐고, 그 위력 또한 비할 수 없이 강력했다. 손가락 한 번 슬쩍 튕길 때마다 주변 지면이 무너져내리고 손짓 한 번에 온도조차 알 수 없는 초극렬의 화염이 사방을 뒤덮었다.

쾅쾅! 쿠콰콰콰쾅!

화르르르! 쿠아아아아!

얼마나 싸웠는지 모른다. 상훈도 전력을 다했다. 그러나 상훈의 무슨 공격에도 소녀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기를 쓰고 소녀를 쪼개면 분신의 숫자만 늘어나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웠다.

‘무식하게 강하군.’

최근에 전투력이 급증하지 않았다면 상훈은 지금쯤 저 소녀의 공격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아니, 시체 자체도 남지 않고 먼지로 변해버렸으리라.

혼돈의 시종으로 추정되는 소녀가 이 정도라면 그들의 주인인 혼돈의 마녀는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 진정한 혼돈의 힘을 얻어야만 혼돈의 마녀를 죽일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훈은 전투가 지속될수록 담담해졌고 또한 차분해졌다.

지금껏 그는 소녀의 공격에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수십 개의 분신들이 광속과 같은 속도로 온갖 공격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공격이 미치는 모든 장소에는 이미 상훈은 없었다.

이에 분신들은 약이 올랐는지 더욱 광폭하게 공격을 해왔다.

마치 수천 개의 촉수를 가진 혼돈의 괴수가 공격해오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의 영역을 다 차단하며 상훈을 압박했다.

피하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막는다.

콰콰콰콰-

모든 걸 끌어들여 소멸시켜버리는 가공스러운 소멸의 홀과 연결된 불완전한 혼돈력의 무기들.

어느덧 상훈의 앞에는 게로드의 검(+3)을 비롯한 극초월 무기 여섯 자루가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를 형성하며 휘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방패처럼 소녀 분신들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콰콰콰콰!

막아내는 게 아니라 마치 공격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과 같았다.

심지어 어떤 소녀의 분신은 그대로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 속으로 빨려들어와 갈가리 찢겨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죽은 분신은 금세 멀쩡한 모습으로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난다.

그것도 더욱 쌩쌩하게!

그야말로 기막힐 일이었지만 상훈은 이제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소녀를 죽인다는 생각보다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를 조종하는데만 집중했다.

소녀는 하나의 거대한 벽이었다.

현재의 그가 전력을 다 쏟아부어도 넘을 수 없는 벽!

그러나 지금껏 상훈은 그런 벽을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니다.

그때마다 포기했다면 초월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지구의 일반인이 이계에 소환되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검사가 되기위해 넘어야 했던 벽! 그 당시에는 그것도 넘사벽처럼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그 이후 소드 익스퍼트 초급, 중급, 상급, 그리고 지루하도록 길었던 최상급의 경지에서 그를 가로막았던 벽은 또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그 절망의 장벽을 뛰어넘어 소드 마스터가 되었지만, 또다시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큰 장벽이 나타났다. 상훈은 그것을 뛰어넘고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랜드 마스터 이후 초월자가 되기까지 넘거나 부숴버렸던 벽들. 그리고 다시 궁극의 초월자가 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벽을 뛰어넘고 끝없이 한계를 돌파했다.

그렇다. 지금 상훈에게 저 소녀는 새롭게 나타난 장벽일 뿐이었다.

깨부수면 새로운 한계를 돌파할 기회인 것이다.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페르틸라고 혼돈의 군주고 다 필요없다.

지금 이 순간 상훈은 그저 소녀를 쓰러뜨리고 한계를 돌파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혼돈자가 되는 게 꼭 페르틸라를 모아야만 가능한 건 아니겠지.’

이런 식으로 계속 한계를 돌파하다보면 그 따위 물건들을 모으지 않고도 스스로 혼돈자가 될 수도 있을지 어찌 아는가?

만일 혼돈 시스템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혼돈자가 될 수 있다면?

그럼 단 번에 이 말도 안 되는 세계를 박살내고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상훈이 모든 걸 잊고 오직 전투에만 몰입한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콰아아아!

일순간 상훈 앞에 있던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가 더욱 강하게 휘돌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그러자 소녀의 분신들이 뭔가 기막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분신들이 일제히 만신창이 상태가 되어 무너져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슷.

곧바로 수십 개의 분신이 모두 사라지고 멀찍이 소녀의 본신이 나타나 숨을 몰아쉬었다. 분신뿐 아니라 본신도 처참한 상태였다.

물론 금세 멀쩡하게 변하긴 했지만 소녀는 질려하는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야? 도망을 쳐?”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다 이겨놨는데 도망을 치겠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그는 즉시 소녀의 뒤를 쫒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소녀는 중립 행성 C1094로 도망 친 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상훈이 성큼 다가가자 움찔했지만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을 어찌하겠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중립지역이고 뭐고.”

상훈은 안전 지대를 형성하는 혼돈의 힘을 무시한 채 차원력을 끌어올렸다. 단번에 소녀를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이렇게 혼돈의 마녀가 대놓고 부하들을 보내 방해를 놓는데 나라고 혼돈 시스템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지.’

츠츠츠.

그러자 소녀가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니 즉시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윽! 이런!’

그때 상훈은 끌어올렸던 차원력이 그대로 흩어져버렸다. 단순히 흩어진 것이 아니라 막대한 충격으로 되돌아왔다. 상훈은 내상을 입은 듯 잠시 비틀거렸다.

‘아직은 안 되는군.’

혼돈의 시종과 싸우면서 상훈은 또 하나의 장벽을 깨부쉈다. 덕분에 전투력이 급증했다. 이제 다시 그 소녀를 만나면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정한 혼돈의 힘 앞에서는 쉽지 않았다.

안전지대에서 억지로 차원력을 끌어올려봤지만 그 즉시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아르나가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군주님! 여기서는 절대 혼돈의 힘에 맞서려 하지 마세요. 큰 화가 미칠 수 있어요.”

알고 있다. 상훈도 자신이 계속 차원력을 끌어올려 저항했으면 이 정도 작은 내상 정도가 아니라 더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체감했으니까.

“그나저나 어디로 도망친 걸까?”

1혼돈계의 거점 행성 중 어딘가로 이동했다면 그곳이 어디든 상훈이 이미 알 수 있다. 그런데 감지가 전혀 되지 않는 걸 보니 다른 혼돈계로 도주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 2혼돈계나 10혼돈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여길 떠나면 또 몰래 들어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신경쓰이네.”

혼돈의 벽이 사라진 것이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훈만 저쪽 혼돈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르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건 염려안하셔도 돼요. 군주께서 다른 혼돈계로 떠나실 때는 이곳 제 1혼돈계 중립 행성의 중앙 포탈을 봉쇄할 수 있어요. 그땐 군주님 외에는 아무도 이곳 포탈로 진입할 수 없어요.”

“그런 것도 가능해?”

“본래는 불가능하지만 군주님은 1혼돈계를 모두 장악하신 혼돈의 군주이신 터라 가능해요. 다만 그 봉쇄는 군주님의 의지라서 그대로 포탈을 열어두셔도 상관없죠.”

봉쇄할 경우 다른 혼돈계의 초월자들은 물론이고 외부 차원계의 초월자들도 1혼돈계로는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훈이 이곳을 떠나있을 때 누군가 들어와 빈집털이를 할 수 없다는 뜻.

“잘됐군. 그럼 일단 10혼돈계로 갈테니 이곳 포탈을 봉쇄해.”

“네, 군주님.”

상훈은 제 10혼돈계로 이동했다.

화아아악!

찬란한 빛과 함께 그가 중앙 포탈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내자 제 10혼돈계 중립 행성 포탈관리자가 깜짝 놀라더니 즉시 허리를 숙였다.

“위대하신 제 1혼돈계의 군주 전상훈님을 알현합니다.”

그가 단 번에 상훈의 신분을 알아본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방금 전 상훈이 오자마자.

[제 1혼돈계의 군주 전상훈이 행성을 방문했습니다.]

이 같은 알림이 이곳 행성에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인근에 있던 초월자들과 중립 행성의 각성자들이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상훈을 쳐다봤다. 개중에는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 이들도 있지만 일부는 그냥 경계의 표정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불안한 표정으로 상훈을 쳐다보고 있는 소녀가 있었으니.

‘뭐야? 여기로 도망친 건가?’

1혼돈계에서 사라진 혼돈의 시종이 2혼돈계가 아닌 이곳 10혼돈계 중립 행성으로 도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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