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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풍운의 시작 (2) (6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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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시작 (2)

“나와 어떤 협상을 하자는 거지?”

상훈이 물었다. 협상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머리에 두 개의 뿔을 가진 악마 형상의 존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건 나와 얘기를 하면 될 것 같구나.”

딱 보니 그는 초마왕이었다. 그것도 상당한 실력을 지닌.

‘저 자는?’

상훈의 눈이 빛났다. 이곳이 비록 중립 지대라 전투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세까지 감춰진 건 아니다. 그리고 설령 기세를 감췄다고 해도 상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건 뜻밖인 걸. 제 1혼돈계에도 궁극의 경지를 넘어선 자가 있다니.’

상훈이 위험군 문제아들로 지정한 이들은 아르곤, 트로모스, 혈무혼, 사르탄이다. 그 중 트로모스가 바로 초마왕이다.

그런데 트로모스는 이미 28혼돈계의 군주가 되었다.

아르곤은 제 7혼돈계의 군주이며, 사르탄은 제 42혼돈계의 군주다.

현재 소재 불명인 이는 혈무혼 뿐인데, 그도 설마 초마왕이었던 건가?

‘이 자가 혈무혼이 아니라면 혼돈계에 새로운 특급 문제아가 하나 더 들어온 거겠지.’

상훈은 곧바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협상을 할거면 일단 이름부터 밝히는 게 순서가 아닌가?”

“나는 다카룬이라고 한다. 내 뒤에 있는 초월자들은 모두 나를 따르고 있다.”

“다카룬?”

“내 이름을 아느냐?”

“처음 들어본다.”

“이름은 못들어봤을 거야. 난 내 이름을 말한 적이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마제라는 칭호는 들어봤겠지.”

“마제라면?”

상훈의 눈이 커졌다. 마제(魔帝)는 라트로라기 보다는 라트로 헌터로서 유명한 자다.

그러나 마제는 상훈이 있던 차원계와는 아득히 떨어진 곳에서 활동했던 터라 막연히 이름만 들어봤을 뿐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멸황 못지 않은 전투력의 보유자라고 했는데.

‘마제가 초마왕이었을 줄은 몰랐군.’

초마왕 중에도 간혹 정의로운 존재가 있긴 하다.

‘그럼 이 자는 죽이긴 아까운 존재인데?’

상훈은 웬만하면 라트로 헌터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같은 길을 가던 자가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다카룬이 바로 2차 전장에 들어왔던 5명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군.’

그때 다카룬이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표정을 보니 내 칭호를 알고 있는 것 같구나.”

“칭호는 들어봤다.”

“그렇다니 잘됐군. 결론부터 말하마. 나는 네가 이곳 제 1혼돈계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상훈은 흥미가 있다는 듯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점령이 오래걸려 피곤했는데 도와준다니 고맙군. 그런데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지?”

“나의 부하들은 네가 퀘스트 행성을 어떻게 점령하고 있는지 멀리서 지켜봤다고 했다. C1001 행성의 인간 각성자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러나 이곳 중립 행성에는 그들 말고도 고용할 수 있는 각성자들이 꽤 많다.”

“중립 행성에 각성자들이 있었던가?”

“큭! 모르고 있었나? 이곳에는 루나만 주면 행성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다.”

상훈은 미소 지었다.

“좋은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군.”

그러자 다카룬이 다시 차갑게 웃었다.

“그러나 너는 알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이 행성의 모든 각성자들을 고용했기 때문이지. 다시 말해 우리의 협조 없이는 너는 그들을 퀘스트 행성에 투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의 협조가 없이는 네가 투입한 인간 각성자들도 더 이상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라트로 헌터였지만 초마왕 답게 역시나 일처리 방식은 협박이 기본이었다.

“방해를 하겠다는 건가?”

“모든 건 네가 하기에 달려있지. 우리의 뜻에 따른다면 우리 또한 너에게 협조하겠다.”

“그 뜻이 뭔데?”

그러자 다카룬이 두 눈을 강하게 번뜩이며 말했다.

“네가 가진 세 개의 페르틸라 중 한 개를 내게 양보해라.”

3개도 아니고 1개라?

“궁금한 게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를 공격해서 페르틸라를 빼앗는 게 쉽지 않겠나?”

“여긴 중립 행성임을 모르느냐? 그게 가능했으면 난 진작 널 공격했을 것이다.”

“여기 말고 내가 지구에 있을 때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곳에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아 상황 파악을 하느라 잠시 널 지켜봤을 뿐이다.”

뒤늦게 나타나 이곳 중립 행성에 있던 200여 명의 초월자들을 부하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확실히 인정해줄만한 실력자임은 분명했다.

“그럼 이제라도 날 공격하면 되겠군. 난 잠시 후에 여길 떠나 지구로 갈 생각이거든.”

“네가 가진 페르틸라가 하나뿐이라면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세 개나 되는 이상 굳이 불필요한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우리끼리 치고박고 싸우면 절대 그놈들을 이길 수 없다.”

“그놈들?”

그러자 다카룬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아르곤, 혈무혼, 트로모스, 사르탄!”

“그러니까 함께 동맹을 맺고 그놈들을 쳐부수자는 거군.”

“그렇다. 우리의 승부는 그 이후로 미루는 것이지. 나는 네가 이곳을 모두 점령하도록 도운 후 다른 혼돈계로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기반을 쌓아 그놈들과 맞설 것이다.”

상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결론은 그래서 내가 페르틸라 하나만 주면 모든 걸 협조해주겠다는 거지만, 그게 안 되면 결국 나와 전쟁을 하겠다?”

“부디 불행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째서 한 개만 달라는 거지? 기왕이면 세 개 다 달라고 하지.”

그러자 다카룬이 의외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세 개를 다 줄 생각이 있느냐?”

“물론이야. 나도 그것들이 무척 귀찮거든. 페르틸라고 뭐고 조용히 살고 싶다. 혼돈계의 군주도 사실 어쩌다 보니 된 거라서 말이야.”

순간 다카룬 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 역시 일이 잘 풀린다 생각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그것들을 모두 내놓는다면 네 공로를 잊지 않으마.”

“단 조건이 있어. 나는 나보다 강한자에게 준다.”

그러자 다카룬의 뒤쪽에 있던 초월자 중 하나가 상훈을 비웃으며 외쳤다.

“흐흐, 어리석은 놈! 다카룬 님은 어비스 최후 생존자이시다.”

“······.”

상훈은 잠시 어이가 없어 말을 잊었다.

‘어비스 최후 생존자? 그건 난데?’

설마 다카룬이 그런 식의 뻥을 쳐서 초월자들을 휘어잡은 것일까?

하긴 상상 결계의 결투로 실력을 보여준 후 그렇게 말하면 누군들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비스 최후 생존자인 상훈이 스스로를 밝히지 않는한 말이다.

‘웃기는 녀석이네. 감히 내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런데 그런 상훈의 표정을 다카룬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저 말에 상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순간 상훈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틀림없어. 저 놈은 지금 내가 혹시 최후의 생존자가 아닌가 살피고 있는 거야.’

왜 다카룬이 이상한 협상을 하자고 하는지 이제야 확연히 파악이 되었다. 그는 2차 전장에서 자신을 처참하게 죽인 어비스 최후의 생존자를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군주 중의 하나인 상훈이 혹시 진짜 어비스 최후의 생존자인지 알아보려고 지금과 같은 수작을 부린 것이다. 아직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터라 지구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고 말이다.

따라서 만약 상훈이 어비스 최강자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면, 다카룬은 지금 즉시 200여명의 초월자 부하들을 데리고 지구를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잔머리를 꽤나 굴리는군.’

다카룬이 아무리 라트로 헌터라 하지만 일단 혼돈계에 들어온 이상 혼돈자의 자리를 노리는 건 당연한 사실.

따라서 지금 그는 더 이상 라트로 헌터가 아니다.

혼돈계를 제패해 최강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야심가일 뿐.

상훈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잔머리에는 잔머리로 상대해주는 거다.

곧바로 상훈은 흠칫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애써 그 놀라는 기색을 감추고 태연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 즉시 다카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피어났다.

“제 1혼돈계의 군주 전상훈! 정말로 내가 너를 이기면 세 개의 페르틸라를 다 내놓겠느냐?”

“물론이다.”

“그럼 여기서 상상 결계의 전투로 승부를 보면 되겠군.”

“환영하는 바다.”

상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카룬은 지체하지 않고 상상 결계의 전투를 신청했고 상훈은 받아들였다.

스스스.

곧바로 둘은 가상 공간에서 마주 섰다. 다카룬은 거대한 도끼를 양손에 쥐고 있었는데, 최상급 차원력의 무기인 데바스트였다.

극초월 무기에 비하면 허접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차원력의 무기 중에는 최강이라 할 법한 수준.

스윽.

상훈은 짐짓 긴장한 표정으로 상급 차원력의 무기인 파괴신의 미늘창을 꺼낸 후 앞으로 돌진했다.

“그럼 공격하겠다!”

“얼마든지!”

다카룬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의 애병인 데바스트를 힘차게 휘두르며 맞섰다.

콰쾅! 콰아앙!

미늘창과 도끼가 끊임없이 격돌했다. 상훈이 공세를 취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수세를 취하며 다카룬의 공격을 방어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서로 팽팽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차츰 상훈이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러 상훈은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

그가 작정하면 차원력의 무기인 미늘창으로도 다카룬을 처치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가 다카룬을 죽여버리면, 다카룬이 겁을 먹고 중립 행성에 꽁꽁 숨어서 밖으로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초월자들도 마찬가지.

‘한 번만 죽어주자. 그럼 모두 개떼처럼 지구로 달려오겠지.’

상훈은 기를 쓰고 다카룬의 공격을 막는 듯하다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의 빈틈을 다카룬은 놓치지 않았다.

“크크크, 끝이다!”

퍼억!

다카룬이 휘두른 도끼에 상훈의 머리가 박살났다.

스스스.

상상 결계 속 가상 전투는 그렇게 끝이났다.

다카룬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상훈을 쳐다봤다.

“아주 훌륭한 승부였다, 전상훈. 지금껏 내가 싸워본 중에 네가 가장 강한 것 같군.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 비하면 부족하다.”

그러자 다카룬의 부하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오오! 역시 어비스 최후의 생존자답습니다!”

“제 1혼돈계의 군주를 쓰러뜨리다니!”

“호호호! 혼돈계 최강은 다카룬 님이세요!”

“전상훈! 어서 페르틸라를 로드께 드리지 않고 뭐하느냐?”

순간 상훈은 짐짓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크윽!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 결계의 승부였을 뿐이다. 난 현실의 전투가 아니면 승복할 수 없어.”

그러자 다카룬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초월자들간 상상 결계의 결투는 현실의 결투와 다를 바 없다.

상상 결계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할 상대를 현실에서 이기기란 불가능한 일.

그런데도 상훈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자 황당했던 것이다.

“이제와서 말을 바꾸는 건가? 군주로서 한입으로 두 말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는 거냐?”

“닥쳐! 나에게서 페르틸라를 빼앗고 싶다면 직접 와서 나를 쓰러뜨리고 찾아가라.”

상훈은 그 말과 함께 포탈을 탄 후 지구로 복귀해버렸다.

그러자 다카룬의 부하들이 펄쩍 뛰었다.

“그 놈은 페르틸라를 내놓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비겁한 놈이니 더 이상 사정봐줄 것 없습니다.”

“당장 가서 전상훈 놈을 죽이고 페르틸라를 얻어 당당하게 제 1혼돈계의 군주가 되소서, 로드시여!”

다카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그런 놈에게 나는 더 이상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다. 지금 즉시 출전하여 놈을 죽이고 제 1혼돈계의 군주가 되겠다. 모두 따라와서 내가 그놈을 어떻게 죽이는지 똑똑히 보도록 하라.”

“와아아아!”

다카룬의 부하들은 모두 환호했다. 곧바로 그들은 포탈 관리자가 열어준 포탈을 타고 제 1혼돈계 C1001 행성 즉, 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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