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부하들을 키워주다 (2)
이네르타와 사로스 둘 다 본래와는 비할 수 없이 강해졌다.
둘 다 일반적인 초월자들과는 다르다보니 사실상 그녀들 스스로는 단순히 노력한다고 더 강해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한계가 깨진 것이다.
이네르타는 단번에 상급의 끝자락을 넘어 최상급에 이르렀고, 사로스는 최상급 초월자로서 본래보다 몇 배는 강해진 터였다.
그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로드! 고마워요. 정말 열심히 할게요.”
“나도. 앞으로 로드의 말이라면 뭐든 다 하겠다.”
그녀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상훈도 뿌듯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키워줄 생각이었다.
‘계속 키워주다보다 보면 언젠가 궁극의 초월자 근처에까지는 올 수 있을 지도 몰라.’
사실 그 정도 전력은 되어야 상훈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비스에 가면 너희들은 1차 전장에서 최대한 살아남는데 치중해. 2차 전장에는 얼씬도 하지 말고. 특히 포인트는 차곡차곡 모아둬. 그러다 5000포인트가 모이면 무조건 혼돈의 괴수 소환권을 사야 해. 쓸데없이 랜덤 상자같은 거 돌리면 안 돼.”
그러자 사로스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훈이 그녀를 슥 노려봤다.
“뭐야 그 표정은? 너 혹시 랜덤 상자 돌렸냐?”
“사망 위로로 받은 100포인트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그래서 결과는?”
“오 만······.”
그 말에 상훈의 두 눈이 환하게 반짝였다. 이런 대박이 있을 줄이야.
“오 만 포인트를 얻었어? 이건 로또 당첨인데?”
“원.”
“뭐?”
“오만원.”
사로스는 아공간에서 5만원권 지폐를 꺼내 상훈에게 내밀었다. 신사임당이 그려져 있는 바로 그 화폐다.
‘아놔!’
상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지금 쓸 수 없어. 나중에 지구가 본래로 돌아간 후에나 쓸 수 있는 돈이야.”
“그렇구나.”
“다시 잘 넣어둬. 그때 가서 나에게 용돈 달라고 하지 말고. 그리고 앞으로는 상자 돌리지 말고 모아둬.”
“알겠다, 로드.”
언제고 혼돈의 시대가 종식되어 모든 게 본래로 복귀되면 지구의 각성자들은 켈라크스 시스템 시대는 물론이고 혼돈의 시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서 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결국 켈라크스 시스템이 침투하기 전의 평범했던 상태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그러나 초월자들은 다르다.
상훈은 물론이고 이네르타와 사로스도 지금 상승한 능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 여기서 획득한 아이템들도 그대로 있고 말이다. 사로스의 오만원도 그때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주 드물고 희박하기 이를데 없는 경우이겠지만, 만약 지구의 각성자들 중에 누군가가 각고의 노력에 행운까지 겹쳐 초월자의 경지에 이른다면?
그러면 그 또한 지구에서도 초월자로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네르타, 넌 포인트 어떻게 했어?”
“100포인트 뱅크에 넣어놨어요.”
“아주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해.”
“네, 로드. 포인트는 무조건 모은 후 소환권만 사겠어요.”
“좋아! 오늘은 그만 지구로 돌아들 가서 아크엘의 지시를 따르도록 해.”
상훈은 그렇게 그녀들을 본래 임무로 복귀시킨 후 중립 행성인 C1094로 향했다.
* * *
[초월자 실비아나가 군주 세르펜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실비아나가 비상의 페르틸라를 획득했습니다.]
[실비아나가 새로운 혼돈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실비아나가 세르펜스를 죽였습니다.]
상훈이 막 중립행성에 위치한 그의 궁전에 도착했을 때 이같은 알림이 혼돈계를 진동했다.
그 사이 혼돈계의 군주가 또 바뀌었다.
실비아나라는 초월자가 본래 켈라크스의 6군황이었던 세르펜스를 죽이고 제 34혼돈계의 군주가 된 것이었다.
[군주 전상훈]
-제 1혼돈계
–운명의 페르틸라, 시련의 페르틸라, 용맹의 페르틸라
[군주 아르곤]
-제 7혼돈계
–파멸의 페르틸라
[군주 라인카스]
-제 10혼돈계
–생존의 페르틸라
[군주 크라니오]
-제 15혼돈계
–어둠의 페르틸라
[군주 트로모스]
-제 28혼돈계
–광명의 페르틸라
[군주 실비아나]
-제 34혼돈계
–비상의 페르틸라
[군주 사르탄]
-제 42혼돈계
–적월의 페르틸라
* 기타 : 알 수 없는 장소
–불멸의 페르틸라
군주 및 페르틸라 현황은 이곳 궁전에 있는 그의 집무실 벽에 전자 화면처럼 떠 있었다.
“켈라크스의 군황들 중에는 이제 라인카스와 크라니오만 군주 자리를 지키고 있군요. 혼돈계가 열린지 불과 10여일 만에 벌써 4명의 군주가 바뀌었어요.”
뒤쪽에서 말을 하는 이는 이곳 중립 행성의 거점 관리자인 아르나였다.
상훈이 이곳 궁전에 오자 그녀가 즉시 달려온 것이다.
신비로운 푸른 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엘프.
“왔나?”
상훈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그녀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거점 관리자 아르나, 위대하신 제 1혼돈계의 군주 전상훈님을 알현합니다.”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널 만나러 왔다. 혹시 어비스의 대장장이들이 있는 위치를 알고 있어?”
“물론입니다, 군주시여.”
아르나는 빙긋 웃더니 두루마리 하나를 소환해 상훈 앞에 건넸다.
“이 두루마리에 각 행성들에 위치한 어비스 관련 능력자가 있는 장소 및 출현 조건 등이 다 나와 있어요. 가격은 상급 차원석 1개입니다.”
“좋아. 아주 훌륭해.”
이런 정보라면 차원석 정도야 아깝지 않다.
상훈은 흔쾌히 상급 차원석 1개를 아르나에게 줬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펼쳐봤다.
[어비스의 대장장이 게로드]
-위치 C1002 행성 론도 왕국 북부 다크 포레스트
-출현 조건 : 행성의 문제 해결도 70%
[어비스의 대장장이 가일]
-위치 C1003 행성 절망의 절벽 중턱
-출현 조건 : 행성의 문제 해결도 58% 이상
[어비스의 방어구 제작자 로안나]
-위치 C1004 행성 아키안 제국 황궁
-출현 조건 : 행성의 문제 해결도 80% 이상
[어비스의 마법 도구 제작자 위니크]
-위치 C1005 행성 아르한 해역 북부 라라섬
-출현 조건 : 행성의 문제 해결도 87% 이상
뭐 이런 식이었다. 각 행성마다 어비스 제작 능력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이런! 대장장이들은 불과 이십 명 정도뿐이네.’
행성 문제 해결도야 어차피 각성자들이 다 올려주니 신경쓸 것 없었다. 점점 퀘스트에 요령들이 생기다보니 갈수록 해결 속도도 빨라지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어비스의 대장장이 숫자였다.
상훈은 방어구나 마법 도구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에서 하나의 무기가 아닌 다수의 무기를 사용한다.
따라서 방어구 만들 재료가 있으면 그걸로 무기를 하나 더 만들 것이다.
어차피 무기로도 얼마든지 방어 능력을 펼칠 수 있으니까.
물론 나중에 불완전한 혼돈석이 남아돌 정도로 많아지면 그때는 방어구도 한 세트 정도 제작해볼 의향은 있지만.
‘하긴 혼돈계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니지.’
다른 혼돈계로 가면 거기도 어비스의 대장장이들이 있을 것이다.
49혼돈계에 20명씩 있다쳐도 무려 980명이다.
다만 다른 초월자들이 그들을 찾아가 극초월 무기를 제작할 수도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어비스 포인트를 못 얻게 최대한 방해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건가.’
극초월 장비는 어비스 상점에서 파는 불완전한 혼돈력의 레시피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그 레시피를 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극초월 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자들은 적어도 군주급에 해당하는 녀석들이겠지.’
혼돈의 괴수를 처치하고 불완전한 혼돈석을 얻을 수 있는 존재들이어야 하니 말이다.
그런 자들이라면 웬만하면 어비스에서 2차 전장도 참전하려 할 것이다. 그러다 2차 전장에서 상훈에게 죽임을 당하면 사망 위로 포인트 100포인트만 얻게 되니 레시피를 사는 건 어렵게 된다.
물론 소심하게 2차 전장을 포기하고 1차 전장에서 얻은 포인트를 지키려는 녀석도 있겠지만, 그건 상훈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고로 어비스의 강화사는 이곳 중립 행성에 있답니다.”
“어비스의 강화사? 그건 또 뭐지? 설마 극초월 무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거야?”
“네. 정확히 아시는군요.”
아르나가 미소 지었다. 상훈은 호기심이 들었다.
“그럼 날 거기로 안내해.”
“멀리 가실 것 없어요. 제가 바로 어비스의 강화사거든요.”
그녀가 양 손을 펴자 신비로운 광채로 반짝이는 돌이 나타나 둥둥 떠 있었다.
“그게 바로 극초월 강화석인가 보군.”
“이건 그냥 초월 강화석이에요. 차원력의 무기를 강화할 수 있는 강화석이죠. 하지만 이것들을 불완전한 혼돈석과 함께 연금하면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이 만들어지죠.”
“강화석의 재료가 불완전한 혼돈석이라고?”
“네.”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강화가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닐텐데 불완전한 혼돈석을 재료로 강화를 해야한다니.
실패하면 불완전한 혼돈석을 날리는 셈이다.
그래도 물어보기나 하자.
“성공 확률은?”
“1강은 80%, 2강은 50%, 3강은 20%,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그냥 안전하게 1강 정도만 추천드려요. 실패하면 강화 단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확률적으로 장비도 터지거든요.”
실패시 장비도 날아간다?
불완전한 혼돈석으로 만든 극초월 장비가 터진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지간한 초월자들은 정신줄을 놓고 말 것이다.
“좋아. 그럼 1강 정도만 해볼까?”
극초월 무기는 대량으로 빠르게 제작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강화를 통해 무기의 위력을 올려두는 것도 전투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리라.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어비스의 강화도구가 있는 곳으로 가야하거든요.”
“좋아, 안내해.”
상훈은 아르나를 따라 이동했다. 그곳은 거점 관리자의 궁전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한 결계였다.
어비스의 대장장이 게로드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지만 그와는 비할 수 없이 거대한 결계.
언뜻봐도 수십 배는 더 되어 보였다.
“규모가 엄청나군.”
“극초월 장비를 강화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이 결계도 한 번 강화하고 나면 10년 후에나 다시 쓸 수 있는 거야?”
“아니, 이건 무제한이에요. 장비와 강화석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물론 공짜는 아니에요. 1강은 상급 차원석 1개, 2강은 상급 차원석 2개, 이런 식으로 비용이 들죠.”
“그나마 다행이군. 일단 1강을 하겠다.”
상훈은 상급 차원석 1개를 아르나에게 건넸다. 상급 차원석은 여유가 충분했다. 극초월 무기를 만들게 된 이상 차원력의 검은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환권 30장을 쓰며 혼돈의 괴수들을 처치한 덕분에 상급 차원석은 수백 개가 또 늘어난 상태였다.
“그럼 극초월 장비와 불완전한 혼돈석을 꺼내주세요.”
상훈은 아공간에서 게로드의 검과 불완전한 혼돈석 하나를 꺼냈다.
게로드가 만든 검은 명장인 게로드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도 각 어비스의 대장장이들이 만든 무기들은 그런 식으로 이름을 지을 것이다.
“먼저 불완전한 혼돈석을 저 결계 안으로 넣어주세요.”
상훈은 아르나가 말한대로 했다. 그러자 불완전한 혼돈석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 둥둥 떠 있었다.
그러자 곧바로 아르나가 초월 강화석을 안으로 넣고는 뭐라 주문을 외웠다.
화아아악!
순간 불완전한 혼돈석과 초월 강화석이 사라짐과 동시에 붉은 광채로 번쩍이는 신비한 돌이 나타났다.
“저게 바로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이에요.”
“그렇군.”
“이제 저 결계 안에 장비를 넣어주세요.”
“좋아.”
상훈은 게로드의 검을 결계 안으로 넣었다. 그러자 불완전한 혼돈의 강화석 옆에 게로드의 검이 위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