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어비스의 무적자 (3)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무기가 무작위로 선택됩니다.]
그 사이 1차 전장에서 사용했던 검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대신 상훈의 손에 창이 나타났다.
‘이젠 무기 선택의 자유도 없는 거냐?’
물론 상훈은 별 상관 없었다. 그가 특별히 애용하는 검이나 미늘창은 어디까지나 취향일 뿐이다. 무기가 많아지면 그것들을 몽땅 꺼내 소멸의 차크람으로 만들어쓰면 되고 말이다.
‘전장이 좀 험악해졌네.’
2차 전장의 스케일도 1차 전장 못지 않게 넓었다.
다만 그저 광활한 밀림 지대였던 1차 전장 때와는 달리 도처에 위험 지대가 널려 있었다.
온갖 함정과 폭풍, 화염, 우박 등에서 모두 불완전한 혼돈력의 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상훈에게는 그런 것들이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나 혼자 뿐이지?’
누군가 들어왔다면 그에 대한 알림이 울리지 않는다 해도 상훈은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모두 겁을 먹고 그냥 포기한 것일까?
‘그럴 리 없어. 그들은 반드시 온다.’
말로 하지 않아도 2차 전장에서 최후의 승부를 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으니까.
그래서 상훈은 그들 모두를 2차 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모두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만약 1차 전장에서 빛 진영에 있는 3명의 강자를 모두 처치해버렸다면 어둠 진영에 있던 2명이 지레 겁먹고 2차 전장으로 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상훈이 랭킹 1위를 했지만, 항상 그렇듯 다른 이들에게는 그가 약간 운빨이 작용해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혼돈2가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혼돈3이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혼돈4가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혼돈5가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혼돈6이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뭐냐? 이름까지 다 바뀐 건가?’
그러고 보니 그 사이 상훈의 이름도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에 떠있는 글자들이었지만 상훈이 그것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혼돈 1인가 보군.’
새로 진입한 이들 중에 혼돈1이 없으니까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 옆에서 빛나던 어비스 포인트도 사라졌어.’
물론 상훈은 자신의 어비스 포인트가 얼마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아까처럼 머리에서 반짝이지만 않을뿐 그 자신이 언제든 소환해서 볼 수 있는 상태창에는 나와 있기 때문이다.
-보유 어비스 포인트 47,239P
그 사이 흑색이었던 그의 몸체는 종잡을 수 없는 괴상한 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째든 이렇게 된 이상 2차 전장에서 누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누가 들어왔는지도 말이다.
‘5명이 들어온 걸 보면 아까 그들이 분명하겠지.’
2차 전장에서 최후의 승부를 가리고자 했던 그 5인의 강자 말이다.
‘방심해서는 안 돼. 이젠 전력을 다한다.’
상훈이 실력을 숨긴 것처럼 그들이라고 실력을 숨기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르곤, 트로모스, 혈마혼, 사르탄, 그리고 하나는 또 누굴까?’
상훈은 이미 그들 중 4명이 누구일 거란 건 대략 짐작한 터였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알림이 울렸다.
[혼돈의 괴수가 2차 전장에 진입했습니다.]
‘저놈까지 2차 전장에 들어온다고?’
상훈에게는 이제 혼돈의 괴수가 별로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어비스 기본 무기인 최하급 차원 창 한 자루로 해치우려면 상당히 고전해야 한다.
더구나 다른 초월자들의 공격도 신경써야 한다. 혼돈의 괴수와 싸우는 도중에 초월자들의 기습이 들어오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2차 전장에서는 최후의 생존자 1명만이 승자입니다.]
[혼돈의 괴수가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전투 시작 3초 전]
[전투 시작 2초 전]
[전투 시작 1초 전]
[전투를 시작하십시오!]
순간 상훈을 향해 엄습하는 가공스러운 기운.
콰아아아아-!
그것은 눈깜짝할 사이에 생성된 소멸의 홀이었다.
그 소멸의 홀이 발휘하는 엄청난 힘이 주변의 사물은 그대로 둔 채 오직 상훈에게만 집중되고 있었으니!
이대로라면 상훈은 그 즉시 빨려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작렬하는 시퍼런 뇌전들의 공세!
번쩍! 번쩌쩌-쩍!
차원력의 기운이 깃든 화살들이었다!
누군가 소멸의 홀로 상훈의 균형을 깨뜨린 후 미친 듯 활을 쏘아대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기습인가?’
소멸의 홀이 보통의 초월자들에게는 재앙과 같은 공포의 대상이겠지만 상훈에게는 그저 일반 공격에 불과할 뿐이다.
당연히 방어도 간단했다. 그는 가볍게 소멸의 홀을 흩어버림과 동시에 창을 휘둘러 화살들을 쳐냈다. 그리고는 자신을 공격한 적을 살폈다.
“······!”
적은 기습이 실패하자 당황한 듯 재빨리 상훈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시작했다.
“어딜?”
상훈은 순식간에 아득한 공간을 주파해 적의 앞을 막아선 후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적이 활대를 휘두르며 맞섰다.
쾅! 콰쾅!
상훈의 창과 활대가 격돌하자 폭음이 일었다.
콰콰쾅! 쿠콰콰쾅!
차원력과 차원력의 격돌이니 당연한 일. 그러나 그 폭음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상훈의 창날에서 찬란한 붉은 광채가 일어나 적의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푸확!
“으아아악!”
[혼돈6을 해치웠습니다.]
[어비스 포인트 10P를 얻었습니다.]
[어비스 포인트 14,329P를 얻었습니다.]
방금 죽은 적이 혼돈6이었다.
이로써 한 놈을 처치하는데 성공!
덕분에 어비스 포인트를 대량으로 얻었다.
-보유 어비스 포인트 61,578P
그런데 특이하게도 혼돈6은 죽었지만 활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1차 전장과 달리 여기서는 적의 무기도 쓸 수 있다는 뜻.
“무기는 많을수록 좋지.”
상훈은 대뜸 활을 챙겼다. 역시나 최하급 차원력 장비였다.
차원력을 주입하면 화살이 자동으로 장전되는 식.
물론 상훈은 활을 직접 손에 쥘 필요없이 공중에 띄운 채로 사용할 수 있었다. 검이나 창들이 알아서 적을 공격하는 것처럼 활도 알아서 화살을 쏘아댈 것이다.
[혼돈1이 혼돈6을 죽였습니다.]
한편 그렇게 상훈이 혼돈6을 죽이자 전장 전체로 알림이 울렸다.
그런데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알림이 들려왔다.
[혼돈2가 혼돈5를 죽였습니다.]
[혼돈3이 혼돈4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2차 전장이 시작된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서 3명이 죽었다.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이제 진짜 강한 자들 둘만 살아남았다는 거군.’
이로써 현재 생존자는 상훈을 포함해 셋!
물론 혼돈의 괴수도 있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
혼돈의 괴수는 하늘을 날고 있는 초거대 괴조의 형태였는데, 지속적으로 울부짖으며 포효의 광역공격을 날려댔다.
그런데 그것이 심상치 않았다.
점차 포효가 거세지더니 급기야 괴조의 몸이 끝도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포효에 깃든 불완전한 혼돈력의 기운도 강력해져 2차 전장을 형성하던 지면이 무저갱 아래로 쏟아지듯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콰콰콰쾅! 콰아아앙!
물론 땅이 사라진다고 해서 당황할 건 없었다. 상훈은 훌쩍 날아올라 괴조쪽으로 이동했다. 그 사이 다른 두 명의 생존자도 괴조쪽으로 날아왔다.
괴조를 중심으로 두고 상훈을 비롯한 생존자 3명이 삼각형 형태로 포위한 상태였다.
상훈이 쳐다보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합의!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단 이 빌어먹을 혼돈의 괴수부터 처치한 후에 승부를 보자는 것!
츠으읏! 츠츳! 츠으으!
상훈을 비롯한 세 명의 초월자가 생성시킨 소멸의 홀들이 괴조를 포위하듯 압박하자 괴조가 몸부림쳤다.
“꾸으으으으으으으!”
끝없이 거대해지던 괴조의 크기가 다시 작아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괴조는 금세 무력화될 것이고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화아아악!
그런데 괴조의 두 눈에서 돌연 붉은 빛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동시에 괴조의 몸이 다시 급격히 커지지 시작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몸이 팽창하고 있었다.
‘이런!’
상훈은 이런 현상이 무엇 때문에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생존자 중 하나가 괴조가 무력화되기 직전에 소멸의 홀을 거둠과 동시에 오히려 괴조에게 차원력을 초대량으로 불어넣은 것이다.
그와 함께 그는 눈깜짝할 사이에 멀리 도주해버렸다.
마치 폭탄을 설치하고 튄 것과 흡사한 상황!
이대로라면 혼돈의 괴수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본래라면 차원력 좀 주입한다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궁극의 초월자들이 소멸의 홀을 펼쳐 괴수를 무력화시키는 와중에 갑자기 초대량으로 차원력을 불어넣었으니 벌어진 현상.
‘내가 할까 했는데 선수를 쳤네.’
조금 야비하긴 하지만 한 번에 혼돈의 괴수와 다른 두 생존자를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최후의 한 명만 살아남는 이곳 어비스 전장에서 그런 건 절대 야비하다고 할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상훈이 망설인 건 말 그대로 모험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한 번에 혼돈의 괴수와 다른 생존자 둘이 폭사해버리지 않는다면, 그때는 처참하게 역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괴수에게 차원력을 대거 쏟아부은 상태에서 역공을 당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지 모험심 한 번 강하군.’
그 모험심으로 인해 그는 죽게 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사이 무섭게 팽창하던 혼돈의 괴수는 그대로 폭발했다.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나마 아직 남아있던 인근의 지형들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혼돈의 괴수가 혼돈3을 죽였습니다.]
그 여파에 결국 한 명이 죽고 말았다. 상훈은 낌새를 눈치채고 소멸의 홀을 거둔 후 모든 차원력을 끌어올려 배리어를 생성시킨 덕분에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터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괴수가 아직 살아있어?’
폭발의 여파가 사라지고 혼돈의 괴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괴수 자체가 폭발한 것이 아니었다. 놈은 불순한 기운이 주입된 것을 밖으로 내보내 폭발시킨 것이다.
역시나 혼돈의 괴수는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놈의 상태도 최악이라는 것!
크기도 매우 작아진 상태였다.
‘일단 저놈부터 빨리 처치하자.’
상훈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 즉시 소멸의 홀을 다시 펼쳐 괴수를 무력화시킨 후 두 자루의 무기로 초소형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를 만들어 날려보냈다.
파파파파! 콰콰콰콱-
아직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혼돈의 괴수는 그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다.
“꾸아아아아악!”
순식간에 괴수의 목이 잘려나갔고, 그것은 이내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혼돈의 괴수를 해치웠습니다.]
[어비스 포인트 10,000P를 얻었습니다.]
[어비스 포인트 28,298P를 얻었습니다.]
[상급 차원석 16개를 얻었습니다.]
[중급 차원석 72개를 얻었습니다.]
[210,000,000루나를 얻었습니다.]
[불완전한 혼돈석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또 대량의 어비스 포인트를 획득했다.
혼돈4를 죽인 혼돈3이 보유하고 있던 포인트를 혼돈의 괴수가 약탈한 상태였는데, 그 놈 자체에도 1만 포인트나 되는 어비스 포인트가 부여되어 있었다.
그것을 상훈이 모조리 다 챙긴 것이다.
-보유 어비스 포인트 99,876P
이로써 상훈의 어비스 포인트는 10만 포인트에 가까워졌다.
그뿐이 아니다.
차원석들과 불완전한 혼돈석까지!
이것들은 알아서 상훈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는 아공간을 열지 못하지만 어비스가 종료되면 꺼내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불완전한 혼돈석을 또 얻었네.’
운빨도 운빨이지만 역시나 칭호에 있는 드롭률 상승 효과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고무적인 일이 있으니.
‘몸 상태가 최상으로 돌아왔어.’
그냥 돌아온 게 아니라 좀 더 강해진 상태로!
일종의 레벨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혼돈의 괴수를 처치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저쪽에 있군.’
상훈은 순식간에 공간을 주파해 혼돈2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네가 마지막이다, 혼돈2. 이만 끝내자.”
그가 번쩍 나타나자 혼돈2는 기막혀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 어떻게 거기서 살아남았······커억!”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상훈의 창이 그의 심장을 꿰뚫어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