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초인의 감각 (1)
상훈이 행성 포탈을 만드는 사이 아크엘은 지구 거점 관리자로서 지구의 시스템을 개편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현자 아크엘! 제 1혼돈계의 군주이신 전상훈님께 위임받은 지구 거점 관리자다.]
아크엘은 언제든 지구 전체에 그의 음성을 전할 수 있었다.
이는 지구 거점 관리자로서 부여된 능력 중 하나였다.
[혼돈의 시대가 열리며 이제 지구는 군주 전상훈님께 점령되었다. 지구의 모든 건물과 땅은 물론이고, 각성자인 그대들 또한 군주 전상훈님의 명령을 따라야 함이 마땅하다.]
아크엘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대들 중 이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안심하라. 지구는 앞으로 혼돈계의 수많은 행성 중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공간이 될 것이며, 그대들도 이전보다 훨씬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되리라······.]
아크엘은 장황하게 마치 설교하듯 한동안 지구의 각성자들에게 주요사항들을 전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이제 지구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각성자들은 모두 포탈을 타고 대한민국으로 모이도록 하라. 이는 지구에 투입된 차원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함이다.]
지구 거점 관리자로서 아크엘은 차원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초월자들과는 다른 개념으로, 일종의 자원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했다.
아크엘은 차원력의 우선 순위를 배리어 강화에 두었다.
두 번째로는 지구의 차원 시스템을 손봤다.
150만명의 각성자들을 대한민국으로 모두 집결시킨 이유는 차원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차원력을 지구 전체로 분산하지 않고 하나의 국가에 집중시키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운명, 시련, 용맹의 3종 던전 및 각종 공간 이동 포탈.
차원 시스템을 통해 모든 게 갖춰진 안전한 주거시설 및 편의시설.
이것들은 현재 대한민국에만 집중 배치되었다.
국제간 포탈도 각성자들이 모두 대한민국에 집결하면 제거할 것이다.
아크엘은 이후에 차원력이 남아돌 정도로 많아지면 다시 지구 전체로 시스템을 확장시킬 계획이었다.
[각성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소형 집이 주어진다. 음식 또한 컵라면과 생수가 매일 제공된다. 집의 침대에서 자기만 해도 소진된 체력과 마나가 회복되며, 시스템의 자동 통역 기능으로 외국인은 물론 이계인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켈라크스 시스템 때는 상상도 못했던 삶이었다. 더 이상 컵라면을 먹기 위해 편의점 앞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멋진 집에서 살고, 더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부자가 되어 더욱 화려한 삶을 즐기고 싶다면, 그대들은 레벨이나 공적을 올려야 한다. 레벨과 공적이 높은 이들에게는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멋지게 살고 싶으면 레벨을 올려라!
또한 공적을 쌓아라!
여기서 공적은 물론 퀘스트 업적을 의미했다.
어차피 퀘스트를 수행하면 레벨도 오른다.
업적도 쌓고 강해지고!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각성자들은 당연히 행성 퀘스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 * *
서울 강남역 저녁 6시.
이곳 역에는 지구의 3종 던전이 모두 있었다. 본래는 시련 던전만 있었는데, 아크엘이 거점 관리자가 되며 운명과 용맹까지 추가 시킨 것이다.
강남역만 이런 것이 아니라 지하철역이면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는데, 강남역은 다른 곳보다 더 사람들로 붐볐다.
이는 이전 켈라크스 시스템 초반부터 이쪽에서 자리를 잡고 던전을 돌았던 각성자들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파티를 구하기 쉬워서였다.
그러나 이제 전세계 각성자들이 다 한국으로 몰려오면 달라질 것이다. 아크엘은 한 곳에 너무 각성자들이 붐비지 않도록 전국 곳곳에 던전들과 편의시설을 잘 배치해두었다.
“퀘스트로 도배된 행성이 있다던데?”
“내일 포탈이 정식으로 열리면 누구나 갈 수 있다고 했어. 거기서 퀘스트만 열심히 해도 레벨도 오르고 업적이 쌓인다는 거야.”
“후후, 어서 포탈이 열렸으면 좋겠군. 그럼 더 이상 던전 같은 건 안 돌아도 되잖아.”
각성자들의 화제는 대부분 퀘스트 행성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던전 도는 파티원을 모집하는 이들이 많았다.
“용맹 도실 분 모셔요. 장비는 시련 풀 셋, 레벨은 Lv40이상만 오세요.”
“혹시 운명 도실 저렙 분 있나요? 저 레벨 23 힐러요.”
“퀘스트 행성 가기 전까지 던전 계속 도실 Lv40 이상 힐러 구해요!”
“밤샘 시련팟! Lv30 이상 탱커 한 분만 오시면 바로 출발합니다!”
그때 강남역의 포탈에 환한 빛이 일었다. 게이트에서 두 명의 여성이 걸어나왔다. 한 명은 서린이었고 또 하나는 강윤아였다.
“와아! 사람 많다.”
“옛날 생각나네. 이 시간에 강남역 진짜 사람 많았거든.”
“근데 지금은 별로 할게 없어요. 차라리 우리 강릉 경포대 쪽에 가서 바다나 보고오는 게 어때요?”
“좋아. 내일부터 바빠질 테니 오늘 실컷 놀자. 근데 기왕 바다를 볼 거면 제주도에 다녀오는 게 어때? 포탈로 이동하는 거니 시간은 똑같잖아.”
“맞다. 우린 포탈 이용이 무료이니까 어디든 부담없이 갈 수 있죠.”
각종 포탈은 하루 두 번은 무료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매회 100루나를 내야 한다.
그러나 Lv50이상인 각성자는 무제한 무료였다.
그러나 이 또한 이후에 조정된다고 했다.
전체 평균 레벨이 높아지면 무료 레벨 또한 높아진다.
열심히 레벨을 높이면 모든 면에서 편해지지만, 도태되면 여러모로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던전을 도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던전 도는 사람 진짜 많네요. 오늘까지만 이러고 내일부터는 퀘스트하러 다들 뛰어가겠죠?”
“그래도 계속 던전만 도는 사람도 있을 걸. 천성적으로 퀘스트 같은 걸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많아.”
서린과 강윤아는 많이 친해진 터였다. 조성우와 김지현은 데이트 하러 둘이 홍대쪽으로 갔고, 서린은 강윤아와 산책나왔다. 강윤아는 서린의 표정이 싱글벙글 밝아보여서 물었다.
“근데 넌 뭐가 그리 신나 있어?”
“자유롭잖아요. 이렇게 막 나와서 돌아다녀도 된다는 게.”
서린은 아크엘로부터 더 이상 시스템 리셋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다. 켈라크스 시스템이 사라진 이상 그녀가 죽는다 해도 리셋 같은 건 되지 않는다고.
이제 그녀는 보통의 각성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그녀를 암살하려 하는 이들은 없으니까.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것에 대한 보상때문인지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서린에게는 아주 특별한 패시브 능력이 하나 생겨났다.
[초인의 감각]
-모든 스탯 +100
-모든 경험치 획득량 100% 증가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올스탯 100 증가라는 사기적인 효과!
거기에 모든 경험치 획득량은 던전을 돌며 몬스터를 처치할 때 얻는 경험치뿐 아니라 퀘스트 보상으로 받는 경험치도 해당된다.
남들보다 무조건 2배의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니 레벨업이 빨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흠, 글쎄다! 왜 네게 그런 대단한 패시브 능력이 생겼는지는 나도 모르겠군. 그냥 그간 네게 있었던 불행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는 게 좋겠지. 이제 지난 불행은 잊고 네게 찾아온 특별한 행운을 누리며 살도록 해라.’
이는 아크엘이 서린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러나 서린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초인의 감각은 거점 관리자인 아크엘의 권한으로 딱 한 명에게만 부여할 수 있는 특별한 버프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아크엘은 상훈에게 그 선택을 부탁했다.
초월자들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터라 각성자들 중에만 가능했다.
상훈이 그 중 서린을 선택한 것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행성 포탈이 정식으로 열리자 서린의 파티를 필두로 해서 각성자들이 속속 C1002행성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행성에 산재된 문제들 즉, 퀘스트들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C1002 행성 문제 해결도 0.001%]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0%로 고정되었던 문제 해결도가 드디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훈은 아크엘과 그것을 지켜보다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 약간이지만 오르긴 오르는군.”
“아직 각성자들 중 극히 일부만 이동했을 뿐입니다. 각성자들은 계속 이동 중이며, 또한 수 만 명에 달하는 사신들도 투입할 생각이니 조금 지나면 문제 해결도의 상승폭이 크게 증가할 겁니다.”
아크엘의 표정도 밝았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각성자들이 퀘스트를 해결하거나 레벨이 오를 때마다 지구 거점에 미세하지만 차원력과 루나가 쌓이고 있습니다.”
“잘됐군. 어차피 차원력은 많을수록 좋잖아.”
“앞으로 지구는 제 1혼돈계 전체를 총괄하는 메인 거점이 될 것입니다. 지구에 차원력을 많이 쌓아두면 로드께서 차원석을 많이 소모하지 않고도 행성 거점을 점령하실 수 있게 되며, 이후 혼돈의 가디언을 제작할 때 소모되는 차원석 개수 및 소요 시간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각성자들이 강해질수록 지구의 차원력도 많아지고 그만큼 상훈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
대신 상훈 역시 그들을 지켜주며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곧바로 아공간에서 예전에 모아두었던 전설과 신화 등급 장비들을 아크엘에게 건넸다.
“특별히 많은 업적을 달성하거나 하는 이들에게는 포상으로 주도록 해.”
“오오! 이런 것이 있으면 각성자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아크엘은 반색하며 그것들을 받았다. 상훈은 미소 지었다.
“그럼 이쪽은 네게 맡기고 난 다시 다른 행성을 점령하러 가보겠다. 이네르타와 사로스가 있으니 유사시 초월자들이 쳐들어와도 내가 올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거야.”
“예, 이쪽은 염려마십시오, 로드.”
수많은 차원계에 흩어져 있던 초월자들은 지금도 끝없이 혼돈계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초월자들이나 거점 관리자 급 이상의 존재들만 그와 같은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군주에게 누가 패배했거나 죽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
그건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보통의 인간들이나 각성자들이 그런 알림을 계속 듣다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데카토스 녀석을 죽였더니 다들 겁이나서 안 오는 건가? 아니면 내가 혼돈의 괴수를 처치한 것이 알려져서 일 수도 있겠군.’
데카토스 이후로는 지구를 공격해오는 초월자들은 아직 없었다.
혼돈계가 열린 지 이제 이틀째이지만, 그 사이 1천 명도 넘는 초월자들이 49개의 혼돈계 중 어딘가로 들어왔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제 1혼돈계도 최소 몇십 명은 들어왔을 텐데, 중립 지역인 C1094행성에서 잠자코 있는 것이다.
‘일단 행성부터 다 점령하고 보자.’
상훈은 곧바로 C1018 행성으로 향했다. 이곳도 지도 두루마리에서 붉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곳이다. 혼돈의 괴수가 있음을 의미했다.
[제 1혼돈계 C1018행성에 진입했습니다.]
기온이 매우 높아 인간은 물론이고 웬만한 생명체는 살 수 없는 곳. 혼돈의 괴수가 있는 행성은 다 이런 식인 모양이었다.
[근처에 매우 무서운 적이 위치해 있습니다]
[속히 피하십시오!]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상훈은 담담히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그 사이 한 개의 차원 병기가 완성되어 이제 차크람 블레이드를 형성하는 무기는 도합 다섯 개였다.
[혼돈의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순간 전방의 사방 공간에서 짙은 어둠들이 한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사방에 모여있던 시커먼 구름들이 한곳으로 집결하는 듯한 장면이었는데, 그렇게 모여둔 어둠은 이내 거대한 눈알 형상의 괴수로 변했다.
번쩍!
괴수의 눈에서 섬광이 일어나자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러나 상훈은 저 빛이 바로 불완전한 혼돈력이 깃든 광역 공격임을 알고 있었다.
저 빛에 노출되는 순간 최상급 초월자들 정도 되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을뿐 그 이하는 그대로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번쩍! 번쩍!
물론 상훈에게는 그저 여름의 뙤약볕처럼 약간 따가운 정도일 뿐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이번엔 눈알 형상인가?”
난이로로 따진다면 지난번 괴수보다 약간 어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광역 공격을 쏟아내고 있으니까.
그 뿐이 아니다.
눈알이 붉게 충혈되는 순간 일정 공간을 향해 쏟아지는 붉은 광선은 매우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터라 상훈도 피해야 했다.
화아아아아악-
쿠콰쾅! 콰콰콰콰쾅-!
붉은 광선에 노출된 지대가 마치 무저갱으로 쏟아지듯 무너져내렸다.
‘무식한 파괴력이군.’
그러나 상훈은 오히려 지난번보다 더 수월하게 괴수를 상대했다.
이는 물론 그가 그때보다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소멸의 홀로 무력화시킨 후 소멸의 차크람 블레이드로 끊임없이 데미지를 주자 결국 괴수는 버티지 못하고 팍 터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