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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혼돈의 시대 (2) (4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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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2)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상훈의 몸은 매우 상쾌했다. 페르틸라들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소진되었던 차원력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컨디션은 최상이군.’

차원력의 효율도 달라졌다. 이전보다 훨씬 적은 차원력을 쓰고도 더 강한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소멸의 홀을 추가로 생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전보다 강해진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혼돈자가 된 건 아니었다. 진정한 혼돈의 힘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다만, 초월자의 영역을 넘어선 건 분명했다.

굳이 경지로 표현하자면 불완전한 혼돈자의 초입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인가?

드디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이전보다 최소 두 배는 더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것에 기뻐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으니!

[이제 혼돈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모든 만물이 혼돈에 장악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대차원혼돈진의 광대한 영역의 중심.

그곳에 뭔가가 모여들더니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괴수에게 잡아먹혔던 트리안이었다.

그러나 본래 그녀와는 달리 그 신장만 수백 미터가 넘었다.

어깨에는 시시각각으로 색이 변하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었다.

“호호호호호호······!”

그녀는 이제 켈라크스 제 5군황이며 시스템 설계자였던 트리안이 아니었다. 혼돈의 괴수에게 먹혀 새로운 형태로 창조된 최후의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혼돈의 마녀가 깨어났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메시지는 대차원혼돈진의 광대한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 들렸다.

[혼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혼돈의 세계는 확장되며 전 차원에 열려 있습니다.]

[초월자라면 누구나 페르틸라를 획득해 군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혼돈의 마녀라니! 게다가 혼돈의 시대가 열렸다니!

상훈도 깜짝 놀랐다.

‘또 뭐지? 이놈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지구를 점령한 켈라크스 시스템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는 시스템 속에 갇혀 있었다.

기존의 시스템과는 비할 수 없이 더 거대한 시스템!

[혼돈의 페르틸라 10개를 모두 모으면 진정한 혼돈의 힘을 얻어 혼돈의 절대군주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혼돈의 절대군주만이 혼돈의 마녀를 처치하고 혼돈의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시스템의 음성이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현재 페르틸라를 보유한 군주는 모두 7명입니다.]

[초월자라면 누구나 이들을 공격해 페르틸라를 약탈할 수 있습니다.]

[군주 전상훈]

–운명의 페르틸라, 시련의 페르틸라, 용맹의 페르틸라

[군주 루치페로]

–파멸의 페르틸라

[군주 라인카스]

–생존의 페르틸라

[군주 크라니오]

–어둠의 페르틸라

[군주 바리둔]

–광명의 페르틸라

[군주 세르펜스]

–비상의 페르틸라

[군주 바스타오]

–적월의 페르틸라

[알 수 없는 장소]

–불멸의 페르틸라

트리안의 죽음 이후 어딘가로 사라졌던 페르틸라들은 본래 그들의 주인이었던 군황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트리안이 쥐고 있던 페르틸라는 돌아갈 곳이 없어 알 수 없는 어딘가로 숨어버린 것이다.

“미치겠군. 산 넘어 산이라더니.”

상훈은 기가 막혔다. 너무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차원력으로 이루어졌던 켈라크스 시스템과 달리 혼돈 시스템은 상훈의 힘으로도 파괴하거나 없앨 수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혼돈의 절대군주가 되어 혼돈의 마녀를 처치하는 것뿐!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7개의 페르틸라를 모두 모아야 한다.

솔직히 상훈의 힘으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중 6개는 켈라크스의 군황들이 가지고 있으니 그놈들을 찾아가 죽이고 빼앗으면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개는 또 어떻게 찾다보면 찾을 수 있을 거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야.’

10개의 페르틸라를 모으면 진정한 혼돈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초월자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 말인지 상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혼돈자가 될 수 있는 길!

그것이 이 혼돈 시스템을 통해 주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 시스템은 열려 있으며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초월자들이 모여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초월자 카이라크가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초마왕 사르탄이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다른 차원에서 이곳으로 뛰어든 초월자들이 생겨났다.

‘초마왕 사르탄? 저놈까지!’

사르탄은 상훈이 언제고 꼭 손을 봐주겠다고 벼르고 있던 악명 높은 라트로 중 하나다. 그의 손에 얼마나 많은 라트로 헌터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저 놈의 본거지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는데.’

사르탄은 전투력도 강하지만 워낙 교묘하고 은밀하게 움직여 도무지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초용족 아티로스가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초마왕 아마스칸이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초월자들이 합류했다는 음성이 울려퍼졌다.

그러고 보니 초월자가 새로 혼돈의 세계에 들어오면 이런 식으로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아티로스! 아마스칸! 저 문제아 녀석들도 왔군.’

상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는 이름들이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라트로 헌터들을 피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악명 높은 라트로들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혼돈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가장 먼저 라트로들이 입맛을 다시며 몰려오고 있었다.

[초마왕 사르탄이 군주 바스타오를 죽였습니다.]

[사르탄이 적월의 페르틸라를 획득했습니다.]

[사르탄이 새로운 혼돈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 사르탄에게 켈라크스 제 7군황 바스타오가 죽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죽인 것을 보면 사르탄이 바스타오의 근거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토록 빨리 바스타오를 처치할 줄이야.

그것은 사르탄의 전투력이 바스타오를 월등히 능가함을 의미했다.

‘가장 약한 녀석부터 찾아가 죽이는 저 야비함은 여전하군. 차라리 나에게나 쳐들어올 것이지.’

상훈은 푸념하듯 말했다. 그러다 그는 돌연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이 상황이 아주 나쁜 건 아니네.’

상훈이 페르틸라를 가지고 있는 한 언제고 사르탄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사르탄 뿐이 아니다. 수많은 라트로들이 알아서 상훈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차라리 잘됐어. 이 기회에 그놈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제 라트로들이 알아서 이렇게 모여들겠는가?

죽을 줄 알면서도 혹시라도 혼돈의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심 때문에라도 라트로들은 절대 이 혼돈의 세계로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혼돈의 힘을 얻기 위해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라트로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절호의 기회!

그렇게 라트로들을 모두 쓸어버리면 페르틸라 10개는 저절로 상훈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때 과연 시스템의 말대로 진정한 혼돈의 힘을 얻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초월자 스페라가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초용족 마고스가 혼돈의 세계에 합류했습니다.]

······

그 사이에도 계속 새로운 초월자들이 합류했다는 음성이 귀를 울리고 있었다. 상훈도 처음 들어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무한한 차원계에서 힘 좀 쓴다는 초월자들은 다 모여들고 있을 테니 당연했다.

‘조만간 이쪽으로도 누군가 쳐들어오겠지.’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하기로 했다. 좀 더 살펴봐야 겠지만 지구는 켈라크스 시스템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혼돈의 시스템이 켈라크스 시스템 방식을 그대로 가져간 것인지 모르지만, K대 입구역 앞의 용맹의 던전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혼돈의 군주는 행성을 점령해 거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곳 지구는 현재 비점령지입니다. 지구를 점령해 거점으로 만들겠습니까?]

[점령시 상급 차원석 10개 소모]

“뭐냐, 이건?”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지구를 점령하라니.

‘나보고 라트로들이나 하는 짓을 하라는 건가?’

그런데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거점으로 지정된 행성에는 차원력의 배리어가 설치되어 외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야지.”

비록 지금은 지구의 인간 대부분이 죽고 소수의 각성자들만 살아남은 상태지만, 그래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차원석이야 많이 있으니 10개 정도는 부담없었다. 이제는 차원력의 회복이 쉬워지다보니 포션처럼 사용할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당신은 지구를 거점으로 지정했습니다.]

[상급 차원석 10개가 소모되었습니다.]

[지구 외곽에 차원력의 배리어가 생성됩니다.]

[지구 배리어 내부로 향하는 외부의 모든 공간 이동이 차단됩니다.]

[배리어가 파괴되면 거점이 공격받을 수 있습니다.]

[유능한 거점 관리자를 지정하면 거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좋아. 일단 지구는 안전해졌군.”

상훈은 곧바로 상훈25 2호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아크엘과 이네르타, 사로스, 그리고 서린 등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들 긴장한 기색이었는데 초월자인 이네르타와 사로스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또한 아크엘도 상당히 차분해 보였다.

상훈이 들어오자 아크엘이 일어나 말했다.

“로드, 오셨습니까?”

“넌 별로 놀라지도 않는군. 혼돈의 시대가 올 줄 설마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아크엘이 미소 지었다.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꽤나 황당했지만,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쁜 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로드께서 혼돈의 힘을 얻으심과 동시에 수많은 라트로들을 일망타진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현자답군. 지금 상황에서는 아크엘 네가 가진 현자로서의 직감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군주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 지 그 위치를 알아내야 빨리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로드.”

아크엘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저의 직감이 틀리지 않다면 로드께서 혼돈의 군주가 되신 이상 군주로서의 능력을 쓸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테면 지구를 거점으로 삼는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물론이야. 이미 지구 주위에는 배리어가 둘러졌으니 안심해라.”

“오오! 정말 다행입니다, 로드.”

상훈이 지구를 거점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아크엘은 크게 기뻐했다.

“그렇지 않아도 네게 거점 관리자를 맡기려고 했다, 아크엘.”

“그런 건 저의 전문입니다. 얼마든지 맡겨주십시오.”

“좋아. 이제부터 네가 거점 관리자야.”

순간.

[아크엘이 지구 거점 관리자로 임명되었습니다.]

환한 광채가 아크엘의 몸을 휘감았다. 그와 함께 그의 머리 위에 ‘지구 거점 관리자’라는 글자가 나타나 마치 왕관처럼 찬란하게 반짝였다.

“와아!”

“아크엘님 멋져요!”

그 모습이 서린 등에게도 보이는 모양인지 그들은 아크엘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크엘 또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지만, 그는 이내 무슨 일인지 안색을 굳히고는 다급히 외쳤다.

“로드! 지금 누군가 지구를 타겟으로 잡고 차원 포탈을 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마왕 데카토스가 지구 거점의 배리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데카토스?”

사르탄 만큼은 아니지만 그 아래에서는 제법 악명 높은 라트로 중의 하나였다.

“알아서 찾아와주니 고맙다고 해야겠군.”

상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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