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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혼돈의 시대 (1) (4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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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1)

‘이런! 차원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상훈은 깜짝 놀랐다. 어렵게 회복한 그의 차원력이 3개의 페르틸라를 붙잡는 순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페르틸라들이 차원력을 흡수하고 있는 건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틀림없었다.

그동안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 왜 갑자기 벌어진 것일까?

상훈은 재빨리 차원력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방어했다.

그러자 페르틸라들이 금세 빠져나갈 듯 꿈틀거렸다.

‘차원력을 주입하면 끝도 없이 빨아들이고, 그것을 멈추면 페르틸라들이 빠져나가려고 하는군.’

이대로라면 페르틸라들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차원석들로 차원력을 회복하면서 계속 차원력을 주입하던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식이라면 차원석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상훈은 페르틸라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럴수록 차원력이 점점 고갈되어갔고 전신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그래도 상훈은 페르틸라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일순 상훈의 앞에 환상이 나타났다.

스스스.

마치 상상 결계와 같은 공간이 펼쳐졌고, 상훈의 앞에 각기 다른 형상의 괴수 3마리가 나타나 공격을 해왔다.

‘이것들은 또 뭐냐?’

상훈은 미늘창으로 그것들과 맞서싸웠는데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공격해도 소용없었다.

어쩔 수 없이 최후의 궁극기인 소멸의 홀을 소환했다.

그러자 3마리의 괴수 중 한 마리가 소멸의 홀에 빨려들어가 몸부림쳤다.

‘두 놈은 꿈쩍도 않는군.’

소멸의 홀에 끌려가서도 괴수는 죽지 않았다. 마치 함정에 빠진 듯 몸을 허우적거리기만 할뿐 멀쩡했다.

그나마도 나머지 2마리는 소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상훈을 공격해왔다.

정신없이 피했지만 상훈의 몸은 만신창이 상태였다.

‘저 괴수들은 대체 뭐지? 뭔데 이렇게 강한 거야?’

단연코 그가 지금껏 조우했던 적 중에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공격은커녕 피하기만 해야 했으니까.

‘이런 건 혼돈의 힘을 가진 녀석들밖에 없어.’

물론 진짜 혼돈이 아닌 불완전한 혼돈의 힘이다.

진정한 혼돈의 힘을 가진 괴수였다면 상훈은 이미 그것의 공격 한 번에 먼지로 변해버렸을 테니까.

불완전한 혼돈의 힘이라면?

‘결국 페르틸라들이 형상화되어 나를 공격하는 거였군.’

그래서 그 중 하나가 초월자의 궁극기인 소멸의 홀에 무력화된 것이다.

‘소멸의 홀을 또 소환낼 수 있다면?’

지난 번 상상 결계에서 켈라크스 제 7군황 바스타오와 전투를 벌일 때 무의식적으로 소멸의 홀을 2개 소환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우연이었는지 지금은 온갖 방법을 시도해도 그것이 불가능했다.

‘대체 그때는 어떻게 그게 된 건가?’

상훈은 점점 한계를 느꼈다.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었다. 비록 상상 결계와 같은 공간이지만 이러다 죽기라도 한다면 본신 역시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페르틸라들을 포기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본신이 쥐고 있는 페르틸라들을 놓아주기만 하면 그 즉시 저 괴수들은 사라져버릴 것임을.

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분명 그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이게 그놈들 손으로 들어가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또한 설사 켈라크스들과 관련이 없다 해도 페르틸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에 비록 불완전한 혼돈력이 깃들어 있다 해도, 그가 가진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절대 포기 못해!’

상훈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괴수들을 공격했고 사력을 다해 피했다. 이미 신체의 상태는 빈사 직전이 될만큼 처참하게 변했지만 그의 눈빛만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 * *

한편 지난 하루 동안 트리안을 제외한 켈라크스의 군황들이 각자의 군황성에서 초마력혼돈진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그들은 자신들은 물론 부하들의 아공간을 몽땅 털어 차원석을 초마력혼돈진에 쏟아부었다.

그 여섯 개의 초마력혼돈진들과 켈라크스 시스템의 아차원 세계를 페르틸라들이 연결시켰고, 그로인해 차원계에 유례가 없던 초유의 초차원적 거대 시스템인 대차원혼돈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제 5군황 트리안의 표정은 희열로 가득했다.

‘잘 되고 있어. 대차원혼돈진이 제대로 완성되어가고 있어.’

이변이 없는한 이대로라면 거의 성공이었다. 트리안은 가슴이 벅찼다.

‘이것이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지금은 악명 높은 켈라크스 제 5군황이지만 그녀는 본래부터 시스템 설계자로서의 이상이 있었다.

다름 아닌 차원 시스템을 현실화시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또한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을 희생시켜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라트로가 되었고 켈라크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들의 야심을 이용해 막대한 차원석을 얻어 켈라크스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보다 비할 수 없이 더 거대하고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대차원혼돈진의 초차원적 시스템을 완성하기 직전이었다.

‘루치페로! 라인카스! 크라니오!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합체된 혼돈의 괴수 페르틸라는 오직 시스템의 설계자인 나의 명령에만 복종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트리안의 두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호호호! 이제 이 초차원적 시스템의 모든 건 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때 그녀의 앞으로 페르틸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각 군황들이 쥐고 있던 6개의 페르틸라들!

그것들은 모두 찬란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채!

트리안이 쥐고 있던 페르틸라까지 모두 7개가 그녀의 앞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듯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됐어.’

트리안은 뿌듯한 표정으로 시스템의 화면 한 곳을 바라봤다.

‘이제 그놈이 가지고 있는 페르틸라들만 오면 모든 게 완성된다.’

시스템의 화면에는 상훈이 3개의 페르틸라를 붙들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항해도 소용없다. 비록 불완전한 혼돈의 힘이지만 초월자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단다.’

트리안은 입가에 조소를 피워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페르틸라들은 상훈의 손에서 꿈틀대고만 있을 뿐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해. 어째서 페르틸라들이 오질 않는 거지?’

이미 왔어야 할 시간이 한참이 지났다.

그러고도 시간이 점점 더 지나가자 트리안은 초조해졌다.

쿠우우우우우!

결국 완성되어가던 대차원혼돈진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미 합체되었어야 할 페르틸라들이 7개만 모인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휘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훈이 쥔 3개의 페르틸라들이 와야 저것이 완전하게 합체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차원혼돈진의 진정한 완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진 상황.

쿠우우우! 콰콰콰콰콰콰-

‘미친! 차원력이 폭주하고 있어.’

트리안의 안면이 결국 사색으로 변했다.

불행하게도 운명은 10%의 실패확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러다 단순히 대차원혼돈진이 와해되는 정도가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혼돈력이 폭주해 차원계가 날아가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상한 세계로 변해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멈춰야 해.’

트리안은 다급히 켈라크스 시스템을 없애려 했다.

혼돈력을 얻는 것도, 대차원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도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시스템을 삭제해야 해.’

시스템 리셋은 유서린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시스템 삭제는 트리안이 언제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전상훈! 네놈이 내 모든 걸 망치는구나. 내가 이걸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악마와 같은 라트로들과 손을 잡고 악마가 되었어야 했다.

그간 이 시스템을 통해 희생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수많은 행성들이 파괴되고, 그곳에 살던 이들이 죽거나 영원한 시스템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사악한 심성을 가진 악마로 변한 것도 있지만, 차원 시스템에 그만큼 집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만든 시스템을 그녀 스스로 삭제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 상훈이 3개의 페르틸라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절대 용서 못해! 언제고 네놈을 꼭 파멸시키고 말겠다.’

트리안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포기하기로 했다. 켈라크스 시스템만 사라지면 차원력의 폭주는 멈추고 모든 건 제자리를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불가능했다. 시스템이 그녀의 뜻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다. 시스템의 설계자인 그녀가 삭제 명령을 내렸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 이런! 끝장이야.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났어!’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다.

“크크크크크!”

그녀의 앞에 모여있던 7개의 페르틸라들이 세차게 휘돌더니 괴상한 형체의 거대 괴수로 변했다.

“저게 어떻게 된 일이야?”

트리안은 기겁했다.

그것은 신화 속의 괴수라 불리는 페르틸라가 아니었다.

머리는 거대한 악어와 같은 형상이지만 뒷부분은 무저갱과 같은 어둠!

그 정체불명의 괴수가 입을 쩍 벌리고 날아들었다.

“아, 안 돼!”

트리안이 무슨 수를 써도 괴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원력이 통하지 않는 괴수!

괴수는 눈깜짝할 사이에 그녀를 집어삼켜버렸다.

“으아아악!”

그것이 끝이었다. 초월자이자 켈라크스 제 5군황이며 전무후무한 초차원 시스템의 설계자였던 트리안은 그렇게 정체불명의 괴수의 입속에서 처참하게 찢겨 죽었다.

“크크크크크!”

그렇게 트리안을 집어삼킨 괴수는 점점 더 몸체를 키워나갔다.

동시에 상훈이 가지고 있는 페르틸라들을 강하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으으윽!”

그 사이에도 상훈은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육체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괴수들을 공격했고 그것들의 공격을 피했다. 두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의지만이 그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냉철한 이성이 남아있었다면 진작 포기하고 그냥 페르틸라들을 놔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혼돈이고 뭐고 죽고 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

“쿠우우우우우우우우!”

“크와아아아아아아아!”

이 와중에 트리안을 집어 삼킨 정체불명의 괴수가 강력한 인력으로 페르틸라들을 끌어당기자 두 괴수는 더욱 난폭해졌다.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도 상훈은 기적적으로 계속 괴수들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어떻게 피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그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

어느덧 이글거리던 상훈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절대 포기못한다는 집착마저도 사라진 완벽한 무심의 상태!

그 순간 놀랍게도 상훈을 향해 달려들던 두 괴수가 멈춰섰다.

“쿠으으으으!”

“쿠, 쿠아아아악!”

아니, 그냥 멈춰선 것이 아니라 뭔가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그 사이 소멸의 홀이 두 개 더 생성되어 괴수들을 제압해버린 것이었다.

도합 3개나 되는 소멸의 홀!

그것들이 각각 괴수 한 마리씩을 붙들고 있자 상훈의 상태는 금세 말끔하게 회복되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시간이 정지된 것도 같고 아득한 시간이 흐른 것 같기도 했다.

트리안을 집어 삼킨 괴수의 몸체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한 공간을 장악했다.

그러나 애초에 그것은 10개가 다 모여야 완전체를 이룰 수 있었다.

쩌저저적-

상훈이 소멸의 홀을 3개 생성해냄으로 인해 3개의 페르틸라들이 그것에 갇혀 이동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괴수의 몸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괴수는 강렬한 광채만을 남기고 소멸되어버렸다.

화아아아악!

가공스러운 광채의 폭풍이 일어나 대차원혼돈진을 이루었던 영역 전체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도 7개의 페르틸라는 멀쩡하게 남은 채 공간을 휘돌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번쩍!

상훈이 감았던 눈을 뜬 것은 바로 이때였다. 상상 결계 속 소멸의 홀들과 괴수들은 모두 사라졌고 그의 손에는 3개의 페르틸라가 영롱하고도 신비한 빛을 띈 채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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