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대현자의 능력 (1)
미지의 상공에 떠 있는 초거대 구형 비행체 내부!
홀로그램처럼 떠 있는 무수한 화면들.
거의 모든 화면에는 지구의 각성자들이 좀비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시나리오 2의 진행 상황은?”
“불가피한 상황으로 반나절 일찍 수행되었지만 크게 무리는 없어 보여요. 지구 전체로 50만명 정도는 통과할 듯해요.”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붉은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는 힐끗 고개를 돌려 하나의 화면을 쳐다봤다.
다른 선명한 화면들과 달리 그 화면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찾지 못한 건가?”
“그 자는 차원력을 통해 시스템의 스캔을 피하고 있어 실시간으로 추적하기가 쉽지 않아요. 편의점에서 나온 것은 확인했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
“그럼 이대로 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채 지켜보겠다?”
“어차피 놈이 무작정 떠돌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를 점령하거나 하겠죠. 그럼 그 즉시 위치를 추적할 수 있어요.”
번쩍!
바로 그때. 어두웠던 화면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르메스가 눈을 빛냈다.
“놈의 위치가 잡혔군요.”
“어디인가?”
순간 아르메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맙소사! 현자의 탑이라니! 놈이 아크엘을 구해냈어요.”
“무엇이!”
화면에는 상훈이 현자의 탑이 숨겨진 결계를 박살낸 후 탑의 지하로 내려가 스네이크맨들을 처치하는 장면이 비춰졌다.
곧이어 아크엘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근처의 편의점에서 모습을 드러내 그곳을 장악해버렸다.
“여러모로 골치 아픈 녀석이군. 죽어야 할 녀석을 살리지를 않나, 시스템의 노예들을 부하로 만들지를 않나.”
“이대로라면 분명 더 골치 아픈 일을 벌일 게 분명해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놈을 제거할 방법이 없어요. 시스템 리셋도 쉽지 않고요.”
그러자 붉은 머리 남자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시나리오를 빠르게 완성시키는데 총력을 집중해라. 동시에 저 놈이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지 계속 파악해야 한다.”
“아크엘을 구한 것을 보면 시나리오를 방해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해요.”
“큭! 놈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시나리오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 하지만 버그들이 많아지면 골치아파질 거야.”
아르메스가 미소 지었다.
“곧 시나리오 2가 끝나고 시나리오 3이 시작되면 모든 버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죠. 놈의 곁에 버그들이 더 모일 일은 없어요.”
모든 버그는 시나리오 3을 기점으로 제거되도록 되어 있었다.
현자 아크엘 또한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데 상훈에 의해 구출되어버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3을 기점으로 모든 점포의 가디언들과 각종 성의 수호 용족들을 철수시킬까 해요. 이대로라면 그 놈의 병력만 늘려주는 꼴이 되어버리는 터라.”
“좋은 생각이다. 그건 어차피 시나리오에 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이렇게 되면 시나리오 3부터 루나만 있으면 누구나 편의점을 열 수 있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편의점을 열만큼 루나를 모은 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니 신경쓸 것 없다.”
붉은 머리 남자는 두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유서린을 죽일 방법을 계속 연구해봐라. 죽일 수 없으면 스스로 죽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
“예, 로드. 총력을 다해보겠어요.”
* * *
그 시간 편의점 상훈25 3호점.
아크엘은 눈을 감은 상태로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상훈은 팔짱을 낀 채로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자 그는 결국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저 녀석 지금 자는 것 같은데?’
아크엘이 눈을 감고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과 흡사해보였다.
“라강! 슬슬 교육시킬 준비해라.”
“예, 로드! 크크, 맡겨만 주십시오.”
자이드클로프스 라강이 험상궂은 눈빛으로 아크엘을 노려봤다. 이에 움찔 놀란 아크엘이 눈을 번쩍 떴다.
“잠깐! 이제 정리가 다 끝났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말해봐. 이 시스템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게 뭐야?”
그러자 아크엘이 즉시 대답했다.
“솔직히 제가 이 시스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하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아무것도 모른다니!
“제가 아는 건 이미 로드께서도 알고 있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켈라크스라는 놈들이 차원 시스템을 통해 지구를 장악하려 한다는 것 정도는 이미 로드께서도 다 알고 계실 테고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밖에 이후 펼쳐질 시나리오들에 대해서도 약간 알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대단한 것들은 없습니다. 차차 알려드려도 될만큼 중요하지 않은 내용들이니까요.”
“그런데 뭐가 대현자라는 거냐?”
“대현자로서의 비상한 직감때문이죠.”
“직감?”
아크엘이 뭔가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저의 직감으로 볼때 대략 한 시간쯤 후면 시나리오 2가 끝나고, 그 즉시 시나리오 3이 진행됩니다. 그 전에 로드께서 반드시 갔다 오셔야 할 장소가 한 곳 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뇌옥입니다.”
“뇌옥? 감옥 말이야?”
“맞습니다. 서울남부교도소가 있는 곳에 결계로 감춰져 있죠. 그곳에 가서 한 명을 구해내십시오. 시나리오 3이 시작되면 죽게 되니 서둘러야 합니다.”
“그 자 또한 너와 같은 시스템의 방해꾼 중 하나인가 보군.”
“만 명이 넘는 방해꾼들 중 딱 한 명만 선택하라면 첫 번째가 바로 저고, 그 자는 몇 십 번째 안에 들 겁니다.”
이 와중에도 자기 자랑을 하다니!
상훈은 왠지 어이가 없었지만 아크엘이 워낙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터라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럼 차라리 두 번째나 세 번째로 대단한 쪽을 구하는 게 낫지 않나? 왜 하필 몇 십 번째야?”
“그들이 있는 곳은 너무 먼곳이라 갈 수 없기 때문이죠. 로드의 능력 정도면 서울남부교도소 정도는 한 시간 안에 충분히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하지.”
상훈은 왠지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몇 십 번째라니 흥미가 떨어졌어. 그러니 두 번째로 대단한 녀석이 있는 곳이 어딘지나 말해봐.”
“거긴 알카트라즈 섬입니다.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있죠. 켈라크스 시스템에선 공간이동 마법이 불가능해 한 시간 안에 거기까지 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섬이라.
순간 상훈은 잠시 고심했다.
‘이거 고민되네.’
보통의 지구였다면 상훈이 그 정도 거리를 순간 이동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지구는 켈라크스 시스템이 차원력을 통해 만들어 놓은 세계라 어지간한 공간이동 마법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
섣불리 펼치다간 차원력의 벽에 부딪혀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작정하면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그 사이 쌓인 차원력을 대거 소모해야 하기에 약간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상훈은 아크엘을 노려봤다.
“가려면 갈 수 있어.”
그 말에 아크엘이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근데 거기 있는 녀석이 그렇게 대단해?”
“그야 물론입니다. 정말로 그 여자를 구해낼 수만 있다면 로드께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천군만마라!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으리라.
상훈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거기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