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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현자의 탑 (1) (21/159)

 # 21

현자의 탑 (1)

“너희들 말고도 사신들이 많이 있나 보군.”

“얼마나 많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꽤 될 겁니다. 그리고 각 사신들마다 맡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영역?”

“이곳 자양동을 포함한 광진구 전체를 저희들이 맡고 있었습니다.”

“둘이서 광진구를?”

“예. 어차피 별로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라서.”

하긴 케이드와 맥크의 능력이라면 저렙 각성자들을 해치우는 일쯤이야 장난과 같을 것이다. 스치듯 한 번 후려치기만 해도 각성자들은 그 즉시 사망일 테니까.

“그럼 지금 생존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

“다른 지역은 모르고 광진구 전체로 200명이 좀 안 됩니다.”

“200명?”

광진구 인구가 대충 40만 정도 되니 200명이면 0.05%에 해당한다.

시나리오 1에서 지구 인구가 0.1%미만이 될 때까지 죽인다고 하더니 광진구는 그보다 더 최악인 상태였다.

1만 명당 5명!

결국 2000명당 1명꼴로 살았다는 얘기니까.

나머진 다 죽고 말이다.

그 죽은 자들 중에는 상훈의 가족들도 있었다.

‘이 미친 새끼들!’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끌어오른다.

그러나 그나마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켈라크스 시스템만 날려버리면 이런 끔찍한 현실은 극소수의 기억에만 존재하는 허상으로 변해버릴 테니까.

“그럼 너희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니 광진구에 있는 생존자들은 사신에게 죽을 일은 없겠군.”

“예. 일단 시나리오 5까지는 사신들이 각자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광진구에 있는 생존자들에게는 희소식일 것이다.

잠시 후 펼쳐진다는 디펜스 게임에 실패해도 사신에게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한편 그때 편의점 안에서 상훈이 케이드 등을 굴복시키는 것을 본 조성우와 김지현은 넋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들은 케이드 등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처음 그들이 지옥의 악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서운 자들이 상훈 앞에서 뱀 앞에 개구리마냥 꼼짝도 못하고 단번에 종이 되어버릴 줄이야.

“세상에!”

“저 자는 대체 누구야?”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쿠르르릉!

귀를 찢는듯한 뇌성과 함께 들려오는 음성.

[시나리오 2 죽은 자의 분노]

[무사히 생존의 자격을 얻은 이들을 향해 죽은 자들이 분노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당신의 집을 지키며 생존하십시오.]

순간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였다.

스스스.

그리고 땅에서 뭔가가 쑥쑥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육신이 여기저기 끔찍하게 훼손된 끔찍한 모습의 시체들!

그 시체들이 광기서린 눈빛을 번뜩이며 움직이고 있었다.

“키키키!”

“크크크!”

시체들은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으아아! 시체들이 움직여!”

“저, 저게 뭐야?”

조성우와 김지현은 기겁했다. 서린과 달리 그들은 리셋 때마다 기억도 초기화되어 이전에 겪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반면에 서린은 담담했다. 수십 번이 넘는 리셋 동안 좀비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좀비들에게 집이 부서지고 말텐데.’

한 가지 찜찜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좀비들에게 건물이 점령당하면 소유권을 빼앗기고 만다.

그 와중에 좀비들에게 죽는 경우도 있지만, 운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결국 사신이 와서 죽이고 말 것이다.

그때 상훈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가방을 케이드에게 건네며 말했다.

“중앙 매대랑 기본 시설만 놔두고 여기에 싹 집어넣어. 하나도 빠뜨리지 마라.”

“예, 로드.”

케이드와 맥크는 고블린 명장 가방에 물품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슥. 스슥.

“공간에 여유가 있어?”

“예, 충분합니다.”

“가방의 아공간이 커서 한 번에 모두 옮길 수 있겠습니다.”

가히 바람과 같은 속도로 과자와 음료수, 각종 생필품들이 가방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린이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우린 이제 2호점으로 이동할 거야.”

“지금요?”

“너 화장실 급하다며.”

“바깥에 좀비들이 나타났잖아요.”

“그런 건 그냥 무시해라.”

좀비들을 무시하라니. 황당한 얘기였지만 서린은 상훈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긴 좀비들이 아저씨를 더 무서워하겠죠. 그보다 집은 어쩌죠? 그건 절대 부서지면 안되거든요.”

“아직도 그런 걸 걱정해? 집 같은 거 다 부서져도 상관없다고 말했을 텐데.”

“알아요. 하지만.”

서린은 몸을 움츠리며 말을 이었다.

“사신은 정말 무서운 자들이라고요. 안전지대라고 안심할 수 없어요.”

서린은 편의점 밖에서 이루어진 자세한 대화는 듣지 못했다.

따라서 케이드와 맥크가 상훈에게 굴복하는 장면은 보았지만 그들이 시나리오 2의 최종 집행자들인 사신이란 사실은 몰랐다.

그러자 상훈이 손가락을 들어 케이드와 맥크를 가리켰다.

“사신 별 거 없어. 저기 있잖아.”

“어디요? 사신이 어디 있어요?”

“저들이 바로 사신이야. 이젠 나의 부하가 되었으니 안심해.”

“대박! 진짜예요?”

서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이제 그녀는 상훈이 거짓말 따위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상훈이 거짓말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황당할 뿐.

“케이드, 작업 끝났으면 와서 직접 와서 설명해줘. 이 녀석이 내 말을 듣고 안심을 안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예, 로드.”

케이드는 고블린 가방을 상훈에게 공손히 건네고는 서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잿빛 홍채가 무뚝뚝하게 번뜩였다.

“내가 바로 그 사신 맞다, 가련한 소녀여. 그간 그대를 죽인 걸 용서해라.”

“날 죽였다고요?”

서린이 흠칫 놀라자 케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넌 시나리오 2에서만 3번 죽었지. 그때의 사신이 바로 나였다. 그 후로도 나는 명령에 의해 널 5번이나 더 죽였다.”

“그, 그러고 보니!”

서린은 치를 떨었다. 당시 죽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케이드 옆에 있던 맥크도 와서 말했다.

“흐흐, 나 또한 널 7번이나 죽였단다. 미안하게 됐구나. 하지만 우리가 로드의 부하가 된 이상 널 죽일 일은 없으니 걱정마라.”

순간 서린은 기가 막혔다. 그 끔찍한 악귀들이 바로 이 앞에 있을 줄이야.

그녀를 8번 죽인 사신과 7번 죽인 사신!

그녀는 이들에게만 무려 15번을 죽은 것이다.

“쳇! 미안하다면 다예요? 사람을 그렇게 죽여놓고?”

“그, 그게······.”

“우린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상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들 하긴! 안심시키라고 했더니 몇 번 죽였는지는 왜 얘기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로드.”

다행히 서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괜찮아요. 덕분에 이 분들이 진짜 사신인 걸 알았어요.”

“좋아! 그럼 2호점으로 이동하자.”

“근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서린은 조성우와 김지현을 가리켰다. 그들은 케이드 등의 위세에 눌려 기도 펴지 못하고 한쪽에서 눈치만 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 상훈이 그들을 쳐다보자 간절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 편의점 알바만 일 년 했습니다. 열심히 할테니 알바로 써주세요.”

“저도요. 청소랑 열심히 할게요. 보수는 필요없으니 제발 쫓아내지만 말아주세요.”

뭐 딱히 편의점 알바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편할 것이다. 매장도 깨끗해질 거고.

상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와라.”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곧바로 상훈은 일행과 함께 로덴 빌딩 1층에 위치한 상훈25 2호점으로 이동했다.

“와아! 여기 진짜 대박이다! 화장실도 정말 깨끗하고!”

서린은 넓고 화려한 편의점을 보며 환호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서린을 보며 상훈은 미소 지었다.

‘어쨌든 여긴 이제 안심이군.’

그러나 상훈은 편의점에만 있을 수 없었다.

시나리오 2가 예정보다 빨리 시작됐으니까.

그렇다면 시나리오 3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일단 남산 타워에 있다는 현자의 탑부터 가봐야겠어.’

켈라크스 시스템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는 현자 아크엘.

그는 시나리오 3이 시작됨과 동시에 암살자에 의해 죽는다고 했다.

그 전에 빨리 가서 그를 데려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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