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반격이 시작되다 (2)
그런데 서린은 나가지 않고 문 앞에서 휙 돌아선 후 다시 걸어왔다.
“내가 나갈줄 알았지? 후후,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해.”
순간 직원이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서린을 슥 노려보며 외쳤다.
“아, 손님! 지금 장난해요? 빨리 나가요! 바빠요!”
“당신 켈라크스의 하수인이지?”
“켈···뭐요?”
“켈라크스! 지구를 침범한 사악한 외계인.”
“아, 진짜! 무슨 외계인? 너 고딩 같은데 잠이 덜 깼냐? 좋게 말할 때 얼른 집에 가라. 판타지 소설 좀 그만 보고.”
“당신이야 말로 꺼져! 켈라크스의 하수인 주제에!”
그러자 직원 뿐 아니라 라면을 먹던 여자도 황당한 표정으로 서린을 쳐다보며 한소리 했다.
“쟤 미쳤나 봐요. 하여간 요즘 고딩들은.”
“그러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일이 힘들어죽겠는데 저런 미친년들이 와서 더 죽겠어요.”
서린이 코웃음쳤다.
“흥! 둘 다 웃기는군. 누굴 속이려고!”
하마터면 그녀도 속을 뻔했다. 막 잠에서 깨어나 편의점 바깥 풍경을 바라봤을 때.
눈 앞에 PS25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서 있고, 옆 테이블에는 라면을 먹는 여자까지.
매장의 진열대에 과자와 빵, 라면 등이 쌓여 있고, 음료수 진열대에 가득한 음료수들을 보면서 더더욱.
진짜로 모든 게 꿈이었고,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줄 착각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런 게 존재할 리 없다.
이름 유서린
나이 18세
성별 여자
레벨 15
직업 [없음]
칭호 [지구 최초의 미노타우루스 학살자]
생명력 1220/220(+1000)
마나 180/180
그 이하 스탯과 스킬들도 쭉 나와 있었다.
이건 그녀가 속으로 ‘상태창’을 외칠때만 보이는 것으로 항상 시야에 떠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서 상태창을 외쳐보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어.’
아주 잠깐이었지만 드디어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일상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 거리를 보는 순간 당장 뛰쳐나가 집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니까.
저들은 바로 그 심리적 허점을 노린 것이다.
물론 상태창을 확인한 순간 서린은 정신이 번쩍들어 편의점을 나가지 않았다.
“너 오타쿠지? 혹시 눈 앞에 스탯창 같은 거 막 뜨고 그러냐?”
“그래. 뜬다. 아주 잘 보이거든.”
“하하하, 그래? 그럼 어디 스킬 한 번 펼쳐봐.”
“여긴 안전지대라서 스킬 못 펼쳐!”
“그건 또 뭐야?”
“편의점은 안전지대인 걸 다 알고 왔으면서 뭘 물어.”
“크크, 그래 안전지대라고 치자. 그럼 나가서 펼쳐봐. 그럼 내가 믿어준다.”
“꿈깨시지. 당신들이 지금 날 밖으로 내보내서 죽이려고 연극하는 거 모를 줄 알아?”
“와! 얘 아주 중증이네. 너 정신병원에 좀 가봐야겠다.”
그때 편의점의 문이 열리며 두 명의 경찰이 들어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순간 직원이 잘됐다는 듯 서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찰 아저씨! 쟤 좀 어떻게 해줘요. 대낮부터 편의점에서 잠을 자질 않나, 외계인이 쳐들어왔다고 하질 않나, 하여간 좀 이상한 애예요.”
“외계인이라고요?”
“예. 켈라크스가 어쩌고. 아 진짜 미치겠어요. 눈에 게임의 스탯창 같은 것도 보인다고 그러고. 아무래도 게임 폐인 오타쿠같은데 영업에 방해되니까 어서 데리고 나가주세요!”
그러자 경찰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더니 엄한 표정으로 서린을 노려봤다.
“흠, 요즘 학생들 중에 게임을 많이 해서 그런 증상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이 학생은 증상이 좀 심각해보이는군.”
“학생! 외계인이라니! 게임 좀 작작해야지. 이런데서 장난치면 안돼요. 어서 나가요.”
듣지 않을 경우 끌고 나가겠다는 듯 경찰 한 명이 서린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서린은 어이가 없었다.
‘진짜 누가 보면 내가 미친 줄 알 거야.’
이들은 지금 서린이 확인한 스탯창조차 헛것을 보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이 상황이 되면 어지간한 사람은 자신 스스로도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을 것이다.
스스로 혼란에 빠져 무너지게 만드는 수법!
그러나 서린은 그 따위 수작에 넘어갈 만큼 멘탈이 약하지 않았다.
수십 번의 죽음을 겪으며 평범한 소녀로서는 가지기 힘든 강한 정신력을 얻었으니까.
“학생! 좋게 말할 때 나가지.”
그때 경찰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서린의 팔을 잡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눈만 부릅뜨며 무서운 표정으로 겁박을 할 뿐.
“난 나갈 생각 없으니 당신들이나 나가!”
서린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 팔짱을 낀 채로 경찰들을 노려봤다. 그녀는 이미 경찰들의 속셈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린을 잡아서 강제로 끌고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그녀 스스로 나가게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무시한 채 물건들이 쌓인 매대를 살펴보기로 했다.
‘바깥 풍경은 그렇다쳐도.’
폐허가 된 바깥이 평범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거야 켈라크스 시스템에서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바깥을 실제와 다른 환영을 만들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거고 말이다.
그런데 편의점 내부는 어떻게 바꾼 것일까?
컵라면과 생수만 팔고 있는 특이하게 생긴 매대는 안보이고 그 자리에 온갖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으니까.
여러 종류의 과자나 빵, 음료 등은 물론이고 간편하게 포장된 바나나와 딸기와 같은 과일. 냉동고에 가득찬 아이스바와 아이스크림, 냉동 만두.
심지어 손톱깎이, 세제, 치약, 칫솔, 샴푸, 휴지와 생리대 등의 생필품들도 잔뜩 보였다. 노트와 볼펜과 같은 간단한 문구류까지.
만져보니 모두 진짜 물품들이었다.
전에는 안보이던 전자레인지도 있었다.
‘내가 이것들 때문에 가장 헛갈렸다니까.’
진짜 편의점에나 있을 만한 것들.
그러던 서린은 중앙에 쌓여 있는 과자 봉지들 사이로 숨겨진 매대를 발견했다.
‘역시’
과자 봉지로 숨겨진 중앙 매대.
거기에는 컵라면과 생수의 사진과 버튼이 있었다.
저들은 이 매대를 강제로 옮길 수 없으니 그 위에 다른 물건들을 올려놔 감춰둔 것이다. 또한 서린이 잠을 자느라 바닥에 내려둔 리자드맨의 단창도 그 근처에 숨겨져 있었다.
“망했다! 결국 그걸 찾아내다니!”
탄식이 가득한 음성. 고개를 돌려보니 편의점 청년이 낭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린은 싸늘히 웃었다.
“후후,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거냐, 켈라크스의 하수인?”
그러자 청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라면을 먹던 여자와 두 명의 경찰도 뭔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실패라니!”
“이제 어쩌죠? 실패하면 우릴 죽인다고 했는데.”
“큭! 어쩌긴요. 여기서 버텨야죠. 편의점은 안전지대라고 했으니까 나가지만 않으면 안 죽지 않을까요?”
“그건 그러네요. 그들이 이 안에서는 쟤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걸 보니 틀림없어요.”
그런데 그때였다.
“버티긴 어딜 버틴다는 거냐?”
싸늘한 음성과 함께 편의점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상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