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반격이 시작되다 (1)
[참치 삼각김밥]
-고대인들이 즐겨먹던 마요네즈 소스를 버무린 참치 삼각김밥.
-판매가격 2루나
삼각김밥에 대한 설명을 보며 상훈은 왠지 어이가 없었다.
“고대인? 그러고 보니 이놈들이 지구의 인간들을 무슨 고대인 취급해놨군.”
이 말대로라면 상훈도 고대인에 해당할 것이다.
그거야 시스템 설정하는 녀석들 마음이니까 뭐라 할 건 없다.
상훈은 그 시스템을 날려버리면 그만일 뿐.
“근데 이건 왜 이렇게 싸지?”
컵라면과 생수는 무려 20루나씩 하는데 반면, 삼각김밥은 그 10분의 1에 해당했다. 그러자 이라프가 대답했다.
“컵라면과 생수는 시나리오 5 이후에 나타나는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는 특별한 메뉴들입니다만, 이건 그냥 평범한 음식이라서 그렇습니다.”
“배고플 때 먹는 평범한 음식이라는 거군.”
그래서 고대인의 음식이라고 설명해둔 모양이었다. 마기 저항과 같은 버프 효과가 없으니까.
그러나 상훈에게는 그 따위 버프보다 맛이 더 중요했다.
컵라면을 먹을 땐 삼각김밥도 하나 까서 먹어야 제맛인데.
“어쨌든 일단 하나 먹어볼까?”
상훈은 참치 삼각김밥 하나를 산 후 비닐을 벗겨 입에 한입 베어물었다.
오물! 짭짭!
“뭐 맛은 있네.”
밥과 김, 그리고 참치가 마요네즈의 고소한 맛과 어우러져 상당한 중독성이 있는 음식이었다.
꿀꺽!
그 모습을 본 이라프가 침을 삼켰다.
“너도 먹고 싶어?”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주신다면, 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표정을 보니 제발 달라는 듯 간절해보였다. 마계의 마물인 자이드클로프스가 삼각김밥을 먹겠다니!
“그럼 먹어라!”
상훈은 흔쾌히 하나 사서 건넸다. 그는 부하에게 2루나짜리 삼각김밥 하나 사주는 걸 주저할 만큼 구두쇠는 아니었다.
“로드! 감사합니다.”
이라프는 삼각김밥을 입에 물고 감동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앞으로도 편의점의 메뉴는 이런 식으로만 추가할 수 있는 거냐?”
“고대인의 음식 레시피는 마트나 상점 같은 곳이 있던 건물을 뒤지다보면 아주 희박한 확률로 얻을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는 삼각김밥뿐 아니라 라면도 종류별로 다양하다. 과자와 빵, 우유나 주스, 콜라를 비롯한 각종 음료도 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즉석요리들도 수두룩하고.
그런데 상훈의 편의점에는 컵라면과 생수 외에 삼각김밥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참치 삼각김밥만.
지구를 마음대로 장악한 후 인간들을 마구 죽인것도 모자라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컵라면과 생수만 먹게 해놓겠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제길! 또 열 받는군.”
단순히 먹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걸 불편하게 해놨다.
인간들을 실험실의 쥐처럼 가둬놓고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기다려라. 나중에 너희들에게 진정한 지옥을 보여줄테니까.”
물론 상훈이 말한 너희들은 켈라크스들이었다.
[파렉스에 의해 로덴 빌딩 8층이 점령되었습니다.]
[382루나를 얻었습니다.]
한편 그 사이 용족 전사 파렉스는 2층부터 8층까지 무서운 속도로 점령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파렉스가 점령할 때마다 보상 루나는 상훈에게 들어왔다.
“이라프 넌 1층과 지하를 점령하고 와.”
“예, 로드.”
이곳 로덴 빌딩의 1층에는 편의점뿐 아니라 커피숍과 호프집 등이 있고, 지하 1층과 2층에는 큼직한 바(Bar)와 주차장이 있었다.
그런 곳에는 리자드맨이 아닌 좀 더 강한 몬스터들이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파렉스나 이라프를 상대할 만한 존재들은 없었다.
그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적이 있다면 상훈이 이미 간파했을 것이다.
[파렉스에 의해 로덴 빌딩 9층이 점령되었습니다.]
[이라프에 의해 로덴 빌딩 1층이 점령되었습니다.]
[파렉스에 의해 로덴 빌딩 10층이 점령되었습니다.]
[이라프에 의해 로덴 빌딩 지하 1층이 점령되었습니다.]
[이라프에 의해 로덴 빌딩 지하 2층이 점령되었습니다.]
[로덴 빌딩이 당신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로덴 빌딩이 상훈의 소유가 되었다. 본래 지구에서 로덴 빌딩을 소유했던 사람으로서는 황당한 일이겠지만, 켈라크스 시스템 속에서는 이것이 룰이니까.
“부하들이 있으니 역시 편하군.”
앞으로도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부하로 만들 것이다. 그래야 켈라크스 시스템 속의 모든 걸 장악할 수 있을 테니까.
‘모조리 다 점령해주마.’
상훈이 싸늘히 웃었다. 그때는 켈라크스들이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럼 이 시스템이 너희들의 통제를 떠나게 되겠지.’
그때 용족 파레스가 뭔가를 잔뜩 안고 나타났다.
“로드! 임무를 마치고 왔습니다.”
“그것들은 뭐냐?”
“빌딩을 청소하던 중에 얻은 것들인데 혹시 필요하실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초보 모험가의 방패]
-등급 : 일반
-물리 방어 +10
[투박한 구리 반지]
-등급 : 일반
-마법 방어 +7
[견습 모험가의 한손 검]
-등급 : 희귀
-힘 +3, 민첩 +3
-레벨 제한 Lv10
대충 보니 이런 잡템들만 10여 개.
정말로 최하 중의 최하의 잡템!
그러나 아직 Lv15인 서린에게는 당장 필요한 장비일 것이다.
현재 그녀의 장비라고는 리자드맨의 단창 하나뿐이니까.
“수고했어. 일단 한쪽에 쌓아놔.”
“예, 로드.”
그때 이라프도 잡템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다 그는 용족 파렉스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허억! 다, 당신은?”
“네놈은!”
이라프는 마치 포식자를 만난 것처럼 두려워 떨었다.
용족들이 최상급 마물을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지만, 보는 즉시 갈기갈기 찢어버릴만큼 포악한 존재였으니까.
상훈이 픽 웃었다.
“겁주지 마라, 파렉스. 저 녀석도 이번에 새로 부하가 됐으니까.”
“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파렉스는 상훈이라면 자이드클로프스도 충분히 부하로 거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놀라지 않았다. 그는 험상궂은 눈빛으로 이라프를 노려봤다.
“너 이름이 뭐냐?”
“이라프입니다.”
“앞으로 잘해.”
“헤헤, 물론입지요.”
그렇게 둘의 서열이 알아서 결정되어 버리니 상훈이 굳이 정리해줄 필요는 없었다.
“파렉스! 넌 이라프와 함께 근처의 빌딩들을 계속 점령해라.”
“예, 로드.”
“이길 수 없는 강적을 만나면 무조건 도주해. 괜히 덤비다 죽는 멍청한 짓은 하지말고.”
“예! 염려마십시오.”
잡다한 건물들은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카르니아 성이 숨겨진 마트에서처럼 뭔가 특별한 비밀이 숨겨진 장소만 상훈이 직접 점령하면 될 것이다.
‘이제 서린을 여기로 데려오자.’
화장실 걱정 안해도 되고 시설도 좋은 편이라 서린이 무척 좋아할 것이다.
한편 그때.
서린은 깜빡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손님!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
서린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네?”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된다고요. 그만 나가주세요.”
서린의 앞에는 PS25가 적힌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당신은 누군데요?”
“아, 보면 몰라요? 여기 직원이잖아요. 영업에 방해되니까 얼른 나가주세요”
청년은 편의점 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린은 멍한 표정으로 바깥을 쳐다봤다.
‘뭐야? 저건?’
차원 균열의 여파에 의해 폐허로 변해 있었던 편의점 주변이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 자양동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건물만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환한 햇살이 내리비추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야?’
놀라운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편의점에는 다른 손님들도 있었다.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서 20대 여성 한 명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후루룩! 짭짭!
너무나 자연스러운 광경.
설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이 꿈이고 지금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손님! 내 말 안들려요? 그만 나가주세요. 잠은 집에 가서 자라고요.”
직원이 다시 소리쳤다.
“네, 죄송해요.”
서린은 탁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편의점 문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