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죽음의 암살자 (2)
서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죽음의 암살자는 절대 지금 시점에 나타날 수 없어요. 아까 미노타우루스도 그렇고. 대체 왜 미래가 이렇게 바뀐 거죠?”
“이제부터 그걸 설명해줄 테니 잘들어. 그전에 목이 마르니까.”
상훈은 매대에 가서 생수 두 병을 샀다. 버튼을 누르면 생수가 슥 하고 나타나는 식이라 편했다.
[생수 2병을 얻었습니다.]
[40루나가 지불되었습니다.]
[20루나를 얻었습니다.]
상훈이 편의점의 주인이다 보니 생수를 산 루나의 절반이 즉각 다시 들어왔다.
‘후후, 이건 뭐 실시간이네.’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지만 운영하는데 신경쓸 건 없을 것이다.
“자, 마시면서 들어.”
상훈은 생수 한 병을 서린에게 건내며 말했다.
“쉽게 말할게. 어차피 자세한 걸 말해봤자 넌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일단 그간 네가 경험했던 미래는 현실이 아닌 허상일 뿐이야. 모두 켈라크스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이지.”
“가상의 세계라고요? 제가 겪은 수십 번의 회귀도 다 허상이라고요?”
“하지만 켈라크스 시스템을 없애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일이 진짜 현실이 될 수도 있어. 난 그걸 막으려고 하고 있고. 그래서 켈라크스 놈들은 날 제거하려고 하는 거야.”
“······.”
서린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이 진짜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은 나도 많이 해봤죠. 그냥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망상이요.”
“망상이 아니야. 이제 그 꿈은 이루어질 거야. 내가 그렇게 할 테니까.”
그러자 서린은 목이 탔는지 생수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일단 아저씨의 말이 다 맞다고 쳐요. 하지만 그들이 아저씨를 죽이지 않고 날 노리는 이유는 뭔데요?”
“너도 봤지만 난 매우 강해서 그놈들이 날 죽이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수정해야 해. 무작정 여기로 들이닥쳤다간 차원력의 폭주로 시스템이 날아가버리거든.”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수정?”
“그게 바로 리셋이야. 튜토리얼이 끝나고 메인 시나리오가 막 시작되는 그 시점으로 모든 걸 되돌리는 시스템 리셋! 그게 바로 네가 그동안 겪은 회귀였어.”
서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요. 그것도 그렇다고 치죠. 근데 왜 날 죽이려고 하냐고요?”
“켈라크스들이 너의 몸에 리셋 버튼을 심어놨으니까.”
“네?”
“네가 죽는 순간 시스템이 리셋된다는 뜻이야. 그동안 켈라크스들은 필요할 때마다 널 죽여서 시스템을 리셋시켰어. 이번에도 널 죽이려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지.”
“······?”
어리둥절한 표정의 서린은 아직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쯧.’
상훈은 왠지 서린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켈라크스 시스템의 리셋 버튼이라는 것을!
‘괜찮을지 모르겠네.’
우려가 되면서도 사실을 말해준 건 언제까지 상훈이 서린의 옆에서 보디가드처럼 그녀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왜 안전지대에 있어야 하는지 그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어야 상훈이 안심하고 켈라크스들과 싸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보통의 소녀라면 이런 사실을 알게될 경우 충격을 받아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른다. 만약 서린이 비관하여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골치아파질 것이다.
“네가 감당하기 힘든 사실일지 모르지만, 지구를 구하는 일이니까 이를 악물고 받아들여라. 절대 비관하거나 해선 안 돼.”
그런데 서린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풋하고 웃더니 씩씩하게 말했다.
“황당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난 비관 같은 거 안해요.”
“정말 괜찮아?”
“괜찮을 리는 없죠. 기분은 좀 더러워요. 인간인 내가 시스템의 버튼이라니. 무슨 기계 부품도 아니고. 젠장!”
당연히 기분이 더러울 것이다. 그래도 저렇게 덤덤한 반응이라니.
수십 번의 죽음을 경험하며 정신력이 강해진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럼 넌 여기있어라. 난 나가서 청소 좀 하고 올 테니까.”
블러디 어새신인가 하는 녀석들은 물론 상훈에게는 가소로운 존재들이다. 그러나 서린을 데리고 나가 레벨을 올려주기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잠깐만요.”
상훈이 막 편의점의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서린이 불렀다. 상훈이 고개를 돌렸다.
“왜? 너도 나가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저놈들의 숫자가 많아서 내가 널 보호하려면 신경이 쓰이거든.”
“그게 아니고요. 컵라면 먹어도 돼요?”
“뭐?”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에 라면을 먹겠다니!
“뭘 그런걸 물어봐. 사먹으면 되잖아.”
“나 돈 없는데, 아 맞다. 참 나 돈 많구나.”
서린은 아까 미노타우루스를 처치하고 무려 2만 루나를 얻었던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와! 맛있겠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매대에서 컵라면 하나를 산 후 온수기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컵라면의 뚜껑을 열어 온수를 붓고는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상훈은 실소를 지었다.
‘걱정안해도 되겠어. 절대 비관자살 같은 건 할 녀석이 아니야.’
상훈이 볼 때 서린은 멘탈이 강한 정도가 아니라 4차원에 속해 있는 소녀였다.
“그럼 천천히 먹고 있어라.”
“다녀오세요.”
상훈은 편의점을 나섰다. 그러자 어둑한 건물 곳곳에서 보이던 핏빛의 그림자들이 상훈을 둘러쌌다.
스스스-
붉은 색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어새신들. 모두 24명이었는데 하나같이 강렬한 살기를 내뿜었다.
팟.
순간 상훈의 모습이 그 자리에 사라졌다. 어새신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돌연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촥! 촤악! 촤악-
곧바로 그들의 가슴이 쩍 갈라지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크으윽!”
“으아악!”
“크아아악!”
상훈을 포위했던 24명의 어새신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길바닥에 처박혔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 즉사한 것이다.
[당신은 지구 최초로 블러디 어새신을 처치했습니다.]
[당신은 지구 최초의 블러디 어새신 학살자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와 함께 루나가 대량으로 계속 들어왔지만, 상훈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멀리 7층 건물의 옥상을 노려봤다.
‘저쪽에서 뭔가가 날 지켜보고 있는데?’
상훈은 훌쩍 그곳으로 뛰어 올랐다.
“나와라.”
순간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흔들리더니 상훈의 앞쪽에 커다란 결계의 벽이 생겨났다.
츠으으으!
그 결계의 벽 건너편에 전신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정체불명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가 전상훈이로군.”
마치 쇳소리와 같이 거친 음성. 상훈은 싸늘히 웃었다.
“결계 뒤에 숨지 말고 왔으면 덤벼라.”
“나는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아르메스 님의 전언을 가져왔을 뿐이다.”
“아르메스?”
“그 분이 누군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럼 그 전언이 뭔지 말해봐.”
“네가 만일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협조한다면 켈라크스의 일원으로 받아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걸 들어주겠다! 이것이 바로 아르메스님의 전언이자 뜻이다.”
상훈은 차갑게 웃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고 했나?”
“그렇다, 인간.”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는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그림자가 조소를 흘렸다.
“건방진 놈! 한낱 버그 따위가 주제를 모르고 있구나.”
“주제를 모르는 건 너희들이지.”
상훈이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네놈이 누군지 모르지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실수야.”
“그게 무슨 뜻이냐?”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내 허락없이 못간다는 뜻이지.”
그 말과 함께 상훈은 초마검 젠카를 뽑아쥐고는 대뜸 결계의 벽을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