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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죽음의 암살자 (1) (9/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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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암살자 (1)

미지의 상공에 떠 있는 초거대 구형 비행체의 내부.

수십여 명의 불가사의한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하나의 화면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화면은 비행체 내부에 홀로그램처럼 생겨난 무수한 화면들 중 하나를 확대한 것으로, 한 장소를 비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간판에는 상훈25라고 적혀 있었는데, 투명한 통유리 안으로 한 명의 청년과 앳된 얼굴의 소녀가 보였다.

“설마 저 따위 인간 놈에게 루터스가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인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물었다. 그러자 금발의 긴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대답했다.

“지구 데이터를 검색해 살펴봤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었어요.”

“이상한 점이라?”

“루터스를 죽인 인간은 전상훈이라는 녀석으로 본래는 22살의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죠.”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아르메스?”

“놈은 켈라크스 시스템이 작동하기 전에 흔적을 감췄다가 튜토리얼이 끝난 후에 갑자기 등장했어요. 그것도 47번째 리셋이 시작되는 시점에요.”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면?”

그러자 아르메스가 두 눈을 빛냈다.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역시나 그 중 한 가지가 가장 유력해요.”

“그게 뭔지 말해봐라.”

“로드께서도 짐작하시듯 버그예요.”

남자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놈은 비록 최하급 수준이지만 차원력까지 다룰 수 있었다. 그런 놈을 단순히 버그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가증스러운 식민지 저항군이 주축이 된 반(反) 켈라크스 연합이라면 충분히 그런 수준의 버그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우리가 켈라크스 시스템으로 지구를 침공한 초기부터 그놈들이 차원력을 이용해 수많은 버그를 생성시켰으니까요.”

“그 버그들은 대부분 제거한 걸로 아는데?”

“몇 개를 빼고는 다 제거했고, 남아있는 그 몇 개 또한 47번째 리셋의 수정된 시나리오를 통해 모두 제거될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뜻밖의 새로운 버그가 생겨난 것이죠.”

“저항군 놈들이 그 녀석을 데려다 켈라크스 시스템을 파괴할 비밀 버그로 만들어 투입시켰단 말이군.”

“틀림없어요.”

“그럼 48번째 리셋 때 루터스를 보낸 건 너무 안이한 대처였다.”

그러자 아르메스가 남자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놈이 자이드클로프스를 제거할 때 보여줬던 전투력은 하급 버그 헌터 정도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할 정도라 차원력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루터스를 선택했는데 저의 판단 착오였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대책은?”

“노련한 상급 버그 헌터들을 보내 놈을 소멸시킬 완벽한 시나리오를 짜놨지만, 당장은 시스템 리셋이 쉽지 않아요. 하필이면 유서린을 그놈이 보호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남자가 안색을 굳혔다.

“아무리 저항군 놈들의 방해가 있다지만 우린 그간 리셋을 무려 48번이나 하며 차원력을 막대하게 소모했다. 그런데도 아직 임무를 달성하지 못했지. 이러다 자칫 상부의 문책을 받게 되면 나는 물론이고 아르메스 너도 무사하지 못한다.”

“저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로드.”

“최대한 빨리 리셋을 시켜라. 어차피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저들이 안전지대에서만 웅크리고 있을 순 없을 테니까. 시스템의 차원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 한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네, 로드!”

아르메스의 두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한편 그때 서린은 편의점 상훈25의 내부를 둘러보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해. 그 가디언은 인간이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인데 어떻게 이겼을까?’

서린의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디언을 이겼다고 해도 지금은 회귀한 상태잖아.’

설령 상훈이 대단한 전투력의 소유자라서 가디언을 처치했다고 해도 지금 상황은 말이 안되었다.

시간이 회귀했으니 이 편의점은 본래대로 켈라크스의 소유로 있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지 말고 와서 앉아. 여긴 안전지대니까 몬스터가 나타날 걱정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상훈이 편의점의 탁자에 앉은 채로 손을 흔들었다. 서린은 불안한 표정으로 상훈을 노려봤다.

“솔직히 말해봐요. 대체 아저씨의 정체는 뭐죠?”

“잘 나가다 왜 또 이래?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거야?”

“어떻게 믿어요?”

“이거 너무하잖아. 미노타우루스에게 죽을 것을 지켜줘, 레벨업도 시켜줘, 심지어 안전지대인 편의점에도 데려와줘. 대체 뭐가 불만인 거지?”

서린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상훈이 그녀를 챙겨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불만은 없어요. 도와준 건 정말 고맙고요.”

“그럼 고마워하면 되지 무슨 의심이 그리 많아?”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가디언은 죽일 수 있다 쳐도 우린 회귀했는데 어째서 이곳이 아저씨의 소유인지 설명해봐요.”

“그건 설명해줘도 네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글쎄요. 아마도 그건 아저씨가 켈라크스의 하수인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뭐 좋아! 그럼 나도 할 말이 있어. 너야말로 왜 날 속인 거야?”

“내가 뭘 속여요?”

“나이.”

“갑자기 나이가 왜 나와요?”

“너 진짜 스무살 맞아?”

그러자 서린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는데요. 왜요?”

“유서린. 18세. 여자. 레벨 15.”

“그, 그걸 어떻게?”

서린은 움찔했다. 상훈이 픽 웃었다.

“네가 편의점에 들어오는 순간 보였거든.”

편의점 주인인 상훈은 손님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간략하게 레벨과 나이, 성별과 이름 정도지만 그것을 통해 유사시 불량이용자로 등록해 편의점 이용을 제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쩐지 딱 봐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스무 살이라고 해서 이상하다 생각했지.”

“그냥 두살 정도는 좀 넘어가줘요.”

“왜 스무 살이라고 속인거야?”

“사람들이 내가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애 취급을 하거든요. 고작 두 살 차이로.”

그런 이유였나. 상훈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너 어린애 맞아.”

“뭐가 어린애 같은데요?”

“모든 게 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일단 나보고 아저씨라고 하는 것부터 고치자.”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오빠라고 해.”

“생각해볼게요.”

“좋아. 그건 그렇고.”

상훈의 표정이 돌연 진지하게 변했다. 방금 전에는 서린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농담을 좀 한 것 뿐이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넌 당분간 이곳에서 절대 나가면 안 돼.”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안은 안전지대니까. 여기가 네 집이라 생각하고 지내라고.”

“내가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요?”

“나가는 순간 넌 죽을 테니까.”

상훈은 손가락을 들어 편의점 바깥을 가리켰다. 건물들 사이 으슥한 음영이 있는 곳에 핏빛 그림자들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서린이 흠칫 놀랐다.

“블러디 어새신이에요. 시나리오 4가 넘어야 등장하는 죽음의 암살자들. 저들이 왜 여기에?”

“모르겠어? 널 노리고 있는 거야. 네가 나가는 순간 죽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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