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1) (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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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최초의 가디언 학살자 (1)

“각성에 회귀까지! 너 아주 대단하구나!”

단순한 각성자였다면 그리 대단할 건 없다.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능력을 각성했다 해도 라트로들 앞에서는 가소로운 수준일 테니까.

그러나 회귀까지 한 각성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후 펼쳐질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그 미래는 본래 지구가 아닌 켈라크스 시스템에서 펼쳐질 시나리오들이겠지만.

“정말 반가워. 여기서 설마 회귀자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빈말이 아니다. 상훈은 정말로 이 소녀가 반가웠다. 소녀로부터 앞으로 어떤 시나리오들이 펼쳐질지 듣게 된다면 상훈이 켈라크스들을 상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보다 대체 당신은 누구죠?”

회귀자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상황은 자신이 알고 있던 기억과 다른 현실이 펼쳐질 때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 회귀를 한 것 자체가 결국은 각종 사건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나중에는 본래와 다른 현실이 펼쳐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 해도 회귀 초반에는 거의 동일한 상황이 펼쳐져야 한다.

소녀가 이토록 경악해하는 걸 보면 지금이 그녀가 막 회귀한 시점과 가까울 가능성이 높고, 그녀의 기억에 상훈은 지금의 이 장소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은 전상훈. 나이는 스물 두살. 보다시피 성별은 남자야.”

“그런 건 궁금하지 않고요.”

“어쨌든 내가 이름을 밝혔으니 너도 최소한의 소개는 하는 게 어때?”

그러자 소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유서린. 스무 살. 여자. 됐죠?”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성인이었네.”

“알았으면 이제 반말 좀 그만하는 게 어때요? 우리가 언제봤다고 계속 반말이죠?”

상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습관이 참 무섭구나.’

상훈은 이계에서 온갖 기괴한 존재들과 어울리다 보니 반말이 기본이 되고 말았다. 초월자가 된 이후에는 수만 년도 넘게 산 초용족(超龍族)들과도 나이를 초월해 친구로 지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이계가 아니다. 비록 켈라크스들에 의해 이상하게 변했지만.

“이제와서 존댓말을 하기도 그렇잖아. 그리고 우린 두 살 차이니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 아저씨가 뭐야? 아저씨가.”

“됐거든요. 난 모르는 사람에게 오빠라고 안해요.”

“그럼 편한대로 불러.”

“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죠?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어요?”

“딱히 정체랄 것은 없어. 나도 너랑 똑같은 지구의 인간이니까. 무엇보다 확실한건 내가 너의 적이 아니라는 거지.”

“그걸 어떻게 믿어요?”

“억지로 믿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저절로 믿게 될 거야.”

순간 서린의 눈빛이 날카롭게 상훈을 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요. 설마 그들의 하수인? 하긴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나타났을리 없겠죠.”

“그들이라면? 혹시 켈라크스를 말하는 거야?”

“그럼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난 그놈들을 곧 쓸어버릴 생각이거든.”

“지금 뭐라고 했죠? 켈라크스를 쓸어버린다고요?”

“응. 그래서 회귀자인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주면 내가 놈들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것만으로도 넌 지구를 구한 영웅이 되는 거지.”

그러자 서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흥! 꿈 깨시지, 켈라크스의 하수인! 내가 속을 줄 알고?”

서린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린 빌라 옆 다세대 주택 건물을 향해 뛰어들어가버렸다.

‘날 경계하고 있구나.’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귀 전에는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거는데 뭔가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급할 건 없으니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상훈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보다 새로운 건물 안에 뛰어든 걸 보니 리자드맨들을 처치해서 레벨을 올릴 생각인가?’

하긴 상훈과 달리 서린은 게임처럼 몬스터를 처치해야 더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이 켈라크스 시스템의 방식이니까. 그녀는 내일 시작될 시나리오 2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며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휙!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건물에서 나온 서린의 눈빛은 좀전보다 강렬해져 있었다. 그 사이 다세대 주택 각 호에 도사리고 있던 리자드맨들을 해치우고 레벨이 오른 것이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상훈은 최대한 서린의 경계심을 풀어주기로 했다.

“됐어요.”

그러나 서린은 상훈의 말을 무시한 채 옆의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아앗!”

그러다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건물 안에서 뭔가 못볼 것이라도 본 듯 낭패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이야?”

“깜빡했어요. 저긴 들어가면 안 되는 건물인데.”

상훈이 보니 유명 편의점 체인 PS25가 있는 건물이었다. 1층 편의점의 벽은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알 수 없는 빛으로 인해 시야가 차단되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 안에 뭐라도 있어?”

“정말 몰라서 물어요?”

“당연히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다. 그 안에 무서운 괴물이라도 있나 보지?”

“궁금하면 들어가보든가요.”

“맞아. 그럼 되겠군.”

상훈은 주저없이 편의점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러자 서린이 깜짝 놀라며 만류했다.

“잠깐! 미쳤어요? 거기 들어가면 죽어요!”

그러나 이미 상훈은 건물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서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계속 말을 시키니 홧김에 그렇게 대꾸했는데 설마 진짜 들어갈 줄이야.

‘어쩌지? 지금쯤이면 가디언이 나왔을 텐데.’

가디언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상훈은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래. 신경쓸 것 없잖아. 어차피 그는 켈라크스의 하수인일 거야. 갑자기 없던 사람이 나타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명 그들이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

서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각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또 죽지 않으려면 어서 레벨을 올려야 해.’

그러던 그녀는 흠칫 놀랐다. 갑자기 일단의 몬스터가 그녀의 앞에 출몰한 것이다.

“크워어어어어!”

10여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이끌고 나타난 거대한 소머리 형상의 몬스터.

‘미······미노타우루스!’

서린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말도 안 돼!’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미노타우루스는 최소한 시나리오 3이 넘어가야 등장하는 몬스터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다급히 뒷걸음질 쳤다. 지금 상태에서 리자드맨들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지만 초대형 몬스터인 미노타우루스와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피해야 해!’

그러나 리자드맨들에 의해 포위된 상태라 도주도 쉽지 않았다.

“쿠워어어어어!”

미노타우루스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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