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후! 드디어 지구인가?”
대한민국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작은 건물의 옥상.
상훈은 사방을 훑어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좀 푹 쉴 수 있겠군. 더 이상 그 징그러운 녀석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그는 이세계에서 ‘라트로’라 불리는 차원계의 사악한 악당들을 해치우느라 과도하게 힘을 쓴 상태에서 무리하게 지구로 귀환하느라 또다시 상당한 힘을 소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는 온갖 차원계의 괴물들이 날뛰는 이세계가 아니라 지구다. 초월자로서의 힘이 대거 소진되었지만 아주 안전한 장소인 것이다.
“힘을 모두 회복할 때까지 여기서 푹 쉬자.”
초월의 힘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된다.
그 사이 그는 지구에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즐길 생각이었다.
“후우!”
상훈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놈의 미세먼지. 역시나 서울의 공기는 정말 별로야. 그래도 대체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움이냐.”
물론 지구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지구가 결코 평화롭고 안락하다고만 말할 수 없겠지만, 온갖 사악한 악마와 괴물들이 날뛰는 이세계에 비하면 그야말로 낙원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정말 돌아오고 싶었다. 지구로!”
그러나 그를 소환해 각성하게 만들어준 이세계의 위기를 모른척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곳 세계를 공격해온 라트로들을 모두 쓸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지구로의 귀환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 아래로 가면 부모님이 계시겠지.”
부모님을 떠올리자 상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보고 싶은 분들이었던가?
그 뿐이 아니라 상훈에게는 형도 있고 여동생도 있었다.
아득한 세월 동안 그리워했던 가족들.
그들을 만날 생각에 상훈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해.”
상훈은 2018년 4월 1일 새벽 1시에 이곳 옥상에서 바람을 쐬다가 홀연히 이세계로 소환되어 각성을 했다.
당시 나이 22세.
그리고 아득한 세월을 살며 초월자가 되었지만, 다시 그 시점으로 귀환했다.
즉, 지금은 2018년 4월 1일 새벽 1시.
상훈이 이세계로 소환되었던 딱 그 시점일 것이다. 당연히 가족들은 상훈이 아득한 세월을 다른 차원에서 살다온 걸 전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모두들 자고 있을 텐데 갑자기 잠을 깨워 끌어안고 울거나 하면 날 미친놈 취급할 거야.”
그래도 상훈은 설레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집은 옥상 바로 아래에 위치한 401호.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뭐야? 왜 문이 열려있지?’
상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벽 1시에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열어놓은 건가?’
상훈은 이계로 소환되기 직전 옥상으로 바람을 쐬러 갔었다. 이곳 지구의 시간대에서는 바로 10분 정도 전의 일이지만, 상훈으로서는 그 사이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온 터라 그때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긴. 그것 말고는 문이 열려 있을 이유가 없겠지.’
상훈은 현관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런데.
“이, 이런!”
그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시신들.
그들은 다름아닌 상훈의 가족들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여동생까지!
모두 다 죽어 있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누가?”
그 순간 상훈의 앞에 그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
키는 대충 2m.
칙칙한 남색 피부에 시뻘건 두 눈.
입가로 뱀류 특유의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리자드맨?’
틀림없었다. 도마뱀 머리의 아인종 몬스터인 리자드맨은 아주 지능적이면서도 교활하고 그러면서도 힘이 무척 세며 잔혹했다.
‘대체 저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여긴 대한민국의 서울이다. 이 리자드맨 녀석이 나타날만한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저 놈에게 가족들이 죽었다.
“너 따위가 감히!”
상훈의 부릅뜬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난 기운에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흔들렸다.
“끄, 끄긱!”
순간 리자드맨이 상훈의 기세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상훈이 현관문 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리자드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훈의 목을 노려 시퍼런 날이 번쩍이는 단창을 찔러왔다.
슉!
상훈은 피하지도 않았다. 날아오는 창날을 그대로 움켜쥔 후 창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창으로 리자드맨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직!
창대가 리자드맨의 머리를 가격하자 뇌수가 터져버렸다. 리자드맨은 그대로 즉사했다.
창날을 쥐었는데도 상훈의 손은 멀쩡했다.
아무리 힘이 소진된 상태지만 초월자인 그에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훈은 창을 집어던진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왜 이곳에 리자드맨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크게 잘 못 되었다.
이계로 소환되었던 당시의 바로 그 시점으로 돌아온 것인데, 그때와 다른 현실이 펼쳐져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더구나 리자드맨이라니!?
이세계라면 모를까 지구에 리자드맨이 웬말인가?
화아악!
그때 리자드맨의 사체가 붉은 빛에 휩싸이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방으로 튀었던 핏자국까지 완벽하게.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시신들도 붉은 빛에 휩싸여 없어져버렸다.
[리자드맨을 처치한 당신에게 10루나가 주어집니다.]
[집안에 침입한 괴수를 처치한 당신은 집의 주인될 자격이 있습니다.]
[광진구 자양동 XXX번지 그린빌라 401호는 이제부터 당신의 소유입니다.]
“이건 또 무슨?”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구인들은 들어라. 우리의 이름은 켈라크스! 우리는 그대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우주에서 왔다.
또다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대한 음성!
방금 전에는 그에게만 들리는 음성이었다면, 지금 이건 방대한 영역에 전해지는 듯 우레처럼 울려퍼졌다.
--이제 너희 인간들은 켈라크스 휘하 지구 식민지의 노예일 뿐이다. 지구의 모든 국가는 사라졌고, 군대는 무력화되었으며, 너희의 모든 소유권과 재산도 사라졌다.
--지구의 시스템은 우리의 방식대로 바뀌었다. 이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는 자는 살고 적응 못하는 자는 죽는다!
처음 듣는 언어지만 특별한 통역의 능력이 음성 자체에 깃들어 있었다.
“설마 라트로?”
라트로는 차원계의 악당들이다.
우주의 온갖 성계를 누비며 수많은 행성들을 식민지로 삼는 녀석들도 있고, 차원 포탈로 온갖 이세계까지 다니며 무자비한 약탈을 일삼는 놈들도 있다.
“이놈들이 설마 지구에까지 쳐들어 온 거냐?”
상훈이 본신의 힘을 모두 회복한 상태였다면 지금 즉시 저 라트로 놈들을 박살내버렸을 것이다.
이계에서 그의 손에 사라진 라트로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하필이면 힘이 대거 소진된 상태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의 눈빛이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체 어디에서 온 놈들이지?’
지구와 비할 수 없는 초고도 문명에서 만들어진 초월적 시스템이 지구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를 괴상한 시스템으로 장악한 걸 보니 보통 녀석들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상관없다. 모조리 쓸어버린다!’
상훈의 두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지금 누구를 건드렸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