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나의 무기
마지막 미션의 관건은 바로 평소 관찰력이었다.
갑작스레 공개된 미션이었기에 대처할 시간도, 따로 준비할 시간도 넉넉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으로 과제에 임해야 한다는 의미.
김채훈 대통령의 생일상을 차리라는 과제의 의미는 평소 대통령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의 차이 정도.
맛이나 경력으로는 어딜 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 역시 회귀 전 경력으로 봐선 이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승재 요리사는 어떤 음식으로 생일상을 채울 생각이신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미역국과 생선구이, 불고기, 각종 나물, 김치 등으로 채울 생각입니다.”
“특별한 메뉴는 없네요?”
“네 이번 과제의 요점은 독특하고 특별한 메뉴를 만들어서 주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님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승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음식을 만드는지가 중요한 미션.
나 역시 미역국과 불고기, 생선구이, 불고기, 나물, 김치 그리고 몇 가지 밑반찬을 준비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음식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 기억을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김채훈 대통령의 고향은 전라도 무안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며, 진정한 서민 대통령이 탄생했다며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어릴 적 해루질을 즐기던 이 소년은 50년 후 대한민국의 리더가 됩니다.]
김채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자주 보이던 말이었다.
서해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태어난 김채훈 대통령은 자연스럽게 해산물과 친해졌을 거라 예상해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었고.
생일이면 자연스럽게 조갯살이나 홍합을 넣은 미역국을 주로 먹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대부분 요리사들이 조갯살을 이용하거나 홍합 또는 도미살을 넣은 미역국을 끓이는데 특이하게 소고기미역국을 끓이시네요? 김채훈 대통령의 고향이 어딘지는 알고 계신가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장 자신 있는 미역국으로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어릴 적 기억을 잊어버릴 만큼 맛있는 소고기미역국을 맛본다면 분명 생각이 달라지실 거라 믿습니다.”
소고기로 미역국을 끓이는 지원자가 되레 독특하게 느껴질 정도.
그런 지원자들 사이에서 나의 미역국은 더욱 눈에 띄었다.
“장덕수 씨는 무슨 미역국을 끓이시는 거죠?”
“표고버섯 미역국입니다.
“버섯이요?”
“네 표고버섯으로 끓인 미역국입니다.”
내가 선택한 재료는 소고기도, 생선도, 조갯살도 아니었다.
쫄깃하면서도 향이 풍부한 표고버섯.
씹히는 맛이 제대로 느껴지도록 큼직하게 썰어 넣어 만든 버섯 미역국이었다.
“뜬금없이 웬 표고버섯 미역국인가요? 버섯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요?”
특별한 이유는 당연히 있다.
아직은 나만 알 수 있는 이유.
김채훈 대통령이 퇴임 후 밝혀지는 재밌으면서도 감동적인 사실 하나가 있었다.
김채훈 대통령은 홀어머니를 오랫동안 모신 효자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아들의 생일상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청와대가 아닌 자신의 집으로 불러 저녁을 먹였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이 사실이 알려진 건 김채훈 대통령이 퇴임을 하고 난 후였다. 모친상을 당하고 나서 촬영한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저희 어머님은 평생 동안 제 식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셨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모자지간의 관계가 가까워 되레 욕을 먹기도 했었는데, 김채훈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전이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생선이나 해산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그러셨구요. 그래서 제 생일상엔 항상 조갯살이나 새우살이 들어간 미역국이 올라왔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김채훈 대통령은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적엔 그냥 주는 대로 먹었지만 나이가 들며 해산물 요리를 거의 즐기지 않았다. 고기도 닭고기 외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국회 의원이 되고서도 제 생일상만은 반드시 당신 손으로 챙기시겠다는 어머니셨습니다. 며칠 전부터 생일상을 준비하시며 즐거워하는 그런 어머니께 그 음식들이 차마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릴 적엔 그냥 모르고 먹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힘들게 만든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 말없이 넘어갔다.
게다가 반찬 투정을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삶도 아니었다. 국회 의원이 된 후에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버렸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나서야 말할 수 있겠네요. 제 입에 딱 맞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저에겐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이제는 푹 쉬세요.]
카메라 앞에선 농담 섞인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을 했지만 김채훈 대통령은 모친상을 당한 후 한동안 아무런 사람과도 만나지 않았다.
이제는 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입맛에도 맞지 않았던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주민들에게 선물받은 자연산 송이와 표고버섯이 들어간 미역국을 먹으며 행복한 생일을 보내는 장면이 널리 알려졌다.
“김채훈 대통령께서 버섯을 좋아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향이 풍부하고, 식감이 좋은 표고버섯으로 미역국을 끓어 봤습니다.”
“음….”
심사 위원들을 표정은 ‘제법인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청와대 요리사들은 그 다큐멘터리가 아니어도 김채훈 대통령의 식성을 제대로 알고 있었으니까.
버섯 미역국이 대통령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5분 후 요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미역국과 불고기, 생선구이, 나물, 그리고 김치까지.
다들 각자 방식으로 생일상을 만들었지만 큰 차이는 없는 구성이었다.
실력만으로 제대로 붙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모든 음식을 현장에서 만들었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김치.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김치만큼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와도 된다고 미리 통보를 받았었다.
하지만 나는 김치도 여기에 와서 만들었다.
* * *
김채훈 대통령 파나르 방문 당시.
조근배 요리사는 설야멱의 양념을 만들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 주고 있었다.
“셰프님. 고기를 지금쯤 재워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 참기름과 마늘, 생강, 청주를 섞어서 고기에 살짝 발라만 둬. 그리고 1인분은 따로 빼서 생강만 빼고 재워 둬.”
“대통령님 고기 말씀이신 거죠?”
조근배 요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님께서는 생강 향보다 고기 잡내가 조금 나는 게 낫다고 하실 정도니깐 생강 향은 조금도 묻어나지 않도록 조심해.”
“네 알겠습니다.”
나 역시 생강 향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고기의 잡내를 잡아 주는 데는 탁월하지만 특유의 향이 거북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생강을 씹으면 매운맛 때문에 혀가 얼얼해지는 느낌이 싫어 생강을 좋아하진 않는다.
김채훈 대통령 역시 고기 잡내가 낫다고 할 정도로 생강을 싫어했다.
“그리고 아까 헹궈 놓은 배추 확인해 봐 봐.”
“그건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럼 장덕수 씨가 확인 좀 해 주세요. 지금쯤 버무려야 할 것 같은데.”
그땐 숙성된 묵은지 특유의 향이 파나르 대통령에게 낯설까 봐 겉절이로 준비한 줄 알았다.
한국인들이야 잘 익은 묵은지가 입맛에 딱이지만 외국인들에겐 너무 시고, 짜다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빈 그릇이 나온 후에 알 수 있었다.
김채훈 대통령의 김치 그릇만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파나르 측 사람들도 겉절이가 묵은지보단 먹기 쉬웠지만 전부 먹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 * *
대통령을 만났던 기억을 되짚다 보니 그땐 그냥 지나쳤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이것들을 오늘 생일상에 전부 활용하면 김채훈 대통령이 만족할 만한 생일상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란 자신감이 솟아나고 있었다.
“자 그럼 지원자 전부 칼에서 손을 떼 주세요.”
심사 위원들의 안내에 따라 지원자들은 전부 조리대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났다.
그리고 경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찰칵찰칵-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김채훈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입던 정장이 아니라 꽤나 편해 보이는 복장이었다.
덕분에 나를 비롯한 지원자들의 긴장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김채훈 대통령은 단상에 오르지도 않고 마이크를 집었다.
“청와대 요리사를 이렇게 공개적인 경쟁을 통해서 뽑는다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제야 시행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대통령의 첫마디는 인사가 아닌 사과였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첫 공개 채용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정확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저는 물론이고, 심사 위원들은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짧은 인사를 끝낸 김채훈 대통령은 심사 위원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음식이 식기 전 지원자들의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음… 불고기인가요?”
“네 참숯 향을 입힌 언양식 불고기입니다. 간장, 마늘, 생강, 배 등을 직접 갈아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불고기를 씹으며 김채훈 대통령의 얼굴이 미묘하게 찡그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생강 조각을 씹어서겠지.
불고기 양념에서 생강을 뺄 순 없었을 테니까.
불고기 대신 갈비찜을 준비한 지원자도 있었지만 어김없이 생강 향을 알아차리는 김채훈 대통령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 나이에 무슨 편식이냐며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생강을 좋아하지 않는단 사실도 조근배 요리사가 오랫동안 지켜보며 감으로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오랜만이네 장덕수 셰프.”
“잘 지내셨습니까, 대통령님.”
“덕분에요. 김용수 대사님은 잘 계십니까?”
“네 아마 제가 있을 때보다 더 잘 지내고 계실 겁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기에 최대한 말을 줄였다.
김채훈 대통령 역시 곧바로 음식에만 집중했다.
“이 미역국엔 버섯만 들어간 건가요?”
“네 맞습니다.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내고, 그걸 그대로 건더기로 활용했습니다.”
“흥미롭네요.”
국물보다 미역과 버섯이 많은 버섯 미역국.
김채훈 대통령은 한입 가득 미역국을 삼켰다.
“이 불고기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소고기가 아니죠?”
“네 닭고기를 얇게 저며서 양념해 구운 닭불고기입니다.”
“닭불고기요?”
퇴임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김채훈 대통령의 식성에 대해 100% 아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어머니까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그나마 곁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조근배 요리사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속마음을 들어 본 적 있는 내가 김채훈 대통령의 식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뻔한 소불고기보다 닭불고기를 한번 맛보시라고 준비해 봤습니다.”
김채훈 대통령은 아무런 말 없이, 표정의 변화 없이 닭불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한참 동안 고기를 씹었다.
아무런 표정의 찡그림 없이.
아예 생강을 제외했고, 마늘과 파, 후추 등으로만 잡내를 제거했다. 아주 약간의 닭 냄새가 남아 있을진 몰라도 그 냄새가 김채훈 대통령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진 않았다.
“맛있네요.”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김채훈 대통령에게 내 음식들이 가장 만족스러웠다는 것을.
승재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김채훈 대통령의 식성은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나는 회귀라는 행운을 얻은 사람이니까.
“지원자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통령님과 심사 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시간이 꽤 소요될 예정이니 근처에서 편안히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