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사관의 천재 요리사 되다-199화 (200/202)

199. 젊은 요리사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료를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과제는 국시.

비록 맛은 없을지 몰라도 그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었다.

원래 국시는 아무런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조미료와 간장, 약간의 설탕과 마늘.

당시 귀했던 고기나 멸치를 이용해 육수를 낼 수 없으니 고기 맛이 나는 조미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장덕수 씨. 이 요리에 대한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심사 위원들은 덩그러니 놓인 국수 한 그릇에도 흥미를 보였다. 내가 선택한 재료도 그렇고, 많은 요리사들이 반찬이라도 가짓수를 채워 상을 차렸는데 난 심사 위원 수대로 맞춘 국수 그릇이 전부였으니까.

“이 음식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입니다. 그들은 당장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상황에서도 한국 문화를 잃지 않고 보전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식을 기반으로 한 고려인들의 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발레라에게 들었던 내용을 기억해 내 국시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국시에 들어간 재료에 대해서는 심사 위원들도 이해가 쉽지 않은 모양.

“고려인들의 국시라는 음식을 어떻게 재해석한 건가요?”

“요리사로서 보기에 고려인들의 요리는 솔직히 부족했습니다. 재료가 없고, 구하기 쉬운 것들도 만들어야 한다는 당시의 상황은 이해하지만 좀 더 좋은 선택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면요?”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땅 한가운데 또는 살인적인 추위의 러시아 한복판이었다. 바다와는 거리가 멀었고, 고기는 직접 사냥을 하지 않는 한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육수를 내어서 만드는 국수는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결국 선택한 것은 고기 맛이 나는 이 조미료였고, 이 맛이 굳어져 지금의 국시가 된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민물새우를 이용해서 육수를 내었다면 좀 더 괜찮은 국시가 탄생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민물새우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일하던 파나르와 다른 중앙아시아에선 큰 호수나 강이 많아 민물새우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 눈으로도 확인했고, 고려인분들에게도 여쭤봤었습니다.”

카차이 축제 때 사용한 민물새우의 물량은 부족하지 않았다. 달큼하고 고소해 맛도 좋았고, 양동이 하나만 있어도 육수를 낼 수 있을 만큼은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발레라의 식당에 모인 고려인들에게도 어릴 적 이 민물새우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많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다면 당시에도 근처 강이나 호수에서 민물새우를 건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단 의미.

“그때 요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많았다면 민물새우를 이용해 육수를 만드는 걸 시도해 봤을 겁니다.”

“음… 역시 민물새우라면 소량으로도 깊은 감칠맛을 낼 수 있으니 적당한 재료가 맞는 것 같네요.”

“맞습니다. 저는 당시에 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한국 음식을 유지했을까라는 생각으로 국시를 재해석했습니다.”

후루룹.

설명을 끝으로 심사 위원들이 국시의 국물부터 맛을 보았다. 예상대로 새우 특유의 감칠맛과 진한 향 덕분에 훨씬 수준 높은 국시였다.

그렇지만 국시의 끝맛엔 요리사로서 거슬릴 만한 맛이 느껴졌다. 심사 위원들 역시 그것을 느끼고 의아해했다.

“근데 이 민물새우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낸 것 같은데 굳이 왜 조미료를 첨가하셨나요? 맛에 자신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심사 위원들의 말대로 맛에 자신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내가 굳이 조미료를 넣은 이유는 이 음식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활용되길 바라서이다.

“활용되다뇨?”

“기회가 된다면 고려인 식당에 이 레시피를 알려 주고 싶습니다. 좀 더 나은 방식이 있으니 활용해 보라구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 조미료를 넣은 레시피를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나요?”

심사 위원의 질문에 발레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조미료의 맛이 우리들에겐 추억의 맛이고, 집밥의 향기라고.

“지금 해외나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은 대개 3세 또는 4세들입니다. 그들은 이 조미료 맛이 가득한 국시를 엄마의 요리, 고향의 맛이라 기억하고 있습니다.”

“…….”

“아무리 그 요리법이 잘못되었다곤 하나 그것도 그들의 역사이고, 추억입니다. 요리사라고 해서 함부로 식문화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내 레시피가 더 입맛에 맞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난 내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고려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고, 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선에서 약간의 아이디어를 가미해 국시를 재해석한 것이었다.

“음… 중앙아시아에 고려인 장관이 탄생했단 얘기는 들어 본 적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안 잡혔는지만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청와대에서 고려인들과의 만남이 성사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장관님과 손님들에게 이런 음식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네요. 잘 먹었습니다.”

심사 위원의 마지막 말은 내 긴장을 단번에 풀어 주는 말이었다. 진짜 그런 고려인 만찬이 잡힌다면 누구보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좀 더 나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

이 다짐이 현실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럼 곧바로 다음 과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약식 동원을 주제로 한 음식을 만들어 주세요.”

음식과 약의 기반이 같다.

한국이나 동양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음식으로 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고, 먹는 걸 조심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국에선 약식 동원이란 말로 정의되어 있지만 해외에서도 비슷한 이론은 알려져 있다. 그걸 특정한 단어로 표현하지 않을 뿐.

파나르에서도 건강식이나 보양식, 아플 때 먹는 음식 등 상황에 따라 음식을 먹는 가이드가 정해져 있었다.

파나르의 산에서 천연수를 직접 길어 담근 쿠므스.

4시간 동안 고기를 푹 고아서 만든 비쉬파르막.

기름진 음식으로 몸의 열을 높인 뒤 나쁜 지방을 없애 주는 차 문화까지.

약식 동원이라 부를 만한 음식들은 충분히 있었다.

“장덕수 셰프가 만든 음식은… 이름이 뭔가요?”

“여기에 있는 순서대로 음식을 드시면 됩니다.”

테이블 위에 여러 가지 음식을 올려 둔 뒤 심사 위원들에게 차례대로 맛봐 달라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설명이 끝났음에도 심사 위원들은 섣불리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이거 한… 국 음식이 아니죠?”

“네 아닙니다. 이 음식들은 제가 3년간 근무했던 파나르의 음식들로 구성했습니다.”

“어… 음… 왜요?”

파나르 음식으로 구성했다는 말에 심사 위원들의 입에선 절로 왜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그 물음에 나도 똑같이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요? 한국 음식이 아니면 안 되나요?”

“네?”

심사 위원들은 자기들끼리 잠시 대화를 나누고, 주제가 적힌 문제지를 읽어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안 될 건 없지만 장덕수 씨 빼곤 전부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요.”

약식 동원을 기반으로 한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들라고 했지 한식을 만들라고 한 건 아니었다.

약이 되는 음식은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대통령님 정도라면 여태 질릴 정도로 훌륭한 한식을 드셨을 텐데 가끔은 특식을 드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파나르 음식은 쉽게 드실 수 없으니 준비해 봤습니다. 그렇지만 한식 요리사를 뽑는 자리이기 때문에 한식을 기반으로 익숙한 맛이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심사 위원들은 기가 찬 표정이었다.

과제 자체를 재해석해 버렸지만 틀린 말은 특별히 없었다.

헛웃음을 내뱉으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래서 여기부터 먹으면 됩니까?”

“네 맞습니다.”

첫 번째 음식은 오이와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였다. 원래 소스는 소금만 조금 뿌려 먹는 게 전부.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속을 편안하게 해 주는 용도로 먹는 음식이었다.

“오이와 토마토는 독소를 제거해 주는 데 탁월하고, 상큼한 맛 덕에 입맛을 돋우기에 좋은 음식입니다. 게다가 수분이 많아 위장 운동을 활성화시켜 식전 요리로 적합해 파나르 사람들이 즐겨 먹습니다.”

아삭-

“은은한 매실 향과 약간의 매콤한 맛이 입 안을 아주 상쾌하게 하네요.”

“소스는 혹시 매실입니까?”

“네 맞습니다. 원래 파나르 사람들은 소금만 살짝 뿌려 먹지만 오이김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상큼한 매실청과 약간의 고춧가루를 뿌려 한국인에 더 맞는 샐러드로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발효되지 않은 오이김치지만 짜지 않고, 상큼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비쉬파르막이라는 음식을 드시면 됩니다.”

“이건 꼭 수제비 같네요?”

“네 맞습니다. 사골을 6시간 동안 우려 내고, 통감자와 밀가루로 만든 면을 넣어 만든 보양식입니다.”

“음….”

한눈에 봐도 칼로리가 높아 보이는 비쉬파르막을 보자 심사 위원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골은 두말할 거 없이 건강식이지만 감자와 밀가루까지 포함되면 탄수화물이 너무 많지 않을까요? 고령의 대통령들이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골 국물에도 기름기가 제법 남아 있는 것 같구요.”

심사 위원들의 비쉬파르막에 대한 평은 야박했다.

맛있고, 원기를 보충할 만한 음식이긴 했지만 건강식이고, 약이 되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까.

“이 음식 하나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에 먹었던 오이샐러드와 뒤에 이어지는 음식들을 맛보면 충분히 약이 되는 음식입니다.”

“그래요?”

다소 칼로리가 높은 비쉬파르막을 먹고 나면 반드시 뒤따라와야 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차.

“오이샐러드로 위장을 부담을 덜어 주고,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풍부한 비쉬파르막을 먹어 원기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몸에 남은 나쁜 지방들은 이 따뜻한 차로 씻어 주면 됩니다.”

녹차잎과 레몬, 블루베리까지.

파나르식 홍차를 대신에 좀 더 익숙한 녹차잎을 넣어 차를 우려 냈다.

“그러면 에너지는 채워지고, 몸에 쌓이는 지방이나 당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네요.”

설명을 끝내자 심사 위원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밤낮없이 일을 하는 대통령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음식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시원한 양파 수정과로 식사를 마무리해 주시면 됩니다.”

“양파 수정과는 또 뭐죠?”

매일 김용수 대사의 아침을 책임지던 양파주스.

거기에 꿀과 생강, 계피로 달콤함을 더해 주면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후식이 완성된다.

“이름이 장덕수라고 했나요?”

“네 맞습니다.”

“나이가 지금 서른도 안 되는 걸로 적혀 있는데 맞나요?”

이제는 큰 죄책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심사 위원들의 감탄 소리.

“아직 어리신데 큰 판을 짜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그러게요. 승부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실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문제를 해석하는 능력이 정말 신기합니다. 청와대에도 장덕수 씨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젊은 요리사가 한 명쯤 있어도 되겠단 생각이 드네요.”

심사 위원들이 내 이름을 한 번 더 물어봤다는 것은 아주 긍정적인 신호였다. 하지만 이 두 과제들의 점수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배점의 마지막 히든 과제.

지금까지 한 것보다 이 하나가 더 중요했다.

“그럼 마지막 과제의 요리를 시작해 주세요.”

신호와 함께 지원자들은 일제히 미역을 집어 들었다.

김채훈 대통령의 생일상.

그 어떤 요리사가 온다 해도 미역국을 빼놓을 순 없었다.

나 또한 미역국까지 빼먹을 생각은 없다.

다만 어떤 미역국을 만들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치이이이익-

달궈진 후라이팬에 참기름이 둘러지고, 생미역이 고소하게 볶아지기 시작했다.

0